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41)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41화(341/439)
341―――――
남쪽의 칠면조 사냥
신성 프러센과 맞닿아있는 누디아의 동쪽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이야 양측 어느 곳에서든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이전부터 빛의 교도들에게 은밀히 뇌물을 받아먹던 자들, 빛의 교리에 심취하여 완전히 눈깔이 돌아가 버린 자들, 그리고 누디아의 귀족으로 남고 싶지만 빛의 교도들에게 협박을 당하여 반 강제적으로 신성 프러센 측에 합류한 자들까지.
누디아의 동부는 솔직히 말해서 누디아의 영토가 아니라 신성 프러센의 영토라고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누디아의 동부를 반 넘게 장악한 신성 프러센은 바로 누디아 중심으로 짓이겨 들어가기보다는 남쪽으로 이후 행보를 결정했다.
남부 지역에서 빛의 교도들이 소요 사태를 일으켜주고 있고 무엇보다 이전 누디아의 왕이 쫓겨나면서 중앙에서는 빛의 교도 세력이 같이 쓸려나갔기 때문이었다.
“핀츠 모아덴님.
남쪽에서 저항하던 자들의 지휘관을 암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요정 하나가 지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끈질기게 저항하던 남부의 지휘관을 끌어내어 제거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했고, 결국 오늘에서야 그 노력의 결실을 본 것이었다.
상당히 귀중한 성과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숲의 의지를 잇는 자, 천족들의 충실한 종자인 핀츠 모아덴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빛의 후예들을 따르는 종자들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 같은 종자인 자신이 저들을 칭찬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 것.
천족들이 성소를 박차고 나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 이제 자신도 숲의 의지니 뭐니 하는 것보다 그들의 종자로서 충심을 다하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신성 프러센의 교도들은?”
“성기사단이 재정비에 들어갔고 나머지도 전투 후 재정비를 위해서 잠시 휴식 중이라고 합니다.
다들 기도를 올리면서 이 명예로운 성전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하고 있더군요.”
“역시 자애로우신 분들.
그냥 대충 치료 마법을 써주고 죽을 때까지 싸우라고 하며 굴려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불구덩이라고 해도 뛰어들 자들인데 그리 챙겨주시다니.”
“핀츠님의 뜻에 동감합니다.”
다른 멀쩡한 사람들이 그들의 이이기를 들었다면 무슨 개소리냐면서 욕설을 한 바탕 퍼부었을 지도 모르겠다.
허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모두가 자신들을 영광스러운 성전에서 싸우고 있는 전사들이나 빛의 종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이성보다는 그릇된 신념이 앞서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중이란 소리였다.
“충실한 분들?
여기 있나요?”
이때 밖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상위 천족에서도 실력자라고 하는 ‘처벌자’ 샤이엘라임을 알아차린 핀츠와 다른 요정은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안에 있었군요.
소식 들었어요.
또 한 번 비루한 자들을 무너트리는 데에 성공했다고요.”
“그렇습니다.”
“고생 많았어요.
오라버니도 기뻐하고 있다고 전해둘게요.”
샤이엘라의 오라비라 하면 최상위 천족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루였다.
천족들의 믿음과 결정을 이끄는 자가 그런 반응을 보였다니 충실한 종자인 핀츠는 당연히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넙죽 엎드려서는 그저 황송하다는 기색만 비칠 뿐이었다.
“우리 빛의 후예들은 여러분들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어요.
해서 하나 부탁할 게 생겼는데 이렇게 당신들을 찾아왔답니다.”
“무엇이든 분부만 내려주시길.
성심을 다해서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리 말해주니 든든하네요.”
그렇게 말하며 샤이엘라가 뭔가를 내밀었다.
핀츠는 그걸 두 손으로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받고 나서도 열어서 확인할 생각보다는 마치 허락을 구하듯 샤이엘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열어보세요.”
“네.”
샤이엘라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제야 그녀가 내민 종이를 열어보는 핀츠.
곧 그녀는 아?
하고 탄식을 내뱉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빛의 후예시여, 이건···.”
“우리 빛의 후예들은 우습게도 너무 빛이 나는지라 어디를 가던 티가 나는 자들이죠.
해서 은밀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때문에 밤에 움직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여태까지는 우리들을 따르는 이들을 위해서 그런 짓은 하지 않았죠.”
“···.”
“하지만 저들에게는 이제 빛의 따스함이 아니라 어둠속에서 내리치는 불벼락을 가르쳐줄 때입니다.
빛이 무서워서 그늘로 피했지만, 그 어둠에서도 우리들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이번 기회에 알려줄 계획이에요.”
핀츠는 천족의 말에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멋도 모르고 감히 빛의 후예들에게 반항의 뜻을 내던진 인간들이나, 거기에 동조한 수인들, 그리고 멍청하게도 감언이설에 넘어가 함께 이상향으로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동족들까지.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이들에게 심판을 내리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리고 원래 벌을 받기를 각오하고 있는 자보다는, 그래도 자신은 그 벌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찾아가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는 법이죠.
이번에 누디아 남부를 정리하면서 항구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죠?”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조선술에 능한 이들을 전부 징발하세요.
그리고 거기에 적혀있는대로 작업을 하게 하면 될 겁니다.
나머지는 인간들이 알아서 할 거예요.”
샤이엘라의 말에 핀츠는 잠깐이었지만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숲에서 지내던 그녀라고 해도 세상 돌아가는 상황은 대충 알고 있다.
그리고 물 위에 떠서 움직이는 배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당연히 인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샤이엘라가 내민 종이에 그려져 있는 배는 핀츠의 생각과는 아예 궤를 달리하는, 보고 또 보고 아무리 봐도 요상하기만 한 것이었다.
“보아하니 그게 뭐냐고 생각하는 모양인데요.”
“아, 아닙니다!
빛의 후예들이 내놓으신 말에 이견이 있는 게 아니라···.”
“걱정 마세요.
당신에게 벌을 내릴 생각은 없으니까.
오히려 궁금해 하지 않는다면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는 고깃덩이냐고 한 마디 할 참이었답니다.”
웃으면서 말하고는 있지만, 그 안에 서늘한 기운이 담겨있음을 핀츠는 눈치 챘다.
자신이 상상하던 빛의 후예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샤이엘라가 솔직히 부담스럽기는 했으나 그걸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는 상황.
때문에 그녀는 표정 관리를 하면서 샤이엘라의 다음 말을 얌전히 기다렸다.
“인간들은 충격을 받아야 두려움에 떨고, 두려움이 늘어야만 비로소 진리에 가까워지는 이상한 종족이죠.
그런 의미에서 히스파냐라는 곳의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는 남부에 빛의 분노를 보여줄 생각이에요.
그런데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서 곤란하더라고요.
우리 빛의 후예들은 마족과의 최후 결전을 위해서 동족들을 많이 잃어서는 안 되고 신성 프러센의 교도들은 누디아를 정리하는데 바쁘니 얼마 전까지는 뾰족한 수가 없었어요.”
잠시 말을 멈춘 샤이엘라는 핀츠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가리켰다.
“어떤 인간이 고맙게도 그런 걸 써먹어 주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그 종이에는 바로 시온이 계획했던 그리핀 모함의 대략적인 모양새가 그려져 있었다.
해적들이 전부 수장된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분명히 있고, 이미 모함이 히스파냐의 해군과 왕국민들에게도 공개된 터라 소식이 신성 프러센으로 흘러들어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모함에 대해서 누디아도 신성 프러센도 처음에는 진지하게 고려해보았으나 결정적으로 위에서 운용할 수 있는 비행 몬스터가 없었으며 이미 이렇게 공개가 된 이상 더는 히스파냐처럼 결정적인 병기로 활용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관심이 꺼진 듯 했으나 천족들은 바로 그 부분에 관심을 기울였다.
자신들의 단점인 짧은 체공 시간을 이 모함만 이용한다면 없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히스파냐 남부의 밤하늘에서 불꽃을 떨어트릴 이들은 우리 동족 수십이에요.
대부분이 하위에 머물고 있는, 상당히 약한 친구들이지만 어쩌겠어요.
이렇게라도 우리들의 과업에 힘을 보태겠다는데 밀어낼 수가 없어서 말이에요.”
“빛의 후예 분들은 누가 되었든 고귀하신 뜻을 지닌 분들이니 응당 그러실 겁니다.”
“그 녀석들이 걱정되어서 나도 좀 따라가려고요.”
“샤, 샤이엘라님까지 말입니까?”
“그들만 보내서는 안심이 되지 않으니까.
만에 하나를 대비해야하지 않겠어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말이었으나 핀츠는 그냥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렇게 배 위에서 날아올라 밤바다를 거쳐 히스파냐의 하늘 위로 향한다면 어떤 인간이 어둠속에서 내리는 빛의 후예들의 심판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막아내는 건 고사하고 피하기조차 바쁠, 아니 심판이 내리는 것조차 모를 확률이 높았다.
“기한은 많이 줄 수 없어요.
지금쯤이면 히스파냐와 누디아가 손을 잡고 우리들에게 저항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을 테니까.
이해하죠, 핀츠 모아덴?”
“물론입니다.
닷새, 닷새 안에 빛의 후예들께 영광스러운 배를 만들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빛의 후예들이 자신에게 직접 요청한 일이다.
명령이 아니라, 요청 말이다.
이건 분명 엄청난 일이었기에 핀츠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반드시 일을 끝마칠 요량이었다.
그리고 이왕 일을 맡았으니 아예 천족들의 눈에 확 띌 수 있는 부분까지 나아가기로 했다.
‘멍청한 인간들.
아무리 급조한 배라지만 어쩜 이리 추할까.
아름다움을 모르는 자들에게 이상향도, 구원도 필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며 핀츠는 당장 제 밑의 요정들과 빛의 교도들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당장 장악한 누디아 남부를 전부 뒤져서 조선술에 조금이라도 실력이 있는 자들은 전부 모아오라고, 협조하지 않는다면 가족 전부를 인질로 잡아서 협박을 해도 좋다고 말이다.
이후 일은 무섭게 진행되었다.
빛의 교도들에게 완전히 넘어간 항구에서 그들의 뜻을 거스르다가는 이단으로 몰려 당장 화형을 당할 판국이었기에 기술자들이 모여들었고 곧 핀츠가 내민 배의 모습을 면밀히 살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저, 그런데 도대체 이 등들은 왜 달라고 하시는 건지···.”
“멍청하긴!
그러면 빛의 후예들께서 날아오르시는데 어두컴컴한 곳을 그냥 향하시란 말이냐!”
“아, 예.
예.
알겠습니다.”
“토 달 생각 말고 일에 집중해라.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면 우리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는커녕 불에 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위협을 해대니 기술자들은 죽기 살기로 일을 하여 정말 닷새 만에 누디아의 군선을 개조하여 모함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 말았다.
시온이 선보였던 것이 단순히 교역선 위에 비행갑판을 깐 형태였다면 이들이 만들어낸 것은 그보다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었는데 일단 곳곳에 달린 등이나 보석들, 그리고 하얀 색으로 칠해진 선체와 돛이 그것들이었다.
“이 정도면 어두운 밤바다 밑에서도 달빛만 받으면서 홀로 빛날 수 있겠구나.”
모함을 확인한 샤이엘라가 내놓은 첫마디였다.
핀츠는 그런 천족의 반응에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일이 잘 풀린 것 같아 안심했다.
“일을 잘 마무리했네요.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빛의 후예시여.
허면 출발은 언제쯤 하시는 겁니까?”
“오늘 밤이라도 바로 갈 거예요.
어리석은 자들에게 하루라도 더 시일을 주는 것도 못 할 일이니 항해를 해본 적이 있는 교도들과 함께 나아갈 거랍니다.”
“아아, 영광스러운 첫 항해에 저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만···.”
“당신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과업을 계속 수행해줄 믿음직한 이들도 필요해요.
내 말 뜻 이해했죠?”
이곳에 남아서 다른 일에 집중해달라는 말을 단박에 이해한 핀츠였다.
결국 그녀는 같이 배에 오르는 영광은 포기한 채, 다만 저물어가는 석양을 배경 삼아 바다로 나아가는 모함을, 샤이엘라와 수십의 천족, 그리고 선원들을 태운 찬란하게 반짝이는 새하얀 배 한 척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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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낼게요.
비록 그대들이 받은 빛이 약하여 그 자리에 머물고 있지만 과업을 위해서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군요.”
누디아의 남쪽 항구에서 은밀하게 출항하여 바닷길을 잘 알고 있는 누디아 쪽 교도의 도움으로 히스파냐 근처까지 다다르니 이미 해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원래 밤바다는 달빛 하나에만 의존해야 할 정도로 어두운 공간이었으나 이들은 배 곳곳에 설치된 등과 달빛을 받아 반사광을 반짝이는 보석들, 그리고 새하얀 색으로 칠해진 선체에 있었기에 그 어려움에서 자유로운 상태였다.
“저들에게, 빛의 우려를 무시하고 빛의 슬픔을 뒤로 하고 빛의 분노를 우습게 여긴 어리석은 자들에게 우리들의 우려를, 슬픔을, 분노를 보여주세요.
우리들은 멍청한 인간들과는 달리 하늘에 머물면서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역시 빛께서 우리들을 심판자로 이 땅에 내려 보내셨음을 다시 한 번 알고 갑니다.”
“···.”
“갑시다, 여러분.
빛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기다리는 건 시뻘건 악마의 주둥이와 같은 불꽃뿐임을 각인시켜주러!”
그렇게 말하며 샤이엘라가 가장 먼저 배의 갑판 위에서 날아올랐다.
뒤를 따라서 수십의 천족들이 소리 없는 환호성을 보내며 갑판을 내달려 미끄러지듯 떨어지다가 이내 힘찬 날갯짓을 하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 웅장한 장면을 직접 지켜보며 선원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평생 기도만 올리던 그들에게 저 순백의 날개를 고고히 펄럭이며 불신자들의 땅으로 날아가는 모습은, 정말 신의 대리자가 천벌을 내리러 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부디 어리석은 자들에게 심판을, 타락한 자들에게 단죄를!’
빛에 심취한 그들은 간절히 기원하며 동시에 저들의 무사 귀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편 샤이엘라와 천족들은 당연히 예상했던 대로 해안가까지 단숨에 다다랐다.
혹시나 인간들의 배가 있을까 히스파냐의 항구 도시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곳에 배를 멈추고 날아올랐기에 바로 성이나 도시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도 곧 드러날 것이었다.
‘상상만 해도 재미있네요.
그저 전쟁을 먼 곳의 이야기로만 생각하던 자들, 빛의 심판이 무엇인지 두려워하기는커녕 알지도 못 할 자들에게 벌을 내리러 간다고 생각하니 말이에요!’
생각만 해도 짜릿하고 즐거운 상상.
샤이엘라는 온 몸에 감도는 흥분감을 애써 밤바람에 식히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날갯짓에 집중해야 하기에 마법을 많이 쓸 수는 없을 테지만 인간들은 약간의 불꽃에서 놀라 날뛰며 서로를 해치는 우매한 것들이었기에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바람을 가르며 이동하던 순간.
‘···응?’
눈을 찡그리며 샤이엘라는 자신이 뭔가 잘못 봤나 했다.
저 앞쪽 해안가의 높은 절벽 위에, 뭔가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설마, 아니겠죠?’
착각했나 싶었지만 곧 그건 그녀의 착각이 아님이 밝혀졌다.
어디선가 불어온 밤바람에 두르고 있던 검은 제복이 휘날리며, 구름 사이로 숨었던 달이 다시금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리에 서있던 누군가의 모습을 환하게 비쳐준다.
원래 그의 성격이라면 피와 먼지가가 묻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평범한 옷 한 벌 입고 나왔을 테지만 이 싸움은 자신만의 싸움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싸움.
때문에 남자는 이번만큼은 평소의 제 모습 대신 이전 수훈식에서 입었던 제복을 입은 채로 히스파냐를 향해 날아들던 불청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샤샤샤!―
다시금 바람이 불면서 풀잎들이 날아다니고, 거기에 달빛이 쏟아진다.
검은 외투 자락이 휘날리고 금빛 체인으로 장식된 제복을 입은 남자의 손에서 한 자루의 검이 서슬 퍼런 예기를 뿜어냈다.
“···.”
그리고.
느릿하게 날아오던 칠면조들의 핏빛 참극을 예견한 듯 달이 구름 뒤로 숨어버렸다.
―――――――작품 후기―――――――
네, 위의 칠면조들이 맞이한 장면이 김유현의 일러스트 입니다!
지옥에 어서 오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