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89)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89화(389/439)
389―――――
다름 아닌 이곳에 있나니
“괜찮겠습니까?”
샤의 막사 곁에 붙어 그녀를 감시하고 있던 김유현.
그는 바깥으로 나온 시온이 이제 그만 되었다는 듯 가서 쉬라는 말에 그리 질문했다.
자신의 공격으로 인해 엄청난 부상을 입었고,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지만 강자는 괜히 강자가 아니다.
아마도 김유현 자신을 제외한 이들을 잠시나마 뿌리치고 이곳을 이탈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자신이 여기 남는 게 낫지 않겠냐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괜찮아.
조금 전까지는 몰라도 이제부터는 이곳을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이곳을, 그리고 여기 사람들을 몰래 살피고 싶어 할걸?”
“정보를 얻기 위해서 말입니까?”
“아니,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는지를, 그리고 내 말이 옳은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공자님의 말씀이 옳은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입니까?”
“그래.
너도 내가 이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대충은 들었겠지?”
김유현이 어디 보통 실력자도 아니고,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과 샤 간에 오고갔던 이야기를 다 들었을 것이다.
다만 그가 자신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일부러 감각을 닫아서 그걸 듣지 않았을 뿐이고.
“···아주 조금만, 우연하게 들었을 뿐입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빠르겠네.
이미 그녀에게도 말했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저들을 몽땅 다 살해하고 싶은 괴물이 아니야.
그저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은 자들.
억울하여 들고 일어났지만 오해를 풀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지.”
“허나 적들은 다릅니다.
저들은 여전히 공자님을, 저를, 그리고 이곳의 모든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들을 적으로 여기고 명백한 적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적이 명백하다면 당연히 자비를 베풀지 말아야지.
전부 쳐 죽이는 것, 그게 전쟁에서의 예의니까.
하지만 김유현.
그렇게 해서 흘리는 아군의 피가 너무 많다면 재고해볼 만 한 문제야.
우리들은 여기에 저들처럼 증오로 눈이 멀어 헛소리를 지껄이기 위해, 그릇된 신념에 빠져 함부로 창칼을 휘두르려고 온 게 아니니까.”
“···.”
“그리고.”
시온은 슬쩍 손을 들어 김유현을 가리켜보였다.
그에 김유현은 갑자기 왜 그러냐는 듯 시온을 쳐다보았고 곧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에 아, 하고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에카테리나가 심심하면 괴물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네가 정말 괴물은 아니잖냐.
넌 사람이라고.
냉정하다고 해도, 망설임이 없다고 해도 그게 영원한 방어책이 될 수는 없지.”
“무슨 말씀을···.”
“네가 누구를 해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강하지만, 그 누구보다 강하지만 그만큼 힘이란 것이 덧없음을 알고 있겠지.
나는 내 사람들이, 그리고 네가 나로 인해 고통스러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
“꼭 죽여야 하는 자라면 응당 네게 맡길 거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너와 싸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저 아무런 의미 없는 살육일 뿐이라면 난 말릴 생각이야.
그리고 그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생각일 뿐이다.”
시온의 말에 김유현은 저도 모르게 뜨끔하고 말았다.
그가 말한 대로, 자신은 아직도 누군가를 해하는 일에 무의식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중요한 순간을 눈앞에 두고 망설이거나 하는 그런 멍청한 짓은 절대 아니지만, 애당초 적을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혹 자신이 잘못된 건 아닐까 여러 번 생각했었던 김유현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이 남자는, 누군가와 싸우기는커녕 제 몸 하나 지킬 마력조차 없는 이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자는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이 더 노력하여 네가 나서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주마, 너와 다른 이들이 무고한 자들의 피까지 뒤집어쓰는 일을 어떻게든 줄여보마.
어쩌면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는 남자의 입에서 가장 강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 나오고 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다른 이가 말한다면 그저 비웃음만 나올 말이지만.’
이 남자라면, 시온 클라우젠이라면 어째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처럼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적들의 피를 흠뻑 뒤집어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그저 환상이라고만 여겼던, 싸우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샤이엘라의 출입을 허락해도 된다.
그리고 만약 샤가 여기를 살펴보고 싶어 하면 네가 붙어서 다니면 될 거다.”
“당연히 그러겠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맡기기에는 영 불안해서.”
“아, 그리고 네가 따라다니게 될 때 항상 이 길로 움직이게 만들어.”
시온이 내민 것은 숙영지의 상황을 그려둔 일종의 지도.
거기에서 어느 길을 따라 붉은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시온은 그 곳으로 샤를 안내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빠지게 하지 말고, 그 주변만 둘러보게 해.
다른 곳도 보고 싶다고 하면 이 이상은 군의 목적상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말하고.”
김유현은 시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내민 지도를 챙겼다.
왜 시온이 자꾸 그에게 정해진 길을 보여주며 거기로만 안내하라고 강조를 하느냐.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에게 이로운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곳만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하여 샤의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아, 주인님!”
김유현과 헤어진 후, 자신의 막사로 돌아온 시온은 후다닥 자신에게 달려드는 리시키다를 바로 앞에서 멈춰 세웠다.
처음에는 안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점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소녀틱한 부분이 살아나는 그녀인지라 이렇게 둘만이 있는 공간에서는 냅다 뛰어들어 안기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었다.
“리시, 안기는 건 좋은데 너무 달려들지는 말자.
알겠지?”
이 몸뚱이가 전에 비해서 많이 튼튼해지기는 했어도 아직 상급 기사의 전력 돌격을 받아줄 만큼 강한 건 아니라서 말이다!
차마 그 말을 밖으로 내뱉지는 못 하고 다만 다른 이들이 보면 곤란하다는 말로 대신하는 시온이었다.
“아, 네.
그보다 주인님, 히스파냐에서 방금 전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서신?”
히스파냐에서 도착했다면 최소한 며칠 전의 내용이 적혀있을 터.
시온은 혹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 건 아닐까 하여 리시키다가 공손한 기색으로 내민 서신을 받아들고는 바로 펼쳐보았다.
“···.”
다행히도 서신의 내용은 걱정하던 것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것들.
왕성에 침입자들이 생겨났으나 그날 당일 전부 격퇴 당했다고 하며 당연히 그들을 처리한 이들은 루시아와 리아, 그리고 트리샤라는 소식이었다.
‘역시 에라더에게 접촉할 줄 알았다, 이놈들아.
선이니 정의니 하는 것들이 항상 보면 가장 더럽고 추악한 짓들을 잘들 하던데 딱 그 짝이군.’
이것으로 남부와 왕성에 들이닥칠 것으로 예상되던 위협들은 전부 걷어냈다.
물론 남아있는 광신도들이 있을 수도 있고, 다 막은 줄로 착각한 이쪽이 방심한 틈을 타서 다시금 습격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상황이 아예 달라졌다.
당장 신성 프러센, 요정, 그리고 천족들은 김유현이라는 최악의 적이 등장함에 따라 순식간에 정면 힘싸움에서 밀려서 완벽하게 코너로 몰렸다.
이런 때에 아군을 분산시켜 봤자 얻는 것이라곤 약간의 시간이 전부, 그 후에는 정면에서 날아드는 무시무시한 망치를 막을 수가 없는 것이 뻔했다.
시온이 일부러 약간의 시간을 주는 것도 비슷한 이유.
혹여 또 무슨 이상한 짓을 해보겠다고 힘을 퍼트리는 게 아니라 아예 한 번의 전투에서 완벽하게 역전하기 위해 세력을 집결시키라고 천족의 등을 떠밀어 준 것이었다.
“히스파냐에서 루시아와 리아, 그리고 트리샤가 출발했다네, 리시.”
“어, 그렇다는 건···.”
“내 예상대로 놈들이 뒤에서 수작을 부리려고 했었고, 그걸 성공적으로 막아냈다는 소리지.”
“정말인가요?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래, 정말 다행이지?
셋이 아무 탈 없이 일을 잘 마무리했다니까.”
“네!”
흐음, 정말 순수하게 기뻐하는 건가?
아니면 이 정도 함정은 바로 피해버린 건가.
시온은 그리 생각하며 볼을 긁적여야만 했다.
만약 이런 소식을 릴리트에게 전달했다면 물론 기뻐하면서도 ‘쳇, 공을 세웠다면 결국 경쟁만 더 심해진다는 소리잖아!
아이고, 이런 제에엔장!’ 라고 투덜거리기도 했을 것이다.
리아도 그렇고, 그 마음씨 좋다는 루시아도 장난조이긴 하겠지만 분명 그와 비슷한 뜻을 지닌 말을 했을 것이었다.
‘트리샤는 두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리시키다는 자신의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여인들이 시온의 말을 제대로 따라서 공을 세우고 당당하게 이리로 오고 있다는 소식에도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무척이나 환하게 웃으면서 얼른 그녀들을 보고 싶다는 말까지 하고 있는 중이었다.
“리시?”
“네, 주인님!”
“그, 뭐라고 해야 할까.
아주 조금이라도 질투 같은 건 안 나니?
그 셋이 왕성으로 침입한 적들을 잡아서 처리했으니 큰 공을 세운 거고, 너보다 더 빛날 수 있게 된 거잖아?”
“좋은 거 아닌가요?
그 분들의 공은 곧 주인님의 공이고 그 분들의 영광은 곧 주인님의 영광이니까요.”
그렇게 답하면 여태까지 조금이라도 의심을 한 내가 나쁘게 느껴지잖니.
시온은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며 확실히 리시키다는 충성심 높은 강아지, 그 중에서도 ‘인절미’ 라고 불리곤 하는 골든 리트리버 같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예전에 자신도 모르게 트리샤에게 질투심을 품고 조금 험하게 대했던 것에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보다는 남을 더 위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었는데 김유현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매콤한 여인들이 많은 시온에게 있어 정말 하늘이 주신 선물이었다.
‘그래, 제발 리시 너 만큼은 흑화하지 말자.
우리 댕댕이 리시는 지금이 좋다, 좋아!’
트리샤는 원래의 성향에 더해서 시온 자신이 밀어 넣기까지 한 이유로 흑염룡이 되었고, 쟌은 처음부터 그냥 허리 꺾는 것이 자연스러운 여인이며 릴리트는 어찌 되었든 마족이다.
리아는 귀엽기는 해도 아무튼 고양이인지라 앙칼진 부분이 있고, 루시아는 분명 따스한 여인이지만 하필이면 라이도의 피를 물려받은 터라 아주 조금은 걱정이 되는 중이다.
헬렌은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터놓는 것을 조금은 불편하게 여기고 있으니 결국 다른 여인들과 아무 갈등 없이 지낼 만한 이는 리시키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리시?
내일부터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말씀만 하세요.”
“내일이 되면 김유현이 포로로 잡은 천족 여인과 함께 움직이게 될 거야.
그들이 숙영지의 어디로 가는지, 가서 어느 것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이던지 다 확인해주면 좋겠는데.”
“네, 알겠습니다!”
이유도 묻지 않고 일단 하겠다는 자신의 호위 기사였다.
너무 수긍만 하는 거 아니냐고 묻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리시키다는 바로 그 충성심이 자신의 진심을 보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있는 여인이다.
거기에서 괜히 딴지를 걸다가는 갑자기 축 늘어져서는 뭐가 잘못되었냐고 묻는 순간 바로 울먹거리는 여인 달래느라 진땀을 빼야 할 것이 훤히 보이는 상황.
어째 이런 여인에게 괜히 나쁜 짓을 시키는 것 같아 조금은 미안해졌지만 어쩌겠는가.
아쉽게도 그녀의 주인이란 남자는, 자신은 결코 좋은 놈이 아닌데 말이다.
‘히스파냐의 일이 끝났다면 루시아와 리아, 트리샤도 합류한다.
그리고 더해서 며칠 후에 도착할 예비대, 그리고 그 뒤에서 오고 있을 요정과 수인들의 전사들.
모든 등장인물이 모이는 바로 그 순간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향하는 거다.’
저자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멍청하게도 그걸 전부 불태우겠다고 하여 망하고.
자신은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각자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걸 지켜주려는 모습을 보였기에 흥할 뿐이다.
천족들은 간과했다.
남에게서 뭔가를 빼앗는 것이 얼마나 큰 반감을 불러오는지.
그리 하여 얼마나 거센 역풍을 맞아야 하는지 말이다.
시온은 바로 그 부분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그 빈틈에서 순식간에 세를 불리고 성장하였다.
―착한 놈이 영웅이고 나쁜 놈이 악당?
그게 아니다.
내가 쥐고 있는 걸 지켜주는 자가 착한 놈이자 영웅이고, 내가 쥐고 있는 걸 뺏는 놈이 나쁜 놈이고 악당일 뿐이다.
―
아버지, 당신은 정말 제 영웅이십니다!
시온은 그렇게 외치며 모든 게 끝나면 고향 쪽을 향해 큰절 한 번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릴은 바스러지고, 샤는 행방불명, 혼은 패퇴했다.
한 가지 소식만 들어도 머리가 멍할 지경인데 셋을 전부 듣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꺼윽, 끄으윽···.”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차 말을 들을 걸 그랬어, 그렇지?
루?”
우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마족의 목이 흉하게 뒤틀렸다.
혀를 빼문 채 그대로 절명한 시체를 내려다보던 단은 한숨을 내뱉으며 그걸 집어던졌다.
“죄인들 따위 금방 처리한다고 했잖아.
그래서 우리들은 남은 찌꺼기들 좀 치우고 있었는데,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루, 어떻게 생각해?”
“···.”
가장 순수한 것이 항상 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악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하얀 것일 지도 모르겠다.
루는 그렇게 생각하며 붙잡은 마족들을 하나씩 하나씩 산 채로 죽이고 있는 단을 바라보며 침울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차에게 리더 자리를 양보했다.
내 실책을 인정하는 뜻에서.”
“당연히 그래야지.
듣자하니 샤이엘라가 배신을 했다던데.
간신히 도망친 자들 입에서 나왔다지?
빛의 후예 하나가 다른 동족들을 공격하는데, 그들이 샤이엘라라고 불렀다고.”
“그건···.”
“말하지 마.
무슨 말을 듣든 화가 나서 험한 짓을 할 지도 몰라.”
단은 그리 중얼거린 후 ‘이 여자는 왜 안 오는 거야.’ 라고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그가 바라보던 하늘 끄트머리에서 새하얀 뭔가가 점점 다가오더니 이내 천족의 형태를 띠며 대지 위에 안착했다.
“어서 와, 앤.”
“소식 들었어요.
릴이 빛의 곁으로 돌아갔다고요.”
“맞아.
하여간에, 그렇게 날뛰다가 그럴 줄 알았어.”
“입조심하세요, 단.
그녀는 과업을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자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훌륭한 동료이자 충실한 빛의 종복이었고요.”
“아, 예.
그러십니까.”
소년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단은 마치 사춘기가 이제 막 찾아온 소년처럼 투덜거릴 뿐이었다.
그에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앤은 뭐라고 한 마디를 하려다가 옆에 서있던 루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뱉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샤이엘라 일은 잊어요, 루.
그 아이는 너무 오랫동안 밖에 있었고, 결국 우리가 우려하던 대로 타락하고 만 것이에요.
이제는 동족도, 혈육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적이에요.”
“···알고 있어.
당연히 알고 있지.”
“인간들은 이런 걸 콩가루 집안이라고 하던데.
아, 우리들은 이게 해당이 안 되려나?”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단.”
앤의 싸늘한 경고에 단은 어깨를 으쓱이며 여전히 장난을 쳤지만 입은 확실히 다물었다.
여기서 더 말을 하다가는 반 진담으로 정말 빛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혼은 어디 있나요, 루?”
“현재 차와 이야기 중이다.
새로운 적, 전혀 예상치 못 한 적, 우리가 어리석게도 낮게 봤었던 적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더군.”
“릴을 해쳤다는 그 인간 말이군요.”
순간이었지만 앤의 두 눈동자에 시퍼런 불꽃이 이글거리다가 곧 사라졌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날아가서 그 원수를 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혼자서는 승리는커녕 자신의 안위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루,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못 해도 넷은 붙어야 하나의 빛도 잃지 않고 그 인간을 처단할 수 있을 것 같더군.”
“···넷이나요?”
“그것도 최소로 잡은 거다.
솔직히 말해서는 그냥 우리 전부가 한꺼번에 달라붙어서 그 자를 처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루의 말에 옆에서 잠자고 듣고 있던 단이 냉소를 내뱉고 말았다.
앤도 딱히 단을 말리지 않으면서 루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고.
“루.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에요.
비록 인간들 사이에서 특이한 자들이, 그리고 강한 자들이 나온다곤 하지만 우리 전부가 한 명의 인간을 상대한다니요?”
“이미 그자의 손에 두 갈래의 빛이 추락했어.
여기서 한 두 명이라도 더 잃는다면, 기껏 꺾어둔 마족들의 세력이 다시 늘어날 수 있다.”
“그래도···.”
“내가 분명 말했을 텐데.
그 어떤 것도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고.
내 말에 따라 마족들을 약화시키고, 각개격파하고, 그렇게 하여 그들을 완전히 내쫓은 다음 천천히 우리들의 세를 넓혀 말 몇 마디만으로도 교도들이 일어서서 세상의 정화에 스스로 몸을 바치게 만들 수 있었어.
하지만 일이 조금 꼬이자 너희들은 이 답답한 상황에 불만을 표출했지.
그 결과는?
지금 보는 그대로다.
인간이 여덟 빛 중 둘을 꺼트렸다.”
“···.”
“···.”
앤도, 단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기까지 자신들을 이끈 것은 루였고 비록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확실히 천족들은 그 덕분에 별 다른 피해 없이 마족들의 세력을 완전히 찍어 누를 수 있었고 과업을 완수하는 데에 있어서 무척이나 쉽게 나아갈 수 있었다.
빛이라는 것을 퍼트리고, 그것을 다른 종족들이 믿게 만들고, 그들이 그것에 취해 이성을 잃고 신념만 가진 채 행동하게 하여 대륙의 반절이 자신들에게 넘어온 순간 갑자기 일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루는 여태까지 해왔던 대로 차근차근 일을 수정하고자 했지만 그의 동족들은 더는 참을 필요 없다고 외치면서, 비로소 과업을 힘으로 완수할 때가 왔다면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 결과는, 루의 말대로 참으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아, 여기들 있었네.”
이때, 뒤에서 또 다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백의 날개들을 접어내며 그들 곁으로 다가온 최상위 천족, ‘핀’ 은 평소와는 다르게 꽤나 다급해 보이는 모양새였다.
해서 앤이 그 이유를 물었는데, 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마족들의 뒤를 은밀히 살피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어.
아주 흐릿했지만, 상당히 구역질나는 흔적이 죄인들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다가 사라지던데.”
―――――――작품 후기―――――――
쿠폰 감사합니다아앗!
앞으로도 성실히 쓰겠습니다악!
추천 선작 코멘 감사드립니다!
노티 (극공) 투표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