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2)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2화(32/439)
<정치질과 통수가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시온 공자님.”
이번에도 무슨 마법소녀마냥 휘리릭!
하고 사라진 라이도.
저러다가 요상한 음악과 함께 이제는 변신까지 하는게 아닐까 싶다.
그 후 루시아가 처음으로 시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시온은 답을 하려다 말고 반사적으로 릴리트를 바라보았다.
서큐버스 퀸이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자꾸 루시아를 경계하던 그녀였다.
단순히 질투라고 보기에는 그녀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루시아도 릴리트를 유심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지, 아직은 시온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온 적이 없는지라 시온은 왜 유독 릴리트가 루시아를 경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날 보고 그래.
네가 정해야지.
사내새끼가 왜 여자 눈치를 보고 그래?”
하지만 릴리트는 언제 자신이 그런 불안한 눈초리를 보냈냐는 듯 쿨하게 답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하면서도 시온은 고개를 끄덕이곤 그러겠다고 답하려는 찰나.
“···.”
리시키다가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루시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집에 새로 들여온 고양이를 잔뜩 경계하는 집냥이 같은 눈길이었다.
“리시.”
“네, 공자님.”
“잠시 루시아랑 이야기 좀 나누고 올 테니 기다릴 수 있지?”
“···물론입니다.”
대답은 저런데 눈에서는 여전히 경계의 눈빛이 번쩍이고 있다.
혹 미행이라도 하지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이 되는 시온이었다.
애써 그 불안감을 억누르며 그는 루시아와 함께 성 안에 마련되어 있는 정원으로 나섰다.
루시아는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고, 시온은 그대로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릴리트다, 리시에다 신경을 쓰느라 정작 루시아를 신경 쓰지 못 했네.’
원래대로였다면 전쟁 직후 루시아와의 관계 진전에 힘을 쏟았을 것이었다.
갑작스레 리시키다가 들어와서 거기에 집중하느라 시간을 좀 보내게 되었지만.
“상처는 괜찮으신가요?”
루시아의 질문에 시온은 잠시 뭔 소리인가 싶다가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문제없습니다.
오히려 루시아 덕분에 적들의 공격이 완벽하게 분쇄되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제 실수가 없어지지는 않아요.
아버지도 참 오랜만에 화를 내셨고요.”
“···.”
아니, 심심하면 적들을 패죽이던 노인네가 마법 실수 했다고 화를 내는 건 좀 에바인데.
볼을 긁적인 시온은 정말 별 일 아니었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녀의 실수가 좀 크기는 했지만, 그 전에 이미 한 번의 공격으로 적들의 날카로운 기세를 아예 깡그리 녹여버렸으니 그 정도 실수를 커버하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그보다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러네요.
할 말이 있었지.”
잠시 고민하는 듯 망설이던 루시아는 이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저 좀 이상하죠?”
“이상하다는 말씀은···.”
“공자님을 대하는 모든 게요.
공자님에게 있어 저는 그냥 라이도라는 마법사의 딸일 뿐인데, 저는 자꾸만 공자님이 저를 다르게 봐주었으면 하고 있으니 말이죠.”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원래 이성을 대하다 보면 당연한 일이니까.”
“제가 원래 공자님 같은 스타일한테 좀 약한 편이래요.
아버지가 항상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네 엄마를 닮아서 비리리한 놈들을 좋아한다고.”
그랬구만.
그런데, 그렇게 따지자면 라이도는 절대 비실비실한 남자가 아닌데?
마법사 치고는 과하게 근육이 많을 정도, 우락부락한 수준은 아니어도 흔히들 알고 있는 멀대같은 마법사들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다.
“아, 참고로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하루 24시간 내내 들이댔대요.
그게 자랑이라고, 싫다는 여자한테 그렇게 들이 밀었대요!
자기 좀 살려주면 안 되냐고.
진짜 당신을 사랑해서 죽을 것 같은데 죽으면 사랑할 수 없어서 죽을 수도 없겠다고.
그래서 그냥 사랑하면 안 되냐고.”
“···.”
그 정신줄 놓아도 단단히 놓아버린 미친 마법사 노인이 그런 로맨틱한 남자였다니.
절로 소름이 돋는 시온이었다.
아니, 그러면 그 부인은 도대체 뭔 잘못으로 그런 남자랑 결혼을···.
“그런데 뭐··· 어머니도 싫지 않으셨대요.
솔직히 그렇게 매달릴 정도의 남자라면 한 번 믿고 당신의 인생을 맡겨도 되겠구나, 싶으셨다나.”
“···.”
됐다, 부부는 결혼하고 나서 닮는다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비슷한 이들이 결혼한다더니.
그쪽 어머니도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아요.”
와, 순간 무서웠다.
시온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버지를 닮았다는게 도대체 뭔 소리지?
설마 주먹을 잘 쓰나?
이제부터 당신과 결혼하겠습니다, 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쳐맞는거 아냐?
“어떻게 안 될까요?”
“···예?”
“공자님이 제게 아무런 감정도 품고 있지 않다는 건 잘 알아요.
이게 전부 저 혼자만의 말도 안 되는 상상이고, 어쩌면 끝이 무조건 좋지 않을 거라는 거 말이죠.”
깍지를 낀 손을 불안하게 짓누르고 있는 루시아.
한 눈에 봐도 굉장한 용기를 내서 지금의 말들을 하고 있다는 티가 났다.
“사람 마음이란 게 원래 이렇잖아요.
좋아하게 된 쪽이 무조건 지는 싸움이라는 거.
좋아하는 쪽이 잘못이라는 거.
그래도 한 번은 그 사람이 나를 봐주었으면 하는 거.”
“루시아, 그게···.”
“그냥 가끔 가다가 웃어주고, 더 가끔 가다가 둘이 걷고, 아주 가끔 저한테만 웃어주셨으면 좋겠는데.
이거 너무 과한 욕심일까요?”
시온은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루시아가 하고 있는 이 대사, 나중에 김유현에게 그대로 하는 대사였다!
뭔가 남의 여자 채가는 느낌이 들어서 상당히 기분이 묘했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왠지 모르게 쾌감이 든다고 할까.
이런 게 어떤 독자들이 그렇게나 말하던 NTL 이라는 건가!
‘시발, 나 이런 놈이었어?
혹시 아직 시온 클라우젠의 잔재가 남아있기라도 한 거 아냐?’
릴리트가 들이댈 때도, 리시가 주인님이라고 부를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 물론 릴리트와 관계를 가질 때는 논외로 치고.
부도덕한 관계에서 주는 흥분이 이런 것일까 싶은 시온이었다.
물론 김유현과 루시아가 이어지는 건 아주 나중의 일이지만, 적어도 소설 속 내용을 알고 있는 시온으로써는 이미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으니까.
“루시아.”
“네, 공자님.”
“이런 질문, 제가 하는 게 상당히 좀 껄끄러운데.”
“걱정 마시고 해보세요.”
“도대체 제 어느 부분이 그렇게 좋다는 겁니까?
이해가 잘 안 가서요.”
그 말에 루시아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이 되었다.
생각지도 못 했던 질문이었고, 또 대답을 하려니 갑자기 부끄러워진 것이 그 이유였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호감이었어요.
그러다가 소문과는 다른 모습들, 뭔가를 위해 자신을 낮추던 모습에서 흥미를 느꼈다고 할까요?
그러다가··· 그 연설을 들었을 때.
뭐가 확 와 닿았어요.
아, 저 분은 어느 누구라도 쉽게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구나.”
그 연설, 이라는 말에 시온은 속으로 이마를 탁, 하고 쳤다.
아니, 군필자들이나 이해할 만한 감수성을 루시아가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솔직히 그냥 귀족들이 으레 하던 멋들어진 말 뿐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 날.
제 실수로 인해 불바다가 된 전장 한복판에서, 생판 모르는 병사 하나를 위해 그 지옥으로 뛰어 들어가던 공자님을 보는 순간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내가 저 병사 대신에 누워있었다면 공자님이 구하러 오셨을까?”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다.
무조건 구하러 갔다.
백퍼 죽는 각이 아니었으면 뛰어들었다.
루시아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라이도가 어떻게 폭주할 지도 모르는데.
천족과의 전쟁이 나기도 전에 그가 미쳐 날뛰는 미래는 무조건 막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요.
전 아직도 잊지 못 해요.”
“뭘 잊지 못 한다는···.”
“처음 저와 공자님이 만났던 그 날.
험한 꼴을 당할 뻔 했던 바로 그 날에 제 기사를 물리치고는 저를 바라보시던 공자님의 그 눈동자.
얼마나 제가 걱정되었던 건지, 혹 제가 크게 놀랐을까 약간의 두려움까지 일렁이던 공자님의 그 눈 말이에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차마 시온은 ‘그거 사실은 김유현 때문에 진짜 무서워서 그랬던 거랍니다.
시발,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로 감격스러웠다고요.
팔도 멀쩡하고 무엇보다 살았다는 안도감 때문에.’ 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답이 되었을까요?”
“···충분합니다.”
소설 시작부터 김유현과 핑크빛 분위기 팍팍 내던 루시아는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의 제자와, 스승의 딸이라는 관계에서 시작된 두 남녀.
그러다가 천천히 시간이 흐르면서 김유현의 외강내유와 사람을 해하면 혼자 마음 아파하던 그 모습에 반전 매력을 느끼고 안쓰럽다는 감정을 품으며 가까워진 루시아.
아마 그 때부터 루시아 코인이 떡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그 이후 이 몸뚱이, 시온 클라우젠이 지겹게도 김유현의 빈틈을 노려서 결국 둘을 떨어트린 다음, 기어코 루시아를 살해하고 말았다.
‘그러고 외친 대사가 너도 한 번 당해봐라, 였지.
시발···.
뭘 당해, 뭘 당해.
미친.
혼자 지랄해서 혼자 쳐맞아놓고 혼자 비뚤어져서는 혼자 지랄 한 거잖아!’
불행 중 다행으로 이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불행이 문제였는데, 이 몸으로 병신 짓을 하지 않아도 이미 세계는 곧 병신처럼 망가질 예정이었다.
“안 되나요, 공자님?
그냥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은 건데.
혹시 불편하셨다면···.”
저 대사도 소설에서 봤던 것과 똑같았다.
일이 발생하는 시기는 달라도 말하는 내용은 똑같을 수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시온은 마음을 굳혔다.
릴리트에게는 미안하지만, 루시아는 그녀대로 준비할 것이 있었다.
“저를 또 활활 불태우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요, 루시아.”
“으으!
그, 그건 실수였어요.
죄송해요.”
“걱정마세요.
루시아의 마법은 분명 강력했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마법만을 다루는 것이 루시아의 재능이 다가 아닐 수도 있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마법만을 다루는 것이 제 재능이 다가 아니라니?”
지금의 그녀는 절대 모를 테지만, 시온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궁정 마법사까지 했던 아버지, 라이도와는 다르게 루시아는 비록 다룰 수 있는 마나도 많고 마법도 곧잘 썼지만 그 출력을 감당치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마법을 조종해야 할 마법사가, 마법에 조종 당하는 꼴이었고 이건 그야말로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루시아는 한동안 김유현의 파티에서 민폐 역할을 담당했었다.
덕분에 소설 속 파티원들의 눈총이 쏟아졌고 독자들의 쏟아지는 언년이 드립은 덤이었다.
‘그러다가 천족과의 전투 와중에 각성을 해서 드디어 깨달음을 얻었지.
얼마 못 가서 시온에게 납치당했고 끔찍한 일을 겪은 다음 결국 리타이어 했지만···.’
시온은 그 부분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어쩌면 작가가 루시아를 그렇게 퇴장시킨 이유는, 이 세계의 질서를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안 그래도 무너지던 파워 밸런스를 나락으로 빠트릴 엄청난 능력을, 루시아가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
누디아와의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후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바라보는 리히텐 변경백과는 달리 시온은 바쁘게 왕성 행을 준비했다.
“정말로 바수라 백작령이 그 협상을 지키겠느냐, 시온?”
“걱정 마세요.
디셰 백작은 무조건 그 협상을 이행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디세 백작의 약점을 수도 없이 쥐고 있는 시온이었다.
심지어 그걸 어떻게 이용하면 그를 철저한 나락으로 빠트릴 수 있는지 전부 알고 있다.
도대체 히스파냐의 귀족이 어떻게 누디아 왕국 내부의 정치 싸움에 대해 이리 상세히 알고 있냐고 외치고 싶었던 디셰 백작이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악하게 웃고 있는 시온의 미소는 마치 ‘정보의 출처를 들으면 네가 감당할 수 있겠냐?’ 라고 묻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네 공을 왕성에 알리기는 했지만 정작 자꾸만 걱정이 되는구나.”
“마나 감응력 제로여서요?”
“그게 이 세상에서는 꽤나 큰 약점이니 말이다.”
그 부분은 시온도 알고 있다.
소설 속 김유현 역시 이 세계는 자신이 원래 지내던 무림 세계보다 압도적으로 기가, 그러니까 주변의 마나가 풍부하다고 말했었다.
그래서 강자들도 많다고 했었고.
때문에 그 힘을 적절히 이용하는 편이 수월했는데, 시온은 아예 그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누구는 직접 칼 들고 싸우겠지만 저는 그 뒤에서 다른 방법으로 싸우면 되니 말입니다.”
자신의 강점을 포기하고 김유현마냥 무쌍을 찍을 생각은 없다.
몸을 보호할 최소한의 무력도 없는 건 좀 아쉽지만 당장 급한 것도 아니었다.
“인원은 정했느냐?”
“호위는 리시가 맡을 겁니다.
그 외에 루시아와 그녀의 호위 목적으로 따라붙을 김유현, 그리고 릴리트님까지 되겠군요.
그 외에는 기사들과 병사들로 좀 채울 생각입니다.”
“그래, 그 정도면 무난하겠구나.”
무난은 무슨 얼어죽을, 무난이 다 뒈진 것도 아니고.
이건 무난한 수준이 아니다.
상급 기사 하나에 조만간 그 수준을 넘어설 실력자 하나, 그리고 최고위 마족.
이건 뭐 거의 왕궁 폭파하러 가는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소설에서도 클라우젠 변경백령은 초반부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이야기와 사건사고는 이제부터 시작이었고, 온갖 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때 주체는 김유현이었지만 지금은 시온 클라우젠, 자신이 그 자리를 맡게 된다.
‘가자!
정치질과 통수가 일상인 약속의 땅으로!’
[작품후기]일요일 4연참 에서 금일 4연참으로 ···.!
추천 수가 많으면 또 연참을 할···.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