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71)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71화(371/439)
371―――――
역습
인간들 사이에서 가장 강한 이를 꼽자고 하면 사람들은 대게 제 나라의 상급 기사 이름을 대곤 한다.
비공식적으로 그들만큼 강한 이들도 있겠지만, 공식적인 강자는 그들이라는 것.
그만큼 상급 기사가 가지는 힘과 의미는 인간들에게 있어 아주 컸다.
하지만 그 상급 기사라는 존재들도 함부로 잘 짜여 진 진형을 향해 단신으로 뛰어드는 미친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껍데기는 상급 기사여도 결국 그 속은 여타 평범한 인간들처럼 살과 뼈로 이루어진, 치명상을 허용해도 죽고 피를 많이 흘려도 죽는 그런 인간이다.
군의 진형은 일반 병사들이 짠다고 하지만 그 평범한 병사들조차 아주 기초적인 마나는 다들 다룰 줄 알며, 그런 방식으로 마나를 이용하여 기본적인 방어를 하는 기사들의 빈틈 정도는 당연히 노릴 수 있다.
아무리 상급 기사가 위용을 떨쳐도 사방에서 날아오는 창을 전부 막아낼 수 없고, 그 창 중 몇 대에 찔릴 것이며 그 중 또 하나가 심장이나 목에 박힌다면 무조건 죽는다.
그게 아니더라도 눈 먼 화살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다른 여러 방법으로도 제압할 수 있다.
요정들이나 수인들의 실력자들도 상급 기사와 다를 것이 없어서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잘 짜인 진형으로 그냥 달려드는 근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게 여태까지의 상황이었고, 다른 존재들도 응당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볼코 후작은 뭉텅이로 으깨져가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위용이라니.
히스파냐의 정예병들로만 구성된 진형인데, 설사 상급 기사라고 해도 발목을 붙잡고 질질 잡아끌며 결국 빈틈을 노려 창을 찌를 수 있는 노련한 병사들인데.
마치 어른이 애들 손목을 비틀 듯 상대는 너무나도 쉽게 진형을 깨트리고 있었고,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두 손으로도 다루기 힘든 철퇴 두 자루를 한 손에 하나씩 쥐고 휘두르는데도 빈틈을 찾기 어려웠으며 틈이 난 줄 알고 병사들이 창을 찌르기 위해 다가가면 어느 순간 날아든 거대한 철퇴의 머리가 병사들을 그대로 박살내버렸다.
“미, 미친!”
“뒤로 물러서라!
진형을 새로 짜라!
적들이 밀고 들어온다!”
“보강해라!
진형을 보강해라!”
“정신 차리고 버텨라!
무조건 버텨!”
그나마 이들 모두가 전장에서 닳고 닳은, 고도로 숙련된 병사들이니 버티는 것이었다.
만약 보통의 평범한 병사들이었다면 진작 공황 상태에 빠져 진형이고 아군이고 모조리 내팽겨 치고 달아나기 바빴을 것이다.
“사령관님!
안개 때문에 상황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후방이 공격 받는 것 같은데, 진형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야간이고, 안개가 꼈다.
적들도 볼 수 없는 건 마찬가지야!
자리를 지켜라.
여기서 등을 돌리면 먼저 이탈한 병사들이 모조리 학살당한다.
우리가 볼 수 없다면 적들도 볼 수 없으니 겁먹지 말고 진형을 유지하라!”
자리를 사수하라는, 언뜻 보면 미련해 보이는 결정이지만 이것이 최선이었다.
이런 난전에서 진형이 와해되면 그 후는 전투가 아니라 살육의 장이 될 뿐이다.
당장 눈앞에서 괴물 같은 여인이 철퇴를 휘두르며 아군을 학살한다고 해도 등을 돌리고 도망친다면 전멸을 재촉하는 짓일 뿐이었다.
“틈을 노려라.
저 천족만 고꾸라트리면 적의 예봉을 꺾을 수 있다.
다른 건 필요 없어!
저 천족부터 제거해야 한다!”
사방에서 들리는 충격음, 악을 쓰는 소리, 비명 소리.
안개 사이에서 오직 불길만으로 제 존재를 알리며 날아오는 불화살들.
보이는 건 오직 눈앞의 적뿐, 그 뒤에 얼마나 더 많은 적들이 있는지.
자신들의 옆에 아군이 있는지 적군이 있는지, 후방이 포위되었는지 아직 포위되지 않았는지 볼코 후작도, 그리고 휘하의 병사들도 알 길이 없었다.
등을 돌리고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결국 자신도 죽고 아군도 죽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다는 걸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상황이 절망적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리를 끝까지 사수했다.
옆의 동료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면 뒤의 새로운 병사가 자리를 메꾸었고 그 병사마저 쓰러지면 그 즉시 옆의 병사들이 간격을 좁혀 틈이 없도록 유지했다.
전장에서 단련되고 또 단련된 이들만이 보일 수 있는, 극도로 침착한 대응.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으아아악!”
“꺽!”
와직!
콰지직!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존재인지, 아무리 빈틈을 노려 창칼을 찔러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격을 하려던 병사들이 그 천족의 날갯짓 한 번에 붕, 하고 날아올라 허공을 부유하다가 이내 대지에 처박히며 그대로 목이 부러져 절명하거나 큰 부상을 입었다.
“도대체 무슨!”
최상위 천족이란 존재를 알지도, 경험해보지도 못 한 이들이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상급 기사 정도의 강자를 생각하여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그 상급 기사를 한 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명실상부 최강의 존재들이었다.
“후작님!
후작님!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대로는 전멸입니다!
전방은 붕괴, 측면도 와해되고 있으며 후방에서도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무리입니다!”
“후방에서 대기하던 북쪽 전사들은, 우리 군의 뒤를 봐주기로 했던 그들 소식은 없나?”
“모르겠습니다.
시야라도 제대로 확인된다면 모를까, 한밤중인데다가 안개도 아직 걷히지 않아 주변 상황을 알 길이 없습니다.”
볼코 후작은 이를 악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원래라면 쟌과 에오스의 북쪽 전사들이 당도하여 어떻게든 퇴로를 뚫어주었을 테지만, 그들이 히스파냐를 배신하고 도망간 것인지 아니면 그들도 적들의 기습에 지금 힘든 전투를 하며 점점 밀려나고 있는지 부관의 말대로 알 수가 없었다.
“후작님이라도 피하셔야겠습니다.”
“어리석은 소리 마라.
군의 대장이 제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가라는 거냐?
날 여태까지 본 그대가 그런 말을 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군.”
“헛된 죽음입니다.
물러나셔서 이 소식을 어떻게든 전달하셔야 합니다.”
“그건 자네와 같은 젊은 친구들이 할 일이지, 늙은이가 할 일은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볼코 후작은 검을 뽑아들었다.
군의 사령관이자 반드시 보호 받아야 할 지휘관이 최후의 싸움을 준비한다는 건, 곧 진형이 완전히 붕괴되고 이제부터는 스스로 제 몸을 지켜야만 한다는 소리였다.
“···.”
볼코 후작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부관은 몸을 돌려 누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릭!
릭!”
“예!”
방패를 들고 자리를 고수하고 있던 한 젊은 남성이 고개를 돌린다.
그에 부관은 손짓으로 그를 부른 다음 명령을 내렸다.
“아직 완전히 포위되기 전이다.
너는 네 부하들을 이끌고 당장 빠져나가라.”
“예?
아, 아니 그게 무슨 말씀···.”
“소식을 전할 이들이 필요하다.
도망치라는 게 아니야.
가장 중요한 일을 맡기는 것이다.
오히려 이게 더 위험하고, 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는 일이지.”
“···.”
“빠져나가라.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방어선으로 가서 소식을 전해라.
적들이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공격해왔고, 훨씬 더 강하다고.
반드시 소식을 전해야 한다.”
부관의 말에 릭이라는 하급 지휘관이 볼코 후작을 바라본다.
그에 볼코 후작은 부관의 말을 따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릭은 입술을 깨물고서 그 둘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다가 알겠다는 뜻으로 허리를 숙여 보이고는 재빠르게 어딘가로 사라졌다.
“거참, 그대도 참 말을 안 듣는단 말이야.”
“젊은 녀석들이 살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따지자면 저 녀석이 살아가야 해서요.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후작님을 보좌하면서 몸도 마음도 아주 폭삭 늙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는군.”
“상황이 상황이지 않습니까.”
화아아악!
또 다시 앞의 진형이 무너지며 수십 발의 불화살들이 들이닥쳤다.
주변의 호위병들이 급히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이미 몇 대의 화살이 호위병들의 팔이나 어깨에 맞는 등 피해가 속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심했던 것 같습니다.”
“방심했던 게 아니야.
다만 적들이 너무 강한 것뿐이지.”
“그래도, 다행이지 않습니까?
도망치는 놈들이 보이지 않는군요.”
부관의 말에 볼코 후작은 밝은 미소를 내지었다.
그의 말대로, 다들 죽겠다고 악을 쓰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결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자리에 서서 화살에 맞고 죽든, 적의 창칼에 찔려 죽든, 어디선가 날아온 철퇴에 으깨져 죽든 결국 자신의 자리를 지킨 채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럴 거면 아들놈에게 제대로 말이라도 해줄 걸 그랬어.’
고생했다, 잘 했다, 라는 그 말을 끝내 하지 못 했다.
원래는 2차 방어선으로 떠나는 그 날 루드비히에게 그 말을 하려고 했으나, 결국 또 잔소리만 좀 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나중에, 녀석이 조금 더 성장해서 정말 레데넨 후작가의 진정한 가주가 된다면 그 때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생했다고, 잘 했다고, 그리고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볼코 후작은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슬픈 게 뭔지 아나?
―
문득, 예전에 세상을 떠난 에드가 4세가 떠올랐다.
그는 볼코 후작과 가진 티타임에서, 씁쓸한 어조로 그렇게 중얼거렸었다.
―항상 자식 녀석들에게 부족한 점만 지적하고, 고쳐야 할 점만 말해주었어.
잘 하고 있는 점, 앞으로 계속 유지해야 할 점, 그런 좋은 말들은 끝내 해주지 못 했지.
그 때는 몰랐는데, 정말 몰랐는데··· 이제는 좀 후회가 돼.
―
이제는, 이제는 후회가 좀 된다는 그 말.
볼코 후작은 과거 자신의 주군이었던 남자가 했던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해했지만, 결국 자신도 그처럼 늦어버린 모양이었다.
“온다!”
“막아!
막아!”
안개 너머에서 몰려오는 말발굽 소리.
진형이 거의 무너진 시점에서 적들이 박아 넣는 쐐기임을 직감했다.
볼코 후작은 숨을 고르다 말고 저도 모르게 쯧, 하고 혀를 찼다.
아무래도, 선왕께 전해줄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는.
리히텐 변경백에게 맡겨야 할 듯 싶었다.
“와아아아아!”
“놈들이 들어온다!
들어온··· 크아악!”
“우아악!”
버티고 버티던 히스파냐의 진형이 결국 무너지고, 절대 뚫려서는 안 될 지휘관 대열까지 난전에 완전히 휩쓸리고 말았다.
어떻게 해서든 버티려고 하는 얼음 조각들이었지만 이미 한 번 부서진 얼음들은 빠르게 녹기 시작했고, 사방에서 들리던 고함 소리, 악 쓰는 소리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안개가 점차 걷히고, 청명해지는 밤하늘 아래 점점 가득 차는 것은 히스파냐 병사들의 비명 소리와 힘없이 스러지는 시체들이었다.
‘···아들아.’
그리고 그 스러짐 속에서, 한 줄기 덧없는 속삭임이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
“···?”
2차 방어성으로 이동하던 와중에 잠시 가지게 된 휴식 시간.
병사들을 점검한 후 시온에게 보고를 하던 루드비히는 문득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듯 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자신들이 떠나왔던 방향을 멍하니 쳐다본다.
“루드비히?”
“···아, 죄송합니다.”
제 실수를 알아차린 듯 루드비히는 다시 보고를 이어갔다.
평소보다 행군 속도를 훨씬 더 빠르게 조정했기에 혹 뒤처지는 병사들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으나 다행히도 속도를 잘 따라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속도로 하루 정도 더 가면 방어선에 도달할 것이라고 먼저 출발했던 선발대와 누디아 군 측에서 전령이 당도하였습니다.”
“하루면 충분하겠네.
우리 뒤로 출발할 인원들이 하루 텀을 두고 올 테니 그동안 숙영지 정비에 힘을 기울여야겠어.”
“부사령관님 말씀이 옳습니다.
사령관님은 특히 숙영지 건설에 무척이나 민감하신 분이니 허투루 하는 모양새가 보인다면 불호령이 떨어질 겁니다.”
루드비히의 농담에 시온과 주변 지휘관들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보고가 끝나고 시온은 잠시 앉아서 리시키다와 잡다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대화 주제는, 역시나 ‘도대체 왜 김유현에게 줄 묶는 일을 배웠냐.’ 였다.
“그거 말인가요?
저는 그냥 적들을 붙잡은 후에 주인님께서 심문하실 때 조금 더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적을 포박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을 뿐인데요.”
“정말 그게 다인 거지, 리시?
다른 이유는 없고.”
“네.
혹시 다른 곳에 필요하시다면 바로 해드릴 수 있어요.
예로 들자면 트리샤가 말을 듣지 않을 때에 확 묶어서 주인님께로 끌고 온다거나···.”
“워워, 그러지 마라.
적이 아니면 사람 묶는 거 아니야.
알겠지?”
“아, 네.
주인님의 명령이라면 당연하죠.”
그렇게 말한 후 리시키다가 막 뭔가를 말하려는 찰나.
여인의 얼굴이 갑자기 싸늘하게 굳더니 곧 허리춤에 매고 있던 칼자루를 강하게 쥔다.
그리고는 슬쩍 몸을 일으키면서 한쪽 손으로 시온을 가리고는 언제든 제 주인을 보호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다.
“···리시?”
“뭔가 왔어요.
아주 은밀하게, 아주 조용히.
저도 방금 전 알아차렸어요.”
“···.”
리시키다의 말에 시온은 슬쩍 주변을 살폈다.
제 호위기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온 것이 실수였던 걸까.
하필이면 리시키다 밖에 없는 상황에서 강적이 잠입한 것이라면 최악의 상황일 텐데.
몇 초 동안 수 만 가지 생각이 들던 찰나, 곧 바스락하는 소리와 함께 이쪽으로 아주 조심스레 접근하던 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리, 릴리트님?”
“하아.
참 멀리도 왔네.
뭐 이리 빨리 내빼고 있었어.
따라잡기도 힘들게.”
혹시나 병사들의 눈에 띌까 살금살금 기어온 릴리트였다.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려던 리시키다는 순간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굳고 말았는데, 아무리 포복으로 기어왔다고는 하지만 릴리트의 행색이 너무나도 초췌했던 것이다.
“···리시, 일단 앉아.
자연스럽게.”
“아, 네.
주인님.”
릴리트가 이렇게까지 엉망인 몰골로 돌아온 것을 보며, 시온은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자신이 아는 릴리트라면 몸 상태를 다시 최고로 바꾼 후에 완벽한 모습으로 돌아왔을 터인데 이렇게 흉한 몰골로 왔다면 그건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소리였다.
“릴리트님, 늦으신 거랑 지금의 모습이랑 뭔가 연관이 있는 거죠?”
“맞아.
시온, 상황이 매우 안 좋아.
여태까지 그래도 너희 인간들 신경 쓰던 놈들이, 제대로 열 받았는지 이제 대놓고 괴물 모습을 보일 생각이야.”
“무슨 말씀이시죠?”
“최상위 천족들.
그 괴물 놈들이 본격적으로 나설 거라고.”
천족은 빛, 정의, 그리고 선.
마족은 어둠, 그림자, 불의, 그리고 악.
그런 이미지로 굳혀둔 상황에서 굳이 그 환상을 깨트릴 이유가 없었던 천족들은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자들을 잔혹하게 대하는 걸 은연중에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의심이란 것이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그 어떤 독보다도 더 빠르게, 그리고 더 강하게 퍼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걸 이용하던 그들이었다.
때문에 그 의심이란 것이 천족들에게 돌려질 시 부작용도 크다는 걸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힘으로 아예 싸그리 다 죽여 없애는 건 최대한 피하던 놈들이었는데, 이제는 그걸 접어두고 본격적으로 밀어붙일 거라고?’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 당연히 했다.
하지만 놈들이 그 미친 모습을 보이기 전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안전하게 방어선으로 이동하고 그 직후 천족 놈들이 누디아의 왕성을 완전히 불태우는 장면을 과장하여 소문을 퍼트려서 그걸 더 크게 이용하려고 했다.
“···리시.”
“네, 주인님.”
“혹시 우리 다음으로 출발하기로 했던 대열 측에서 온 전령이 있었니?”
“···제 기억 상으로 아직은 없었습니다만.”
리시키다의 대답을 듣는 순간, 시온은 며칠 전부터 느끼던 불안감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너무 많이 괴롭혔고, 너무 많이 도발했다.
그래서 놈들도 결국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시뻘건 불꽃, 거대한 파도가 자신의 예상보다도 더 빨리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부사령관님!
시온 공자님!
크, 큰일입니다!”
그리고 저 뒤에서 다급히 달려오는 전령을 바라보며 시온은 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작품 후기―――――――
추천은 항상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