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60)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60화(360/439)
360―――――
아무튼 우리가 이겼음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신성 프러센의 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군 기병들은 전투에서 패배해 자꾸만 밀려나 결국 전장에서 멀어지고, 그 사이로 적들의 기병들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정면에서는 한창 치열하게 전개되던 싸움이 조금씩 히스파냐 쪽으로 기울어 중앙 진형에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균열이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신성 프러센의 병사들이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강렬하게 믿었던 존재들.
빛의 후예라 불리던 천족들이 한 여인에 의해 모조리 학살당하는 모습은 그렇지 않아도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치명타를 찔러 넣고 말았다.
“물러서지 마라!
어리석기는!
고작 저 따위 이단아들에게 물러설 생각이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과업을 완수하기 위한 길일뿐이다!
빛의 후예들이 우리들을 위해 희생했는데 우리들이 도망칠 수 있겠느냐!”
“버텨라!
곧 원군이 당도할 것이다!”
신성 프러센은 완강히, 아주 완강히 저항했다.
원래라면 이렇게 측면이 위협받는 경우 바로 퇴각 명령을 내리거나 아니면 다른 수를 강구할 수도 있는데 자리를 사수하고 죽을 때까지 싸우라고 하니 오히려 히스파냐 측이 더 고생을 해야 하는 판국이었다.
“···미친놈들.”
덕분에 시온도 점점 머리가 아파오는 중이었다.
그대로 적의 진형을 반으로 가를 줄 알았던 기병들과 기사들은 적들의 완강한 저항에 측면을 뚫는 듯 하다가 역으로 포위 될 뻔 하여 급히 말머리를 돌렸고, 전장에 도착한 누디아의 보병들이 포위진을 만들기는 했으나 그 수도 적고 피로도도 상당히 쌓인 상태라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지는 못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에카테리나를 투입하고 싶었지만, 이 이상 저 용인을 써먹었다가는 정의의 집행자라는 말을 부르짖으며 전장으로 달려온 히스파냐 군대가 졸지에 웬 괴물과 함께 학살극을 벌이는 마족 추종자들로 낙인 찍힐 수도 있었다.
‘염병할, 좀 무너져라.
무너지라고!
진짜 뭐 저딴 놈들이 다 있어?’
만약 저들이 누디아였다면 측면이 공격 받는 순간 바로 무너졌을 것이다.
원래 진형이란 건 본인이 버틴다고 해도 옆에 서있는 동료가 방패를 거두고 돌아서는 순간, 뒤에서 창을 뻗어주고 있던 놈이 그걸 내던지고 도망가는 바로 그 순간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
지금처럼 측면이 공격 받고 후방까지 위험한 상황에서 어지간한 병사들이고 해도 포위당한다는, 그리고 개죽음을 면치 못 할 거라는 공포감에 못 이겨 우왕좌왕하다가 스스로 무너졌을 터인데 신성 프러센의 병사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빛의 뜻으로!”
“죽음마저 초월하여, 우리들의 과업을 완수하리라!”
“이단놈들 목을 하나라도 더 떨어트리고 죽자!”
말 그대로 광신도들, 이미 천족들은 전멸한 상황에서도 한 치의 물러섬이나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킨 채 혈전을 벌이는 신성 프러센이었다.
“시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시온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시간을 더 끈다면 결국 저들도 사방에서 갉아 먹혀 결국에는 무너질 테지만 이미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
이 이상 전투를 지속하다가는 적의 원군이 가까이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혈전으로 지친 히스파냐 군이 역으로 포위를 당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시온의 걱정은 곧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부사령관님!
북쪽 전사들 측의 전령이 도착했습니다!”
“전령이라고요?”
“예!
소식에 의하면 남부에서 올라오던 적들이 이쪽의 소식을 듣고 급속 진군 중이라고 합니다.
이미 쟌 테무친과 에오스 버일러가 각각 기습을 하여 피해를 주었다고 하지만 천족들이 공중에서 공격하는 통에 시간을 많이 끌지 못 했다고 했습니다.
전령이 출발한 게 그들을 발견한 직후였다고 하니 짧으면 두 시간 안에 적들이 시야에 들어올 것 같습니다.”
빌어 처먹을.
시온은 두 눈을 감고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두 시간, 그 후에 적들의 싱싱한 전력이 들이닥친다.
두 시간이라면 짧지는 않은 시간이니 당장 눈앞의 적군은 결국 전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격전을 치른 후 잔뜩 지친 히스파냐의 병사들이 안전한 방어선으로 미처 퇴각시키기도 전에 새로운 적들과 또 전투를 치러야만 한다.
심지어 이번에는 지금보다도 더 많은 천족들, 그리고 요정들이 섞여있다고 한다.
싸움의 달인들이라는 그 북쪽 전사들조차 그들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 하고 퇴각했다고 하면 전투로 지친 히스파냐 군이 얼마나 큰 손실을 입을지는 안 봐도 뻔한 상황.
‘에카테리나를 투입한다고 해도 위험해.
적들이 미쳤다고 그녀한테만 집중하지는 않아.
그녀를 묶어두고서 이쪽의 병사들을 싹 정리하려고 하겠지.
에카테리나는 그 후에 죽여도 문제가 없으니까.’
시온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지금 고집을 부려서 눈앞의 적들을 전멸시키고 얻는 것이 많은가.
아니면 적당히 저들을 놓아주고 병력들을 안전히 뒤로 돌려 얻는 것이 더 많은가.
“주인님!
방금 전 정찰을 나갔던 그리핀 기수의 보고에 의하면 멀리서 천족들이 다가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전속력으로 날아와서 거리를 벌려두기는 했지만 머지 않은 시간 후에 전장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리시키다의 말에 시온은 바로 고민을 끝냈다.
아니다 싶으면 빠지는 게 인생의 진리라고 했는데, 지금 상황이 딱 그러했다.
‘그러면 이대로 후퇴 명령을 내리느냐?’
그건 더더욱 안 될 말이다.
여전히 히스파냐 군은 거세게 적들을 몰아붙이고 있고 사방에서 피 튀기는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다.
아군도 적군도 이쪽으로 또 다른 적군이, 그리고 자신들의 원군이 오고 있는 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히스파냐 군에게 후퇴 명령을 내리면 순식간에 흐름을 신성 프러센 측에 내어주는 꼴이었고 그리 된다면 빈틈을 놓치지 않은 적들에게 역으로 발목이 잡혀 새로운 적들이 당도할 때까지 또 전투를 치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무엇보다 한창 잘 싸우고 있는 와중에 지휘관이라는 놈이 ‘튀어!’ 라고 명령을 내리면 여태 승리감에 취해 미친 듯이 창칼을 휘두르던 몸에서 힘이 쭉 빠질 것이다.
더해서 열심히 올려둔 사기나 사명감도 땅을 뚫고 지하를 너머 나락 끝으로 떨어질 테고 말이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지금 한창 달아오른 이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물러설 수 있을까, 한창 고민을 하던 찰나.
갑자기 주변의 호위병들이 식겁을 하며 조금씩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직후, 피 칠갑을 한 여인 하나가 어깨에 뭔가를 두른 채로 시온의 앞에 당도했다.
“최악이야.”
“···어?”
“최악이라고.
그래도 김유현이 오기 전까지 대충 할 만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전부야?
간에 기별은커녕 오히려 열만 받네.
막 지릴 듯 한 그런 느낌도 하나 없고.
하다못해 칼에 찔렸는데도 이렇게 감흥이 없기는 처음이야.”
지옥에서 돌아온 야차의 모습인데, 정작 얼굴에 머무는 감정은 불만, 그 자체.
에카테리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짊어지고 왔던 뭔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시온이 그건 뭐냐고 물으려는 찰나, 시뻘건 핏물 속에서 그래도 흰색을 조금은 보이고 있던 뭔가를 확인한 그는 ‘어?’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에카테리나, 이거···.”
“오다 주웠어.”
버리려고 했는데 아직 숨이 붙어있어서, 그래서 가지고 왔다.
그 말을 한 후 에카테리나는 투덜거리며 병사들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 역겨운 피 좀 닦아내야겠다며, 냄새만 맡고 있어도 불쾌해지는 겁쟁이 놈들의 흔적을 지워야겠다면서 말이다.
“···.”
그러는 사이 시온은 에카테리나가 오다 주웠다는 뭔가.
아직 숨은 붙은 채 날개 하나를 잃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천족 하나를 바라보았다.
어찌나 험하게 가지고 논 것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아주 그냥 핏물 천지, 그나마 봉긋하게 솟아있는 가슴이나 상당히 굴곡진 몸매가 이 천족이 여인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시온은 ‘오.’ 하고 탄성을 내뱉고는 옆에서 얌전히 ‘이거 내다버려.’ 라는 시온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리시키다를 향해 말했다.
“가자.”
“···예?”
“저거 챙겨서 따라와, 리시.
전투가 너무 과열되어서 서로 망하기 전에 딱 끊기 좋은 이유가 생겼단 말이야.”
시온의 말에 리시키다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몸은 시온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중이었다.
일단 온통 피 범벅인 여인에게 물을 뿌려 천족이라는 걸 알려줄 수 있도록 대충 닦아낸 후 그녀를 안장에 짐 싣듯 올린 리시키다가 고개를 끄덕이자 시온은 호위병들을 이끌고서 한창 전투가 계속되는 전장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지휘관이 위치하고 있다는 깃발을 높이 세우니 가장 먼저 이변을 알아차린 건 비교적 후방에 위치하고 있던 히스파냐 병사들.
원래 가장 안전한 곳에서 전체적인 전황을 살피며 지휘를 해야 할 시온이 갑자기 전장으로 들어오니 그들은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동시에 재빠르게 길을 트기 시작했고 곧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흐름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갑자기 시온이 전장으로 들어오니 히스파냐 군은 의문을 표하면서 계속해서 조여 가던 포위망을 조금 헐겁게 해주었고, 신성 프러센의 병사들은 자신들을 터트릴 기세로 밀려들던 히스파냐 군이 걸음을 멈추자 뒤로 물러서서는 잔뜩 긴장한 채 정면을 응시한다.
잠시 후 히스파냐의 철벽같던 진이 좌우로 조금씩 갈라지며 방패를 든 호위병들이 먼저 나오고, 그 뒤로 시온과 리시키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이잖아?”
“갑자기 무슨 일로···.”
“뭐야, 무슨 일이야?”
이대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승리는 자신들의 것이 확실했다.
때문에 신나게 적들을 몰아세우던 병사들로서는 시온의 등장이 낯설고 또 무척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이 당연한 수순.
시간을 더 끌면 순식간에 전투를 말아먹은 개새끼가 되는 것이기에 시온은 바로 말에서 내려 리시키다의 말등 위에 죽은 듯이 실어져 있던 천족 여인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쿠당탕!
피범벅, 거기에 리시키다가 피 좀 씻어낸다고 물을 부어 흠뻑 젖기까지 하고, 더해서 채 마르지 않은 옷에 흙먼지까지 들러붙어 완전히 꼴사나운 모습이 되어 버린 빛의 후예.
그나마 등에 달린 순백의 날개가 그녀가 그 고귀하다는 천족임을 알려주고는 있었으나 그마저도 한쪽을 잃어 왠지 모르게 불쌍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데려가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병사들의 악을 쓰는 소리, 지휘관들의 고함 소리, 그리고 온갖 비명으로 가득하던 전장이 고요해지고 오직 들리는 건 시온의 목소리뿐이었다.
“데려가라고.
너희의 그 잘난 빛의 후예.
아직 숨은 붙어있으니 되돌려주겠다.”
그 말에 히스파냐 병사들이 일제히 땅바닥에 널브러진 천족 여인을 바라본다.
저 여인이, 저 볼품없는 여자가, 처참하다는 말은 부족할 정도로 망가진 저 자가 자신들이 여태 싸우던 자들이 그렇게도 찬양하던 그 빛의 후예라고?
“뭐야.
그냥 우리랑 비슷하잖아.”
“신의 대리자인지 뭔지, 엄청 떠들어대더니···.”
“날개 하나는 어디로 갔어.
설마 잘린 거야?”
“피 칠갑 한 거 봐.
빛의 후예들은 순수한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니 결국 다 헛소리, 거짓말이었던 거잖아?”
아니, 어떤 광신도 새끼가 그런 말까지 했냐?
천족이 빛으로 이루어졌다고?
정말이지 답도 없는 미친놈들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시온은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너희들을 위해서 혈전을 벌이다가 생포된 빛의 후예다.
되돌려 줄 테니 데리고 가라.
너희가 그렇게나 소중히 여기는 빛의 교리에서 떠받드는 존재인데 뭘 망설이지?”
“···.”
신성 프러센 병사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저 앞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니 당장 저들도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고 당황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시온의 눈에도 훤히 들어온다.
‘아마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미친놈이 갑자기 왜 나와서 붙잡은 천족을 돌려준다고 할까.
이대로 몰아붙이면 무조건 자신들의 패배인데 왜 그 흐름을 끊는 것일까, 하고 말이야.’
망설여진다.
당연히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건 또 무슨 속임수이지는 않을까, 저 놈이 무슨 꿍꿍이로 저러는 것일까 알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시온은, 바로 그 망설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왜들 그러지?
안 데려가나?
왜.
날개를 잃은 빛의 후예는 더 써먹을 곳이 없어서 그런가?
이용해 먹을 가치가 없어?
너희가 말하는 빛의 후예와는 모습이 달라서 그런가?
피를 흘리고, 몰골이 엉망이 되고, 고귀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생포되어서 이상한가?”
바로 그 때, 시온은 정면에서 몇몇 신성 프러센 군의 방패가 흔들리는 것을 확인했다.
저들 사이에 요정들이 섞여있음을 진작 알고 있었던 시온은 바로 리시키다를 불렀고, 곧 방패 사이에서 화살이 날아드는 순간 리시키다 역시 바로 검을 뽑아들었다.
챙강!
화살은 시온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히스파냐와 누디아의 사이에 쓰러져 있는 천족을 겨냥한 것.
빛의 뜻을 외치는 자들이 천족을 죽이려고 했고, 죄를 지었다는 자들이 그 천족을 보호했다.
‘급진파 요정 놈들 마인드야 뻔하지.
천족들을 아주 그냥 물고 빨고 하는데 그게 미친놈들이 하는 짓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위험한 방향으로 발전했거든.’
적에게 붙잡혀 치욕을 당하고, 이대로 아군 측에 돌아와도 적이 놓아준 존재라는 오명을 들을 바에 종자인 자신들이 명예로운 죽음을 선사하겠다고 제 딴에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을 이유 삼아 우리도 여기에 모두 뼈를 묻어 마지막 한 명까지 이단자들을 심판하자고 병사들을 선동하고 말이다.
‘미안한데 퇴근 시간 다 됐어.’
멍청하게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딱 행동해준 요정들에게 찬사의 박수를 보내며, 시온은 겉으로는 짐짓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분명 우리들은 빛의 뜻을 외치며 죄인들을 심판하겠다는 자들과 전투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다 어디 갔나?
그 고귀한 빛의 뜻은 어디로 내팽겨 치고, 그렇게나 떠받들던 빛의 후예는 또 다 어디 갔으며, 하나 남은 생존자는 왜 죽여주려고 할까.
하나라도 더 안아주는 게 빛 아니었나?
다 같이 죽자고 하면 그건 아무리 봐도 빛이 아닌데.”
시간 없다, 시간 없다, 시간 없다!
지금도 적의 원군과 천족들이 미친 듯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빨리 저 미친놈들과 떨어져서 방어선으로 돌아가 재정비를 해야만 한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그 빛의 교리에 따르면, 배움이 적은 자를 미워하지 말고 가르침을 기다리라고 했지.
돌아가서 다시들 배워오는 건 어때.
너희들이 여태 왜 싸우고 있었는지, 빛의 후예가 정말 그렇게나 대단한 존재인지, 지금 너희가 해왔던 일, 그리고 앞으로 할 일이 정말 ‘빛’ 인지 ‘선’ 인지 하는 단어를 가져다 붙일 만큼 고귀한지 말이다.
물론, 그 가르침을 여기서 얻겠다면 사양할 생각은 없다만.”
시온이 손짓을 하니 호위병들이 가장 먼저 방패를 올리고 전투 준비를 갖춘다.
그러자 주변의 병사들 역시 다시금 긴장감을 끌어올리고는 잠깐 낮추었던 방패를 높이 들고 창을 겨누며 언제든 적진을 향해 육박해 들어갈 태세를 보인다.
“···.”
이쪽은 원한다면 놓아주겠다, 라는 말을 분명히 했다.
이제 남은 건 저들이 거기에 넘어가 알아서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제발 그만 좀 싸우고 가라.
염병, 좀 가라고!’
저들이 싸우자고 덤비면 이쪽도 다시 싸워야만 한다.
하지만 저들이 시온의 말에 따라 뒤로 물러난다면 히스파냐는 어찌 되었든 승기가 자신들 쪽에 있었고 적들도 제 발로 물러난 게 확실하니 비록 반쪽 짜리이긴 하나 어찌 되었든 승리를 거두고 당당히 돌아갈 수 있다.
척, 척―.
당장이라도 전원 옥쇄할 것 같던 신성 프러센의 분위기에 갑자기 끼어들어 천족이라는 찬물을 끼얹은 게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신성 프러센 군이 점점 뒤로 물러나더니 이내 대열까지 조금씩 깨트리며 히스파냐와 거리를 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시온은 히스파냐 군의 사기를 고려하여 한 마디 해주는 걸 잊지 않았다.
“죽음마저 불사할 정도로 빛의 뜻이니, 심판이니 하던 놈들도 역시 목숨이 소중하긴 한가 보군.
저런 놈들이 신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니 그걸 믿는 자들의 수준도 알만 하다.”
“푸하하하하!”
“그래, 계속 가라.
도망가!
위대하신 심판자님들!
빛의 군세님들!”
“어서 가라고!
마음 바뀌면 확 쫓아가서 뭉개버릴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전투에서 이탈하는 게 아니라, 적들이 먼저 물러나는 것이다.
더해서 되돌려주겠다는 포로까지 마다하니 히스파냐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싸워서 적들을 완전히 섬멸하는 것도 좋지만 적들의 저항이 거세다는 건 이제 모든 병사들이 전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입은 피해보다도 더 많은 피해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서로 긴장하던 찰나, 적들이 물러나주니 안도감이 들면서 그 풀린 긴장감이 적들을 향한 조롱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돌아가자.
저 위대하시고 위대하신 심판자님들이, 빛의 군세님들이 그만 싸우자는데 우리 죄인들이 어떻게 더 싸우겠냐.”
“우하하하!
그렇지요, 그렇지요!
죄인들이 뭘 더 하겠습니까!”
적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웃으며 병사들은 이게 자신들의 승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주인님.
저 여자는 어찌 할까요?”
리시키다는 여전히 바닥에 널브러져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천족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에 시온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어깨를 으쓱이곤 말했다.
―――――――작품 후기―――――――
설정 오류가 있었습니다!
천족들은―급 의 식이 아니라 하위, 중위, 상위, 최상위로 나뉩니다!
현재 수정 중에 있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