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86)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86화(386/439)
386―――――
다름 아닌 이곳에 있나니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냐고 묻는다면, 시온은 아주 당당하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니라고.
자신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염병, 피해가 너무 커.
히스파냐나 누디아는 물론이고 신성 프러센이나 요정, 하다못해 천족까지.
이거 이렇게 해서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게 된다.’
천족 음모 막는다고 해서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다.
살려봐라, 그건 즉 살아보라는 말과 같았고 시온은 이왕 이 몸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갈 거 말년의 말년까지 아주 빌어먹게 잘 살다가 가고 싶었다.
그런 부분에서 봤을 때 현재 빛의 교리에 대한 히스파냐와 누디아, 그리고 이종족들의 적의나 배신감은 분명 이득이 되고 있지만 그게 영원히 지속될 필요는 없다.
전쟁을 끝내지 못 하면 전쟁이 우리들을 끝낼 것이라는 말도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서로에 대한 분노를 광기로 내보이며 물고 뜯고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꺾는다.
그리고 그 의지를 꺾는 데에 가장 좋은 건, 스스로에 대한 고찰과 반성, 그리고 앞으로의 도약이지.’
괜히 집단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반성을 한다느니, 자아성찰을 한다느니 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외부의 지적을 덜 받기 위함도 있지만 때를 노려 그 집단을 공격하려는 자들에게 우리들이 변할 것이고, 그 변화의 과정을 다른 이들이 지켜볼 테니 괜한 짓 하지 말라는 소리다.
집단이란 으레 경쟁 상대가 있고 반대로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도 있기 마련이니까.
지금 상황에서 빛의 교리는 비록 많이 밀리는 중에 히스파냐와 누디아, 그리고 서쪽의 이종족들에게 버림을 받았다지만 여전히 수많은 교도들을 거느리고 있는 중이다.
만일 그들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연합군의 병사들이 외치며 살기등등한 모습을 보인다면 정말 그들 하나, 하나를 찾아 죽일 때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국가도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빛의 교리에 실망한 자들을 이해시키고, 동시에 여전히 빛을 믿는 자들과 싸우지 않아도 되는 방법.
바로 그 방법을 시온은 얼마 전부터 고민했었고 가장 적절한 시나리오를 찾아냈다.
시온이 떠올린 시나리오의 이름은, ‘미워도 다시 한 번’ 이었다.
“잠깐, 잠깐만요!
인간, 인간!
잠시만요!”
물론 지금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시온을 붙잡으려는 쪽은 샤였지만 말이다.
“···.”
시온은 우뚝 몸을 멈춰 세우고는 마치 할 말을 생각하듯, 그게 아니라면 상대방에게 자신을 붙잡은 이유를 묻듯이 가만히 서있었다.
그런 시온의 반응에 샤는 아직 다 낫지 않은 부상으로 인한 고통을 애써 참듯 가쁘게 숨을 내뱉으며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지금, 지금 뭐라고 하셨죠?
다시 한 번 말해보세요.”
“왜 그러시는지.
혹 죄인 주제에 감히 그런 말을 한다느니, 뭐 그런 비슷한 식으로 꾸중이라도 할 거면 딱히 입을 열고 싶지 않습니다만.”
“그런 게 아니에요.
절대로.
이유는 나중에 설명해드릴 테니 방금 말했던 그 구절.
다시 한 번 말해보세요.
천천히, 정확하게.”
이게 바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의 여유이자 특권이고 재미 아니겠는가.
속으로 낄낄 웃으면서도 겉으로는 무척이나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을 유지한 채, 시온은 아주 살짝 고개만 돌려 엉거주춤 앉아있는 샤를 바라보았다.
“부탁하는 겁니까?”
“···네?”
“설마 당신을 포로로 붙잡은 이쪽에게 명령을 하는 건 아닐 테고.
딱히 내놓을 만한 거래 조건도 없으니 거래나 요청도 아니겠고.
그렇다면 결국 남는 건 이쪽에 대한 부탁일 텐데요.”
“그, 그런···.”
“우리들의 명백한 적인 당신을, 다 죽어가던 당신을 우리들이 살렸고, 비록 포로이지만 천족 측의 고위 인사임을 감안하여 최대한 편의를 봐주고 예의까지 차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 그 호의가 권리인 줄 알고.
여기가 아직도 신성 프러센인줄 알고 그러시는 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최상위 천족, 샤님.”
예를 갖추고 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 뼈가 담겨있다
무엇보다 시온의 표정이나 목소리에는 어느 순간 나긋한 기운이 전부 사라지고 대신 찬바람 폴폴 날리는 혹독함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
시온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모습을 보이길 원하는지 이제는 샤도 알아차렸다.
눈앞의 저 인간 남자는 자신이 천족 중에서도 가장 높은 급인 최상위 천족임을 알면서도 저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싫으면 말라는 듯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의 자유라는 듯이 말이다.
원래라면 말도 안 되는 짓이라며 거부했을 것이다.
인간들을 포함한 이종족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샤이지만 그래도 격이라는 게 있고, 인간에게 저자세를 보이기에는 최상위 천족이 가지는 힘이나 명예, 권위가 너무 컸다.
“···당신의 이름이 뭔가요.”
“시온 클라우젠입니다.”
“시온 클라우젠, 시온 클라우젠···.
그랬군요.
그랬어.
당신이 그 유명한 히스파냐의 영웅.
왕국을 이끄는 새로운 빛이라고 불리던 그 젊은 귀족이군요.”
하지만 여기서 자존심을 지키기에는 샤 본인의 호기심이, 그리고 궁금증이 너무 컸다.
인간, 분명 자신 앞에 서있는 저 존재는 확실한 인간이다.
그런데 그 인간이 오직 자신들, 최상위 천족들만 알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구절 중 하나라고 여기는 부분을 거리낌 없이 언급하고 있다.
혹시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샤는 저 인간 남자의 말을 다시 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온 클라우젠.
방금 당신이 했던 말.
다시 한 번만 들려주세요.”
그래서 샤는, 최상위고 천족이고 모든 자존심을 접어둔 채 그렇게 말했다.
“···.”
이 정도 했으면 충분히 툴툴거렸고 받을 거 다 받았다고 생각한 시온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릴리트가 본다면 또 여자 앞이라고 멋져보이게 하려고 아주 별 짓을 다 한다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부분은 꽤나 중요한 일이었다.
‘천족들도 아름다운 외모를 꽤나 우대하거든.
당장 본인들이 선남선녀인데 외모우대주의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지.’
그런 의미에서 이 몸뚱이는 정말 타고 났다고 볼 수 있었다.
서큐버스 퀸조차 넘어간 얼굴에 딱 보기 좋게 균형 잡힌 몸매, 덤으로 듣기 좋은 미성까지.
정말 마음먹고 사기를 친다면 상대가 어느 누구든 다 넘어갈 만한 조건인데 그걸 이용하지 않는다면 무척이나 섭섭할 것이었다.
“정중하게 부탁하시니, 들어드리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우아한 자세로 살짝 허리를 숙여 보이며 다시 처음의 나긋한 어조로 돌아온 시온.
그리고는 샤가 원하던 대로, 그리고 자신이 원하던 대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리.”
“···역시나.”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그 구절이다.
자신들, 최상위 천족들만이 알고 있는 성언이며 그들만이 알고 있는 구절 중에서도 특히나 가지는 무게가 상당한 것인데 이 인간은 마치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듯 말하고 있다.
“당신이 지금 내게 말한 그 구절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나요?
시온 클라우젠?”
“글쎄요.
당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가 대답해야 할까요?
설사 대답한다고 해도, 그게 거짓일지 아니면 진실일지도 장담할 수가 없는데.”
“···.”
시온의 대답이 상당히 얄미웠던 것일까, 샤는 얼굴을 살짝 일그러트리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샤를 바라보며 문제라도 있냐는 듯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그래, 저 남자의 말대로 내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줄 필요는 없어.’
샤는 조금 더 집중해서 시온을 살폈다.
혹시나 저 남자가 성흔 보유자, 신이 머물다 간 흔적을 몸에 품은 자가 아닐까 생각해서.
자신들이 찾은 성흔 보유자는 총 다섯.
그 중 둘은 피난민들로 위장하여 히스파냐로 들어갔고 셋은 마족들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느라 후방에서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나머지 둘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한지라 결국 포기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만약 이 남자가 그 둘 중 하나라면 모든 게 이해될 수 있었다.
천족들마저 전부 이해하기 힘든 힘을 지닌 자들, 그게 바로 성흔 보유자다.
강하다기보다는, 응당 마나를 토대로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세상에서 그걸 벗어나 오직 그 힘만으로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 놀라운 부분이었다.
여기서 샤는 아직 알지 못 하는 사건, 시온의 성흔 보유자 제거가 빛을 발했다.
트리샤에 대한 정보를 여태까지 숨겨왔고, 그녀가 행했던 일들은 모두 다른 마법사들이 협동을 하여 일으킨 것으로 포장되었다.
당연히 트리샤의 능력은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고, 다만 견습기사 수준으로 알려진 것 외에는 천족들의 첩자들이 집중하지도 않았다.
애당초 그들은 트리샤보다는 라이도의 딸이며 마법 천재라던 루시아.
묘은족의 공주라는 리아, 그리고 어디선가 뚝 떨어져서 자신들을 검격 한 번에 썰어버리던 김유현한테만 신경을 썼으니 자연스레 트리샤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당연히 그녀가 성흔 보유자라는 사실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 할 일.
더불어서 또 다른 성흔 보유자, 캡틴은 그걸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시온의 손에 의해 아주 조용하고 깔끔하게 제거되었다.
신성 프러센이 그를 주시하고 한 번 이용해볼까 한 적은 있지만 그가 자신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어 그가 성흔 보유자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 한 것이다.
덕분에 성흔 보유자, 소설 속 칠익이라 불리던 이들 중 현재 천족들의 옆에서 뿔피리를 불 자들은 다섯이었는고 샤가 또 다른 성흔을 보유한 이가 어쩌면 이 남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알아내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겠지만,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흔적은 찾을 수 있어.’
샤는 부상으로 인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님에도 입술을 깨물며 온 정신을 집중했다.
눈앞의 저 인간 남자를 바라보며, 제 마력을 전부 사용해 아주 샅샅이 조사하며 만약 성흔 보유자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품어본다.
하지만 잠시 후, 샤는 더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마나도, 마력도 한 톨 느껴지는 게 없다고?’
아무리 인간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마나를 다룰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미약하게라도 마력을 보유하고 있음이 당연하다.
그게 이 세상에 내려진 신의 축복이라고, 천족들은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하지만 시온 클라우젠은 그 축복에서 전혀 벗어나 있었다.
아무리 살피고 또 살펴도 그의 몸에서는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고, 마력을 다룰 수 있는 그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텅 비어버린 공동을 바라보는 느낌.
분명 마나가 자리해야 할 공간은 있고, 오히려 다른 이들보다 그 크기가 훨씬 더 큰데도.
마치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들어 차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잠깐만.
잠깐만?’
그러다 말고 샤는 시온에게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텅 비어버린 공동에서 느껴지는 것은 마나가 아닌, 이해할 수 없는 회색의 기운.
샤는 그걸 멍하니 지켜보며 언젠가 스스로 중얼거렸던 뭔가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회색으로 빚어지는 앞에 설 지니, 마침내 너희가 빛이리라.
―
그것이 자신들, 천족들에게 내려진 과업이었다.
그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회색 앞에 서서 빛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릇되고 타락했으며 옳지 못 한 것들 모두를 불태워 재로 만들고 그 앞에 서려고 했던 것이 바로 자신들, 천족이었다.
회색이라는 말하는 부분이 세상을 재로 만들어 흑도 백도 구별이 불가능한 세상이라 여겼고.
선도 악도 전부 무의미한 그 회색빛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시금 시작하게 해야 비로소 자신들이 진정한 빛이라고 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었다.
“···시온 클라우젠.”
마나를 다룰 수 없는 이들은 그녀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 같이 내부가 꽉 막혀있었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마나가 자리할 수 없었던 것이고, 그런 이유로 마력을 운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저 남자처럼, 시온 클라우젠처럼 거대한 공동에 회색빛을 띠는 자는 빛에 맹세코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 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
“···.”
갑작스러운 샤의 말에 시온은 속으로는 무척이나 당황했지만 여전히 겉으로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천족 여인이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생각하던 시온은 곧 자신이 조금 전 말했던 소설 속의 종교 구절임을 떠올리고는 재빠르게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답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아나, 지혜로운 자는 남의 권고를 듣느니.”
시온의 대답을 들으며 샤는 의심이 확신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지금 자신과 시온이 주고받은 말은 어디까지나 자신들, 천족들만 알고 있는 성언들이다.
인간은 물론이고 요정들도 알지 못 한다.
그들은 다만 빛의 위대함을, 그리고 어둠의 위험을 강조하며 찬송할 뿐이다.
“···당신, 도대체 뭔가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질문이군요.
이름을 물을 리는 없고, 출신을 묻는 것도 아닌 듯 한데 도대체 뭐냐는 질문이라.”
“제발!
부디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부탁입니다.
이건,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에요.”
샤의 무척이나 갑작스러운 요청에 시온은 살짝 당황해야만 했다.
조금 전까지 나름 여유롭던 모습의 최상위 천족이 당혹스러운 모습을 숨기지 않더니 이제는 아예 당장 무릎을 꿇고 빌 것처럼 애원하다시피 부탁을 하고 있으니까.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째 자신이 생각하던 방향과 왠지 모르게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 시온이었지만 이미 스스로 물을 엎지른 상황에서 그걸 다시 주워 담으려고 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정체를 물었나요?”
“그래요.
당신의 정체, 당신이 무엇인지.”
“나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거짓말!
그럴 리가!
솔직하게 말해줘요, 솔직하게···.”
“솔직한 대답입니다, 샤.
평범한 인간이기에 빛을 원하면서도 때로는 어둠으로 걸어 들어가기도 하고, 그곳에서 다시 나와 길을 찾기도 하지만 반대로 길을 찾지 못 해 그곳을 헤매기도 하는 그런 인간이요.”
솔직히 말하자면 남의 눈치 보느라 빛에 있는 것처럼 하고 정작 마음은 어둠에 있는 것이었지만 시온은 그 와중에 또 본능적으로 혀를 놀리는 중이었다.
덕분에 샤는 또 한 번 충격을 먹어야만 했다.
만에 하나, 자신들에게 내려진 과업이 이 세상을 재로 만다는 게 아니라면.
모든 걸 회색으로 바꾸고 그 앞에서 스스로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이지만,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천족과 동일하게 신에게서 성언을 부여 받고.
그 안에 어떤 것도 머물지 않은 상태로서, 말 그대로 회색의 빛을 유지한 채 천족들이 과연 빛의 후예라고 불릴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한.
그래, 말 그대로 진정한 ‘신의 사자’ 라면, 도대체 자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설마, 당신이 그 회색빛인가요?”
“···예?”
“우리 빛의 후예들, 아니.
천족이라는 자들을 신의 이름으로 판단하기 위해 내려진 사자.
혹 우리가 교만하고 오만방자해져 빛을 가벼이 여기고, 어리석고 미약하여 그 뜻을 잘못 이해한 게 아닐까 보내진 대리인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건 또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난 그냥 너희 천족이 무조건 정의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이 비둘기 여자야.
황당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 하며 시온이 샤에게 막 뭔가를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이미 늦었어, 샤.”
갑자기 누군가가 안으로 휙!
하고 들어선다.
그리고는 무척이나 고상하고 우아한 자세로 시온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달콤하게 속삭인다.
“너희 천족들이 오만하고 방자해져 그릇된 길로 걸어가는 동안, 신의 사자는 이미 너희들에게 실망하여 직접 스스로 빛을 바로 세우실 작정으로 모든 이들을 끌어 모으고 계시니까.”
“다, 당신은?”
샤로서는 정말 육성으로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
최상위 천족의 대적자이자 자신들과 유일하게 견줄 수 있다고 여겨지는 또 다른 최강자.
최고위 마족, 서큐버스 퀸, 릴리트가 인간 남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중이었다.
―――――――작품 후기―――――――
본격 부부 사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