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68)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68화(368/439)
368―――――
역습
“···그것으로 일단 예비대 1차 편성을 마쳤습니다.”
“고생했다, 에스티아 후작.
정말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여왕이시여.
저는 그저 뒤에서 약간의 손만 거들고 있을 뿐인데요.”
오네르 후작가의 젊은 여가주, 에스티아가 그렇게 말하자 바네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 저렇게 후방에서 보급과 병참을 맡는 이가 항상 힘들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또 공은 세우기 힘든 자리, 그래서 지휘관 입장에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직책이었다.
“그대가 고생이 정말 많아.
하필 호아킨 후작이 이런 때에···.”
병사한 전(前) 오네르 후작, 그리고 역시나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에드가 4세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이가 바로 현 구첸 후작가의 주인, 호아킨 후작이다.
여태까지 별 탈 없이 지내기는 했으나 볼코 후작이나 리히텐 변경백처럼 전장에서의 생활로 몸이 단련된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잔병을 좀 달고 살았던 인물.
한동안 몸 관리를 좀 해서 나아진 듯 싶었으나 요즘 들어 히스파냐와 누디아의 전쟁, 남부 해적, 그리고 신성 프러센과 빛의 후예들이 일으킨 그들의 성전까지.
히스파냐를 떠나 누디아로 향한 2군의 보급 문제를 손수 관리하던 호아킨 후작은 결국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업무가 그에게로 워낙 과중되다보니 결국 몸이 버티지를 못 했던 모양이었다.
“괜찮습니다.
저 또한 히스파냐의 후작으로서 업무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베레크릭 공자 역시 알게 모르게 시온 클라우젠 공자와 루드비히 레데넨 공자가 전장으로 나아간 것에 대해서 공을 세울 수 있다는 것에 부러운 기색을 내비쳤답니다.”
“그에게 호아킨 후작의 빈 자리를 맡겨 공도 세우고 차기 구첸 후작가의 주인으로서의 소양을 갖추게 할 수 있기에 나쁘지 않다는 소리인가?”
“그렇습니다.”
에스티아의 대답에 바네사 여왕은 미소를 지었다.
세상을 바꾼 영웅조차 자식을 가르치는 데에는 실패하여 결국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당하고 끝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전대 후작들이 전부 훌륭한 이들이었기에 그런 걱정은 에드가 4세부터 바네사에게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혹시나 3후작가를 이끌 새로운 가주들이 기대 이하의 인물들, 혹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너무나도 강하여 왕실과 갈등을 일으키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그에 대해 답을 보자면, 참으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레데넨 후작가의 루드비히는 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권력보다는 명예를 더 원하는, 왕국의 미래를 이끌 기사를 원했으며 오네르 후작가의 에스티아는 전 후작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았기에 걱정이 없었다.
‘베레크릭 공자는 무척이나 계산적이어서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계산적이란 건 반대로 말하자면 모험심이 그리 많지 않다는 소리가 된다.
확신이 서지 않는 이상 함부로 자신을 드러내는 걸 절대 원하지 않는다는 것.
히스파냐 왕실이 그 견고함을 유지하고 있는 한 다른 생각을 품을 위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바네사는 생각했다.
‘무엇보다 구첸 후작가의 세력이 감당 불가로 커진 것도 아니고.’
빛의 군세가 쳐들어오고 있다는, 히스파냐의 모든 이들이 죄인이라는 저들의 선포.
바네사는 그 말을 들으며 이 히스파냐가 사분오열되어 싸우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히스파냐가 비록 정식으로 빛의 교리를 받아들인 건 아니나 그건 어디까지 왕실만의 일.
이미 귀족들과 왕국민들 사이에 선과 정의를 표방하는 빛의 교리는 꽤나 인기가 좋았다.
대외적인 구휼 활동과 더불어 있는 자에게도, 없는 자에게도 그저 빛만 믿으면 항상 친절하게 여겨주던 자들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빛의 교리의 중심이 되는 신성 프러센이, 그리고 교도들이 그렇게나 믿는 빛의 후예들이 히스파냐를 적으로 돌렸다.
죄인이라고, 심판해야 할 자들, 단죄해야 할 자들이라고, 저들을 옹호하는 모든 자들은 악이고 그림자이며 불의라고 외치면서.
‘등골이 서늘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히스파냐의 여러 사람들이 어떻게 돌변할지 아무도 모르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충성을 다 하던 자들이 갑자기 적이 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아무렇지도 않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더 단결하여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히스파냐를 지키겠다고 모두가 일어섰다.
사분오열되기는커녕 서로가 전보다 훨씬 더 굳건하게 뭉치는 모습을 보며 바네사는 순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나 싶었지만 곧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럴 걸 뻔히 알고 있었다는 듯 그 고귀하다는 빛의 후예를 찍어 누른 남자.
동시에 흩어질 뻔한 히스파냐를 완전히 뭉치게 만들어 그 누구도 흔들지 못 할 단계까지 몇 마디 말로서 이룬 남자.
그리고 그 부분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여태까지 정말 쉬지 않고 내달리며 곳곳에서 히스파냐라는 이름을 널리 떨친, 왕국의 영웅.
“시온 클라우젠 공자에게서 승전보가 도착했다고 들었습니다.”
“···볼코 레데넨 후작도 있다네.
에스티아 후작.”
그를 생각하고 있던 제 속마음을 혹 이 여후작에게 들킨 듯 하여 바네사가 급히 답을 하니 에스티아는 미소를 짓고는 ‘네, 물론 사령관은 볼코 후작이지요.’ 라고 중얼거렸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어릴 적에는 딱히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던 인물이 어떻게 성인이 되자마자 제 세상이라도 만났다는 듯이 그럴 수 있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더군요.”
“나도 마찬가지다.
리히텐 변경백 이후로 클라우젠의 안위를 걱정했던 적이 있는데 이제는 역으로 그 클라우젠이 이 히스파냐 왕실의 자리까지 탐낼까 걱정을 하고 있던 말이지.”
“농이 지나치십니다.
그 말을 시온 공자가 듣는다면 아마 서운하다고 펄쩍 뛸 겁니다.”
“···그런가?”
“물론이죠.
제가 봤던 시온 클라우젠 공자는 결코 그럴 인물이 아닙니다.
이 히스파냐에 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뿌리 뽑고, 위협을 가하면 철저하게 깨부순 사람입니다.
그런 이를 의심하신다는 건 여왕 전하께만 손해가 되는 일이니 부디 불안한 생각 거두시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사실 바네사의 그 걱정은 말 그대로 농담이었다.
시온 클라우젠에 대한 칭찬을 살짝 돌려서 말한 것이었는데 에스티아 후작은 그걸 진심으로 알아차렸는지 그리 대답을 한 것.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에스티아 후작이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심지어 국왕을 앞에 두고도 저리 강력히 의견을 피력할 정도라면 시온 클라우젠의 능력과 충성심이 그리도 확실하다는 것이니 바네사 입장에서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알겠다.
그대의 충언은 내 마음에 새기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괜찮다.
그보다 2군에 대한 군수 지원은 어찌 되어가고 있나?”
“일단 1파를 클라우젠 쪽으로 보냈습니다.
누디아 측이 지원을 맡는다곤 하지만 누디아의 주된 생산 지역인 동부와 남부의 상황이 엉망인지라 충분한 양을 준비하였습니다.”
“고생 많았다.”
“저보다는 당장 누디아에서 싸우고 있을 용사들이 더 고생이지요.”
그렇게 말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인 에스티아는 곧 걱정이라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디아 왕실이 결국 왕성을 떠나 서쪽으로 파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가.”
“그 영향으로 전하께서 피난민들을 조금씩 받아들이겠다는 명령도 들었지요.”
에스티아의 말에 바네사는 말없이 차를 홀짝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제스쳐.
눈치가 빠른 에스티아는 입을 다물고 다만 바네사가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여러 귀족 대신들과 참 많이도 회의를 거쳤지.”
“반대가 무척 심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동부의 이들이 특히 심했어.
결국 피난민들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은 자신들인데, 어디 그들이 누디아의 사람들에게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을 수 있겠는가?”
“당장 얼마 전만 해도 동부 깊숙한 곳까지 쳐들어왔던 누디아니까요.”
“누디아는 또 어떻고.
저들이 비록 피난민이라곤 하지만 언제든 돌변하여 흉흉한 무리가 될 수도 있다.
모두가 타당한 의견, 가능성 있는 일들이었기에 참으로 잡음이 많았지.”
“···.”
“하지만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 전쟁이 무엇인가.
이건 거짓된 빛과 선에 대항하는, 그들을 심판하겠다며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길이다.
그런 와중에 피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명분은 힘을 잃고, 더해서 적들은 우리 히스파냐에 적의를 품은 자들을 몽땅 얻게 되는 셈이다.
무엇보다 강제로 막는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바네사라고 해서 별 고민 없이 좋다고 피난민들을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 부작용 등은 이미 충분히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피난민들을 계속 거부하며 문을 걸어 잠글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며 고민에 고민을 한 후 마침내 결정한 사항이었다.
“그들을 따로 관리할 병사들이 필요할 테니 예비대를 더 급하게 꾸리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호아킨 후작이 병이 났고 말이야.”
“어찌 되었든 제 시간 안에 예비대 편성이 끝났으니 한숨은 돌렸군요.”
에스티아의 말에 바네사가 고개를 끄덕이곤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응접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곧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시종장입니다.”
“들어오라.”
바네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 시종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커드란 남작이 에라더 님과의 만남에 대한 허락을 구해왔습니다.”
“···커드란 남작이라면 전부터 내 오라비를 무척 따르던 기사 출신의 귀족이군.”
“그렇습니다.
이번에 히스파냐의 승리를 기원하며 간단하게 술자리를 가지려고 하는데 왕궁의 뜻을 묻는다고 정식으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시종장의 말에 바네사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녀의 답을 기다리는 시종장과, 당연히 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에스티아 후작을 뒤로 하고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다고 전하라.
단 쓸데없는 의심을 받지 않게 주의하라고 이르도록.”
“네, 전하.”
시종장이 물러간 후, 에스티아는 약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과 같이 조그마한 균열도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에서 에라더를 왕성 안으로 불러들인 것도 그런데 심지어 사람들과의 접촉까지 허락한다니, 아무리 그 수가 소수라지만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전하.”
“그대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가는군.
내 오라비에 대한 것이겠지.”
“에라더 전 왕자가 비록 밀려났다고는 하나 여전히 계승 서열 1위의 사람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몰래 숨어든 적들이 그 분과 접촉하고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결코 묵과해서는 안 됩니다.”
“묵과하고 있는 게 아니야.”
“그러시다면···.”
“일부러 보여주고 있는 거다.
틈이란 곳을.”
바네사의 대답에 에스티아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었다.
당연한 것이, 그 틈을 꼭꼭 막아 어느 한 곳 물 샐 틈 없이 지켜도 모자랄 판국에 왜 굳이 그 틈을 드러내어 벌레들이 꼬이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전하.
빈틈을 보이지 마십쇼.
하지만 조그마한 틈 정도는 일부러 보이셔도 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시온 클라우젠?’
‘너무 꽉 막아버리면 적들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막는 것보다 뚫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니 시간과 돈을 낭비하면서까지 무리할 필요 없습니다.’
‘···.’
‘우리 쪽이 무슨 짓을 해도 저들이 기어코 일을 저지르려고 한다면 차라리 일부러 틈을 보여주십쇼.
그리고 적들이 굳이 다른 곳을 노릴 필요 없이, 거기로 몰려들게 하시면 됩니다.
물론, 함정이라고 생각할 수 없도록 완벽한 모습 뒤에 약간의 틈을 보이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도 너무 위험하지 않겠는가?’
여왕의 질문에, 왕국의 영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덫이란 건 원래, 다닐 만한 길목에 설치해야 효과를 보는 법입니다.
그러니, 그 길목을 좁혀 반드시 그곳으로 오게 만든다면, 과연 어떨까요?’
―
“어서 오게, 커드란 남작.”
“그동안 무탈하셨습니까.
에라더 왕··· 님.”
이제는 왕자라는 직위도 전부 사라졌고, 남은 건 오직 현 여왕의 오라비라는 것 뿐.
그 외에는 모든 실권도, 따르는 이들도 사라진 에라더였다.
가끔 가다가 과거 그를 따라던 몇몇 이들이 잊지 않고 찾아와 잠시 술자리를 가지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의 일상은 항상 왕실에서 보낸 이들이 감시하기 용이한 곳에 있는 게 전부.
“생각해보니 그대와 술 한 잔 나눈 게 오래되기는 했어.
그래, 재미난 소식 좀 들고 왔나?”
아직 에라더의 몸 상태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그래도 명색이 선왕의 장자이자 한 때는 왕위 서열 1위로 거론되던 인물인데 ‘고자’ 가 되었다는 말은 왕실의 권위를 실추 시킬 수 있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에라더가 선왕인 에드가 4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 했고 반대로 바네사는 그 기대에 부응하였으며 주변 귀족들의 지지에서도 차이가 나서 새로운 국왕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커드란 남작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들 중 하나였고 말이다.
“···전하.”
“큽!
쿨럭, 쿨럭!”
갑작스러운 커드란 남작의 ‘전하’ 호칭에 에라더는 한창 잘 마시던 술을 뱉어내고 말았다.
그리고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뜻으로 한 때는 믿음직스러웠던 제 편 중 하나를 쳐다보았다.
“자네, 그게 무슨 헛소리인가.”
“응당 전하의 자리였던 것을 찾으실 때가 왔습니다.
제가, 제가 그리 되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게 무슨···.”
커드란 남작이 손짓을 하자, 시종으로 위장했던 두 남녀가 슬그머니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중 남자가 검지 끝에 불길을 만들어내며 입을 열었다.
“지금의 국왕은 빛을 등한시하는, 악과 선이 무엇인지도 구별하지 못 하는 어리석은 자.
하여 우리 심판자들이 그녀를 단죄하러 왔습니다.”
“무슨!
무엄하다.
이놈들이 감히 누구를!
커드란 남작!
미쳤나?
제정신인 게야?
감히 히스파냐에, 그것도 왕성에 신성 프러센의 미친 광신도들을 들인 것인가?”
“전하.”
“닥쳐라.
내가 아무리 바네사에게 밀린 비운의 왕자라고 하지만, 내 신세가 비참하다는 건 알고 있으나 이 히스파냐를 망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내가 왕좌에 눈이 멀어 이 나라에 저런 미친 자들을 끌어들일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당장 물러가게.
그래도 자네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 비밀로는 해주겠어.”
“전하.
어차피 히스파냐는 결국 패배할 겁니다.
신성 프러센의 군대가, 마족마저 물리친 그 빛의 군세가 누디아도, 히스파냐도 무너트릴 겁니다.
빛의 후예들이 그들 뒤에서 깃발을 높이 들고 요정들이 승리의 나팔을 불겁니다.
히스파냐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질 수 밖에 없는 전쟁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바네사 여왕이 그 미친 짓의 중심에 있습니다.
히스파냐는 이대로 가면 전부 불타 사라집니다.
그걸 막아야하지 않겠습···.”
와장창!―
커드란 남작의 얼굴을 스치고 술잔이 날아간다.
곧 벽에 부딪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적막이 감돈다.
“물러가라 경고했다, 커드란.
네가 나를 어찌 보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히스파냐 왕실의 자랑스러운 핏줄, 에라더 라곤 히스파냐다.
왕국에 위해를 가하는 그 어떤 짓도 허락할 수 없어.
한번 만 더 헛소리를 한다면 바로 주변에 있는 왕실 사람들을 부를 것이다.
내가 내 손으로 몇 없는 친우를 죽이게 하지 마라.
경고다, 커드란.”
“···.”
너무나도 거센 반응에 커드란 남작은 더 입을 열지 못 했다.
결국 그는 잠시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말한 후, 두 남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뭔가 일이 이상하게 꼬이네.
그렇죠?”
“···유감이오.
에라더님께서 당연히 응하실 줄 알았는데.”
“쫓겨났어도 왕족은 왕족이라는 건가?
왕국에 대한 마음은 참 대단하군.”
“저 분을 비꼴 생각이라면 관두시오.”
“비꼬는 건 아닙니다.
다만 생각이 조금 부족하다는 것이지.
자신이 저렇게 버틴다고 해서 신성 프러센이, 빛의 후예들이 그 마음을 알아줄 것 같소?
결국 누디아는 사라지고, 히스파냐는 패해 심판대 위에 설 것이오.
그 때 정말 히스파냐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꼴을 볼 생각이 아니라면 그래도 죄를 사면받을 자격이 있는 이가 있어야 할 텐데.”
남자의 말에 커드란 남작은 침음을 내뱉었다.
지금 상황에서 에라더가 어떻게 동의만 해준다고 하면 명분이 생기는데, 저리 확고하니 참으로 처지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이리 하면 어떨까?”
여인이 슬쩍 손을 들며 말했다.
“그냥 저지르자.”
“음?”
“무, 무슨?”
“일 저지르면 어찌 되었든 우리들과 만났다는 건 결국 사실이잖아?
그러니 저 에라더라는 남자도 살기 위해서는 선택을 해야겠지.
빛의 편에 서서 올바르지 못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히스파냐를 되돌리기 위해 일어섰다고 말이야.”
그 말에 커드란 남작은 황망한 표정을 짓는 반면, 여인의 동료로 보이는 남자는 그거 괜찮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원래 사람이란 동물이 주변 환경에 따라 제 뜻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는 존재였으니 일을 벌이면 에라더도 좋든 싫든 함께 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이, 이보시오들!
그건 절대 아니 될···.”
“아직도 이해 못 했어요?
다 죽는다고.
지금이라도 면죄부 마련하지 않는다면, 너희들 다 죽는다니까?
병신이야?
그냥 죄인으로 몰려서 교도들한테 죽고 싶어?”
여인의 말에 커드란 남작은 침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시선을 돌려 제 동료를 바라보았다.
“네가 남쪽을 맡아.
내가 북쪽을 맡을게.
실력자들 대부분이 누디아로 떠났고, 남아있는 왕실 기사단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딱 정해져 있는 전장에서나 통용되는 말.
지금과 같이 건물이 가득한 공간에서의 난전은 다르지.”
“좋아, 엔리.
북쪽에서부터 시작해서 가능하다면 왕궁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 마법진까지 부수는 걸 목표로 한다.
너무 즐기다가 늦지 말라고.”
“걱정 마.
너야말로 늦지 말라고, 류.”
‘류’ 라 불린 남자는 씨익, 미소를 지으면서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작품 후기―――――――
문제 : 트리샤의 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