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50)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50화(350/439)
350―――――
좋지 않다
저녁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작전 회의는 계속되었다.
지지부진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딱히 결정적인 뭔가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시온은 그런 회의 자리라고 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열과 성을 다 하는 중이었다.
‘원래 사람이란 게 뭔가 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안심이 되는 종족이니까 말이지.’
딱히 할 게 없다고 대충 하다가 이만 종료, 라고 내보내면 불안감을 지울 수 없기 마련이다.
이렇게 뭔가 열심히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줘야 ‘아, 우리도 뭔가 엄청 많이 준비하고 있고 적이 강하다고 해도 마음을 좀 놓을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무엇보다 회의에서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
왕국의 영웅이라는 시온 클라우젠이니 다른 귀족들은 분명 그 부분에서 안심할 것이라고 시온은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기애나 자만심 따위로 인한 결론은 결코 아니다.
보여주기 식이 쓸모없다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또 어느 상황에서는 그 보여주기 식이 생각보다도 더 큰 효과를 발휘하는 방식이었다.
“다들 수고 많았습니다.
내일 새벽에 출발 준비를 마치고 해가 뜨기 전에 진군할 것이니 다들 돌아가서 푹 쉬시면 되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지휘부 인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편안한 잠자리로 향해간다.
이후 회의실에 남은 건 볼코 후작과 리히텐 변경백, 루드비히와 시온이었다.
“···엄청나게 대단한 작전 회의 같았지만 결국 누디아의 방어선이 무너지기 전에 어떻게든 누디아에 당도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것이 전부로군.”
“어쩌겠는가?
누디아 상황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여기서 우리들이 떠드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말이네.”
“도대체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요정들은 그렇다 치고 빛의 후예라던, 그 천족들까지 나서서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왕국 내부의 빛의 교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군.”
“오히려 더 좋아할 겁니다, 볼코 후작님.
죄인들이 벌을 받는다니 뭐라느니 좋아하면서 잘 죽었네, 잘 죽었어.
라고 떠들어 댈 겁니다.”
천족들도 누디아와의 전쟁 초기에는 자신들이 전면에 나서는 걸 되도록 꺼렸다.
수가 그리 많지도 않고 인간들 사이에서도 실력자가 있기에 혹여나 천족이 패하여 쓰러지면 적들의 사기를 올려줄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들 쪽의 믿음이 깨어질까 우려했을 것이다.
더해서 빛의 후예이니, 신의 대리자이니 뭐니 하는 자신들이.
대륙의 인간들이 빛, 선, 정의하면 떠올리던 자들이 대규모로 인간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여태까지 눈치를 보던 인간들이, 심지어 비교적 온건한 빛의 교도들이 돌아서서 극렬한 반천족주의자로 돌변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어 전쟁이 길어지면 마족들이 또 그 사이에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니 천족들은 이번 전쟁에서 히스파냐까지 전부 무너트리되 자신들과 빛의 교도들의 힘이 많이 빠지지 않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부의 균열을 꾀하여 대륙 전체에 완벽하게 빛의 뜻을 세우고 모두가 동시에 정화되어 새로운 세상으로 가야 한다는 자신들의 믿음을 완수해야하니 길게 늘어질 전쟁은 결코 피해야 하는 일.
하지만 누디아의 방어는 생각보다도 우수했고 때때로 이어지는 반격은 날카로웠다.
보다 못 한 그들은 신성 프러센의 군대만으로는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듯 했고 결국 자신들과 요정들이 이 전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잘 버티던 누디아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걸 보면 이제는 그놈들도 뒤가 없다는 거다.
선이고 빛이고 정의이고 다 집어치우고 그냥 한꺼번에 싹 밀어버리고 덤으로 빌빌대고 있는 마족들까지 전부 정리할 속셈인 거야.’
천족들은 굳이 말하자면 다재다능한 올 라운더 라고 할 수 있겠다.
마나도 잘 다루고, 체술도 뛰어나며 병장기를 다루는 것도 우수하고 날 수도 있으며 몸도 민첩하고 심지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외모까지 지니고 있었다.
하위 천족들은 인간 측 중급 기사들보다 약간 못 하다고 하나 확실히 보통의 병사들에게는 충분히 버거운 존재들임이 확실했다.
마족들과의 전쟁으로 인해 과거 중위 천족과 상위 천족을 많이 잃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자들이 꽤나 되었고 상위 천족은 상급 기사들조차 허덕인다고 하는 강자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최고 전력이자 인간의 그 어떤 실력자라고 해도 감히 상대할 수 없다는 최상위 천족들은 그대로 생존해 있는 상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건 현 상황에서 그놈들의 자만심이다.
상위 천족까지는 내보낸다고 쳐도 최상위 천족들은 정말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움직이려고 하지 않을 거다.
그들 중 반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보험의 감이 크고 무엇보다 그놈의 자존심인지 자만심인지 하는 것 때문에 스스로 움직이는 걸 꽤나 싫어하니까.’
물론 그들도 상황이 급박하게 변한다면 바로 나설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상황이 그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될 경우 나서는 것을 보류한다는 말이고.
“시온 클라우젠.
정말 이 전쟁, 이길 수 있겠나?
들리는 소식들에 의하면 간신히 버티는 것조차 용하다고 할 지경인데 말이다.
너를 믿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적들의 전력이 이전까지의 적들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상태다.
천족들과는 단 한 번도 싸워본 적 없고, 병사들도 은근히 신성 프러센과, 그리고 천족들과 싸운다는 부분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 바로 저것처럼 1선의 병사들조차 천족과의 싸움을 망설이고 있다.
천족이 정말 적인지, 아니면 자신들이 죄인인지 확실히 하지 못 하고 있으니까.
적들도 그걸 알기에 일부러 최대한 느리게 천족들을 투입한 것이다.
자신들이 너희들의 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도록, 싸우기도 전에 망설이며 무기를 들지 못 하게 하도록 말이다.
“좋지 않아.”
그래, 그 말대로 좋은 게 없었다.
적은 강하고, 분명 자신들에게 명백한 적의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놈의 빛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병사들은 알게 모르게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이 이상은 시온이 아무리 떠들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머지는 병사들 스스로가 신성 프러센이니 빛의 후예니 하는 것들에 대한 일말의 호감까지 전부 집어던지고 그들만 생각하면 욕을 하면서 다 죽이겠다고 발악하게 하는 것뿐이다.
“어차피 병사들도 곧 알게 될 겁니다.
적들이 빛이니 선이니 정의이니 지껄이지만 결국 우리들에게는 명백한 적임을.
그래서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는 이전보다도 더 장렬하고 치열하게 싸워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미 히스파냐의 사람들은 이제 빛의 교리에 크게 미련을 가지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병사들도 숙련된 고참병들이니 곧 전장의 분위기를 읽고 적응할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다들 죽기 싫다면.
리히텐 변경백.
2군이 나간 동안 부디 히스파냐를 잘 부탁한다.
놈들의 별동대가 움직일 수도 있으니까.”
“걱정 말고 여왕 전하께 승전보나 바쳐주게.”
“그래야지.
그래야 하고 말고.”
한숨을 내뱉은 볼코 후작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루드비히가 그를 따라서 일어났고 리히텐 변경백에게 인사를 해 보이고는 제 아버지를 따라서 먼저 회의실을 나섰다.
“···볼코 후작, 그답지 않게 걱정을 많이 하는군.”
“나이를 먹으면 걱정이 늘어난다는데 그게 정말인 모양이죠.”
“농담하는 게 아니다.
저런 굳건한 인간조차 은근히 걱정할 정도면 만만치 않다는 거다.
신성 프러센만으로도 힘들 텐데 거기에 요정들과 천족들까지.
정말 히스파냐만의 힘으로 이 전쟁에서 버틸 수 있겠느냐?
차라리 수인과 요정들에게 지원이라도 요청하는 게 낫지 않았더냐.”
“아직 아닙니다.
아직은 말이죠.”
시온이 고개까지 내저으며 답을 하자 리히텐 변경백은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제 아들이 이렇게까지 확답을 할 정도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었다.
“그보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예?
아, 쟌 테무친과 급히 나눌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북쪽 전사들의 이번 동원에 대한 공식적인 보상 문제 때문이었죠.”
“그랬던 것이냐?
흐음, 그 때도 일을 하고 있었다면 나로서도 딱히 뭐라고 할 수가 없구나.”
“···.”
일이긴 했다.
그 일이 정사(情事)여서 좀 그런 것뿐이지.
“뭐, 그래도 아덴 녀석이 네가 없어도 어제 아주 신나긴 했었다.
릴리트, 그 마족 여인이 와서 너 대신 식사를 했는데 무척이나 분위기를 잘 띄워주더구나.”
“그랬습니까?”
“그래.
심지어 아덴은 벌써부터 그 여인한테 형수님이라고 호칭 정리까지 했던데.”
“억.”
아무래도 아주 어릴 적부터 시온의 눈치를 보던 습관이 그런 긍정적인 부분에도 적용된 모양.
릴리트에게는 다른 이도 아니고 시온의 동생에게 본처라고 완벽하게 인정을 받은 형태이니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 자리였을 테고, 분명 기분이 좋아져서 분위기를 할 수 있는 대로 띄웠을 것이었다.
“뭐, 덕분에 네 어머니도 그렇고 나도 즐거웠다.
잠깐이지만 네가 없다는 걸 눈치 채지 못 했을 정도로 말이다.”
“다행이네요.”
“다행이 아니지.
오히려 더 걱정해야 한다.
그 여인이 마족이라는 건 클라우젠에서도 극소수다.
전부 너를 결코 배신하지 않을 이들이지.
하지만 그걸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지 않겠느냐.
당장 아덴도 릴리트를 그냥 무척이나 아름답고 실력도 좋은 마법사라고 알고 있다.”
“언제까지 숨길 수 없는 없겠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쟁은 오히려 제게 기회가 될 겁니다.
빛이 알고 보니 빛이 아닌데, 그림자가 영원히 그림자일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의 인식은, 마음은 그리 쉽사리 바뀌지 않아.”
리히텐 변경백의 말대로 사람의 인식은, 마음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당장 지금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신성 프러센이, 빛의 교리가, 천족들이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고 있는데도 아직도 망설이는 기색을 조금씩이나마 보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시온은 그 부분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히고, 믿었던 이가 칼을 들고서 죽여 버리겠다고 달려드는데 그걸 끝까지 믿어주지 않는다.
결국 무엇보다 중요한 자신의 목숨, 자신의 삶이다.
그걸 위협하는 존재는 그 전까지 어떤 소중한 것이었다고 해도 적으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저는 오히려 아버지가, 이 클라우젠이 더 걱정입니다.”
“무슨 소리냐?”
“누디아가 밀리고, 신성 프러센이 다가올수록 피난민들도 많아질 겁니다.
누디아 서쪽으로 몰렸던 이들이 거기도 안전치 않다고 판단하면 어디로 밀려들지는 안 봐도 훤하지 않습니까.”
“국경은 여왕 전하의 명령이 없으면 결코 열 수 없다.
클라우젠의 병사들과 동부의 남은 이들을 동원하여 국경에 구멍이 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적들은 그 부분까지 이용할 수도 있는 자들입니다.
히스파냐가 누디아를 버렸다, 전쟁을 피해 달아난 이들을 받아주지 않고 그냥 그곳에서 죽으라고 몰아넣는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피난민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소리냐?”
그에 시온은 그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피난민 행렬 안에 정말 피난민만 끼어있을지, 아니면 적들이 숨어들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빛의 교도들이 무서운 이유는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이들임에도 속에는 광신도의 모습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피난민 행렬에 섞여 국경을 통과해 히스파냐로 들어오게 되면 이후 무슨 짓을 벌일지 안 봐도 훤한 일, 너무나도 뻔한 미래였다.
‘단순히 광신도들만 숨어드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상상도 못 할 놈들이 섞여올 수도 있고.’
그래서 굳이 루시아와 리아, 트리샤를 왕성에 두고 온 것이다.
놈들이 정말 피난민 행렬에 섞여 들어온다면, 그리고 그 안에 광신도가 아니라 보다 더 위협적인 대어들이 섞여있다면 그들이 향할 곳은 아주 높은 확률로 왕성이 될 테니까 말이다.
“상황은 그 때 그 때 바뀔 겁니다.
왕궁에서 따로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피난민들을 막고, 명령이 내려오면 받아들이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은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니라 적들에게 있으니까요.”
“···그래.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으니 말이다.
당장 이 전쟁도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면 죄인으로 몰렸겠지.”
그 말을 끝으로 리히텐 변경백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길게 지속된 회의 시간이고,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에 하나 이게 부자간의 마지막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밝은 이야기들을 하는 게 옳은 길이었다.
“오늘 식사 때는 올 생각이겠지?”
“물론입니다.”
“그래.
올 때 릴리트랑 네 호위기사도 데리고 오고 말이다.”
“괜찮겠습니까?”
“아덴 녀석은 이제 형수님 대접을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네가 그 여인을 두고 온다면 아마도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눈치가 빠른 녀석이니.
그리고 호위기사에게는 내가 직접 감사를 하고 싶어 그러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오라고 전해두거라.”
리히텐 변경백의 말에 시온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쟌은 오늘은 전장으로 향하기 전날이니 전사들과 함께 있을 거라고 했으니 걱정하지 않고 릴리트와 리시키다를 데리고 갈 수 있을 듯 했다.
이후 마련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리히텐 변경백은 리시키다에게 고생이 많다는 치하의 말과 함께 앞으로도 시온을 잘 부탁한다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미 제 아들과 그 호위기사간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음을 대충 알고 있었다는 듯 그리 말하는 통에 리시키다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고 릴리트는 오호, 하고 작은 탄성만 낼 뿐이었다.
아덴은 아직까지 리시키다와 시온 사이를 잘 모르는 듯 두 눈만 깜빡였고 말이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에카테리나에게 들려 휴식, 그리고 여유라는 것에 대해서 아주 일장연설을 펼친 후에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방 안으로 들어서게 된 시온은 누군가가 자신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음을 깨닫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안 올 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뭐야.
알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척 했던 거야?”
“원래 릴리트님은 그렇게 아는 척 해주면 더 신나하시는 분이니까.”
“흥.
어제 진짜 엄청 달리더라?
얼마나 화끈하게 달리시는지 나한테 느껴지는 그 뜨거운 감각 덕분에 아랫도리가 아주 축축하게 젖었었다는 건 알고 있니?”
“···크흠.”
“하마터면 네 동생 앞에서 지릴 뻔 했거든?”
질투, 투정, 그리고 지금은 무조건 자신 차례라는 말.
릴리트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시온은 알겠으니까 그만 하라는 듯 제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고서는 여인을 벽으로 밀어붙였다.
최고위 마족을 마나도 못 다루는 인간이 밀어붙인다는 게 참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지만 지금 상황에서 마나니 최고위 마족이니 하는 건 다 부질없는 소리.
그냥 얼른 하고 싶은 여인과 마찬가지로 또 양껏 먹고 싶은 남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소식 왔어.
다들 조용히 빠져나와서 누디아 북쪽 인근에서 대기 중이야.
다행히 비둘기들 덕분에 누디아 쪽의 감시가 느슨해져서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해.”
“대기하라고 하세요.
그러다가 우리 쪽이 누디아 군와 접촉해서 신성 프러센 측과 교전에 들어가면 은밀히 움직여서 적의 후방을 괴롭히는 겁니다.”
“비둘기들과 싸우라는 거야?”
“그것까지 하면 너무 피해가 커요.
그냥 빛의 교리 외치는 미친 인간들만 살살 괴롭히면서 재미 좀 보다가 비둘기들 오면 필멸의 땅으로 도망치는 척 하라고 하세요.
이후 다시 은밀하게 누디아 북쪽으로 돌아오고요.”
릴리트의 상의를 벗겨내며 시온이 말하자 여인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온 입장에서 가장 거슬리는 적은 신성 프러센도, 요정도 아닌 바로 천족 비둘기들.
그들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 하게 하려면 그들이 가장 경계하는 존재들을 적극 이용하여 언제든 너희들의 뒤통수와 빈집을 노릴 수 있다고 경고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마족들은 어디까지나 마족이어야만 하지, 인간과 연합했다는 기운을 주면 안 된다.’
마족들과 같이 활동한다는 명분은 절대 주지 않을 계획이었다.
어디까지나 천족들의 빈틈을 노리는 종족, 마족은 마족으로만 남아있어주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일 이야기는 이제 그만.”
마찬가지로 시온의 상의를 벗겨낸 릴리트가 제 검지를 남자의 입술에 가져간다.
“이제부터는, 나한테, 집중.”
―――――――작품 후기―――――――
이미 쟌과의 씬이 있어서 다름편 씬은 그냥 스킵하고 스토리나 밀까 했는데···.
강호의 도리를 잊지 말아야 하나요?
아니면 그냥 스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