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8)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8화(28/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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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디아의 상급 기사, 리시키다 암셸이 클라우젠 변경백 측에 항복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 직후 시온은 자신의 새로운 호위 기사로 그녀를 지목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기사들은 물론이고 몇몇 가신들까지 의문을 표했다.
충성심의 표본으로 클라우젠 측에서도 이름이 높았던 그 리시키다가 시온 클라우젠과 잠시 붙어있던 그 이틀 사이에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된 것이었다.
심지어 바로 직전까지 적국의 기사였던 이를 호위로 둔 시온 클라우젠까지.
‘도대체 뭐야?
뭐냐고?
어떻게 그 리시키다 암셸이 시온 공자님의 곁에?’
‘혹시 공자님께서 마성의 매력으로 혹하게 만든 거 아닐까?’
아니다, 이 시발롬들아!
이상한 소문 내지 마라!
기껏 간신히 옆에 뒀는데!
‘예끼!
이 사람들!
그런 말을.
당연한 거 아닌가?
그 때 자네들도 봤잖아!
공자님께서 병사 하나 구하겠다고 그 지옥에 뛰어드신 거 말일세!’
‘아아, 맞아.
나도 봤어.
와, 시바···.
진짜 보면서도 의심 밖에 안 드는 장면이었다니까?’
‘그 때 기사 나으리들도 놀라서는 입을 쩌억!
하고 벌리고 있었다니까?
내 평생 그런 장면은 다시 볼 수 없을 거야.
병사 하나 구하겠다고 귀족가의 자제분이 뛰어든다는 게 어디 가당키냐 한 일이냐고!’
‘그 뭐냐, 지미라고 했지?
그 젊은 친구는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고 아주 공자님의 칭찬을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하고 있더구만.’
으음, 좋아.
아주 좋아.
내가 그거 하나 노리고 그 불구덩이에 뛰어들어서 지랄 육갑을 떨었던 거지.
‘내가 보기엔 그 장면에 뭔가 느낀 게 있어서 넘어온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단신으로 우리 성 안에 들어올 리도 없고, 갇혀 있다가 갑자기 이틀 만에 나와서는 공자님의 옆에 붙어있을 수가 없지!’
‘좋은 일을 하면 알아서 복이 굴러들어오고, 사람들마저 모인다더니 역시나···.’
사방에서 쏟아지는 낯간지러운 말들에 시온은 끄응, 하고 침음을 내뱉었다.
처음에야 기분이 좋았지, 저게 계속 유지되니 점점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한 거라곤 미친놈마냥 뛰면서 지미 페이커를 찾다가 그를 업고선 다시금 죽어라 내뺀 것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좋겠네.
관심 많―이 받아서.”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만.”
“흥.”
후드를 쓴 채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릴리트가 콧방귀를 뀌며 앞서나갔다.
병사들에게는 대충 마법사라고 둘러댔는데, 혹 마족이라고 했다가 혼란이 일어날까 결정된 사항이었다.
다행히도 그 정신없는 전투의 와중에 릴리트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병사는 거의 없었다.
그럴 만한 것이, 바로 머리 위에서 운석이 이글거리면서 다가오는데 다른 곳에 정신을 쏟을 수가 있겠느냐 만은.
“자꾸 왜 그러세요.
어제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요?”
“그래, 남녀 간의 성관계로만 따지자면 아무 일도 없었겠지.
그건 나도 알아.
몰래 지켜보지 않아도 계약자의 상태 정도는 대충이나마 확인할 수 있어.”
“상태라 하시면?”
“서큐버스가 뭐에 민감하겠어?
당연히 남성의 사정감이지.
아, 참고로 자위했다고 구라 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그 정도도 구별 못할 정도로 우리 서큐버스 일족이 무르지는 않거든.”
“···켈록.”
사람 마음을 읽는 것도 아니고 사정감을 알 수 있단다.
이 무슨 편리한, 아니 이 무슨 무시무시한 인지 능력이란 말인가!
‘이건 뭐 다른 여자랑 만나서 뭔 짓 하면 죽어도 잡아뗄 수가 없겠구만.’
곱게 이야기만 하거나 아니면 손만 잡고 잘게, 를 실천해야 할 판국이었다.
사실 다른 여인들을 안을 생각은 아직 없지만, 은근히 주변을 맴도는 루시아나 아예 대놓고 곁에 착 달라붙어서는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리시키다를 바라보면 릴리트의 저 능력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뛰어나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시온이었다.
“그런데 왜 네 예비 껌딱지는 안 보인다니?”
“김유현이랑 대련 중이랍니다.
보아하니 저번에 못 낸 승부를 내고 싶은 모양이죠.”
“인간들이란.
하여튼 이상한 데서 힘을 써.”
그렇게 말한 릴리트는 다시금 저만치 앞서가기 시작했다.
시온은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결심을 한 듯 속도를 올려서는 그녀의 옆으로 붙었다.
“걱정 마세요.”
“무슨 소리야, 갑자기?”
“제 이상형은 딱 릴리트님 같은 누님 스타일이니까.”
시온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릴리트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갔다.
어찌나 붉게 물드는지 이러다가 머리 위에서 김이 새어나오다가 펑!
하고 터지는 건 아닐까 시온이 반 장난으로 걱정까지 할 정도였다.
“···하, 나쁜 놈.
순간 두근거리기는 했다.”
“순간이 아닌 것 같은데요?”
“시끄러워.
젠장, 계약자한테는 약해지는 게 또 서큐버스의 한계다, 시밤바.”
아하, 그래서 유독 나한테는 약한 모습을 보였구나.
소설에서 묘사되던 서큐버스 퀸 릴리트와는 뭔가 갭이 느껴진다 했다.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 시온이었다.
일단 예속의 계약을 맺게 되면 그 서큐버스가 마나와 정기를 얻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계약자와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서로를 원하는 욕정이란 감정이다.
“그러고 보니 릴리트님.
그 때 루시아의 마법을 막느라고 힘을 꽤 쓰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슬슬 다시 한 번 보충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참 일찍도 물어보셔?
그게 벌써 언제 적 일이야!”
“나흘 되었죠.”
“···보통이라면 최소 보름, 최대 한 달까지는 버텨.
그 때처럼 마나를 사용하면 더 줄어들기도 하지.
하지만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 일주일 안에는 한 번 더 해야 할 걸···.”
서큐버스가 관계를 언급하면서 부끄러워하는 장면은 또 처음이다.
정말 계약자 앞에서는 뭔가 볼 수 없었던 서큐버스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흐음, 이번에는 다른 체위로 해볼까요.”
“애, 애가 뭐라는 거야!
닥쳐!
미쳤어?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해, 나중에!”
조금만 더 말을 했다가는 정말 등짝 스매싱을 당할 것 같은 분위기에 시온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보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아버지 집무실이요.
급히 하실 말씀이 있다고 부르시더라고요.”
“흐음?
갑자기 왜?”
“뭐겠어요.
당연히 누디아와의 협상 때문에 그러겠죠.”
“협상?”
전투는 끝났지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물론 비공식적으로는, 누디아의 공격이 완벽하게 무위로 돌아간 순간 끝이 났다.
‘데이트고 전쟁이고 결국 중요한 건 분위기지.’
한 번 휩쓸리면 어떤 이가 와도 그걸 뒤집기가 매우 어렵다.
그걸 해낸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명장’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지휘관일 테지만, 아쉽게도 누디아에는 그런 인재가 없었으며 그 점을 시온이 모를 리가 없었다.
첫 번째 전투로 누디아의 국경을 지키고 있던 귀족 가문의 병사들이 아작이 났으며.
역으로 쳐들어가 클라우젠 변경백을 압박하려던 누디아의 두 번째 공격은 시온의 ‘공명의 계략’ 과, 거기에 더불어 발생한 리시키다의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완벽히 파훼되었다.
중앙에서 보내준 병사들이 여전히 멀쩡하다곤 하지만 사기가 내려간 군대는 더는 싸움을 위한 집단이 아니라 그저 칼과 창을 든 민간인에 지나지 않았다.
당장 적들은 두 번이나 승리를 거두어 그 예기가 쉽사리 녹슬지도 않았을 터.
여기서 전쟁을 지속한다는 건 자신들의 출혈을 강요하는 멍청한 짓이나 다름없었다.
‘독자로써 누디아의 마음에 드는 점을 꼽자면, 그래도 제법 빠르게 세상 돌아가는 걸 읽고 바로 태세 전환을 한다는 점이지.
존나 대단한 새끼들.
내 가슴이 다 웅장해진다.’
선전포고를 한지 한 달은커녕 보름도 채 안 된 시점이다.
이 정도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더 싸울 만도 한데, 누디아는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협상 카드를 내밀었다.
“걔네는 자존심도 없다니?
싸움 먼저 걸어놓고 이제는 먼저 협상?
와, 진짜 대단한 놈들이다.
그러고 안 쪽팔릴까?
우리 마족 같았으면 차라리 혀 깨물고 뒈졌을걸?”
“개인 간의 문제라면 또 몰라,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잖아요.
자존심 내세우다가 정말 서로 좆 되는 수가 있으니 이쯤 해서 사리는 편이 더 좋다고 판단한 모양이죠.”
얻을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질질 끄는 것이 전쟁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득 볼 것이 전혀 없다면 그 전쟁은 이미 패한 것과 다름없다.
그런 때에는 눈치 보지 않고 바로 웃으면서 ‘님 그만 싸우죠.
콜?’ 이라고 하는 것이 백 배 천 배는 나았다.
“아버지.”
“왔느냐.”
리히텐 변경백은 꽤나 밝은 표정이었다.
애초 국경의 분쟁이 전쟁으로 옮겨 붙는 것이었기에 국가 차원의 전멸전도, 총력전도 아닌 영지전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무리 짧게 잡아도 두 달은 가던 전쟁이 이번에는 보름도 안 돼서 끝나버린 것이었다.
“네 공이 컸다, 시온.”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전 그냥 앞에서 큰소리 좀 냈던 것뿐인데요.
무엇보다 아버지 역시 선공을 생각하시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했지.
하지만 병사들이 그렇게나 잘 싸워줄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 했었다.
그 점에서 봤을 때 이번 전쟁의 가장 큰 공은 네가 세운 거나 다름없다.”
“그냥 말장난 좀 했을 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말장난이었겠지만, 너는 그걸 기어코 실현해버리지 않았느냐?”
지미 페이커를 구하기 위해 지랄 육갑을 떨었던 일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시온 본인한테는 니미럴 팅팅부럴!을 외치며 개같이 뛰었던 악몽이었지만 리히텐 변경백이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영웅의 등장과 다름없는 고결하고 성스러운 순간이었다.
당장 시온의 행동에 자극을 받은 병사들이 부상자는 물론이고 전우들의 시신까지 어떻게든 수습해서 영지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덕분에 원래였다면 시신 없이 장례를 치를 뻔 했던 유가족들은 집으로 돌아온 가족을 껴안고 울면서도 그들을 마지막까지 배웅해 줄 수 있었다.
‘저 빌어먹을 전장에, 아무도 남기고 오지 않겠다.’
시온이 그 날 했던 말은, 아직도 병사들과 기사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었다.
뒤에 남겨진 병사 하나를 위해 죽을 각오로 뛰어들었던 백작 가문의 후계자가 남긴 그 말.
그리고 정말 부상자를 등에 짊어지고서 불꽃을 뚫고 나오던 그의 모습.
전부 다 말이다.
“해서 왕성에는 네 공이 컸다고 보고를 올렸다.”
“예?”
이건 이거대로 예상치 못 한 그림이었다.
원래라면 리히텐 변경백이 가장 큰 공훈을 세운 이가 되어 왕성으로 호출을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런 변경백의 뒤를 따라 왕성으로 가서 온갖 스포트라이트가 변경백에게 집중될 때 자신은 은밀하게 여러 일들을 실행하려고 했었는데···.
‘이거 완전 나가리인데.’
가장 큰 공훈을 세웠다는 건, 즉 모든 관심이 그 사람에게로 집중된다는 소리다.
거기서 끝이라면 좋겠는데, 전공을 세워 왕성으로 가게 되면 단순히 관심 집중뿐만 아니라 질투와 시기 어린 시선, 그리고 은근한 경계와 경쟁까지 동시에 받게 된다.
시온 클라우젠의 과거는 자신도 어쩌지 못 한 병신 짓의 연속.
그 부분들이 언제 어떻게 발목을 잡을지 모르는 판국에 정치판의 한가운데인 왕성으로, 그것도 주인공이 되어서 간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왜 그러느냐?
표정이 그리 좋지 않구나.
예전에는 왕성 타령을 매일 같이 해대던 네가 아니었더냐.”
“아, 네.
그러기는 했죠.
그런데 요즘은 그냥 집이 편해서 말입니다.”
“네 나이가 벌써 스물이다.
성인식까지 마쳤으니 이제 중앙의 귀족들과도 안면을 터놓고 왕국의 정세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그 정세,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
누가 뒤통수를 아주 알차게 후려갈기는지, 누구의 뒤통수가 와작 깨지는지.
또 누가 자리에 앉아서 어부지리로 ‘개쌉이득!’을 외치는지 말이다.
진흙탕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정치라지만, 지금의 히스파냐는 시발, 진흙탕 수준이 아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방사능 페기물 위에 똥을 붓고 그 위에 진흙으로 살짝 가린 수준이랄까.
“저는 다만 협상까지 완벽히 잘 마쳐야 제대로 공을 세웠다고 왕성에 당당히 말할 수 있어서 말입니다.”
“흐음,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 때문에 불렀다.
듣자하니 누디아 측이 협상 테이블에 내가 아닌 시온, 네가 오기를 희망한다고 서신을 보냈다.”
“저를 말입니까?”
국경의 모든 일을 도맡는 리히텐 변경백이나 그의 부재 시 전권을 위임받는 라이온 기사단장을 두고 자신을 불렀다, 라.
어디서 구린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저기, 부자간의 이야기 중에 미안한데.”
얌전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릴리트가 손을 들었다.
마족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영지를 도와준 은인이자 자식과 계약한 이였기에 리히텐 변경백은 불쾌한 기색 하나 없이 입을 열었다.
“말해보시죠, 서큐버스 퀸.”
“그 협상장에 나도 따라가도 될까?”
“아쉽게도 그쪽이 요구한 인원은 시온과 기사 하나여서 말입니다.”
“그러면 그 기사 자리, 내가 먹으면 되는 거 아냐?”
“이미 그 기사의 이름까지 논한 상태라서.”
리히텐 변경백의 말에 시온과 릴리트가 동시에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릴리트야 자신이 따라가지 못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더러워진 것이었고.
시온은 누디아 측이 요구한 다른 인원 하나가 누구인지 예상이 되어서 였다.
리히텐 변경백은 시온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리시키다 암셸.
그녀와 같이 협상 막사로 나와 달라고 하더구나.”
“···혹시 그 협상 테이블에 누디아 측에서는 누가 나오는지 알고 계십니까?”
이미 뻔히 예상은 되었지만, 시온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솔직히 그 놈이 사람 새끼라면, 미쳤다고 협상장에 얼굴을 비추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상대는 사람 새끼가 아니었다.
“누디아의 국경을 책임지던 백작이다.
항상 우리 클라우젠과 부딪치던 가문의 주인이지.”
그 놈이다.
리시키다의 전주인, 실컷 이용해먹고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여기자 바로 손절한 놈.
‘···뚝배기를 부숴버릴까.’
순간 협상이고 뭐고 다 뒤엎고 싶은 시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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