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43)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43화(343/439)
343―――――
좋지 않다
히스파냐의 북쪽 병사들보다 더 빨리 도착한 건 역시나 북부 전사들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내달린 건지 보통 걸리는 시일인 2주의 기간을 열흘에 끊어버리는 미친 주파력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러다가 싸우기도 전에 말이랑 전사들이 지치면 어쩌려고?”
어지간해서는 걱정을 잘 하지 않는 시온이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말이 없어도 잘 싸우는 전사들이지만 그래도 북쪽 전사들하면 역시나 뛰어난 기마술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아직 누디아까지는 며칠이 더 남았고, 심지어 누디아 땅으로 들어가면 휴식다운 휴식도 제대로 하지 못 한 채 바삐 내달려 전장으로 투입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발굽에 불이라도 난 것마냥 달려왔으니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
“우리 전사들을 너무 약하게 보는군, 시온.”
하지만 쟌은 코웃음을 치며 그의 걱정을 한 방에 일축해버렸다.
말들이 연신 콧김을 내뿜으며 더운 숨결을 토해내곤 있었지만 지쳤다기보다는 오히려 이 흥분감을 더 달리는 것으로 대체하고 싶어 하는 모양새였다.
위에 올라탄 전사들도 잠까지 줄이며 말을 몬 이들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멀쩡해보였다.
“전사들이여!
지치기라도 했나!”
“오오오오오!”
“아루루루!”
쟌의 수하로 보이는 이가 그렇게 질문을 던지자 전사들은 어림도 없다는 듯 낄낄 웃으면서 약간은 괴상하다 싶을 정도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 환호성은 적들 입장에서는 약간 으스스한 분위기를 내주었지만 이제는 서로가 동맹이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히스파냐 군은 그냥 또 시작이라는 듯 웃으면서 이제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어서 오시오, 테무친.”
바네사에게서 명예 귀족 작위를 받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테무친’ 이라는 호칭이 북쪽 부족들에게 더 영향력 있는 이름임을 이제는 볼코 후작도 알고 있다.
때문에 그는 히스파냐의 방식대로 귀족 작위를 붙이기보다는 그냥 테무친이라는 호칭으로서 쟌을 부르고 있었다.
“다시 만나게 되었군요.
볼코 후작.”
시온 때문이라도 히스파냐 왕국의 귀족들과 껄끄러운 사이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쟌이었는데 그녀와 볼코 후작과는 처음부터 사이가 어느 정도 괜찮았다.
둘 모두 입을 놀리는 스타일이 아니라 검을 들고 말을 달리며 밀어붙이는 우직한 무장 스타일이었고 무엇보다 성향도 매우 비슷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적을 어떤 방식으로 대할 계획이지, 시온?”
“누디아 때와는 달라.
적들의 규모나 훈련 강도, 그리고 사기 부분이 비교조차 하기 미안할 정도로 그 수준이 높지.”
“···누디아 왕국도 그리 만만한 자들은 아니었는데.”
“멍청한 것들이 잘못된 신념을 가지면 그것보다 무서운 게 없으니까.”
시온의 말대로, 멍청한 자들이 그릇된 신념을 가지면 그게 뭐가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그저 자신들의 신념만 외치는 병신이 되어버린다.
신념도 다른 이들이 들었을 때 신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그 단어를 쓸 수 있는 것이지, 남들은 하나도 이해를 못 하겠다는데 본인만 대단하다고 여기며 그리 고집한다면 그건 ‘신념’ 이 아니라 ‘실성’ 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었다.
“근데 에오스가 안 보이네?
같이 온 거 아니었어?”
“에오스는 며칠 전 이쪽으로 오고 있던 히스파냐 북부군과 합류해서 오고 있다.
우리가 먼저 가버리면 모양새가 그리 좋지 않을 듯 싶어 굳이 전사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쪽은 나와 함께 먼저 이쪽과 합류하고 다른 한쪽은 곧 합류할 이들을 돕기로 한 것이지.”
“···네가 생각한 건가?”
“그렇다만.
혹 문제점이라도 있나?”
아니, 문제점이 있을 리가.
오히려 생각보다 쟌이 히스파냐를 많이 생각해줘서 놀랐다.
북쪽 전사들은 여태 다른 군대들, 이를테면 히스파냐나 누디아의 군대와는 완전히 다른 부대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이들의 고향은 비록 땅은 넓으나 상대적으로 농경 생활을 하기에 매우 불리한 곳, 때문에 굶주리지는 않아도 항상 든든히 배를 채울 수는 없는 곳이었다.
때문에 전사들은 항상 배고픔을 가장 큰 적으로 여겼으며 말 위에 오를 때에는 항상 자신들이 먹을 식량을 준비해서 다니는 게 기수와 말 모두에게 적응이 완료된 상태였다.
‘그러면서 또 무게가 나가는 건 말에게 해롭다고 가벼운 걸로 대체하지.
이를테면 말린 육포라던가 아예 말린 고기를 가루로 만들어서 먹는다던가 말이야.’
더해서 기수만큼 북쪽의 말들도 엄청난 생존 능력을 자랑한다.
원래 군마들은 필수적으로 잘 준비된 마초(馬草)가 있어야만 한다.
전쟁을 모르는 평범한 이들이 내는 실수 중 하나가 병사들은 몰라도 말들은 그냥 들판에 풀어두면 알아서 풀 뜯어먹고 배 채우는 게 아니냐고 하는데 결코 그렇지가 않다.
‘사람한테 생쌀 쥐어주고 맛나게 처먹고 10분 뒤에 또 열심히 달리자!
라고 헛소리 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는 거지.’
물론 사람이 생쌀을 먹을 수 있듯 말들도 그냥 풀을 먹을 수 있긴 하다.
허나 그렇게 되면 소화시키는데 또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필요한 영양도 부족하니 전쟁이라는 극악의 환경, 동시에 엄청나게 격렬한 상황에서 금방 지칠 것이 확실했다.
해서 군마들은 항상 마초를 잘 준비해야 하는데, 북쪽 전사들이 다루는 말들은 워낙 거친 곳에서 살다보니 마초든 그냥 풀이든 가리지 않고 먹었으며 심지어 스스로 땅을 파헤치고 풀뿌리 같은 것까지 먹을 정도의 생존력을 자랑했다.
그런 이유로 북쪽 전사들은 딱히 군수 물자에 연연하지 않고 몸을 가볍게 한 채 말을 달릴 수 있었으며 그 기동력은 보통의 군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그야말로 초인적인 수준이었다.
“우리 전사들은 상대적으로 몸이 가벼우니까 왕국군을 도와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다못해 짐들만 좀 나눠 들어주기만 해도 병사들의 이동속도는 증가하지.
그렇게 생각해서 에오스에게 전사들을 맡기고 왕국군을 도와 같이 오라고 했다.”
“···그렇다면 감사 인사를 2군 사령관인 내가 전달해야겠군.”
전쟁에서 항상 중요한 것은 싸우기 전에 병사들의 몸 상태와 사기를 관리하는 것.
그런 상황에서 북쪽의 전사들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왕국군의 편의를 봐주었다고 하니 그들의 사령관인 볼코 후작이 감사의 뜻을 전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대들 덕분에 병사들의 고생이 조금이나마 적어졌소.
감사의 뜻을 전하는 바요, 테무친.”
“어··· 뭐, 별 일 아니라고 해두죠.
나는 그저 시온에게 이로운 일이 뭐일까 생각하다가 그냥 떠오른 걸 행한 것이니까.”
갑자기 이상한 이유가 튀어나와서 시온이 당황했지만 볼코 후작은 그 부분까지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다만 이 커다란 전쟁에서 히스파냐 측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자들에게 여태까지의 해묵은 감정은 벗어던지고 진심으로 대하겠다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2군에 북쪽 전사들 절반이 합류하고, 정확히 이틀 뒤에 북쪽에서부터 온 왕국 병사들과 나머지 전사들이 들어오면서 2군의 5할 이상이 갖춰졌다.
이후 계속 동쪽으로 나아가면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동부의 병력까지 합쳐지니 어지간한 회전 정도는 바로 치를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군대가 되었다.
“그런데, 시온.
저건 뭐지?”
쟌은 처음 합류했던 순간부터 궁금했다는 듯 아까부터 계속 본대를 따라오고 있는 마차들을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병참을 맡아줄 수송 부대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병사들이 지칠까 미리 대기시켜놓은 병력 수송용 마차도 아닌 것 같은데 저게 도대체 왜 있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 하겠다는 모양새.
시온은 미소를 짓고는 잠시 후에 알 수 있을 것이라며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 되자 쟌과 에오스, 북쪽의 전사들, 그리고 새로 합류한 왕국의 병사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황당한 광경에 어?
하고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산해진미는 아니라고 해도 전쟁에 나선 자신들로서는 맛 볼 수 없는 질 좋은 음식들이 취사병이 아닌 요리사들에 의해 계속 배급되고 있던 것이었다.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이냐?”
“그러게, 시온?
도대체 저게 다 뭐에요?”
쟌과 에오스는 특히나 더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다.
무엇보다 군대의 기동력을 중요시 여기는 북쪽 전사들에게 있어서 저런 마차는 이동력도 좋지 못 하고 유사시 적들에게 넘어가면 여간 아까운 게 아니겠느냐고 걱정이라도 하는 모양.
“걱정들 말고.
저건 어디까지나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곳에서만 운용하는 거니까.”
“당장 싸우러 가야 하는 전사들이다.
그들에게 저런 기름진 음식들을 주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음식 투정이라도 하면 감당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
시온도 그 부분은 항상 주의하고 있었다.
군대의 식사 문제로 인해 전투는 물론이고 전쟁 자체에서 패한 경우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례가 존재한다.
당장 오늘 식사를 해도 내일은 식사를 못 할 수도 있고, 며칠을 굶을 수도 있는 것이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이다.
그런 이들에게 너무 좋은 식사는 약이라고 하기보다는 독이라고 하는 게 옳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좋은 밥 주다가 갑자기 오늘부터는 똥 같은 식사를 주더니 내일부터는 아예 굶어야 한다고 하면 병사들의 사기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반대로 불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완급 조절이 중요한 거지.’
시온이라고 해서 멍청하게 여기까지 오는 내내 병사들에게 특식을 제공한 건 아니다.
그는 볼코 후작과 입을 맞춰 행군 도중임에도 갑작스러운 전투 상황을 제공하곤 했고 긴 이동 기간 동안 병사들이 혹 긴장을 놓지 않게 계속 자극을 주었다.
그러면서 그 부분에 있어 성공적으로 돌파를 했을 때 일명 ‘밥차’를 봉인 해제해서 좋은 음식들을 주었고 그게 아니라면 평소대로 취사병들이 식사를 준비하게 했다.
즉, 이 식사는 너희에게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이 나라를 위해서 확실한 공을 세웠을 때 맛보기 식으로 받는 상이라는 것으로 말이다.
‘먹는 것으로 사람을 조련하는 것만큼 나쁜 짓은 없다고 해도, 그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고 했지.
인간의 기본 욕구에 식욕은 항상 첫 번째 순위를 다투는 욕구니까.’
그 욕구를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현장 지휘관의 역량이고 내실을 다지는 정치가의 역량이며 가장 뛰어난 리더를 가리는 역량이다.
반감을 사지 않도록 조절을 하면서 저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확실한 효율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마지막의 마지막에 링 위에 서있는 사람은 내가 되는 거야.’
승자의 비겁함은 1년이라지만 패자의 비겁함은 영원하다고 했다.
시온 자신도 여태까지의 자신이 보였던 방식이 전부 정답이 아님을, 언젠가는 정당한 비판에 이어서 서슬 퍼런 비난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순간에 자신이 없다고 해도 죽은 뒤에 욕을 처먹는 것만큼 열 받고 수치스러운 일은 또 없을 터, 때문에 시온은 그 후에도 자신의 편을 만들어두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승자가 될 생각이었다.
“걱정 마, 쟌.
식사가 좋아졌다고 소풍이라도 나온 거라고 착각할 사람들이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 저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즐기는 게 아니라 예전에 전쟁터에서 까마귀들의 밥이 되었을 테니까.
그 정도 눈치는 있으니 다들 살아있는 거라고.”
“···그렇긴 하군.
소식은 대충 들었다.
이번에 누디아로 가는 히스파냐 군은 정말 왕국의 정예들.
알짜배기들만 고르고 골라서 보내는 것이라고.”
“왕성 방위군은 방어에 더 특화된 이들이니 본국 방어를 위해 제외하고 가장 우수한 병사들을 뽑아서 누디아로 보내는 것이지.”
“예비대가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 만큼의 수준을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테니···.”
“이쪽도 사활을 건 거야.
누디아에서 저 미친놈들을 막지 못 한다면, 시뻘겋게 타오르는 저 불길을 잡지 못 한다면 결국 히스파냐도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시온의 말에 쟌은 말없이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았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 시온이 현재 꽤나 진지하고 또 긴장하고 있다는 게 자신에게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만큼 중요하고, 그만큼 힘든 싸움이라는 뜻이겠지.’
저 남자가 긴장했던 적이 몇 번이었는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사내로서 끙끙거릴 때였다.
지금처럼 전장과 관련된 일은 그 어떤 이보다도 뛰어난 시온이었으니 이번에도 별 탈 없이 일을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쟌은 생각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시온.
여태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겠느냐.”
물론 그렇다.
여태까지는 거의 완벽하게 모든 일을 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도 없다.
모든 일이 제 뜻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만큼 잘못된 것도 없다고 했던가.
명색이 소설의 최종 챕터인데 모든 곳에서 실수 하나 없는 완벽한 그림이 그려질 수는 없을 거라고 시온은 생각했다.
‘이제까지는 내가 알고 있는 사건들, 보유한 지식들.
더해서 적들의 실수로 버텼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동안 내가 모으고 모은 카드들이 활약할 때야.
이 넓은 전장을 전부 내가 커버할 수가 없어.’
누디아 쪽 전선 외에도 남부, 그리고 히스파냐 내부까지.
어느 한 곳에 문제라도 생기면 단언컨대 이곳 사람들은 바로 흔들릴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다들 빛의 교리와 싸우겠다고 당당히 외쳤지만 직접 그 군세와 부딪친다면, 빛의 후예라 하는 천족들의 모습을 직접 눈에 담는다면 그 마음가짐은 강렬한 빛을 만난 어둠처럼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
“··· ···!”
시온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병사들은 모든 병사들이 합류한 것을 이유로 또 다시 멀쩡한 식사가 제공되자 웃으면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저들이야말로 시온의 걱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일지도 모르겠다.
일선의 병사들만큼, 전쟁에서 기어코 살아남은 숙련자들만큼 지휘관의 심리 상태를 잘 파악하는 이들도 드물었으니까 말이다.
‘김유현은 그렇게 크게 걱정은 안 되는데.
왕성에 있을 녀석들은 잘 하고 있으려나.’
루시아가 있으니 나머지 둘을 제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시온이 우려하는 부분은 다른 곳,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서 히스파냐 내부로 은밀히 숨어들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날카로운 비수를, 가장 치명적인 곳에 꽂지는 않을까.
바로 그것만이 걱정될 뿐이었다.
‘성흔 보유자들, 칠익.’
지금쯤 그들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작품 후기―――――――
추천은 항상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