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화(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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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 클라우젠은 그 일이 있은 후 거의 한 달을 방에 틀어박혀 폐인처럼 지냈다.
특히 다른 이와 눈만 마주쳐도 경기를 불러일으키곤 했는데, 자신을 바라보던 괴수의 눈빛이 뇌리에 박혀 그날의 끔찍한 기억 속에서 계속 헤매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
소설 속 한 부분이 떠올랐다.
검이나 다른 날붙이가 아닌, 손날 내려치기로 시온의 팔 커팅식을 진행해준 김유현.
덕분에 시온은 한 달 넘게 폐인처럼 방에 박혀 있다가 결국 김유현에 대한 증오와 저주로 똘똘 뭉친 최악의 악역이 되고 말았다.
특히 김유현의 시선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다른 이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때 당시가 떠올라 무서워서 떨었다고 묘사가 되어 있는데···.
‘그냥 시온 클라우젠이 처음부터 병신인지라 눈 좀 부라린 거에 쫄았다고만 여겼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극히 정상인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자신조차 이렇게 호달달거리며 괴수 앞의 들짐승마냥 떨고 있지 않는가.
‘시발!
도대체 뭘 어쩌라고!’
김유현이라는 캐릭터의 특성 상 트레이를 넘겼어도 이런 시선을 받았을 것이다.
압력에 굴복해서 제 동료나 주변 사람들을 내놓는 것을 경멸하는 그였으니까.
시온은 이를 악물었다.
이제 와서 제 말을 무르기에는 늦었고, ‘다시 생각해보니 데려가는 편이 좋겠네요.
마음대로 하세요.’ 라고 말하며 비굴한 미소를 짓기에는 더더욱 늦었다.
이제는 별 수가 없다.
대가리가 깨지든 팔이 잘리든 눈 질끈 감고 질러 봐야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트레이 경을 넘기는 건 힘듭니다.”
“···대신 네가 죽고 싶다는 건가?”
스르릉!
마침내 김유현의 허리춤에 매여져있던 검이 섬광을 토해냈다.
당장이라도 시온의 목을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듯 반쯤 뽑혀져 나온 그의 검.
마음 같아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시온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 유혹을 참아냈다.
대신 마치 소신 발언을 하는 것 마냥 최대한 당당해보이는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트레이 경의 잘못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죠.
하지만 그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 제 잘못도 없다고 할 수 없으니 성으로 돌아가 영주님께 죄를 고하고 처벌을 기다릴 겁니다.
아무리 잘못이 있다고 하나 부하를 함부로 남에게 내어줄 수는 없는 것.
그게 주인 된 자의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
시온의 말을 듣는 순간 김유현의 한쪽 눈꼬리가 사납게 위로 치켜 올려졌다.
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이가 그 장면을 봤다면 식겁을 하며 뒤로 넘어졌을 테지만 시온은 달랐다.
김유현의 거 눈꼬리를 치켜 올리는 것이 ‘이것 봐라?’ 하고 감탄할 때 나오는 그만의 습관임을 잘 알고 있던 것이었다.
‘됐다!
김유현님이 눈꼬리를 올리면서 날 보셨어.
날 보셨다고!’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일단 호감도를 올리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유현이 순순히 물러날 위인은 결코 아니니까 말이다.
일단 밑밥을 깔아두었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저 무시무시한 남자를 여기서 되돌려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또 한 번 머리를 굴리려는 찰나였다.
“저기, 유현.”
김유현이 내어준 겉옷을 위에 걸친 채 얌전히 상황을 주시하던 루시아가 입을 열었다.
설마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건 아닐까 바로 경계 태세에 들어가는 시온.
하지만 루시아는 아직도 루시아 코인을 믿지 못 하냐는 듯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분,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공자님이세요.
이미 진심으로 사과를 하셨고 전 사과를 받아들였어요.
그런데도 자꾸 저 분을 압박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오오, 오오오!
시온은 속으로 연신 감탄사를 흘렸다.
김유현의 스승인 라이도, 그 라이도의 하나뿐인 딸, 루시아.
당연히 김유현으로써는 루시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하고, 그걸 루시아가 받아들었다.
거기에 비록 부하가 잘못하기는 했지만 귀족 가문의 기사를 내놓으라고 하는 건 큰 무례.
물론 힘을 써서 데려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제 부하라고 감싸고도는 저 시온이라는 귀족이 썩 나쁘게만 보이지 않는 김유현이었다.
“흥.”
결국 김유현이 더는 압박하지 않겠다는 듯 살짝 뒤로 물러섰다.
그의 살벌한 눈빛이 사라지자 시온은 비로소 안도감에 빠져들 수 있었다.
‘시바, 살았다!’
마음 같아서는 무릎이라도 꿇고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알라든 뭐든 찾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지훈이 아니라 시온 클라우젠이다.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장자이자 공식적으로는 백작가 후계자.
최소한의 권위는 지키는 게 이로울 것이라고 거의 본능적으로 판단한 시온은 초인적인 인내로 환호성을 참아내고 말았다.
“시온 공자님, 맞으시죠?”
루시아 코인 떡상 각이다!
어예!를 연신 외치며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줄 것 같은 환한 미소까지 지어보이는 시온이었다.
덕분에 루시아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아까 전에 제게 조언을 구하고 싶으셨다고 했죠?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에?”
하라는 대답은 못 하고 멍청하게 탄식만 내뱉는 시온이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애초에 시온이란 놈은 루시아를 겁탈하기 위해 납치한 거지 정말로 무슨 조언으로 구하려고 부른 게 아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내용물이 바뀌어서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고, 지금의 시온은 그저 사람 같지도 않은 괴수 김유현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둘러댔을 뿐이다.
‘아니, 루시아님!
갑자기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떡락각 날카롭냐?
‘이, 이 정도로 떡락은 아니어도 하락은 하락이지.
아,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조언이고 나발이고, 말 잘못 했다가는 당장 목이 날아가게 생겼다.
자신을 속이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는 김유현의 성격 상 속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검집으로 되돌렸던 검을 다시 뽑아들고는 살기를 줄기줄기 내뿜을 것이 안 봐도 훤했다.
‘생각하자, 생각.
시발, 두뇌 풀가동!’
자신이 루시아와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 부분.
클라우젠 백작가의 장자로써 평범한 여인과 비밀리에 나누고 싶을 이야기.
절대 사적인 부분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 그것이···.
‘없나?
없나?
진짜 없나?
어머니, 아버지, 하느님, 부처님, 작가님.
제게 힘을 주세요.’
뉴런 세포 하나하나까지 굴리고 또 굴리던 순간, 시온의 머릿속에 번뜩하고 스쳐지나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저···.”
시온은 바로 말을 하는 대신 김유현을 바라보았다.
망설이는 입술,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딱 봐도 ‘이야기 해드릴 수는 있지만 듣는 귀가 많아서 좋을 일이 없는데요.
제 3자는 꺼지라고 하고 저희끼리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만.’ 이라는 기운이 팍팍 느껴지게 말이다.
“···.”
다행히도 김유현은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슬쩍 뒤로 빠져서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서려던 김유현.
하지만 바로 직후, 그렇지 않아도 그의 가공할 무력에 아작이 나있던 벽이 김유현의 체중이 쏠리자마자 바로 와르르!
하고 폭삭 주저앉았다.
덕분에 뻘쭘해진 김유현은 흠흠!
헛기침을 하며 자신은 아무 짓도 안 했다는 듯 다른 곳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 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의 제자라고 해야 할까요.”
걱정을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나 정도는 새끼손가락으로도 죽일 수 있을 걸요.
“그보다, 정말 비밀스러운 이야기인가보네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건 클라우젠 변경백령과 관련된 일이라서 말이죠.”
“변경백령이요?”
루시아의 반문에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기억하는 이후의 소설 전개.
이웃 왕국과의 전쟁이 발발하여 변경백령은 순식간에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 와중에 등장하여 적군을 그야말로 도륙하다시피 한 존재가 바로 김유현.
덕분에 큰 위기를 넘긴 변경백은 김유현과 마주하게 된다.
제 아들의 팔을 잘라낸 원수이지만, 동시에 영지를 지켜준 은인.
이미 시온 클라우젠이 변경백의 장자로써 절대 해서는 안 될 불명예스러운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 알려진 상황이었고 명예를 중시하는 변경백으로써는 결코 묵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김유현을 받아들였고 이후 그가 중앙으로 갈 수 있도록 그를 도와준다.
변경백으로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게 시온에게는 무척이나 충격적이고 또한 배신감이 드는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나중에 시온 클라우젠은 제 손으로 아비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고 만다.
제 팔을 잘라내고 치욕을 준 아들의 원수에게 어찌 아비라는 작자가 그런 대우를 해줄 수 있냐고 괴성을 지르면서.
‘패륜까지 저질러 싸놓고 정작 그 탓을 김유현에게 돌리는 병신.
덕분에 독자들이 참 오지게도 욕했었지.’
대한민국에서 다른 건 다 용서해도 부모를 건드리는 패륜만큼은 용서가 안 된다.
그리고 이지훈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소설 속에서는 아들 손에 비참하게 죽은 변경백이지만··· 이번에는 효도 제대로 받게 해드려야지.
그래야 김유현을 더 팍팍 밀어주고 녀석이 얼른 이 변경을 떠날 거야.’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시온은 속으로 ‘역시 애독자다운 발상이야.’ 라고 중얼거리며 루시아의 물음에 답했다.
“요즘 들어 갑자기 땅이 메마르고 이상한 소문이 나돕니다.
다만 공개적으로 이 일에 대해서 말했다가는 문제가 될까 라이도님을 뵙고 답을 좀 구하고자 했는데···.”
“마침 제가 보여서 제게 대신 묻고 싶으셨다, 이거군요.”
그렇게 말하며 루시아는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변경백령의 수원은 정확히는 둘이다.
하나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 다른 하나는 이웃 왕국에서 나오는 지류.
가뭄이 들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 했으니 산에서 내려오는 수원은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나오는 답은 하나, 이웃 왕국에서 흘러나오는 지류인데···.
“···공자님은 제게 답을 구하러 오셨다지만 이미 답을 알고 계시는 것 같군요.”
“루시아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갑작스레 수원을 끊는 적대적인 행동을 한다는 건 오직 하나만을 의미하죠.”
전쟁.
차마 그 단어만큼은 루시아도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내지 못 했다.
그만큼 그 단어가 가져오는 충격과 공포는 상상 그 이상이었으니까 말이다.
“결국 그렇게 되는 거군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시온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모습에 루시아는 저도 모르게 아, 하고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이렇게 잠깐이면 될 것을 제 미련한 부하 녀석이 다 망쳐놓았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아니에요, 공자님.
그보다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갈 수도 있으니 대비를 하시는 편이 좋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변경백령의 장자답지 않은 소탈하면서도 예의바른 모습.
거기에 주변 정세를 몇 가지 조건만으로도 예측하고 읽는 현명함까지.
소문 속의 시온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그의 모습에 루시아는 사람들이 하는 말 따위는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는 결코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되었다.
‘거기에 너무 잘 생겼··· 에흠!’
애써 속마음을 감추던 루시아는 문득 들어온 뭔가에 저도 모르게 손을 내뻗었다.
한편, 자신이 생각해도 위기를 아주 잘 벗어났기에 시온은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옆에서 희고 고운 두 손이 제 얼굴에 감기더니, 갑자기 볼을 쓰다듬기 시작한다.
“어···?”
“상처가 나셨네요.
흉이 나면 안 되시는데··· 잠시만요.”
여인의 손이 볼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간다.
그러자 시온의 얼굴에 나있던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시온이 두 눈만 깜빡이고 있자 루시아는 얼굴에 홍조를 띠며 몸을 배배 꼬았다.
“가, 간단한 치료 마법이에요.
별 거 아니니 공자님께서는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아마도 갑작스레 자신이 마법을 써서 시온이 놀랐다고 생각한 루시아.
하지만 현재 시온이 멍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뭐지, 이건?’
김유현과 루시아가 그저 그런 사이에서 비로소 연인 관계로 발전하던 바로 그 편에서.
루시아는 김유현의 얼굴에 난 상처를 쓰다듬으며 저런 표정, 저런 목소리로 저리 말했었다.
흉이 나면 안 된다고,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갑자기 느낌이 쎄한데?’
설마 아니겠지, 라고 여기기엔 루시아의 얼굴에 피어오른 홍조가 너무나도 짙었다.
갑작스레 핑크빛 분위기가 연출되자 시온은 저도 모르게 저 멀리서 딴청을 피우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유현아, 미안하다.
이건 절대 고의가 아니었다.
것보다··· 빌어먹을.
지 여자 뺏었다고 나중에 칼부림 하는 건 아니겠지?’
어째 실현 가능성이 꽤나 있을 법한 미래를 걱정하며, 시온은 한숨을 내뱉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