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19)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19화(319/439)
319―――――
수훈식
“시온 공자님.”
예정된 수훈식까지 사흘이 남은 상황.
왕궁에서 돌아온 김유현은 제 방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수련장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있다는 얼굴로 시온을 쫓아왔다.
“무슨 할 말이라도?”
“···왜 하필 저입니까?”
“수훈식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시온은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을 해주는 대신 정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서 자신을 따라 맞은편에 앉는 김유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처럼 아예 글러먹은 수준은 아니지만 아직도 멀었어, 이놈.’
옛날보다, 원래 소설 속 모습보다 훨씬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빨리 누군가에게 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경우도 없었고 무림에서 스승이나 사형을 잃은 이후 이렇게 누군가를 따르는 모습 또한 보인 적이 없는 김유현이었다.
이렇게만 보자면 상당히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 부분은 여전히 젬병.
특히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나 정치적 식견은 여전히 부족했다.
아무리 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도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 하면 적만 늘어나는 꼴인데 아쉽게도 기연을 얻어 강해지기만 한 김유현에게 그런 부분은 힘든 부분이었을 것이다.
“뭐가 불만인데.”
“불만은 없습니다.
다만 걱정이 될 뿐입니다.”
“걱정?”
천하의 김유현이 이제는 걱정이라는 단어도 꽤나 잘 가져다 쓴다.
그게 무척이나 신선했던 시온이 말없이 김유현을 쳐다보고 있으니 그는 의자에 앉아서는 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저는 외지인입니다.
쟌과 에오스는 히스파냐 사람이 아니라 북쪽의 부족 출신이고 말이죠.”
“그래서?”
“시온 공자님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란 것이 이상한 부분에서 간사하게 변해 꼭 이런 순간에 편을 가르고 거리를 두려 한다는 것을요.”
“···외지인인 네가 전면에 나서는 것을, 혹은 수훈식 자리에 야만족이라 불리던 이들이 둘이나 올라가는게 히스파냐의 사람들이 보기에 상당히 아니꼬울 것이다?”
시온의 질문에 김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꺼낸 말이 아니라 정말 진심이라는 듯 김유현은 표정까지 심각하게 변한 상태.
이 남자가 왜 갑자기 이런 반응을 보이나 생각하던 시온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이놈, 무림에서도 중원 사람이 아니라고 엄청 고생했었지.’
무슨 활약을 해서 그거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고 이름이 좀 뜨면 나오는 말.
중원 사람이 아니라 동쪽 오랑캐라느니, 무림의 예도 모르는 무식한 자라느니.
김유현 입장에서 처음에는 그거 기가 막힌 반응을, 같잖은 자들의 헛소리에 불과했지만.
그도 결국 사람이고 응당 사람이라면 남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가 부정적인 것들이 많을 때,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른 먼치킨 소설 주인공 마냥 닥치고 내 마음대로 다 할 거임, 이라는 캐릭터였으면 또 모르겠는데 그놈의 21세기 감성 못 버려서 끌려 다니기에 아주 도가 튼 녀석이지.’
어쩌면 이세계로 넘어와서 1년이 넘도록 얌전히 라이도의 옆에서 지낸 이유도 그러한 부분에서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들의 시기 어린 눈빛, 냉기 가득한 목소리에서 벗어나고자 싶어서.
괜히 세상 밖으로 나가봤자 또 외지인이라고 배척을 받을 바에 마음 편히 살고 싶어서.
“높은 곳에 서있는 이들을 부럽게 바라보다가도 갑자기 돌변해서는 밑으로 떨어트릴 궁리를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생존 본능입니다.
자신보다 강하고 잘난 자를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다면 여러 명의 혀로서 가능하게 하는 것이죠.”
“···.”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저보다 공자님이 더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연히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여태껏 시온이 그런 방식으로 적이고 아군이고 다 이용해 먹었으니까.
어쭙잖은 짓을 하며 송곳니를 드러내는 자들을 혀 하나로 전부 해먹었으니까 말이다.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감이 높아진 이들에게 외지인들을 그런 대단한 자리에 올리면 분명 이런저런 소리가 나올 것이다, 넌 지금 그걸 걱정하고 있다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
“차라리 시온 공자님이 나서는게 어떻겠습니까?”
“나도 그 수훈식 자리에 참석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리를 제게 맡기니 문제입니다.
공자님은 뒤로 물러나있고, 웬 이상한 남자가 전면에 서면 당연히 히스파냐의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김유현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이왕이면 같은 나라의 사람이 최고로 영예로운 자리에 오르는 것이, 그리고 자신들이 여태껏 선망하던 대상이 그 자리에 서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그림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시온도 부담스러워진다.
선왕 시절부터 이미 국왕과 개인적으로 만남까지 가질 정도로 정치적으로 왕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시온 클라우젠이다.
그런 상황에서 선왕의 애도 기간까지 줄이고 거행하는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또 전면에 나서면 왕국민들의 신망을 얻기는 해도 귀족들의 은근한 경계를 받을 수도 있음이었다.
시온을 좋아하고 또 따르는 귀족들이 많은 만큼, 반발 심리나 자격지심으로 인해 그를 경계하는 세력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게 빛의 교리를 믿는 자들이든, 아니면 그 어떤 존재도 왕실보다 빛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왕당파든, 그도 아니면 그냥 질투심에 몸부림치고 있는 자들이든 말이다.
‘이번에는 나도 조금은 사리는 게 좋거든, 유현아.
영웅이니 뭐니 해도 너무 나대면 한 대 제대로 얻어맞는 수가 있어.’
거기에 더해서, 이번 전쟁에서 누디아만큼은 아니더라도 히스파냐 역시 피해가 상당했다.
특히 저번처럼 클라우젠, 혹은 남부 지역에만 한정된 피해가 아니라 정규군을 소집하여 치른 대규모 전쟁이었기에 각지에서 전사자들과 부상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살고 있는 영지도, 지역도 서로가 전부 다른 상황에서 오직 옆과 뒤를 맡길 수 있는 전우라는 위치로 그들이 감당한 전쟁.
왕국 곳곳에서 차출된 젊고 뛰어난 병사들이 제 피와 동료들의 피를 흘리며 싸웠다.
거기에서 아무리 뛰어난 전략을 세웠다고는 해도 어찌 되었든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한 것이 아닌 시온이 또 다시 모든 관심과 찬사를 받는다면 좋든 싫든 말이 나올 것이었다.
“같이 피를 흘리고, 적의 피를 뒤집어쓴 자들에게 더 큰 동료애를 느끼는 법이지.”
“예?”
“내가 비록 앞에 머물려고 하긴 했지만 예전의 누디아와의 전투에서처럼 직접 칼을 휘두르고 앞에서 분전한 건 아니야.
전략을 세우고, 적들을 함정에 몰아넣어 전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결국 그걸 가능하게 한 건 1선에서 싸운 히스파냐의 기사들, 그리고 병사들이지.”
“···.”
“그들처럼 직접 검을 휘두르며 적들과 싸우고, 피를 뒤집어쓰고, 죽을 고비를 뛰어넘은··· 아, 이건 좀 아니려나?
아무튼 그런 활약을 벌인 건 내가 아니라 김유현, 바로 너야.”
“하지만···.”
“무엇보다 수훈식이란 자리는 작위나 재물 따위의 실질적 보상을 하는 곳이 아닌, 왕실이 국가에 대한 봉사에 감사하는 의미로 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지.
왕국의 영웅들에게 공을 치하하는 자리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히스파냐의 국격을 알릴 수 있는 곳이야.
출신에 상관없이 이 나라를 위해서 활약한 이들에게 왕실이 직접 나서서 공을 치하하는 자리인 거지.”
괜히 바네사 여왕이 애도 기간까지 줄여가면서 개선식에 이어서 수훈식을 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런 때에 왕국의 뜻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서로 단결되게 만들어 이후 어떤 풍파가 몰아닥쳐도 스스로 갈라지고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하게 뭉쳐서 이겨내자는 뜻이 담겨져 있던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유현, 네가 내가 보기에 딱 적당한 인물이야.”
“···.”
“네게는 조금 미안한 소리지만, 내가 너를 지목한 건 순전히 너를 위한 게 아니야.
나를 위해서, 왕실을 위해서, 히스파냐를 위해서 다 생각하고 말을 꺼낸 거지.
서운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네 말대로 사람들의 혀는 생각보다 더 날카롭고 치명적이니까.
그 혀들을 이쪽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네가 앞에 나서줄 수밖에 없어.”
시온의 말에 김유현은 잠시 입을 다물고 맞은편에 앉아있는 시온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혹시 자신을 이용하겠다고 당당히 말하는 시온에게 거부감을 느낀 것일까.
아니면 분노나 실망감을 품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김유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 시온은 담담히 듣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해줄 생각이었다.
혹시 화가 난다면 미안하다고, 실망했다면 이해해달라고, 그러면서 이유를 들려주기로.
“차라리 조금 안심이 되는군요.”
하지만 김유현은 실망감이나 분노를 내비치는 대신 예상 밖의 말을 꺼내놓았다.
혹시 무슨 다른 뜻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그는 정말 다행이라는 듯 잔잔한 미소까지 짓고 있는 중이었다.
“차라리 당당하게 조금은 이용 당해달라고 청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뒤에서 뒤통수를 칠 궁리나 하면서 이용하는 걸 어떻게든 감추려고, 다 보이는 수작질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하는 자들에게는 진절머리가 나서요.”
“그건 하수나 하는 짓이지.
난 최소한 거래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거기에는 응당 오고 가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 말씀은 제가 이번에 전면으로 나서면서 얻는 게 있다는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그래도 시온이랑 같이 지내면서 아예 배운 게 없는 건 아닌 모양.
꽤나 적극적인 질문에 시온은 박수를 보내면서 입을 열어 답해주었다.
“숨어있는 적들을 자극할 생각이다.”
“적들을 자극한다?”
“빛의 뜻이니 뭐니 하면서 당당하게 들어온 자들을 말 그대로 박살낸 네가 이제는 왕국의 새로운 영웅, 또는 수호신이 되어서 왕국민들의 찬사를 받는 장면이 그놈들에게는 무척이나 눈꼴 시린 모습이 되겠지.
그만큼 반대로 제거하면 더 큰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고 생각할 테고.
자꾸만 시간을 끌며 현재의 이 상황을 잠재우려고 하는 적들에게 그냥 일 저지르라고 보채는 거야.
이러다가 그 잘난 빛이니 뭐니 이제 사람들이 안 믿을 수도 있다, 라고 말하면서.”
시온의 말에 김유현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대륙에서 빛의 후예들의 종자라고 여겨지던 요정들의 위상이 바닥을 기고, 더해서 빛의 교리 역시 ‘혹시?’ 하는 생각을 품은 이들 덕분에 신뢰도가 그야말로 ‘떡락’ 하고 있는 중.
하지만 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기도 했다.
그 사이에 저들이 몰래 나서서 수작질로 다시금 대륙의 민심을 돌릴 수도 있고 말이다.
‘시간이 독.’
그렇다.
그 말대로 현재 상황은 시간이 약이 아니라 독인 상황.
사람들의 의심이 절정에 달했을 때 저쪽이 알아서 함정으로 들어와 주면 그거야말로 최고 중의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하나가 더 있습니까?”
“솔직히 기분 좋잖아.”
“예?”
“에오스 말이야.
네가 그 대단한 자리에서 엄청난 영예를 누린다고 하면 기분 좋아서 계속 웃고 있을 것 같은데.
내 말이 틀린가?”
“···어, 에.
어어?”
그야말로 완벽하게 당황해서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김유현.
이미 시온이 자신과 에오스의 관계를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밀고 나오니 뭐라 대답해야 할지 난감한 모양.
시온은 킥, 하고 웃음을 내뱉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에오스한테 당당히 말할 수 있잖냐.
내가 이 정도 되는 남자다.
그리고 북쪽의 전사들에게 보일 수 있잖냐.
너희와는 격이 다른 존재다.
이 정도는 되어야 버일러를 취할 수 있는 남자라고 할 수 있자 않겠느냐!
라고.”
“크흠.”
헛기침을 하면서 시온의 시선을 피하는 김유현.
저 괴물 같은 남자가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니 상당히 이질적이고, 또 우스우면서도 결국 저놈도 나와 별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이구나 싶은 시온이었다.
“크흠, 흠!
···숨어있는 적들을 끌어낸다는 말이 썩 괜찮게 들리는군요.”
“솔직히 두 번째 이유가 더 마음에 들잖아.”
“···.”
“아니야?”
“···아니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새끼, 결국 너도 남자긴 하구나!
그래!
그렇게 솔직한 게 좋은 법이지!
그렇게 외치며 속으로 낄낄댄 시온은 제대로 준비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수훈식까지는 앞으로 사흘, 그 안에 김유현을 제대로 준비시켜서 자리에서 그저 훈장 좀 받는 실력자 수준이 아니라 왕국의 새로운 영웅으로 완벽하게 탈바꿈시켜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 좀 놀리는 게 중요해.’
바네사 여왕이, 그리고 김유현이 시온에게 자꾸만 의문을 표했던 이유.
수훈식에서 김유현이 모든 이들을 대표로 하여 자리에 나서게 된다면 당연히 그 자리에 모인 왕국민들, 그리고 참전하여 공을 세운 기사들이나 병사들 앞에 서서 무슨 말이든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말주변이 뛰어난 인물이라면 왕국의 사기를 극도로 끌어올릴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말주변이 없는 자가 어버버 거리다가 끝나버린다면 그거야말로 대형 사고다.
그 점을 알고 있는 두 남녀였기에 은근히 시온이 나서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지만 당사자는 오히려 김유현을 지목하고 있으니 일단은 받아들였지만 당연히 준비 작업이 필요했다.
“김유현.
한 이틀 동안 제대로 연습할 거다.”
“연습이라 하시면?”
“뭐겠어.
당연히 수훈식 자리에서 네가 그저 그런 외지인이 아니라 왕국의 새로운 영웅으로 빛날 최고의 순간을 위해서지.”
“···그리 즐거운 소식은 아니군요.”
“즐거워야 할 걸?
일단 에오스는 네 그런 모습을 상당히 좋아할 것 같거든.”
“··· ···.”
에오스 이야기가 나오니 또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피한다.
평소에는 철벽에 제 속마음 한 번을 안 드러내는 놈이 일단 핑크빛 분위기에 취하면 저런 모습을 보이니 무림에서 배신자들이나 적들에게 그런 소중한 이들을 인질로 잡혀 이리저리 이용당하다가 끝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넌 나한테 정말 감사해야 해, 짜식아!’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렇게 중얼거린 후 김유현에게 종이 몇 장을 내민다.
김유현이 이게 뭐냐는 듯 두 눈을 껌뻑거리자 시온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네가 준비하고 연습해야 할 일들이지.”
“···여기 있는 전부를 말입니까?”
“거기에 있는 건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야.
나머지는 내 판단 여부에 따라 더 추가될 수 있지.
네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너 지금 손 봐야 할 곳이 한 두 곳이 아니거든.”
“···.”
꽤나 맞는 말이기에 차마 반박은 못 하겠고.
김유현은 제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한 번 그 안에 쓰여 있는 온갖 것들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작품 후기―――――――
추천은 항상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