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22)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22화(322/439)
322―――――
폭풍전야
“체크!”
“냐앙!
뭐, 뭐야!
왜 또 체크야!
5번이나 막았는데 왜 체크냐고!”
“후훗, 멍청한 고양이.
그게 당신의 한계라는 거죠.”
“반칙이야, 반칙!
난 인정 못 해!”
오전부터 체스 삼매경인 리아와 트리샤였다.
하나는 고양이, 다른 하나는 흑염룡이라 둘의 사이가 걱정이었던 시온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다른 여인들보다 더 친하게, 마치 어릴 적 랄부 친구마냥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둘이 붙어서 뭔가를 할 때마다 둘 모두가 점점 어린 아이처럼 변해간다는 점이었다.
“뭐, 뭐하는 거예요?”
“한 번만 봐줘!”
“낙장불입!
한 번 두면 절대 못 빼는 거 몰라요?”
“모른다, 냐아앙!”
“이 고양이가 정말!”
당장이라도 볼 살을 꼬집으며 투닥거릴 것 같은 두 여인.
그런 리아와 트리샤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는 다른 이들이 있었다.
“···정말이지··· 와, 진짜···.
희대의 명경기네요.”
“물론 나쁜 의미로 하는 말이지, 루시아?”
“그러면 좋은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지 않을까요, 릴리트 언니?”
참고로 트리샤가 체스 실력이 좋아서 체크를 연속으로 5번이나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어떻게 하다 보니 순전히 운이 좋아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
아직도 트리샤는 말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조차 헛갈려하는 중이었다.
그 정도면 어지간한 상대는 트리샤를 무척이나 손쉽게 이길 수 있을 테지만.
문제는 하필 그 상대가 트리샤만큼, 아니 그녀보다 체스 실력이 더 꽝인 리아라는 점이었다.
설명을 아무리 해주어도 남의 차례를 기다리고 내 공격을 한다는 부분에서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고양이 여인.
덕분에 클라우젠으로 돌아가던 내내 체스 설명을 하던 시온은 지쳐서 떨어져나갔고, 결국 루시아가 거기에 또 하루를 꼬박 써서 간신히 규칙을 이해시키는데 성공하긴 했다.
“냐앙!
그렇다면 이렇게 하겠다!”
“···그렇게 못 움직여, 리아.”
“아니, 왜!
이 말은 몇 칸씩 가는데 왜 이 말은 그렇게 못 가!”
“그게 안 되는 기물이니까.”
“왜 못 가는데!
도대체 이런 규칙 누가 정한 거야!
냐아아아앙!”
“···.”
릴리트는 이 경기를 보다가 제 속이 터져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들의 놀이이긴 하지만 워낙 수 싸움이 중요한 것이다 보니 릴리트도 체스를 꽤나 많이 두었고, 역시나 많은 경기들을 본 적이 있었다.
“환장하겠네.”
그런 의미에서 리아와 트리샤, 이 둘의 싸움은 정말이지 ‘막하막하’ 라고 불려도 모자람이 없었다.
“···.”
시온은 차마 제 눈에게 미안한 경기를 더는 볼 수가 없었기에 얌전히 방을 나섰다.
원래라면 방에 있던 여인들이 그를 붙잡거나 어디 가냐고, 같이 가자고 따라 붙었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모두가 가히 졸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체스 경기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시온은 간만에 혼자서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왕성에서 떠난 지도 벌써 열흘이 넘었네.’
왕성을 떠나 제 집이라고 할 수 있는 클라우젠에 도착한지도 나흘, 수인들의 영토로 갔었던 루시아와 리아가 복귀한지도 이틀이 흘렀다.
지금쯤이면 쟌도 무사히 북쪽으로 돌아가서 부족원들을 추스르고 있을 것이다.
몬스터들에 의해서 하마터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지만 수인들 덕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북쪽의 부족들이나 히스파냐의 북부 영지들도 무사할 수 있었다.
바네사는 이후 히스파냐 안정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특히 수인들과 요정들과의 교류가 많아지며 서쪽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지니 무척이나 바쁜 모양이었다.
당장 헬렌이 보내주는 소식에 히스파냐 쪽 사람들과 수인들, 그리고 요정들의 긍정적인 만남과 부정적인 만남에 대한 경우들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서로가 달라도 너무 다른 이들이니 마찰음이 없을 수는 없지.
하지만 결국에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할 부분이고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야.
바네사가 잘 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이 이상 자신이 관여하면 그건 정치적으로 왕실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괜한 짓을 해서 귀족들 입에 오르내리는 건 시온 입장에서는 막심한 손해.
더해서 시온 자신도 솔직히 조금은 쉬고 싶었기에 되도록 정신 사나운 일들은 이제 다른 이들에게 맡겨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여태 혹사당했으니 얼마동안은 자신도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
따악!
성 안에 마련된 수련장 쪽으로 향하니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가끔 가다가 들리던 소리가 잠시 후에는 점점 속도가 붙더니 곧 ‘따다다다닥!’ 하는 엄청난 연속 타격으로 변해갔다.
‘저 둘은 참 지겹지도 않나.’
자신의 호위 기사인 리시키다, 그리고 클라우젠의 라이온 기사단장.이 둘은 시온 일행이 클라우젠에 도착한 그 당일부터 저렇게 신나게 대련을 하고 있었다.
순수한 검술 실력으로 보자면 리시키다가 한 수 위이지만 실전 경험으로는 라이온 기사단장이 조금 더 우위에 서있다.
둘 모두가 시온에게 있어서 든든한 아군이고 방패이자 검인 존재들.
그 둘 중에서 굳이 하나를 꼽자면 시온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리시키다를 꼽을 것이다.
라이온 기사단장에 비해서 부족한 점이라는 실전 경험은 리시키다도 얼마든지 더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 리시키다는 김유현이 꽤나 만족하고 있을 정도로 검술에 대한 흡수가 빨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
라이온 기사단장은 클라우젠에 충성하는 것이고 리시키다는 나에게 충성한다는 거지.’
시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정원에 앉아 잠시 바람이나 좀 쐴까 하여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앞쪽에서 한 여인과 마주쳤는데, 뭔가를 그리 골똘히 생각하는지 상대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 할 정도였다.
“시리엔?”
“···아!
시온 클라우젠님.”
“오늘도 노바시를 보고 오는 길인가요?”
“네.
혹 숨기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 해서 설득도 해보고 협박도 해보았지만 더는 나오는 게 없네요.
아쉽게 되었어요.”
시온이 빼낸 정보 외에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했던 시리엔.
요정들이 모진 고문에도 일단 한 번 비밀로 하고자 하는 부분은 거의 대부분을 지켜내는 그 끈질김을 같은 요정인 시리엔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해서 분명 뭔가를 더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그녀가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쪽에는 무림산 특효 자백제인 김유현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일단 전 내일이나 모레 해서 숲으로 돌아가야겠네요.”
“아쉽겠네요.
딱히 얻어낸 것이 없어서.”
“조금은 그렇지만··· 대신 인간 세상을 많이 봤으니까요.
그리고···.”
갑자기 말을 끊더니 얼굴에 홍조를 띄우는 시리엔.
그리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허둥거리다가 헛기침을 하면서 애써 제 감정을 지우고는 먼저 가보겠다고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너 그거 꽤나 힘든 짝사랑일 텐데.”
사실 시온도 시리엔과 김유현을 이어주려고 참 많은 작전을 짰다.
하지만 하필 에오스가 같이 온 터라 김유현과 시리엔을 붙일 시간이 거의 나지 않았고, 설사 난다고 해도 그 시간은 김유현의 에카테리나 조련 중이었기에 시리엔을 붙일 수도 없었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하나, 김유현의 신경을 시리엔에게로 돌려서 스스로 하렘의 길로 들어서게 만드는 방법이었는데 아직 김유현은 거기까지는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결국 아무런 성과 없이 시간이 흐르고 시리엔이 돌아가겠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까지 왔다.
지금도 보면 여전히 시리엔은 김유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데 에오스와 김유현의 사이가 워낙 달달해 보여서 먼저 다가가지를 못 하고 있는 중이었다.
더해서 그녀 자신도 상대에 대한 이 감정이 정말 이성에 대한 호감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그저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일은 잠깐의 감정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 상태로 시리엔이 돌아가면 또 언제 볼지 모르는데.
그냥 포기할까?
어차피 요정들과는 딱 이 정도의 관계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데.’
잠시 멈춰 서서 김유현과 시리엔의 관계 진전 여부에 대해 계산해본다.
일단 손해부터 말하자면, 김유현과 에오스의 관계가 상당히 묘해질 수 있다는 부분.
현재 김유현은 에오스에게 아닌 척 하지만 푹 빠져 있는 상태로 질질 끌려 다니는 것 싶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역으로 그녀를 당기기도 했다.
잘 진전되고 있는 두 남녀의 사이를 망치면 여러 부분에서 피곤한 문제가 발생할 터이니 김유현과 시리엔의 관계가 발전하는 부분에서 오는 손해라고 한다면 역시 그 부분이 가장 컸다.
그렇다면 시리엔과 김유현의 관계가 발전해서 서로가 또 호감을 가지는 사이로 나간다면?
‘시리엔은 요정 사회에서 나름 이름값이 있는 여인이다.
장로들의 뜻을 받아 인간 세상에 전하기 위해 나온 것만 봐도 보통 요정은 아니야.
더구나 이렇게 제 마음대로 움직이면서 숲으로 돌아갈 시기도 제 뜻대로 정하는 걸 보면 확실해.’
인간 세상에 귀족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요정 사회에서도 서로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 중 시리엔은 인간 기준으로 본다면 대귀족 수준은 아니라고 해도 나름 세력이 있는 귀족 가문의 영애라고 볼 수 있었다.
요정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부족의 여인으로 실력도 좋고 무엇보다 성격에 모난 구석이 없어 어지간해서는 적을 만들지 않는 그런 존재 말이다.
아직까지는 요정 사회가 다른 종족들과 이어지는 것을 꺼려하는 기색이 강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대전쟁, 거기에서 살아남는다면 언제까지고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인정하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혼혈에 대한 인식 변화도 있을 테고 말이다.
‘아, 골 때리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정원에 앉아서도 시온은 그 부분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순애만큼이나 달달한 건 없다지만 원래 뛰어난 사람 옆에는 호감을 가진 이성이 넘쳐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게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순간.
시온은 뒤에서 들려온 남성의 목소리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었다.
“또 무슨 일로 그리 끙끙대는 거냐.”
“아··· 오셨습니까, 아버지.”
“여인 문제냐?
바보 같은 녀석.
어쩌려고 그 많은 여인들을 곁에 두어서 그 고생인 거냐.”
비슷하긴 했습니다만 살짝 잘못 짚으셨습니다, 아버지.
시온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리히텐 변경백에게 자리를 권한 후 자신도 그 맞은편에 앉아서 클라우젠의 주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시온.
시온 클라우젠.”
“예, 아버지.”
“슬슬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무슨 준비를···.”
“변경백령을 물려받는 것 말이다.”
그 말에 아아, 하고 탄식을 내뱉는다.
여태껏 많은 일들로 머리를 굴리느라 정작 가까워지고 있던 클라우젠의 승계 부분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후계자인 시온 자신이 이제 성인이 된지도 시간이 흘렀고, 영지를 다스릴 능력이야 이미 충분히 입증하다 못 해 넘치게 했으며 사회적 위치는 3후작과 비견될 정도로 높아진 후다.
이런 상황에서 리히텐 변경백이 자신의 자리를 넘기는 고민을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네가 정식으로 후계자가 된지도 시간이 꽤 흘렀고, 클라우젠의 모든 이들에게 네가 새로운 주인이 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이미 몇 번이고 증명했다.
당장 영지민들만이 아니라 왕국의 모든 이들이 변경백이 바뀌는 부분에 대해서 그 어떤 이견도 내지 않을 거다.”
“너무 이른 것 아니겠습니까?
아직 아버지께서 정정하신데요.”
“오르는 건 더뎌도 내려가는 건 한 순간이다.
그래서 높은 곳에 있는 인간들은 그렇게 후계자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더 오를 수 없다고 해도 최소한 그 자리만큼은 유지해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언젠가 떨어질 테지만 너는 아니다.
여태까지 계속,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올라갈 왕국의 영웅이 아니더냐.”
“···.”
시온은 말을 아꼈다.
리히텐 변경백의 말대로 후계자가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되면 큰 혼란이 일기 전에 그 자리를 내어주는 건 확실히 나쁘지 않은 결정이다.
권력 투쟁 하나 없이 승계를 끝낼 수 있고 전 주인을 모시던 자들이 불만을 품고 다른 꿍꿍이를 가질 이유도 없으며 공백 기간이 없이 바로 영지를 운영할 수 있다.
후계자도 막판에 갑자기 자신의 자리를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일 없이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다져서 미래에 대비한 완벽한 준비를 할 수 있고 말이다.
‘나쁘지는 않아.
애초에 클라우젠 변경백령은 내 거니까.
나쁘지는 않은데···.’
문제는, 아직 일이 끝나지를 않았다.
아니, 끝나기는커녕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클라우젠 변경백의 자리에 올랐다가 다른 일로 인해 급히 자리를 비워야 할 순간이 올 때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정식으로 변경백이 되면 혼인 문제까지 생길 테니···.’
다른 건 몰라도 결혼은 늦게 해라.
다시금 떠오르는 대현자의 말씀을 떠올리며 시온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이른 것 같습니다, 아버지.”
“이르다?”
“아버지께서 아직 정정하시고, 무엇보다 이곳 클라우젠에서 만큼은 저보다도 아버지를 더욱 믿고 따르며 존경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저보다 아버지가 더 위대한 영웅이죠.”
“다 늙어빠진 사람을 무슨.
젊은 게 항상 좋지는 않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젊은이가 필요해.
다 늙은 사람은 이제 물러나서 간간이 잔소리나 좀 하면 그만이다.”
“아직 이릅니다, 아버지.
언젠가 클라우젠 변경백령을 이어 받아 더욱 융성하게 만들테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제게는 너무 일러요.”
“···그렇게 확답을 하니 조금은 당황스럽구나.
네가 내게 증명을 하기 위해 여태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냐?
이미 네가 세운 공과 네 능력은 충분히 입증이 되었다.”
리히텐 변경백의 말대로 공은 충분하고, 재능은 넘쳐난다.
하지만 시온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클라우젠이라는 이 거대한 곳은, 변경백이라는 화려한 이름은.
강력한 권위를 지니게 해주는 무기이자 동시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게 만드는 족쇄였다.
“저번에 말씀드렸죠.
이 아들 녀석이 나가서 온갖 일을 하는 동안 아버지께서는 방패로서 굳건하게 이 영지를 지켜달라고 말입니다.”
“그랬었지.
이 아비는 이런 곳에 처박아두고 혼자 재미를 보고 있고 말이다.”
“···그 역할, 조금만 더 해주셨으면 합니다.”
당당한 시온의 목소리에 당황한 건 리히텐 변경백.
제 아버지에게 고생 좀 더 해달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기에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직 왕국을 위협하는 적들의 정체가 확실히 다 밝혀지지도 않았습니다.
전 그들이 달려들 때마다 막아내기만 하는 방패에서 만족할 생각이 없습니다.
사전에 그들을 찾아내 전부 솎아내고, 베어버리고, 뽑아내는 일을 할 겁니다.
그러니까 아직 제 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허참.”
리히텐 변경백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다.
불과 1년 하고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이만 먹었지 철없고 생각 없는 애송이였던 아들 녀석이 이제는 대놓고 아버지한테 자신을 위해서 조금만 더 버텨달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제 확신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이 녀석아···.
네가 그런 잘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이 아비는 자꾸만 변경백 자리를 넘기고 싶어진다는 사실을 정녕 모른단 말이야?
허허!’
제 아들이 변경백의 자리에 올라 클라우젠 가문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되는 걸 보고 싶었는데 아직은 아니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결국 없다고, 리히텐 변경백은 일단 오늘은 자신의 뜻을 접기로 했다.
“그러면, 언제 변경백의 자리에 오르려는 것이냐?”
대신 그런 질문으로서 아쉬움을 달래본다.
그에 시온은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할 일이 다 끝나면, 그리 할 겁니다.”
―――――――작품 후기―――――――
이번 일이 끝나면 그녀에게 고백을 ···.
읍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