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390)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390화(390/439)
390―――――
다름 아닌 이곳에 있나니
번쩍!―
“···아!”
샤는 다급한 기색으로 침대에서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최상위 천족이라는 그녀가 이리도 다급한 기색으로, 거기에 더해서 상당히 볼품없이 허우적거리는 이유는 단 하나.
어제부터 자신이 감시 ( 라고 하지만 사실은 릴리트가 어울려주고 있지만 ) 하고 있던 최고위 마족, 릴리트를 옆에 둔 채 그만 깜빡 잠이 든 것이었다.
‘어리석기는!
최악의 적을 두고 잠이 들다니···!
이런 나약하기 짝이 없는 몸뚱이!’
사실 그녀의 몸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것이, 가슴이 쩍!
하고 갈라져서는 말 그대로 피가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부상을 당했다.
천족의 자가 회복이 있다고는 해도 보통이라면 그 자리에서 즉사할 상처를 버틴 것이니 몸에 엄청난 무리가 갔음은 당연한 사실.
거기에 더해서 같은 천족인 샤이엘라의 치료 마법까지 거부했으니 상처의 회복 속도가 무척이나 더딜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모든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샤의 육체는 필수적으로 휴식, 그 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좋은 잠을 요청했고 뇌도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런 이유로 아주 푹 잠이 들어서 어제보다 조금은 괜찮은 몸 상태를 만들어두었더니, 이놈의 주인이란 자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몸뚱이라고 하니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 그러고 보니 릴리트!
그 여자는!’
방심했다, 안일했다, 자신이 바보였다!
당연히 평소의 자신을 생각하여 그녀를 옆에 붙잡아두고 감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몸 상태가 이러하니 감시는커녕 적을 옆에 두고 곯아떨어진 미련한 여인일 뿐이었다.
“리, 릴리트!
릴···.”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하던 찰나.
샤는 곧 하, 하고 기가 막히다는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크어어억!
크하아아···.”
“···.”
갑자기 어제 밤이 생각나는 샤였다.
절대 마족 따위와 같이 누울 수는 없으니 바닥에 이불이나 펴고 있으라는 자신의 말에 ‘뭔 개소리야!’ 라고 반항하던 릴리트였다.
하지만 샤는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그 김유현인지 뭔지 하는 무서운 남자가 올 것이라고 릴리트를 협박 하며 그냥 얌전히 바닥에서 자라고 일갈했다.
그에 릴리트는 일단 이불을 받아들고 맨바닥에 그걸 펼치면서도 ‘두고 봐.
네가 잠들면 널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거다.
그리고 넌 이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서 입이 돌아가는 거지!’ 라고 저주 같지도 않은 저주를 내리고 있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군요.
마족을 옆에 두고 천족이 잠을 자다니.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에요.
―
아무래도 해가 서쪽에서 뜨긴 뜨는 모양이었다.
마족을 옆에 두고 잠이 든, 심지어 누가 데려가도 모를 정도로 아주 푹 잔 천족이 있으니까.
아무튼 자신이 잠든 사이에 뭔가 이상한 짓을 할 거라고 당당히 말하던 릴리트는 현재, 바닥에 누워서 아주 팔자 좋게 늘어진 채로 배까지 내민 채 코를 골며 자는 중이었다.
어찌나 흉한 몰골로 자는지 그걸 바라보던 샤는 어제까지 가지고 있던 릴리트에 대한 경계심이고 적의고 전부 다 사라질 정도였다.
“쿠아아악!
커어억!”
“···.”
갑자기 왜 발로 차고 싶지.
샤는 그렇게 생각하며 정말 저 탐스러운 배를 확 차버릴까 하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아니다, 참자.
먹을 때와 잘 때는 건드리는 게 아니라는 성언이 있을 정도니까, 저 여자가 아무리 악하고 천한 자라도, 마족이라고 해도 잘 때는 봐주자.
“크어어억···.”
“···.”
샤는 자신보다도 더 잘 자고 있는 마족 여인을 보다가 시선을 슬쩍 막사 입구로 돌렸다.
대충 보아하니 이 여자는 아주 팔자 좋게 잠이나 자고 있고, 시온 클라우젠이 정말 빛을 포기하지 않은 자라면 이 여자를 경계할 이들을 주변에 배치해두었을 것이다.
마족에 대한 경계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이곳의 사람들을 살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샤였다.
어제 시온 클라우젠과 나누었던 대화가 정말일까, 이들은 다만 빛이 아닌 천족들을 저버리고 자신들 스스로의 힘으로 어둠을 헤쳐 나가며 빛으로 나아가려는 것일까?
‘알고 싶어.
이들이 빛을 저버린 죄인인가, 아니면 우리들이 저들을 바로 보지 않으려 했던 맹인인가.’
그리 생각한 샤는 릴리트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깨물고는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겼다.
만에 하나 저 여자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그것보다 화가 나는 일은 없을 테니 릴리트가 깨어나기 전에 빠르게 일을 마칠 생각이었다.
“···.”
“크허어억···.”
여전히 아주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는 릴리트를 확인한 샤는 막사 입구로 향했다.
마족이라 하면 항상 게으르고 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이들이었으니 그 중 최고라고 하는 수면욕을 이길 수도, 그리고 그 나태함을 이겨낼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샤가 점점 멀어지는 순간, 잘만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릴리트의 두 눈이 순간 번쩍!
하고 떠졌다.
여전히 간헐적으로 코 고는 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녀의 눈을 본다면 여태까지 푹 자고 일어난 자의 것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샤는 자신이 릴리트를 감시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그 반대, 릴리트가 샤를 감시하고 있던 중임을 그녀는 꿈에도 모를 것이었다.
스윽―.
막사의 입구를 슬며시 걷어낸 샤는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한 아침임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이들 기준에서 보자면 무척이나 일찍 일어난 것이지만, 원래의 샤는 새벽마다 일어나서 떠오르는 태양 쪽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는 게 습관이었으니 늦잠을 잤다고 할 수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아직 빛을 저버리지 않았다라.’
시온 클라우젠의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었지만, 반대로 생각하자면 그게 전부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말 여기 있는 자들이 죄인으로서 더 큰 죄를 짓기 위해 이빨을 드러낸 것인가.
아니면 빛이 아닌, 자신들 천족들에 대한 실망으로 이 자리에 모인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막 막사를 나서려고 하는데 별안간 샤의 눈앞에 뭔가가 쑥!
하고 나타났다.
“생각머리가 있는 거냐?
그런 모습으로 나갔다가는 당장 어제 너희에게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병사들의 동료들이 좋다고 하겠군.”
앞에 내밀어진 건 병사들이 이동하는 중에 비나 바람으로부터 체온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후드였다.
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호의인지 충고인지 모를 말을 해준 이를 바라보았고, 곧 그의 정체가 어제 자신을 추락시키고 릴을 바스러트린 자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신.”
“동료의 원수를 갚겠다느니 뭐라느니 헛소리는 하지 마라.
따지고 보면 서로가 서로의 원수니까 비긴 셈 치고 여기서는 조용히 있자는 소리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두 눈동자에서는 한 눈에 봐도 무척이나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찌나 차가워 보이는지 그 샤조차 움찔 놀라서는 은근슬쩍 시선을 피할 정도였다.
“걸쳐라.”
김유현은 다시 한 번 샤에게 후드를 내밀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입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입혀서 끌고 다니겠다는 말로 받아들여졌기에 샤는 별 다른 말없이 그걸 받아 들어서는 날개를 접고서 그 위에 걸쳤다.
덕분에 확 눈에 띄는 외모도 후드 안쪽을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볼 수 있는 것이 되었고, 등 뒤에서 펄럭이던 날개들은 완벽히 가려졌다.
“···일단은 고맙다고 해두죠.”
“억지로 인사할 것 없어.
나는 다만 내 일을 할 뿐이고, 너는 내가 죽인 자의 동료지.
그러니 고맙다는 말도, 괜스레 적의를 숨길 필요도 없다.”
어제 마주했던 시온 클라우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남자.
어찌나 찬바람이 부는지 샤는 자신이 인간과 대화를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한겨울의 삭풍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지 순간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적의 호의더라도 호의는 호의니까요.
인사는 당연한 겁니다.”“마음대로 해라.”
그리 말한 김유현은 다른 말없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묘하게 그가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최상위 천족조차 일격에 베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무력을 지는 남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 이른 아침부터 자신의 막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이유는 없다.
분명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고, 원하는 것이 있었을 터.
아무래도 저 남자는 자신이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막사를 나서서 뭔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 채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샤는 생각했다.
“···.”
“···.”
그렇게 김유현과 샤, 히스파냐와 천족의 최강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죽도록 싸우던 두 세력의 중요 인물들이 동행을 하는 기묘한 시간이 흐르게 되었다.
샤는 김유현의 뒤를 말없이 따르면서 어쩌면 자신의 두 눈으로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 진짜 의미의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어떻습니까?”
“어제보다는 많이들 좋아졌더군.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러.
혹여나 기도하는 구석이 있다면 계속해서 그러고 있고.”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부상병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이었다.
아침부터 동료들의 상태를 살피러 온 것인지 몇몇 병사들이 앞에서 기웃거리는 중이었고 마침 부상자들의 상태를 살피고 잠시 휴식을 취하러 밖으로 나온 이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중이었다.
마법사들 역시 이 전쟁에 참여했고, 그들 중 일부는 치료 마법을 전담으로 하는 자들이지만 말했다시피 사람의 몸을 원상 복구하는 마법은 보통 난이도 이상의 것.
수 천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을 상대로 그 적은 수의 마법사들이 일일이 마법을 쓰다가는 백 명도 채 넘기지 못 하고 탈진할 것이 뻔했다.
때문에 경각에 달하는 이들만 약간의 치료 마법을 받은 후 나머지는 의무관들이 그 병사들을 돌봐야만 했다.
“그 자식, 다시 일어날 수 있겠지?”
“걱정마라.
다리가 잘린 것도 아닌데 설마 못 일어날까.
허튼 생각 말고 네 다리 멀쩡히 살려서 고향으로 돌아갈 거나 생각해라.”
그렇게 말하는 병사들의 상태도 사실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한 명은 허벅지에 붕대를 감은 채 절뚝거리고 있고, 다른 한 명은 한쪽 팔을 다쳤는지 고정을 시켜둔 모양새였다.
당장 자신의 상태도 좋지 않은데, 자신부터 걱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저들은 그건 딱히 상관없다는 말투로 그렇게 이야기 하는 중이었다.
“···.”
샤는 말없이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순간적으로 자신 역시 치료 마법에는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저들이 걱정하는 자를 치료해줄까 생각도 했지만 이들이 죄인이라는 동족들의 말을 떠올리곤 그 생각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저기.”
대신 그녀는 마치 자신을 기다리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김유현을 불러 세웠다.
“왜 그러지.”
“어제부터 나와 함께 있던 그 마족 여인.
그 자가 혹 여기서 무슨 이상한 짓을 벌였다거나, 혹은 벌이려고 하지 않았나 해서요.”
“내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거라고 생각하나?
설사 한다고 해도 당연히 이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답하려고 할 터인데.”
“당신이란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 데에 소질이 없어보여서요.”
“···.”
“우리가 정말 껍데기만 믿고 빛의 후예라 자칭하는 건 아니에요.
상대방의 속을 들여다보며 검은색인지, 흰색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것인지 대략적인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뭐, 상대방의 속내를 들여다보기라도 한다는 건가?
그렇게 말하니 더더욱 수상하게 들리는군.
깊은 물속도 들여다볼 수 있다지만 마음이란 건 아무리 얕아도 들여다보기 힘들다고 하는데 바라만 보는 걸로 속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너무 곡해하여 듣는 경향이 있군요.
우리들은 다만 상대방의 심리를 읽는 것에 능하다는 말이에요.
우리 앞에 서는 자들은 대게 결국 그 틈이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그런 부분에서 봤을 때 시온 클라우젠이란 남자는 정말 죄인이 아니거나, 그게 아니라면 엄청난 연기력을 지닌 것이겠죠.
라고 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여자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다면 내가 가만히 뒀을까?”
김유현은 샤의 질문에 간접적으로 아니다, 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사실 릴리트가 무슨 꿍꿍이를 꾸고 있는 건 맞는데 그게 시온과 함께 하는 일이라 해로운 짓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할 말이 없군요.”
최상위 천족들을 그냥 말 그대로 가지고 논 수준의 김유현이다.
최고위 마족 하나 정도는 정말 마음만 먹으면 그대로 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강자.
때문에 샤는 김유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둘은 다시금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샤는 김유현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따라 걸으면서 이곳저곳을 바라보고, 그러다가 가끔 김유현이 발걸음을 늦추면 그가 안내하는 곳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슬쩍 둘러보았다.
혹시나 자신이 놓칠 수도 있는, 이들이 빛을 저버리고 어둠과 결탁한 증거라도 찾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샤는 딱히 별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신성 프러센의 사람들과 별반 다른 것이 없는 모습, 오히려 그들보다도 더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들과 똑같이 일어나서 똑같이 식사를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고생했다는 말을 해준다.
누구는 먼저 떠난 이들을 생각하며 우울해하고, 또 누구는 그런 자들을 위로해준다.
그 모습에 자신을 속이려는 의도는 느껴지지 않고 다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응?”
그러다 말고 샤는 낯이 익은 누군가가 병사들 사이에 섞여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샤가 발견한 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시온 클라우젠.
분명 이쪽의 지휘관일 텐데, 저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처럼 고귀한 존재일 텐데 시온은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모습으로 그들 틈에 섞여서 스스럼없이 그들을 대하고 있었다.
“고귀하다고 해서 굳이 높은 곳에만 있을 필요는 없겠지.”
“···.”
“높은 곳에만 있다 보면, 낮은 곳에서 지내는 자들을 똑바로 볼 수 없거든.”
김유현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둘러보라는 듯 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도 눈치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는 그녀가 혼자 있게 해주는 것이 차후 이쪽의 계획 진행에 있어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
샤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시온 클라우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 남자의 말대로, 오만해져 죄를 지은 건 우리인 걸까?
아니면 저자가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일까.’
그리 생각하던 천족 여인은 문득 병사들과 기사들이 시온의 말에 집중하고 있음을 눈치 채고는 그가 무슨 중요한 이야기라도 하는 것일까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걱정하지들 마라.
우리들이 이럴 수밖에 없다는 걸 빛도 아실 테니 정말 빛이 ‘빛’ 이라면 믿는 자들을 전부 불태우겠다는 자들에게 광명을 내리시지는 않겠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결국 전부 속았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도 빛의 후예들, 천족하면 우리들을 위해줄 존재들 같은데.
속았다는 생각만 드니 침울하고 비참할 뿐입니다.”
견습기사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우울한 기색으로 그리 말하자 시온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는 나긋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세상이 너희들을 속일 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또한 밝은 날, 빛나는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기사들과 병사들을 다독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샤는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흔들리는 저자들을 잡아주는 건 자신들이어야 하는데, 스스로를 빛의 후예라고 하는 천족들이 해야 하는 일인데.
그걸 저 남자에게 떠맡기게 된 것 같아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작품 후기―――――――
삶이 그대를 속일 지라도―알렉산드르 푸시킨
나는 지금 너를 속일 것이다―시온 클라우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