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25)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25화(325/439)
325―――――
폭풍전야
“···이겨서 살아남는 자가 선이라.”
바네사는 시온의 말을 천천히 따라 읊으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걱정을 완벽하게 해소해주는 말이자 동시에 현재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었기에 그녀는 잠시 후 슬며시 미소를 짓곤 입을 열었다.
“그대가 나와 반대편에 서지 않아서 다행이다, 시온 클라우젠.”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다.
그대가 그런 언변으로 나를 공격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해져.”
“제가 왜 여왕님을 따르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저도 여왕님과 반대편에 섰다면 무척이나 난감했을 겁니다.
여왕님도 무척이나 대단하신 분이니까요.”
“아부가 많이 늘었군.”
“아부가 아닙니다.
여왕님이 뛰어난 분이 아니었다면 제가 군주로 모시고 있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조금은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시온은 얼굴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말을 끝냈다.
바네사는 그런 시온의 말에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그대 같은 신하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으니 정신 차리고 내 할 일을 하라는 말이군.”
“아하하, 그렇게 들렸다면 옳게 들으셨습니다.”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것 같아 미안했는데 이렇게 빨리 해결해주니 속이 다 후련하구나.”
조금 전과는 달리 바네사의 얼굴에는 고민의 빛이 거의 다 사라져있었다.
그녀도 이제 한 나라의 군주이기에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기는 자가, 살아남는 자가 과거의 일을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조종할 수 있다고.
패배한 자가, 죽어 사라진 자는 거기에 휩쓸려 선이었든 악이었든 그 끝은 결국 단 한 가지로 귀결될 것이라고.
당장 천족도 과거 마족과의 전쟁에서 기어코 승리를 거두고 그것을 이용하여 온 대륙에 마족들의 무서움을 전파하고 그들을 멀리 하라는 말들을 흩뿌렸다.
덕분에 천족은 대륙을 구한 선이 되었고 마족들은 그 선에 대항하다가 패배한 악이 되었다.
‘승자는 그 어떤 리스크도 짊어지지 않는다.
패자가 모든 것을 가져갈 뿐.’
그러니 시온 자신이 무슨 수를 써도 상관없다.
어떤 거짓말을 하고, 어떤 연막작전을 치고, 어떤 종족을 끌어들이든 그건 결국 승리한 자가 제 입맛대로 바꿔먹으면 그 뿐이다.
패배해서, 그렇게 해서 죽어버리면 단순히 목숨만 잃는 게 아니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그 끝을 평생 조롱 받으며 살아야만 한다.
‘···아니지.
이번에는 패배하면 죽든 살든 결국 다 같이 불타 뒈지는 엔딩이니 그나마 조롱 받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는 개뿔.
무조건 이겨야지.
이겨서 살아남아야지.’
그래,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남으려고 여태껏 그 지랄을 한 것이고, 살아남았다는 그 말을 당당히 외치기 위해 온갖 준비를 다 하지 않았던가.
“왕국민들이 불안감을 겪지 않게 은밀히 움직이시면 될 겁니다.
때가 되면 자연스레 안다고 하지만 그 전까지는 최대한 혼란을 잠재운 상태가 좋을 테니까요.”
“그대의 말이 옳다.
계속해서 상황을 주시할 것이니 그대 역시 클라우젠의 방비를 배는 더 단단히 하도록 하라.
그리고 누디아와의 연락도 취해보고.”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마법 통신을 종료한 시온은 쉴 틈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릴리트를 통해 소집령을 내린 결과 시리엔을 제외한 일행 전원이 방 안에 모여 있는 상태였다.
“전부 모였어, 시온.”
릴리트의 말에 시온은 고개를 끄덕이곤 제 앞에 앉아있는 이들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릴리트를 시작해서 리시키다, 루시아, 리아, 그리고 트리샤까지.
그 반대편에는 에오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김유현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해서 이곳에 있지는 않지만 북쪽에서 계속 준비 중일 쟌과 수도 왕성에서 계속 정보들을 취합하여 바쁘게 이곳으로 보내주고 있는 헬렌까지.
“···그런데 저 여자까지 부른다고 정말 올 줄은 몰랐는데?”
시온이 의문을 표하는 이유.
그건 뒤쪽에 혼자 있기는 하지만 분명 자리에 있는 에카테리나 때문이었다.
이전에 김유현한테 쥐어터진 후 몸을 회복하자마자 또 달려들었다가 역시나 패퇴.
그걸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급기야 클라우젠 변경백령까지 따라온 용인족 여인.
그런데 요 근래 들어서 그녀는 김유현에게 더는 도전하지 않고 있었다.
겁을 먹었다거나,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도 김유현을 바라보며 두 눈동자를 번뜩이고 있으니까.
하지만 싸우자고 또 들이대지는 않으니 다른 이들로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것 마냥 불안해하는 눈치를 보이는 게 당연했다.
“나라고 좋아서 여기 있는 게 아니야.”
에카테리나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투덜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김유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더 싸우고 싶은데, 저 인간 남자가 그러더라고.
이제 곧 중요한 싸움을 앞에 두고 있는데 잡것 수준 정도인 나와는 싸울 시간도 아깝다나?
그래서 도대체 뭐하고 싸우는 거냐고 물었더니 천족들이 될 수도 있다고 하대?”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고작 천족 놈들 때문에 내가 이러고 멍하니 기다려야 한다는 게 말이 돼?
그래서 말했지.
그 천족 녀석들 날개를 모조리 뽑아 죽여줄 테니 얼른 그 싸움 끝내고 나와 마저 싸우자고.
내가 도와주면 저 남자도 더는 나와의 싸움을 피할 이유가 없으니까.”
에카테리나의 말에 시온은 속으로 기가 막힌 웃음을 내뱉어야 했다.
솔직히 저 싸움에 미친 여자를 어떻게 이쪽으로 가담시켜야 하나 걱정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 부분을 혼자 생각해서 김유현을 돕고 이번 일을 얼른 끝내게 만들어서 나와 더 일찍, 더 많이 싸우게 만든다!
라는 방법까지 도출해낸 에카테리나였다.
“···일단 제가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만, 공자님이 의견이 다르시다면···.”
“나쁘지 않아.
적의 적은 친구라고, 나쁘지 않은 전력이 되겠어.”
“뭐라는 거야, 인간 남자.
나는 어디까지나 저 인간, 김유현과의 싸움을 위해서 여기 있는 거야.
이상한 명령 내릴 생각 마라.
죽기 싫다면 말이야.
난 참을성이 부족하니까.”
시온에게 송곳니를 드러내며 바로 협박을 갈기는 에카테리나.
스스로에 대해서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종족 특성 상 이 자리를 매우 불편하게 여길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에카테리나에게 쫄지 않는 인물이 김유현 말고 하나가 더 있었다.
“뭐라니?
저 도마뱀 년이?
다시 말해봐, 너 지금 뭐라고?”
“죽기 싫다면 명령 내리지 말라고 했다만.
마족, 무슨 불만이라도 있나?”
“···하, 비둘기도 아니고 이상한 년한테, 전장도 아닌 여기서 시온한테 열심히 빼앗은 마력을 풀어놓기는 싫은데.
어떻게 찢어줘야 예쁘게 찢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김유현한테 신경 쓰느라 마족, 너와의 싸움은 잠시 미루고 있었는데 이렇게 먼저 들어와 준다면 나야 환영이다.
덤벼라, 어서.”
당장이라도 두 여인이 폭발하듯 부딪칠 것 같은 기운을 형성한다.
그 분위기가 어찌나 살벌했는지 루시아나 리아는 물론이고 상급 기사인 리시키다, 쟌과 거의 동급인 에오스, 어지간해서는 겁을 먹지 않는 트리샤조차 바짝 긴장할 정도였다.
조금만 건드려도 바로 터져버릴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진다.
릴리트의 붉은 눈동자가 더욱 요사스러운 빛을 발하고 에카테리나의 입이 길게 찢어지며 송곳니가 막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는 찰나.
“그만하세요, 릴리트님.”
“아가리 닥쳐라, 에카테리나.”
두 남자가 각각 입을 열어 두 여인들을 말렸다.
물론 하나는 무척이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른 하나는 무척이나 험악한 목소리였지만.
“말리지 마, 시온!
내가 장담하는데 저 도마뱀 때문에 일을 망칠 거야.
싸움에만 미친년을 뭘 어떻게 믿어야 할지 의문이라고!”
“진정하시고 일단 두고 보세요, 릴리트님.
원래 모든 게 다 쓸 곳이 있다고 했습니다.”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거냐?
네놈 명령을 따르지 않을 거라고 분명 말을··· 컥?”
에카테리나는 말을 다 하지도 못 하고 갑자기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김유현이 우악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목을 틀어쥔 것이었다.
“꺼윽!”
“아가리, 닥치라고 했다.
한 번만 더 목소리를 높이면···.”
“크, 크큭!
왜, 죽이기라도 하겠다고?
그, 그러면 나야 환영이지!
네 손에 죽을 수 있다면··· 꺼억!”
용인이라고 해도, 제아무리 회복력이 대단한 존재라고 해도 결국 숨을 쉬며 살아가는 존재.
그 출입구인 목을 당장이라도 부러트릴 듯 쥐고 있는 통에 에카테리나는 이제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힘겹게 숨만 내쉬며 김유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착각하지 마라.
네년 좋은 꼴 볼 생각 없으니.”
“···.”
“자꾸 나불거리면 손이고 발이고 전부 잘라서 길바닥에 던져놓고 굴릴 거다.
회복하려고 하면 또 자르고, 자르고, 잘라서 굴러다니는 고깃덩이로 만들어줄 거란 소리다.”
세상 그 어떤 존재도, 최고위 마족인 릴리트조차 용인을 상대로 저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회복력은 마족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고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그들의 특성은 천족들이 진작 그들을 마족과 비슷한 악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런 용인을 김유현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지고 놀 수 있는, 무슨 나무를 가지치기 하듯 사지를 쳐내준다는 말까지 하며 위협하고 있었다.
‘저게 통하려나?
애당초 완전히 돌아버린 여자인데.’
시온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듯, 릴리트도 여전히 사나운 눈길로 에카테리나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만에 하나 또 헛소리를 하면 이번에는 정말 저 도마뱀의 주둥이를 찢어버리겠다는, 상당히 으스스한 생각도 함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다음 흘러나온 에카테리나의 말은, 상당히 놀라운 것이었다.
“···죽일 생각 없다면, 이거나··· 놔, 놔줘.”
“···.”
“숨 막혀 죽은 멍청한 년으로 기억되기는··· 싫거든.”
그녀의 말에 김유현의 한쪽 눈썹이 움찔거리고, 릴리트가 탄식을 토해낸다.
시온 역시 꽤나 놀라서는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는데, 에카테리나의 저 말은 애써 돌려 말한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 정리해보자면 ‘이것 좀 놓아 달라.’, 즉 ‘살려줘.’ 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김유현은 에카테리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게 꽤나 신기했는지 잠시 그녀를 응시하다가 당장이라도 목을 부러트릴 것 같이 억세게 쥐고 있던 손길을 풀어주었다.
간신히 숨통이 트인 에카테리나는 켁켁거리며 크게 숨을 들이마쉬고는 내뱉었다.
“후우, 후우··· 정말, 인간이 맞나 싶다니까.
콜록!
어떻게 우리 용인을 한 손으로 목 졸라 죽일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까불지 말고 대답해라, 에카테리나.
시온 공자님께 다시는 그렇게 말하지 마라.
함부로 하는 모습을 한 번만 더 봤다가는, 나와의 싸움은커녕 명예롭게 싸우다가 죽고 싶다는 네년에게 가장 비참한 삶을 선사해줄 테니까.”
“···알겠어.
알겠다고.
그렇게 노려보지 좀 마.
젠장···.”
에카테리나는 인간들과 수인, 마족 앞에서 망신을 당했음에도 그 부분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보다는 왠지 모르게 김유현을 바라보며 내심 서운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리고는 뭐라고 투덜거렸는데 그 소리가 너무 작아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잠시 소란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시온 공자님.”
자리에 앉으며 김유현이 상황 종료를 알린다.
그에 시온은 되었다는 듯 손을 내젓고는 주변을 환기시켰다.
“자, 다들 갑자기 이렇게 모이라고 해서 조금 놀랐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방금 전 들어온 소식들 때문에라도 이럴 수밖에 없었어.”
“대충 이야기는 들었어요, 시온.
신성 프러센의 동향이 이상하다고요.”
“냐앙?
신성 프러센이라면 빛의 교리를 최고로 치는 인간 왕국인가?”
“맞습니다, 리아님.
제가 누디아에서 있던 시절에 그쪽 사람을 몇몇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어떤 것보다도 빛의 교리를 우선시 하는 사람들이었죠.”
“···그런 거 믿는다고 뭐 좋은 거라도 주나요?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네.”
“집중해야지, 애들아?
아무튼 신성 프러센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 육로고 해로고 전부 다 막아버렸다고 했어.
여태 멀쩡히 교역 잘 하던 놈들이 갑자기 제 대문을 걸어 잠근 거지.”
“릴리트 언니 말씀대로라면 히스파냐와 누디아, 두 국가가 피해를 입을 테지만 신성 프러센도 멀쩡할 수는 없을 텐데요?
당장 돌아가는 손해가 많을 텐데.”
“이득과 손해를 더 따질 필요가 없는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했겠지.”
시온의 말에 여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그가 말하는 ‘시기.’, 그 단어에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고 서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예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고 있겠지?
당연히 선이라고, 빛이라고,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말.
무엇이든 확실한 건 없고 믿을 수 있는 것도 없다는 말.”
“···.”
“··· ···.”
“아무래도, 슬슬 가면 놀음이 재미가 없어진 모양이야.”
그러자 릴리트가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다.
무척이나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이럴 줄 알았다고 말하고는 가볍게 손가락을 푼다.
“그래, 인간들이나 다른 종족들이 좋다고 빨아주는 게 이제 시들하다, 이거지?
역시 속이 시커먼 놈들답다니까?
아주 대단들해요.”
“···시온, 그 말은···.”
“신성 프러센이 어느 종족을 위한 왕국인지 생각해봐요, 루시아.
여태 빛의 뜻이니 뭐니 하면서 항상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하던 그들이 갑자기 돌변한 게, 과연 그들 스스로만의 뜻으로 이뤄진 것들일까요?”
“···.”
자리에 모인 이들 중 천족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나마 호의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던 이가 바로 루시아였다.
대륙 위의 다른 인간들처럼 그녀도 천족과 마족들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자랐으며 천족은 선하고, 옳은 존재들이라고 알고 성장했다.
그런데 시온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당연하게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게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고 다른 이들이 믿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물론 나도 그게 아니길 바라죠.
그랬다가는 어떤 혼란이 들이닥칠지 모르니까.
하지만 여태 우리가 걱정했던 것이 정말이라면, 이제는 싸워야 할 겁니다.
옳다고 믿었던 것들과, 선하다고 믿었던 자들과, 그리고 그들을 여태 믿고 있을 자들과도.”
“···.”
“자신 있죠, 루시아?”
만약 이런 말을 초창기 때 했으면 루시아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여태 믿고 있었던 것들과, 마음에 품은 사람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딱히 오래 고민할 것도 없었다.
이미 시온이 나서서 이쪽에 더 유리한 그림이 그려지도록 전부 수를 써둔 후였다.
“이미 빛의 이름을 뒤집어쓰고 온갖 해괴한 짓들을 하던 자들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빛의 후예라는 자들이 침묵하고 있는 걸 보면 그들의 수준도 알만 하네요.”
“···리아, 너도 자신 있지?”
“냐앙?
당연한 걸 묻네?
애초에 천족들이 평화니 번영이니 했던 게 전부 거짓말이었다면 우리 수인들은 전부 다 송곳니를 드러낼걸?
그렇게 믿어줬는데 배신이라니 말이야!”
파칭!
하고 손톱까지 꺼내 보이는 리아.
시온이 고개를 돌려 리시키다를 바라보니 그녀는 두 눈을 깜빡거리며 시온을 마주본다.
자신의 대답은 애초 정해져있는데 그걸 또 물을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다른 건 필요 없고, 그들이 시온님을 적대시한다면 그것들은 내 적이에요.
다 불태워 죽여야만 하는 적.”
손가락을 튕기며 작은 불꽃들을 만들어내던 트리샤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혹시, 하고 걱정했지만 역시나 그런 일은 없었다.
시온이 시작부터 열과 성을 다해서 마음을 돌려놓은 이들, 거기에 더해서 천족이라 하면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요즘 들어서 벌어진 부정적인 사건들을 먼저 떠올리게 만들었으니 다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저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김유현?”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에게 슬쩍 시선을 던진다.
다른 이들이 전부 오케이, 라고 해도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면 그 순간 폭망 트리다.
시온이 아주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김유현을 바라보자, 그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삶을 망가트리는 거짓된 선, 위선적인 정의는 필요 없습니다.”
손에 쥔 것이 생기다보니 당연히 미련이 생기고,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든다.
바로 그 감정을 심어주기 위해서 시온이 그렇게나 노력했던 것이고, 지금 이 순간 마침내 그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향후 계획에 대해서 설명한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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