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4)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4화(34/439)
<―>
제갈공명의 높으신 뜻을 기리며 류트를 튕길 때, 알아낸 것이 하나 있었다.
분명 알맹이는 자신의 것인데, 몸의 일부는 여전히 시온 클라우젠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
그 증거로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는 류트라는 악기를 무리 없이 연주하지 않았는가.
‘시온 클라우젠이 검술을 아예 배우지 않은 건 아니니까.
대충 휘두르는 건 될 거다.’
자칭 왕국의 미래를 책임질 기사 어쩌고 하는 놈이지만, 어찌 되었든 후보생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에 빠져 앞도 제대로 못 보는 병신이 되어 있는 루드비히다.
“시작해볼까?”
딱 봐도 여유만만이 몸에 배다 못해 아주 쩔어있는 수준이다.
심각하게 얕잡아 보인 모양인데, 아무래도 시온 클라우젠이 루드비히와의 대련을 매번 피했던 모양이다.
‘이런 놈이 도대체 뭔 생각으로 김유현과 그렇게까지 투닥거렸는지 모르겠네, 시바.’
김유현이 조금만 더 살생을 즐기는 놈이었다면 참 좋았으려나.
상대적으로 약한 놈이라고, 불쌍한 놈이라고 판단하면 마음이 약해지는 김유현.
그리고 그 점을 노려 김유현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괴롭힌 시온 클라우젠.
“선공 정도는 양보해줄 수 있는데.”
라는 말을 하면서 어서 들어와 보라는 듯 폼을 잡는 루드비히.
저렇게 하면 혹시 폼 난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무리 봐도 그냥 목검 하나 들고 껄렁대는 양아치 새끼 하나 밖에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면 사양치 않고.’
이 몸이 검을 얼마나 휘두를 수 있는지, 실험해보기로 했다.
시온은 앞으로 내달려서 검을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생각보다 묵직한 목검, 그리고 상대방이 이걸 제대로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우려.
혹 반격을 당하게 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두려움이 일었지만 검은 검대로 휘둘러졌다.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검이란 걸 스스로 다뤄보긴 했던 모양이긴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느려!”
따악!
루드비히는 검을 휘둘러 시온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사실 예상하고 있던 것이, 이 몸이 검을 좀 휘둘러 봤다고는 하지만 루드비히에 비교하면 애들 장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원래 내용 상 김유현에게 팔 하나가 잘려서 이제는 검도 못 다루는 몸이 되었을 테고 말이다.
‘오, 시발.
손 저릿한 거 봐.’
목검이 목검을 때렸을 뿐인데 손이 지잉, 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얼얼한 통증까지 느껴지는 것이 만약 이게 진검으로 하는 대련이었다면 어쨌을까 싶었다.
“이제 다 끝난 거냐?
시온 클라우젠?”
“···그래.
끝난 거 같다.”
“그러면 이제 내 차례군.”
어떻게 요리 해줘야 할까.
정신없이 몰아치다가 스스로 주저앉게 만들까?
아니면 집요하게 빈틈만 노려서 한동안 끙끙거릴 정도의 타격을 먹여줄까.
마음 같아서는 저 재수 없는 면상을 구겨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엄청난 후폭풍이 일어날 것이 뻔하니 그것만큼은 참아내는 루드비히였다.
‘일단 다리.’
균형을 깨트려 이 대련장 바닥을 구르게 만들 생각으로 루드비히는 검을 휘둘렀다.
아니, 정확히는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항복.”
···어?
기세좋게 달려가던 루드비히는 도중에 뚝, 하고 멈추고 말았다.
항복?
항복이라니.
도대체 뭘 했다고 항복이라는 건가.
설마 그 공격이 막혔다고 항복을?
“뭐 하는 거냐, 시온 클라우젠.”
“항복이라고.”
두 손을 살짝 위로 올린 채 방어 의지를 전혀 드러내고 있지 않은 시온이다.
정말 완벽한 항복 의사였기에 루드비히는 순간 맥이 탁, 하고 풀리는 느낌이었다.
겁이 많은 놈이란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일단 대련에 나서면 그래도 좀 싸울 줄 알았다.
그런데 놈은 제 공격이 막히자마자 덜컥 항복을 해버렸다.
“하.”
어이가 없어진 루드비히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시온 앞에 다가섰다.
정말이지, 이렇게 겁 많고 나약한 녀석은 본 적이 없었다.
일단 전투에 나서면 죽을 각오로 싸우는 것이 레데넨 후작가의 지엄한 엄명이며, 기사들의 자존심이고 병사들의 의무다.
그런데 이 놈은, 명색이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장자라는 이 남자는, 왕국의 방패라고 불리는 클라우젠의 후계자가 유력한 이 망할 얼굴만 반반한 새끼는!
“이런 나약한!
실망스럽다, 시온 클라우젠!”
“응.
걸렸죠?”
···어?
목에 뭔가가 툭, 하고 와 닿았다.
고개를 살짝 내린 루드비히는 곧 그게 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항복의 의사로 두 손을 들고 있던 시온이 한쪽 팔을 내려, 그 손에 들고 있던 목검으로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던 것이었다.
“지, 지금 뭐하는 거지?”
“목을 겨누면 대련 끝이라며.
목을 겨눈 건 나고, 겨눠진 건 너.
따라서 승자는 나, 패자는 너.
이해 하셨어요, 훌륭하신 기사 후보생 나으리?”
“너, 너 지금 도대체 뭘 하자는···.”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루드비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련에서 이런 치졸한 방법을 쓰다니?
신성한 검술 대련장에서 상대를 속인다고?
“전쟁터에서 썼다는 검술 좀 보자며.
그래서 보여준 건데?”
“헛소리!
이건 그저 장난질에 불과하지 않냐!
망할 자식, 나를 모욕하는 거냐!”
“불만 있으면 한 번 더 하던가.
콜?”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시온의 제안에 루드비히는 이를 악물며 그걸 받아들였다.
선공은 이미 양보해줬고, 그런 자신에게 이런 더러운 술수를 썼으니 다시 시작한다면 바로 공격을 가해서 그대로 대련을 끝내버릴 생각이었다.
‘개 같은 자식!
얼굴만 반반하지, 하는 짓은 전부 쓰레기구나!’
그래도 루드비히가 사람 보는 눈은 좀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눈앞의 시온 클라우젠은 더는 시온 클라우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시작하자고, 루드비히.”
탓!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루드비히는 대지를 박차고 시온에게로 달려들었다.
원래라면 머리통이라고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수 있는 터라 적당히 가벼운 부상 정도만 입힐 생각으로 상대를 노리고서.
시온이 방어 자세를 취하긴 했지만 충분히 파훼가 가능했다.
한 눈에 봐도 검을 몇 번 다룬 것 같지만 그걸 체계적이고 더 정확하게 만들진 못한 모양.
‘끝이다, 이 자식아!’
응, 아니야.
등신아.
시온은 낄낄대며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힘껏 발을 차올렸다.
푸확!
“억!”
루드비히가 분노를 표출할 때부터 슬슬 대련장의 바닥을 건드려서 모래와 먼지를 잔뜩 신발 위에 모아둔 자신이었다.
상대가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곱고 입자가 작은 모래들이어서 그런지, 조금만 차올려도 먼지구름이 일렁일 정도였다.
그걸 순식간에 잔뜩 뒤집어쓰게 된 루드비히는 버둥거리며 속도를 늦췄다.
시야가 흐릿해진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눈 안에 먼지가 들어가니 그 따끔함 때문에 뭔가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 걸렸죠?”
턱―.
시온은 낄낄대며 버둥거리던 루드비히의 목에 다시 검을 가져다 대었다.
너무나도 깔끔하고 완벽하게 끝이 나버렸다.
덕분에 그대로 우뚝, 정지해버린 자칭 미래의 짱짱 기사맨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도, 도대체 뭐하는 거냐.
이 신성한 검술 대련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속임수를···.”
“전쟁터에서 썼던 검술 좀 보자.
그게 네 주문 아니었나?
해달라는 대로 해주었을 뿐인데 왜 그러는 건지 오히려 내가 이해를 못 하겠는데.
루드비히 레데넨.”
“당연한 소리를!
어찌 기사가 속임수를 쓸 수 있겠냐!
이건 비겁한 거다!
치졸한 거다!
더러운 수법이다!
이걸 대놓고 두 번이나 쓴 네놈은 도대체···.”
“그러면 넌 비겁한 수에, 치졸한 거에, 더러운 수에 두 번이나 걸린 왕국의 미래를 책임질 기사 놈이네?”
툭, 툭―.
목검 끝으로 루드비히의 목젖을 가볍게 찌르며 시온은 냉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무슨 개 같은 환상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전쟁터에 가보지도 않은 너를 위해 알려줄게.
전투에서 비겁한 짓은 딱 하나야.
싸우지 않고 도망가는 거.
그게 아니면 뭐든 통용되는 곳이 바로 전쟁이지.
네가 집에 틀어박혀서 검만 좀 휘두르다보니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해주는 말이야.
형님 말씀 새겨들어.
나중에 피 보지 말고.”
참고로 둘의 나이는 같다.
형님은 아니다.
일단은.
“원래는 나도 대충할까 했는데, 네가 자꾸 전쟁이란 것을 얕잡아 보고 거기서 내가 써먹었다는 검술 좀 보여 달라고 해서 생각이 바뀌었지 뭐냐.
나중에 우리 루비 동생이 이런 방식으로 콱!
하고 목이 날아가지 않도록 이 형님이 특별 강습을 해준 거지.”
“헛소리!
그딴 치졸한 수에 넘어갈···.”
“넘어가.
기사라고 목에 칼 안 들어갈까?
들어가는 과정이 힘든 거지 결말은 다 똑같단다.
지금 이게 진짜 전쟁이었다면 난 살았고, 넌 죽었겠지.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목검을 거둔 시온은 제 어깨를 툭툭 치며 낄낄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박살낼 생각에 좋아 죽으려고 하던 놈이 이제는 똥 씹은 표정이 되어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데 그게 어찌나 즐거운지 절로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
다시 하자, 시온 클라우젠!
한 번 더!”
“어이구, 추해라.
한 번이라면 모를까, 두 번이나 패해놓고 또 하자네?
부끄럽지도 않니?”
“이익!”
“남들 보기에도 이상하다.
여기서 네가 한 번 더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2:1 로 내 판정승이라서.
그냥 보기 깔끔하게 2:0 으로 끝내지, 루드비히?”
“속임수를 써서 이긴 것이지 않느냐!”
“속여서 이겼다고 패배 처리되는 전쟁은 세상 어디에도 없어.
대련도 크게 보자면 그 전쟁을 위한 준비 작업이니 얼른 익숙해지렴.”
“인정할 수 없다!
한 번 더 해.
한 번 더 하자고!”
그러자 시온은 걸음을 옮겨 루드비히의 앞으로 다가섰다.
루드비히는 혹시나 또 속임수를 쓰는 건 아닐까 싶었는지 바짝 긴장한 모습.
하지만 시온은 그의 앞에 목검을 탁, 소리가 나게 떨어트리곤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말이지, 루드비히.”
“···?”
“나보다 약한 자의 말은 듣지 않는다.”
블워몬의 가슴이 다 웅장해지는 대사와 함께 시온은 그대로 루드비히를 격침시켰다.
여태 살면서, 물론 그 세월이 20년 밖에 되지 않지만, 아무튼 약하다는 말은 또 처음 듣는 루드비히였다.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고, 분노는 치미는데 또 두 번이나 패했으니 할 말도 없는 상황에서 루드비히 레데넨은 입술만 뻐끔거리며 시온을 바라봐야 했다.
‘시발, 존나 상쾌하누.’
예전부터 자신을 무슨 벌레 보듯 무시하던 (비록 진짜 자신은 아니었지만) 상대를 엿 먹이고, 거기에 달달한 승리까지, 그것도 두 번이나 먹었다.
별 보잘 것 없는 검술이었지만 최소한 틈을 노릴 정도는 되었고, 루드비히는 검만 잘 다룰 뿐이지 아직 세상의 진리조차 모르는 애송이였다.
정의는 법정에서나 찾는 것이지, 죽고 죽이는 싸움터에서 찾을 게 아니다.
그건 그저 패배자들이 마련해놓은 보험책에 불과하다.
적이 정의롭지 못 한 싸움을 해서 졌다는 말도 안 되는 보험.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고, 적을 패배시키면 그게 장땡이다.
다 필요 없다.
뭔 짓을 했어도 이기면 영웅이고, 지면 병신인 세상이다.
‘뭐야.’
발걸음을 옮기던 시온은 누군가와 딱 시선이 마주쳤다.
도대체 언제부터 와서 보고 있던 건지 모르겠지만, 거의 웬만한 청년 급의 건장한 몸을 지닌 중년 남성이 자신과 루드비히를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던 것이었다.
시온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해 보였다.
“후작님.”
볼코 레데넨, 현 레데넨 후작이자 여러 전쟁에서 공훈을 새웠던 남자.
저기 멍청하게 서있는 루드비히의 아버지이자 리히텐 변경백과는 상당히 애매한 관계에 놓여있는 남자.
“오랜만이구나, 시온 클라우젠.”
“그렇습니까.”
“그래서, 어떠했느냐.”
“예?”
다짜고짜 어떠했느냐는 질문이 날아오자 시온은 살짝 당황했다.
혹시 속임수로 제 아들을 이겨먹은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것일까?
정말 그런 의도로 묻는 거라면 생각을 잘 해야 할 듯 싶었다.
어느 부모라고 해도 제 자식에게 이상한 짓을 한 놈을 곱게 보지는 않으니까.
“아들놈에게 전쟁에서 쓰던 검술을 몸소 보여주지 않았느냐.”
“그렇죠.”
“허면 네가 겪었던 그 전쟁이 어떠했느냐, 이 말이다.”
그 말에 시온은 살짝 고개를 들곤 볼코 후작을 바라보았다.
냉랭한 빛이 감도는 눈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책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들이 비겁한 수로 패배했다는 것도 딱히 마음에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약간은 흥미롭다는 듯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갑자기 변한 시온 클라우젠의 모습에 꽤나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눈앞의 남자는 루드비히에 비하면 양반인 귀족.’
시온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과연 어떤 말을 해야 이 후작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루드비히에게 한 번 더 엿을 먹이고 3:0 으로 완승을 거둘 수 있을까.
“···전쟁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시온은 할 수 있는 최대한 목소리를 깔고, 침통해하는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마치 그 날의 악몽을 떠올리면 절로 소름이 끼치고 눈물이 날 것 같다는 듯이.
“전쟁은, 겪어보지 못 한 자에게나 달콤하고 멋져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반응은 있었다.
‘이 놈 보게?’ 하는 듯 눈꼬리를 올린 볼코 후작의 모습이 확연히 들어온 것이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루드비히는 또 시온에게 패배한 것이다.
3:0 으로 !
‘아버지, 불초 소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끼엑!’
어느 날 약주를 거하게 드신 아버지가 갑자기 삘 받으셨다며 사 오신 ‘간지 작살 명언집’ 이 그렇게나 고마울 수가 없었다.
[작품후기]4연참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