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70)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70화(370/439)
370―――――
역습
저번 전투에서 발생했던 부상병들을 후송하는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었다.
적들의 공세가 잠시 시들해진 사이 누디아의 예비대가 그들의 빈자리를 채웠고 그들은 며칠 안으로 전군이 방어선을 옮길 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대기했다.
부상병 후송이 끝나자 히스파냐와 누디아 군이 따라서 재빠르게 후퇴 준비를 했고, 적들이 눈치를 채고 공격을 가하기 전에 내일 밤에라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얼추 진행을 하고 있었다.
“먼저 가볼게요, 시온 클라우젠님.
나머지는 누디아 측 사령관과 논의하시면 될 거예요.”
“새로운 방어선에서 보도록 하죠, 아이브 기 레스티온.”
누디아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아이브는 먼저 방어선을 떠났다.
군권을 쥐고는 있으나 실질적인 지휘를 맡고 있는 이는 따로 있으니 자신이 있다고 해서 지휘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실제로 그건 충분히 맞는 말이었다.
아이브가 떠난 이후 시온은 히스파냐 지휘부 막사로 들어갔다.
후퇴 준비가 한창이었기에 전처럼 지도나 각종 서류들로 가득 찬 곳은 아니었으나 지휘관들이 전부 모여 있었기에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더욱 진중했다.
“후퇴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반 이상은 완료되었고 부상병들을 후송할 때 먼저 1파를 같이 딸려 보냈습니다.
수는 약 2천이며 누디아의 2차 방어선으로 먼저 가서 군영을 차릴 자리를 보고 있도록 말입니다.”
“나쁘지 않군.
그러면 내일 중으로 후퇴를 진행할 수는?”
“7천명이 새벽에 가장 먼저 출발할 것이고 이후 5천명이, 마지막으로 4천명이 뒤를 확인하며 이동할 계획입니다.”
이전 전투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일단 2만 여 병력이 유지되고 있었다.
어차피 전투에서의 사상자는 진과 진이 부딪치는 순간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진이 무너져서 통제가 완전히 불가능해질 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형식이었으니까.
그 많은 병력이 한 번에 빠져나간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했고,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적들이 그 변화를 바로 눈치 챌 수 있으니 병력을 나누어 후퇴시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흠.”
잠시 지도를 바라보며 지금의 방어선과 2차 방어선으로 지정된 서쪽의 거기를 재던 볼코 후작은 고민을 마쳤는지 고개를 들고는 시온을 바라보았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
“네, 후작님.”
“그대가 부사령관의 자격으로 7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가장 먼저 후퇴하라.”
“···사령관이 뒤에 남으시겠다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만.”
“적을 막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재빠르게 후퇴하여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고 병사들이 지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건 그대가 가장 잘 알 터인데?”
“···.”
“무엇보다 적들은 이전 전투에서 꽤나 많은 피해를 입었다.
추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야.
만에 하나 그걸 다 무시하고 온다고 해도 이쪽의 정찰병이 평소보다 배는 더 많으니 사전에 확인할 수 있을 터.
지금은 주 병력을 이끌고 빠르게 새 방어선을 구축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되는군.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의 질문에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의 뜻을 내비쳤다.
히스파냐의 전군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 절반이 먼저 향하여 방어선을 정비하고 숙영지를 만드는 일이니 뒤에 남아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
시온은 볼코 후작의 말에 자신도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음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새벽 중으로 먼저 방어선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이후 병력은 그날 밤에 해서 출발시킬 것이다.
먼저 보내는 만큼 빨리 도착하여 병사들의 숙영지 자리를 봐두고 건설까지 완료해두어야 할 것이다.”
“늦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상에서는 북쪽 전사들 중에서도 기마술에 특히 뛰어난 이들이, 그리고 공중에서는 그리핀들이 정찰을 맡고 있다.
적이 접근한다고 하면 재빠르게 달려와서, 그리고 날아와서 알려주고 경고할 체계가 구축되어 있었기에 시온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인님.
혹시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그럼에도 시온의 표정은 전과 같이 영 좋지 못 했다.
때문에 리시키다가 슬며시 입을 열자 그는 한숨을 내뱉고는 말했다.
“적들이 너무 조용해.
이쪽을 정찰하지도 않고, 뭔가를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아.”
“피해가 워낙 커서, 그 피해를 잠시 추스르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리시키다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는 것.
실제로 저번 전투에서 신성 프러센은 꽤나 많은 피해를 입고 물러서야만 했다.
만약 전투를 지속했다면 전멸할 수 있었을 정도의, 그런 엄청난 피해.
그에 더해서 천족들을 다수 잃고 사기까지 떨어졌으니 반드시 그걸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시온은 판단했다.
‘다른 천족들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놈들이 무슨 은신을 쓰는 것도 아니고, 이 지역에는 딱히 몸을 숨길만한 지형도 없어.
북쪽 전사들과 그리핀의 조기 경보 체계를 천족이라고 해서 바로 뚫어낼 수는 없을 거다.’
투명 마법 따위의 사기적인 것이 없다는 점에 진심으로 작가에게 감사하는 시온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후퇴하자는 의견 따위는 내놓지도 못 했을 테니까.
물론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정찰병들의 수를 평소보다 몇 배로 많이 배치해두었다.
쟌과 에오스는 앞서 미리 기병들을 이끌고 뒤로 물러서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적들의 추격을 늦춰줄 준비를 하고 있었고, 거기에서 떨어져 나온 수백의 전사들로 이루어진 정찰병들이 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하나 더.
릴리트님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어.
원래 복귀를 해야 하는데.”
“아마도 그분만의 사정이 있을 거예요.
릴리트님께서도 하루에서 이틀 정도는 늦을 수도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렇긴 하지.”
“릴리트님이 그러셨잖아요.
진정 자신이 걱정된다면 하던 일이나 마저 다 하라고.
괜히 걱정하면서 시간도 끌고 행동도 질질 끌다가 한 번 제대로 당하지 말라고요.”
리시키다의 대답에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적의 뒤를 기습한다는 일이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딱 정확히 들어맞기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고 때래 따라서 그 시간이 더 당겨지거나 뒤로 늦춰질 수도 있었다.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아직 예속의 계약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단순히 일이 조금 정신 사납게 돌아가는 건 아니겠냐고 생각하며 시온은 후퇴 준비를 서두르기로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루드비히는?”
“잠시 볼코 후작님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어요.”
그 말대로, 루드비히는 이번 히스파냐 2군의 사령관이면서 동시에 제 아버지인 볼코 후작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별 건 없었다.
그저 앞으로 전쟁의 향방, 그리고 어찌 해야 이 전쟁에서 히스파냐가 승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토의 정도.
“이번에 적과 부딪쳐보니 어떻더냐.”
“무척 강했습니다.
신성 프러센의 성기사들, 그들의 무력은 분명 제가 꿈꾸던 기사의 표본이라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너무 맹목적인 자들이었습니다.
마치 이 전투의 승패가 어떠하든 상관없다는 듯, 그저 싸워서 죽이거나 죽으면 된다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이상했습니다.”
“그게 지금의 빛의 교리를 믿는 자들의 정체다.
어제까지만 해도 선이니, 정의이니 떠들던 것들이 이제는 빛을 믿지 않는다고 검을 휘두르고, 그걸 위해 죽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외치고 있지.
그게 얼마 전까지 대륙을 악으로부터 수호한다고 떠들던 자칭 성기사라는 자들의 모습이다.
참으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지 않느냐?”
볼코 후작은 그렇게 으르렁대면서 정말 토악질이라도 난다는 듯 퉤, 하고 침을 뱉었다.
예전이라면 기사이니 명예이니 모욕하는 건 그리 달갑지 않다며 한 마디를 내뱉을 루드비히였지만 이제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그에 볼코 후작은 속으로 제 아들의 변화에 꽤나 놀랐다.
시온에 의해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그건 얼마 가지 않을 것이라고, 아마도 빠른 시간 내에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제 아들이 성장한 것이었다.
‘···녀석.
여태 제 우물 속에서 살다가 누군가가 진짜 세상과 진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니 바로 철이 들었군.
진작 저런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 애비가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했을 것이 아니더냐.’
가문을 비우고 왕국 전역을 돌며 전장이란 전장은 다 나돈 게 실수였다.
귀족으로서 나라를 화평케 하는 것만큼이나 가장으로서 가정을 평안케 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했는데 너무 나랏일만 돌보다보니 정작 제 자식 일에는 너무나 무관심했다.
그러는 사이 하나뿐인 아들은 전장의 ‘ㅈ’ 자도 모른 채 그저 막연한 환상만 지니고 컸다.
제 아버지가 전장에서 공을 세우니까, 그 곁의 기사들이 멋있어 보이니까, 그들이 누리는 영광과 그들이 외치는 명예가 화려하니 당연히 거기에 눈이 갔을 것이다.
“그 녀석의 시대에 걸맞은,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변경백에 뒤지지 않을 후작이 될 겁니다.”
“···.”
“예전에 너무 괴롭혀서, 복수를 당하지 않으려면 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겠지요.”
별 시답지 않은 농담임은 볼코 후작도, 그리고 루드비히도 다 알고 있다.
이제부터는 정말 달라질 것이라는, 레데넨 후작가의 차기 가주하는 자리에 걸맞은 후계자가 되리라고 선언하는 것이었기에 볼코 후작은 참 오랜만에 아들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
“클라우젠에는 절대 지지 마라.
이기지는 못 해도, 져서도 안 된다.
그건 자존심 싸움이야.”
“명심하겠습니다.”
“2차 방어선으로 향하면 시온을 도와서 숙영지 건설에 힘을 써라.
병사들도 결국 사람이니 쉴 자리가 편안해야 싸울 때에도 제 힘을 낼 수 있다.”
다른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지만 볼코 후작은 지극히 사무적인 내용만 언급할 뿐.
부자간의 대화는 조금도 꺼내놓지 않았다.
“새벽에 일찍 출발한다고 하니 가서 쉬는 게 좋겠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따로 인사를 하러 올 필요는 없다.
그럴 시간에 병사들 하나라도 더 챙겨라.
잊지 마라, 루드비히.
너는 레데넨 후작가의 자식이다.
그 이름에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거라.”
아들 녀석이 잘 하고 있으니 이제 잔소리는 그만 해야지, 그만 해야지 싶으면서도 또 잘 하고 있으니 끝내 잔소리를 또 하고 만 볼코 후작이었다.
하지만 루드비히는 그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할 뿐, 제 아버지를 실망시키는 짓은 이제 더 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분명히 해보였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이제 나도 이 녀석에 자리를 물려주어도 되겠군.
비로소 이 막중한 임무에서 해방이라니.
참 길고도 길었단 말이야.’
내일 새벽 출발에 대비하여 미리 휴식을 취하러 가는 루드비히를 바라보며.
볼코 후작은 자신의 이 의무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
시온과 루드비히의 지휘 하에 히스파냐의 병력이 새벽을 기점으로 서쪽을 향해 출발하고, 그 날 밤이 되자 볼코 후작은 바로 다음 부대를 후퇴시킬 준비를 했다.
다행히 적들이 아직 이쪽의 후퇴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언제든 역습을 할 수 있는 상황.
그런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뒤에 남을 병사들은 레데넨 후작가의 정예병들에 더해서 동부와 북부에서 차출된, 전투에 숙달된 이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큰일이군.”
하지만 그런 대비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상당히 묘해졌는데,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가 그것.
안개가 자욱해져서 병사들이 제 시간에 후퇴를 하기는커녕 정찰병들조차 제때 도착하지 못 하고 심지어 그리핀마저 길을 잃고 헤매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밤중이라 오직 빛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인데 안개가 자욱해지니 그 시각마저 차단되었고, 단순히 방어를 위한 경계를 서고 있는 게 아닌 후퇴 준비에 한창이고 일부는 출발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기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부관.
북쪽 전사들의 정찰병들은?”
“반수는 돌아왔습니다만 나머지 반이 아직 입니다.
그들의 소식이 전해져야 상황을 제대로 알 수가 있는데 하필이면 안개가 너무 짙게 껴서···.”
“누디아 측에서는 뭐라고 하지?”
“이런 안개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원래 안개가 끼지 않는 지역이기에 혼란스럽기는 자신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볼코 후작은 그 말에 순간 찌르르, 하고 싸늘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흐르는 걸 느꼈다.
이곳은 누디아의 땅, 누디아 병사들에게는 세상 어느 곳보다 익숙한 곳.
그들마저 지금의 상황이 낯설다면 결국 그건 누군가가 이걸 노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지금은 모든 병사들이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게 아니라 일부는 후퇴를 하고 또 일부는 방어선 유지였기에 진영이 혼란스러운 와중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이 때, 멀리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의 말들이 내는 소리였기에 볼코 후작은 정찰병들이 길을 잃었다가 한 번에 모여서 복귀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후, 앞에서부터 병사들이 ‘멈춰!
멈추라고!’ 하는 고함을 들으면서.
그리고 그 병사들 사이로 보이던, 말 위에 타고 있던 기수들 전원이 목과 등판에 여러 대의 화살을 맞은 채 이미 절명한 것을 확인하곤 볼코 후작은 짧은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당했다.’
볼코 후작이 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사방에서 불화살이 일제히 날아들었다.
“기습이다!”
“진형!
진형!”
가장 후미를 책임질 병사들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적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아닌, 원래 출발하기로 되어 있던 병사들.
당연한 말이지만 저들은 전투 준비가 상대적으로 미흡한 인원들이다.
지금 당장 전투 진형을 갖추라고 한다면 오히려 이쪽에까지 혼란을 줄 수 있는 상황.
“병사들을 당장 출발시켜!
전장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볼코 후작님!
차라리 저들도 다시 재집결시켜서 진형을 갖추도록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미 안개가 자욱해서 진형을 다시 짜라고 하면 혼란만 가중된다.
준비된 부대부터 빠르게 서부로 이탈하라고 전해라.
안개를 이용해 적들이 여기까지 왔다만 반대로 저들을 가려주는 역할도 할 거다.
애초에 이렇게 기습을 할 정도면 우리 군 전체를 상대할 숫자로 찾아왔을 터!
어떻게든 피해를 줄이고 시간을 끌어야 한다!
진형을 갖춰라!”
“진형을 갖춰라!
측면!
측면 주의해라!”
안개가 자욱하여 아군이 적을 볼 수 없다면, 즉 적도 아군을 볼 수 없는 것.
볼코 후작은 그 틈에 어떻게든 병사들을 후방으로 물릴 생각이었다.
애당초 전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들을 단시간 내에 준비시켜 진형까지 서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럴 바에 차라리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을 빼내고, 미리 전투 준비를 갖추고 있던 병사들로만 시간을 끄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쿠과과과!
콰직!
콰지직!
“뭐, 뭣?”
“저게 뭔!”
안개 속에서 등장한 새하얀 빛무리, 그리고 그 번쩍임과 동시에 가장 앞줄을 맡고 있던 숙련병들이 비명 한 번 내지르지 못 하고 말 그대로 뭉개졌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지휘관들은 물론이고 볼코 후작까지 당황하던 찰나, 그 빛무리 속에서 이내 뭔가가 천천히 제 형태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아무튼, 샤는 너무 착해서 탈이에요.
죄인들은 만나는 족족 그냥 쳐 죽이면 그만인 것을.”
빛이 사그라들며 나타난 건 순백의 날개, 그것도 한 쌍이 아닌 여러 쌍.
상위 천족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그들이 보유한 최강의 카드라 할 수 있는 존재들.
최상위 천족, 릴은 양 손에 들린 두 개의 철퇴를 붕붕 휘두르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갑습니다, 죄인 여러분.
그리고, 안녕히 가시길.”
여인의 인사말 직후, 대기를 찢는 흉성과 함께 사방에서 피보라가 일기 시작했다.
―――――――작품 후기―――――――
추천은 항상 환영입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