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288)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288화(288/439)
288―――――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
“와, 이 거지 같은 새끼들.
뭐 이리 센 건데!”
아마 전후 사정도 모르는 어떤 이가 이 말을 들었다면 당신 꼴이 더 거지같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직후, 이 포악무도한 최고위 마족 ‘바하무트’ 에게 갈가리 찢겨진 육편으로 변해서 사방으로 흩어졌을 것이고 말이다.
“시발!
개새끼들!”
완벽하게 엉망이 된 몰골로 바하무트는 퉤퉤, 침을 뱉으며 헛구역질까지 했다.
몸을 한계 이상으로 굴리니 당연히 무리가 와서 버티지 못 하는 것이었다.
“···그 입 진짜.
나한테는 걸레라고 하는데 정작 진짜 걸레는 네 입 같다, 바하무트.”
“이 창녀가 진짜.
너 죽는 수가 있어?
네년 말에 넘어가줬다고 무시하는 거야?”
“아니.”
“그러면 뭔데.
천족은 고사하고 인간 따위한테 밀려서 물러난 게 우스워?”
“헛소리 마.
같이 밀린 건 나도 마찬가지야.”
릴리트의 반박에 바하무트는 ‘쳇.’ 하고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상대가 화를 내야 이쪽도 같이 받아치면서 더 크게 싸우기라도 하는데, 릴리트가 아예 그런 길을 원천봉쇄하니 이렇게 시비를 걸고 있는 자신만 우습게 보일 정도였다.
“시발···.”
“진정해.
이미 예상했던 일이잖아?
이러자고 신성 프러센을 친 거고 말이야.”
“알아, 안다고.
다 아는데.
빌어 처먹을!
천족, 그 비둘기 새끼들은 그렇다고 쳐.
인간들은 뭐야?
도대체 왜 그리 강한 거냐고.
우리가 얌전히 지낸지 몇 천 년이 지난 것도 아니고 고작 해야 2백년?
그 정도가 흘렀을 뿐인데 인간들은 벌써 저렇게 강해졌단 말이야?”
“저것보다 더 한 인간도 있어.”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릴리트는 신성 프러센을 공격하던 당시를 떠올렸다.
바하무트를 설득하여 남아있던 휘하 마물들을 앞세워서 남하하여 방어선을 일격에 깨부수고 미친 듯이 내달려서 신성 프러센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성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자 이전까지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 같던 신성 프러센의 인간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는데, 그 무력이 어찌나 강력하던지 바하무트는 물론이고 릴리트마저 살짝 놀라고 말았다.
‘신성 프러센의 인간들이 이 정도로 강했다고?
이건 정말 예상 밖인데?’
히스파냐에서 시온과 함께 지내면서 그쪽 인간들의 무력 수준은 어느 정도 파악했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상황에서 신성 프러센이 정말 제대로 각 잡고 누디아와 히스파냐를 치면 아마 열에 아홉은 버티지 못 하고 무너질 확률이 매우 높았다.
훈련 수준이나 검술 뭐 이런 것에서 차이가 난다는 게 아니다.
그냥 뭔가 달랐다, 정말 다른 말로는 표현하기조차 모호할 지경으로.
‘도대체 뭐지?
뭔가 부자연스러운데.
너무 인위적이잖아.’
최고위 마족이라는 호칭은 괜히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비록 몽마들의 여왕, 서큐버스 퀸이라고 하지만 전투에서 약하다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런 릴리트가 느끼기에 뭔가 이상하다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뭐, 그래도 그 괴물 같은 남자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뭐라는 거야.
혹시 나한테 욕 했어?”
“너한테 욕을 할 거면 내가 당당히 하겠지, 이렇게 혼잣말로 하겠니?”
“···뭔가 맞는 말이라서 대답도 못 하겠네.
썩을 년.”
바하무트는 화를 대신 하듯 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옆에 얌전히 앉아서 마치 잠을 자듯 두 눈을 감고 있던 또 다른 여인에게 말했다.
“일단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은 한다, 벨.”
“···.”
“맨날 그렇게 쳐자지만 말고 재깍재깍 도와줬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귀찮아.”
“얼씨구?
천족들이랑 화끈하게 싸울 때도 귀찮다고 징징대던 년이 이제 와서 갑자기 뭔 바람이 불어서 우리를 도와준 건데?”
그러자 창백한 피부에 칙칙한 회색 머리를 지닌 여인이 천천히 손을 들어 릴리트를 가리킨다.
“···.”
“저 년이 뭐.”
“도와달라고.”
“릴리트가?
그 사이에 너한테까지 찾아갔던 거야?”
벨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바하무트가 사실이냐는 듯 릴리트를 쳐다보니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곤 입을 열었다.
“설마 우리 둘에 휘하 마족들이랑 마물들 데리고 뭔 일 해본다는 게 더 웃기잖아?”
“의외네.
너 옛날에는 벨 엄청 싫어했잖아.
게으름 피우고 늦장 부린다고 말이야.”
“그 때는 그랬는데, 돌아보니 다 써먹을 데가 있긴 하더라고.”
“얼씨구.
어디서 그런 좋은 가르침을 배우셨을까?
나도 좀 얻고 싶다, 야.”
바하무트는 그냥 장난 식으로 그렇게 떠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릴리트가 시뻘건 두 눈에 흉흉한 기세를 가득 머금더니 번개 같이 바하무트의 목을 낚아채고는 그대로 숨통을 조르기 시작했다.
“커흑!
케엑!
너, 너 이게 무슨 짓···.”
“내 거, 탐내지 마라.
정말 죽여 버리는 수가 있어.”
“내, 내가 언제 탐을 냈다고··· 놓으라고, 젠장··· 크으윽!”
불의의 기습, 더해서 신성 프러센에서 벌어졌던 전투 직후라 바하무트는 어떻게 해보지도 못 한 채로 릴리트의 팔만 후려치면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그만.”
“···.”
“죽어, 그러다가.”
벨의 제지, 바하무트의 반응, 그리고 무엇보다 시온에게 받은 힘이 거의 남지 않았음을 자각한 릴리트는 숨을 고르며 마구 들끓던 분노와 소유욕 등을 억지로 잠재웠다.
“커헉!
콜록, 콜록!”
“···미안.
사과하는 게 웃기겠지만 정말 미안하다고 해둘게.
마치 네가 내 것을 탐내는 것처럼 느껴져서 말이야.
나도 모르게 손이 갔어.”
“크헉, 으으··· 진짜 이 미친년이 돌았나···!”
솔직히 바하무트 입장에선 장난 좀 쳤더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수준이었다.
대놓고 싸우자고 도발을 해도 담담하던 릴리트가 그냥 말장난 좀 했더니 갑자기 터져서는 당장이라고 여기서 생사를 가르는 전투라도 하겠다는 분위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만, 둘 다.”
“말리지 마, 벨.
시발!
저년이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근처야.
천족들.
추격했어.”
벨의 말에 바하무트와 릴리트는 동시에 욕설을 내뱉었다.
신성 프러센에서는 인간들에게 밀리다가 그 틈으로 끼어든 천족들에게 그나마 남아있던 마족들이 살해당하고, 자신들도 최상위 천족들과 전투 끝에 결국 물러난 상황이었다.
애당초 숫자에서부터 밀리는데 그 틈바구니에 언제 그렇게 강해졌는지 모를 인간들까지 껴서는 들이닥치니 제아무리 마족이라고 해도 버틸 수가 없었다.
‘이제 세상을 그림자로 뒤덮을 야망을 지닌 종족 타이틀은 다 뗐네.’
인간한테조차 승리를 거두지 못 하는 종족인데 악이니 그림자니 뭐가 되겠는가.
서로 수준이 맞아야 선악이라고 할 수 있고 정의와 불의라고 할 수 있는 법.
하지만 현재의 마족은 천족들이 그대로 반격에 들어온다면 순식간에 붕괴될 정도로 그 근간이 거의 무너진 상황이었다.
당장 인간들에게는 몬스터보다 더 무섭다는 존재로 알려져 있던 마물들이 신성 프러센의 기사단에 의해 도륙이 나지 않았던가.
하위 마족들은 그 기사들에게 한낱 식후 운동 거리에 지나지 않았고, 얼마 남지 않은 고위 마족들은 천족들의 손에 걸려 말 그대로 묵사발이 나기 일쑤.
애초에 승리할 가능성은 없었고 적당히 싸우다가 물러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이렇게 처참하게 패배할 것이라곤 미처 생각지 못 한 세 명의 최고위 마족들이었다.
“가야 해.
빨리.
망설이다가는···.”
“알아.
빌어먹을 비둘기 놈들.
다 뒈진 것처럼 인간 뒤에 숨어서 힘을 키우고 있었어.
저번 전쟁이랑 다른 게 없어 보일 정도로 쌩쌩해 보이더라?
개새끼들.”
“루도 굉장히 멀쩡해 보이더라고.”
“그 재수 없는 비둘기 대장 노릇 하는 놈?
아, 그 놈 주둥이 한 대만 치면 소원이 없겠다.”
“꿈 깨.
그놈 옆에 몇 명의 비둘기가 붙어있는데.”
릴리트를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대로 천족들이 세상 끝까지 추격한다면 정말 큰 문제겠지만, 그들도 필멸의 땅에서는 마족들이 더 유리하다는 건 알고 있다.
이전 전쟁에서도 마족들의 꾐에 넘어가 무리하게 쳐들어 왔다가 큰 피해를 보고 물러난 전적이 있으니 이번에는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도 방심하지 않을 것이었다.
‘시온, 일단 네 말대로 천족들한테 자신감이란 걸 내어주기는 했거든?
그런데 과연 그게 자만심으로 변할지 아니면 딱 거기에서 멈추고 다시 상황을 지켜보는 평소의 자세로 돌아갈 지는 나도 모르겠다.’
원래라면 후퇴하는 와중에 찢어져서 자신은 시온에게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나 있을지 모를 추적자 생각도 해야 했고, 무엇보다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동료의 부탁이라고 해서 신성 프러센을 향해 공격을 감행한 녀석들이니 버리고 가는 것도 상당히 미안한 것이 사실이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물러서기 전까지는 이들과 함께 움직이면서 조금이라도 동료들의 뒤를 봐줘야겠다는 생각의 릴리트였다.
‘이렇게 하는 게 나중에 또 이용해 먹을 때 상당히 괜찮은 이유가 될 것 같거든!’
···역시 부부는 일심동체라더니 생각하는 것마저 비슷한 두 남녀였다.
―
“···.”
아까 전에 일어난 헬렌은 자그마치 30분 동안이나 멍하니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고,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여기가 왕성 안의 하이네스 상단 건물이 아닌 왕국 동쪽의 클라우젠 변경백령임을 다시 한 번 자각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것인지.
헬렌은 자신이 벌인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운 행동에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일을 벌인 당사자인 자신조차 이리 당혹스러운데 시온이나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심지어 시온 공자님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조차 잘 기억이 안나.’
워낙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시온이 살아있다는 걸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 너무나도 안도해서 그만 긴장이 확 풀린 것일까
헬렌이 아무리 생각해보려 애를 써도 어제 정확히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바보 같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헬렌은 일단 몸 상태부터 살폈다.
다행히 거의 하루를 푹 자서 그런지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벼웠다.
특히나 누군가가 꽤나 오랫동안 잡아주었던 자신의 손에서는 아직도 그 온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똑똑―.
“실례하겠습니다, 헬렌 상단주님.”
그 말과 함께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리시키다.
그녀는 곁에 시녀들을 대동한 채 방문 앞에 서있는 상태였다.
“오늘 주인님과 약속이 있으신 건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네?
야, 약속이요?”
“어제 주인님께서 상단주님과 함께 가실 곳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 그게···.”
“몸 상태가 좋지 않으셨으니 기억이 흐릿할 수도 있다고.
해서 제게 헬렌 상단주님의 준비를 도우라고 주인님께서 명하셨습니다.
거북하시지 않으시다면 여기 있는 분들이 상단주님을 도와서 외출 준비를 하게 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리시키다의 정중한 질문에 헬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리시키다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시녀들에게 들어가도 좋다는 뜻을 내비쳤고 그녀들은 헬렌의 몸단장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아, 그 전에···.”
“···?”
“놀라시지 마세요.
몸에 흉한 상처가 많아서.”
샤워를 하기 전 헬렌은 시녀들에게 그렇게 말을 해두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요정 여인의 몸에 무슨 상처가 그리 많을까 싶었겠지만, 잠시 후 그녀들은 헬렌의 몸 곳곳에 새겨진 상흔에 놀라움을 감추느라 고생을 해야만 했다.
‘내게는 잊어서는 안 되는 과거였으니까.’
마법으로 흉터들을 지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헬렌은 그리 하지 않았고, 마치 자신의 복수에 대한 맹세마냥 그 상처들을 남겨두었고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그 상처들을 돌아보며 다시금 복수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그리고 현재, 이제 그 복수는 전부 끝났고 그 흉터들도 더는 존재 가치를 잃고 말았다.
‘이제는 너희들도 어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구나.’
헬렌은 자조적인 미소를 띠며 샤워를 마쳤고 시녀들의 손에 의해 빠르게 외출 준비를 마쳤다.
그 후에는 시녀들이 무척이나 고심하여 고른 듯 한 예복을 입게 되었는데, 그 모양새가 마치 어디 파티라도 가는 듯 한 드레스 차림이라 헬렌은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도대체 어디를 가기에 이러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며 리시키다의 안내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가니 거기에는 시온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시온 공자님.
어제는···.”
“가자.”
“네, 네?”
“가자고.
갈 곳이 있어.”
그렇게 말하며 시온은 헬렌의 손을 잡고서 미리 대기 중이던 마차로 올라탔다.
다른 이들 눈에 비쳐서 문제될 게 있다고 판단했는지 소수의 인원이기는 했지만 다들 김유현이 거르고 걸러낸 최고의 사람들이었다.
“···.”
마차에 올라탄 후, 헬렌은 그런 제 손을 또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자신 같이 이미 더럽혀진 여인이 감히 함부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주변에 자신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그에게 여인의 순결을 내주었던 이들이 있으니까.
노예로 끌려가 다른 남자한테 비참하게 괴롭힘을 당하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이들이니까.
그런 여인들이 이미 시온의 곁에 있는데 괜히 자신이 그 사이로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최소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헬렌은 그마저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시온이 죽었다는 말에 그대로 정신이 나가버려서 그 어떤 이성적인 판단조차 거부하고 클라우젠으로 미친 듯이 내달리지 않았던가.
‘아니야, 제발.
헬렌, 그러지 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잖아.
이미 나와 그 분은 꽤나 괜찮은 사이, 가까운 사이.
여기서 더 욕심 부리지 마.
간신히 품에 안은 걸 괜한 욕심으로 더 안으로 당기다가 놓치지 말고.
제발, 제발.
여기서 포기해.
더는 다가가서는 안 돼.’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미어지고 숨이 가빠졌다.
차라리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환상도 품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성을 가진 존재란 게 참 슬픈 것이 이렇게 한 번 기대하면 그걸 버리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손에 한 번 담았던 꽃을 다시 한 번 더 눈에 담고, 코에 대고, 품에 안고 싶었다.
여태까지 살아왔던 삶이 너무나 힘들고 고달파서.
자신이라는 꽃은 계속해서 한겨울 내내 찬바람만 맞으며 살다가 간신히 봄을 맞이해서.
그 안락함을, 그 따스함을 떨쳐내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도착했습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호위 기사의 말에 시온은 문을 열고는 먼저 내려서 헬렌을 에스코트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고작 일개 상단주를 클라우젠의 후계자이자 왕국의 영웅이라는 남자가 그리 대우하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묘할 법도 했지만 그들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상태로 주변만 경계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온 공자님.
여기는 도대체···.”
헬렌이 그렇게 질문을 던져도 시온은 답이 없었다.
결국 혼자서 답을 알아내야 했던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클라우젠의 성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 같아 보이는 이곳은, 무척이나 평화롭고 또 조용해 보이는 숲의 경계 부근이었다.
그러자 헬렌은 ‘아아.’ 하고 탄식을 내뱉더니 발걸음을 멈추려고 애썼다.
“왜 그래, 헬렌.”
“시온 공자님.
잠시만, 잠시 만요.
저, 저는 숲으로 들어가서는 안 돼요.
저는···.”
“요정들이 너한테 그렇게 말했어?
몸이 더럽혀진 종족의 수치이니 어디를 가든, 그 어떤 숲에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이야.”
“그, 그걸 어떻게···?”
“널 버린 동족이야.
너도 그래서 동족을 버리겠다고 했지.
그런데 뭘 그리 망설여.”
그렇게 말하며 시온은 다시금 헬렌을 숲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헬렌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결국 그의 손에 이끌려 노예상들에게 납치된 이후 온갖 고생을 하다가 간신히 벗어나서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그 동족들에게 쫓겨난 이후 단 한 번도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숲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시온 공자님.”
“주변은?”
“확인했습니다.
위험한 건 없습니다.”
“고마워.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도록 하지.”
“이미 어제 에오스와 만나서 나눈 이야기로 충분합니다.
모두 공자님 덕이죠.”
시온의 부탁 같은 명령으로 이 숲 일대를 싹 돌아본 김유현이 그렇게 말하며 시온이 들어왔던 길을 통해서 마차 쪽으로 걸어갔다.
그 후로도 시온은 헬렌을 손을 잡고서 숲의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어느 한 지점에 이르자 그는 헬렌의 손을 잡아당겨서는 가볍게 앞쪽으로 밀었다.
“···.”
헬렌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참으로 건강하게 뻗어있는 나무들과,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들.
그리고 그 사이로 흘러오는 선선한 바람과 새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
모든 것이 과거 그녀가 어린 소녀일 적 마주한 것들과 똑같았다.
“이제 그만 아파도 돼.”
“···.”
“누구도 네게 뭐라고 하지 않아.
나도, 리아도, 루시아도.
그리고 다른 내 사람들 모두가 다.
네가 과거 무슨 일을 겪었고, 무슨 일을 당했고, 그래서 어떤 일을 하려고 했는지.”
“···.”
잠시 그 말을 들으며 멍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헬렌은.
결국 자리에 주저앉으며 평생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눈물을 또 다시 보이고 말았다.
자신은 다만 멀어지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었는데.
저 남자는 헬렌 자신을 위해서 계속 가까이 오라고 말하고 있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내가 어떤 과거를 보낸 존재인데.
당신 같은 사람에게 걸맞은 여인도, 다른 여인들과 비교할 만한 이도 아닌데.
당신은 왜 자꾸만 나를···.
―하얗게 피어난 얼음꽃 하나가―달가운 바람에 얼굴을 내밀어―
:
흐르는 바람과 함께, 류트의 연주가 흐르고.
―차가운 바람에 숨어있다―한 줄기 햇살에 몸 녹이다―
:
따스한 햇살과 함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았던 기억만―그리운 마음만―
:
―잊혀질 만큼만―괜찮을 만큼만―
온갖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진 과거에서 허우적거리던 여인은.
비로소 다시 돌아온 이 그리운 곳에서 그렇게나 원했던 것들을 만끽하며.
―눈물 머금고 기다린 떨림 끝에 다시―나를 피우리라―――――――작품 후기―――――――
야생화―박효신 ( 고음 제외 1절 파트만!
중요!)
딱지 당첨되신 분 축하드리고···.
재사용 대기 시간 감소에 올인하여 궁극기 한 번 더 ···.
썼습니다···.
쿨럭···.
추천···.
이 ···.
필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