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08)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08화(308/439)
308―――――
나는 그대를 포기하겠다
“그런데 시온 말을 듣다가 생각해보니 결국 이번에는 상대가 확실하게 움직이지 않는 이상 시온, 너도 별 다른 방법이 없다는 소리네?”
릴리트의 날카로운 지적에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는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동원해서 상대방을 완벽하게 물 먹이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주력했다지만 이제는 반대로 결정적인 사건만 기다리는 중이었다.
천족들의 일을 망치는 것과 동시에 마족들이 별 것 아니라는 함정을 펼쳐두었으니 걱정 없이 인간들과 이종족들을 정리하고 이제는 회복 불가능으로 망가진 마족들을 마저 치워내려고 할 것이다.
“괜찮은 건가요, 시온?
조금은 불안한데.”
“냐앙.”
다만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다른 이들은 시온의 결정에 걱정하는 눈치였다.
오히려 이런 때에 조금이라도 더 활동해서 보통의 사람들에게 경고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모양.
여태까지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이 갑자기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다들 여태 달리기만 하고 한 번도 쉰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시온은 일의 효율만큼이나 휴식의 중요성도 나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당장 최고의 상관은 머리가 좋으면서도 게으른 사람이라고 했다.
항상 부지런하고 바쁘기만 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효율성을 극한으로 뽑아낼 수가 없었다.
“한 달이면 뭐 하기도 모호한 시간이니까.
차라리 푹 쉬는 게 낫겠지.”
“···전 찬성.”
은근슬쩍 시온의 의견에 바로 찬성부터 내놓는 트리샤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휴식이라 하면 결국 시온 옆에 찰싹 붙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시온도 어딘가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니 떨어질 이유도 없었다.
이런 때에 시온 눈에 확 들어서 미리 자리부터 잡아놓자는 것이 트리샤의 생각이었던 모양.
“저도 시온 공자님의 의견에 찬성이에요.”
헬렌은 트리샤와는 달리 뭔가를 생각하고서 결론을 내린 모양.
“제가 왕성에서 소식을 접한 게 1년이 조금 안 되었어요.
그동안 시온 공자님과 마찬가지로 여기 모여 계시는 모든 분들이 사방에서 온갖 활약을 하셨겠죠.”
“그렇죠?”
“진짜 바쁘긴 했지.
힘들기도 무진장 힘들었고 말이야.”
“다들 알게 모르게 피로가 몸에 가득할 거예요.
세상 어떤 이라도 그 피로함이 남아있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하기 마련이니까요.”
“그건 그렇긴 해.
수인들도 사냥이나 훈련 때가 아니면 털 고르기 같은 걸 하면서 몸 편히, 마음 편히 쉬거든!”
“···여기 계신 분들이 다들 바쁘시긴 했습니다.”
확실히 강행군의 연속에 다들 알게 모르게 지쳤던 모양.
릴리트는 그런 여인들의 반응에 자신은 딱히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시온은 자신의 결정을 진행하기에 앞서 앞으로 모든 일에 반드시 필요할 필수 인물인 김유현을 슬쩍 바라보았다.
혹 그가 무슨 휴식이냐면서 조금이라도 더 뭔가를 할 생각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라고 말한다면 시온으로서는 당연히 그래야지요!
하고 바로 방향을 전환할 생각이었다.
“···이전처럼 또 바쁘게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면 자리 좀 잡고 어떤 미친 여자 하나 좀 두고서 아주 제대로 상하 관계를 알려줘야겠습니다.”
앗, 아아···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요즘 들어서 껌딱지 마냥 들러붙어 싸우자고 들덤비는, 아니 떼를 쓰는 용인 때문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모양.
특히나 눈에서 줄기줄기 불길이 쏟아지는 걸 보니 쌓인 게 아주 많았던 것 같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휴식 기간이 김유현에게는 에카테리나 길들이기로 바뀌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면 다들 이쯤에서 일단 대기하면서 조금 쉬는 걸로 생각하고···.”
릴리트가 시온 몰래 다른 이들에게 손짓을 해보였다.
그러자 헬렌과 김유현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이 아, 하고 작은 탄식을 내뱉더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자리에서 일어섰다.
덕분에 헬렌은 반사적으로 같이 몸을 일으켜 세웠고, 뭔 일인가 싶어 멀뚱거리던 김유현도 루시아가 ‘얼른 가봐야 할 곳이 있지 않아요?’ 라고 말하니 침음을 내뱉고는 일어섰다.
“음, 그러면 리시?
우리는 우리끼리 오랜만에 합 좀 맞춰볼까요?”
“냐, 냐앙!
그, 그래!
맞아.
우리끼리 합 맞추기로 했었어!”
“예?
언제 그런 말을 하셨··· 지요!
네, 기억났습니다!”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운 대화였지만 시온이 뭐라고 묻기도 전에 빠르게 회의실을 나서는 세 여인.
그 뒤를 따라 멍하니 서있던 헬렌을 트리샤가 낚아채서는 싸움 구경이나 하자면서 그녀를 데리고 역시나 회의실에서 나가버렸다.
“전 빠르게 싸움에 미친 녀석부터 좀 조용히 만들고 오겠습니다.
아, 그리고···.”
“에오스가 오면 기다리라고 전해둘게.
걱정 마, 김유현.”
시온의 빠른 대답에 미소를 지은 김유현은 도대체 누구한테 배운 나쁜 습관인지, 문이 아니라 창문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여기 3층일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 김유현이라면 30층에서 뛰어내려도 별 이상이 없지 않을까 생각하며 시온은 자신의 옆에 남은 하나의 여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릴리트님 작품이죠?”
“뭐가?”
“눈치 줘서 애들 쫓아 보낸 거.”
“와, 말하는 것 좀 봐.
내가 쫓아내?
그게 아니라 내가 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 거지!
저 녀석들은 주인 없는 동안 맛난 음식 저들끼리 홀라당 다 먹으려고 했던 거고!”
“···멀쩡한 사람을 음식으로 만들지 마시죠.”
그 대답에 릴리트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라고 투덜거렸다.
물론 뭔가를 은근히 원하는 눈치로 다리를 배배 꼬면서 점점 시온 곁으로 다가오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보다, 왕궁에서 뭔가 썩 기분 좋지 않았던 일이 있었던 모양이네?”
“···어떻게 아셨어요?”
여자 앞에서 남자가 제 마음 숨기려는 것보다 멍청한 짓은 없다고 했다.
때문에 시온이 순순히 사실대로 불자 릴리트는 당연한 것 아니냐며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알긴 뭘 어떻게 알아.
들어올 때부터 표정이 에―해서 들어왔잖아.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네 기분이 엉망이라는 걸 얼추 눈치 채고 있었을 걸?”
“좋은 건 아니지만 엉망이라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거짓말.”
“진짜인데요.”
기분이 나쁘다거나, 엉망이라거나 뭐 그런 문제는 정말 아니었다.
그냥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그 말이나 표정을 직접 보니 기분이 가라앉았다고 하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
“아예 다 뒤집고, 그대가 돌아오면 여왕의 이름으로 청혼이라도 할까 했다.”
바네사의 입에서 포기하겠다는 말이 나온 직후,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파격적이다 못 해 무척이나 충격적인 말인지라 시온이 콜록, 하고 마른 기침을 내뱉자 바네사는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말 내 뜻대로 일을 강행했다면 아마 그대는 왕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왕에게 청혼을 받은 이가 되었을 것이다.”
“···.”
상상만 해도 정말 너무 끔찍한 결과였다.
바네사가 싫다는 것이 아니라, 여왕이 직접 청혼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사람이 너무 과하게 노출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이상 가면 너무 과해.
과한 건 약이 아니라 독이야, 독!’
사람 사는 곳이 이세계라고 다를 바 없다.
평범한 이들은 시온의 이야기를 듣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여 끝내 결실을 거두는 왕국의 영웅이자 인생의 승리자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정계에서 보기에는 또 다를 것이다.
당장 클라우젠이라는 거대한 귀족 가문과 왕실이 결합되는 꼴을 다른 귀족들 보면 좋다고 넘어갈 리가 만무하다.
대귀족 가문들은 그 위세가 얼마나 크든 간에 왕실과 직접적을 맺어지는 것을 자의적으로 그리고 타의적으로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혈연이라는 울타리로 구축된 권세는 결국 오래 가지 못 한다는 히스파냐 초대 국왕의 유지를 받든 것이었는데 현재도 아주 엄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
왕국의 보통 귀족들로서는 대귀족 가문이 왕실과 손을 맞잡게 되는 순간 정말 어떻게 건드려 볼 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니 누구보다 환영하고 또 경계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여왕의 배우자가 되면 시온은 자연스레 손발이 완전히 묶이게 된다.
바네사가 군주의 권한으로 일부를 풀어준다고 해도 지금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불가능.
당장 종군하는 건 물론이고 군권에 관여하는 것조차 완벽하게 금지될 확률이 높았다.
‘정말 그리 되면 여태 내가 그려둔 모든 그림이 어그러지게 되는 건 당연한 일.’
마지막으로 후일 클라우젠을 맡게 되는 것까지 전부 포기해야 한다.
물론 형식상으로 변경백 자리를 받기야 하겠지만 결국 실권은 대리자가, 예로 들자면 혈족인 아덴이 행사하게 될 것이다.
‘내 노후까지 완벽하게 탈탈 털리는 거지.’
변경백 자리에 앉아서 아무 걱정 없이 떵떵거리며 사는 미래가 완전히 박살!
이상이 여왕의 배우자가 되어 시온이 감당해야 할 부분들이었다.
“···프훗.
하하, 아하하!”
시온의 바짝 긴장한 모습 때문일까.
바네사가 갑자기 환한 웃음을 터트리고는 여왕의 자리에 걸맞지 않게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이 자리에 시종장이나 시녀들이 있었다면 체통일 지켜야 한다고 잔소리라도 한 번 했을 정도로, 그녀는 왕녀 때보다도 더욱 시원하게 웃고 있는 중이었다.
“여왕 전하?”
“아아, 미안하다.
그대가 이리도 당황한 모습을 보니 너무나 즐거워서 말이다.
세상 어느 천지에 어느 누가 그대를 이만큼이나 당황시킬 수 있겠는가?”
“···확실히 여왕 전하만이 저를 이렇게 당혹스럽게 만드신 것 같습니다.”
같이 농담조로 분위기를 맞추니 바네사는 다시 한 번 환한 미소를 내비쳤다.
그렇게 한동안 웃어대던 그녀는 천천히 웃음기를 거두고는 입을 열었다.
“비록 내가 완벽한 국왕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리석거나 멍청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여왕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내가 그대를 내 곁에 묶어두는 것만큼이나 손해가 되는 일은 또 없을 것이야.”
“···.”
“아니 그런가?”
“···여왕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래.
해서 내 생각을 되돌렸어.
모든 것이 확실치 않고,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는 이때에 앞을 환하게 밝혀주는 불꽃을 그저 따스하다고 불길을 작게 만들어 내 품에만 껴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당장 그 불빛에 의지하여 길을 걷고 있던 이들에게는 눈을 빼앗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말일세.”
바네사는 시온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세상이 혼란스러운 때에 그만큼이나 바보 같은, 그만큼이나 악랄한 짓도 없겠지.
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결정을 내렸어.
이 나라를 위해서, 왕국민들을 위해서, 그대 곁의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더욱 더 바삐 움직여야 할 그대에게 족쇄를 채우기 싫으니까.
시온 클라우젠 공자, 그대를 포기하겠다는 말을 이렇게 할 수 있는 거다.”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세간에는 이런 말이 있더군.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라고.
그런 것이겠지.
세상사가 어떻게 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겠나.
간절히 원해도 그럴 수 없는 일이 있기에 비극이 있고 슬픔이 있는 법이겠지.”
나이는 이제 시온과 비슷한 바네사임에도 말하는 건 꼭 수 십 년을 더 산 이처럼 말한다.
정말이지 너무나 성숙해진 여인의 모습에 이질감마저 들어 시온은 저도 모르게 바네사를 빤히 쳐다보는 기초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다.
여왕 전하.
제가 결례를···.”
“아니다.
전쟁을 치르고, 부상을 당하고, 여태 어느 누구도 하지 못 했던 누디아 내부까지의 진격에 돌아와서는 선왕을 마지막으로 모시는 일까지.
돌아와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 한 그대를 내 욕심으로 인해 여기까지 불러왔어.
피곤함이 극한까지 몰린 것이겠지.”
사실 피곤하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시온은 바네사가 놓아준 탈출구로 알아서 들어갔다.
시온이 슬쩍 고개를 끄덕이자 바네사는 오늘은 이만하고 한 며칠은 푹 쉬다가 잠깐 얼굴이나 비추고 클라우젠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본인의 마음 같아서는 왕성에 계속 붙잡고 싶겠지만 그리 했다가는 또 그 미련이라는 것이 서로의 발목을 잡을까 무척이나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여왕 전하.”
그리 말하며 시온이 막 바네사의 시야에서 사라지려는 찰나.
바네사가 잠시 망설이다가 약간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온 클라우젠!”
여태까지 내던, 결심으로 굳어진 것과는 다르게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목소리.
바네사의 변화에 시온은 발걸음을 멈추고는 그녀를 돌아보고서 더 할 말이 있냐는 뜻으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바네사는 망설이면서 다음 말을 하지 못 하고 있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이대로라면 시온이 할 말씀이 없다면 물러나겠다, 라고 말해도 죄가 없을 정도였지만 시온은 묵묵히 자리에 서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만약에.”
조금 전까지는 한 나라의 군주로서 하는 말이었다면.
지금 바네사는 다시금 예전의 왕녀로 돌아가서 시온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말이다.
더는 그대가 다른 이들을 위해 길을 비출 필요가 없다면.
그대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더는 서로가 멀어질 필요가 없다면.
그 때는···.”
“···.”
“그 때는, 포기하지 않아도 되겠느냐?”
결심을 해놓고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게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그 미련을 버릴 수가 없어, 바네사는 자꾸만 묻고 있었다.
후에 그런 날이 찾아온다면, 그 때는 마음을 돌려도 되겠느냐고.
“대답해다오.
정말 그런 때가 온다면, 나는 그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겠느냐?”
애가 타는 여인의 질문에 시온은 잠시 동안 바닥에 시선을 처박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민을 마친 시온은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어 여왕의 질문에 대답을 내놓았다.
―――――――작품 후기―――――――
쓰다보면 30퍼센트가 조금은 더 늘 수도 있겠죠···.!
줄어들···.
수는 ···.
네, 없을 겁니다.
추천은 항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