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404)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404화(404/439)
404―――――
이번 기회에
히스파냐와 누디아 연합군, 그리고 신성 프러센 군 사이에는 얼마 전부터 두 진영 간에 합의한 적은 없으나 암묵적으로 긴 경계 지대가 생성되었다.
저번의 치열한 전투 이후 워낙 피해가 컸던지라 서로가 서로를 향해 이전처럼 창칼을 들이대는 게 아니라 잠시 쉬면서 전황을 살피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후우.”
요정들 사이에서 ‘숲의 의지를 잇는 자’ 라고 불리는 핀츠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는 자신 휘하 급진파 요정들과 함께 이 일대를 순찰하고 있는 중이었다.
적대적인 행위가 아예 끝난 건 아니니 경계는 당연한 일.
더해서 이쪽은 멍청하게도 자꾸 죄인이 되겠다며 이탈하려는 자들을 처단하느라 꽤나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어리석은 인간들.
한 번의 패배로 이리 흔들릴 자들을 어찌하여 위대하신 빛의 후예들은 아직도 감싸고도는 것인지 모르겠어.”
“어쩌겠습니까.
빛의 후예들께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자들을 구원하여 새로운 세상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들과 우리가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른단 말이다.”
이쪽의 대패가 전해지자 바로 이탈하려는 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특히나 신성 프러센이 밀고 들어오자 가장 먼저 두 손 벌리며 환영하던 귀족들이 정작 가장 먼저 이탈하는 자들이었는데, 애당초 그들을 경계하고 있던 요정들의 손에 의해서 모두 얼마 가지 못 하고 그대로 사살되는 중이었다.
‘옳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응당 큰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법이거늘.
인간들은 그 시련조차 이겨낼 생각을 못 하고 이리 약해지다니.
역시 하등한 자들이다.’
최상위 천족이었던 릴의 전사, 그리고 샤의 행방불명.
여덟 갈래의 빛이 순식간에 여섯으로 줄어들었지만 천족들도, 그리고 요정들도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 희생이 없다면 그건 과업이라고 할 수 없다.
이미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다들 속으로 생각하지 않았던가.
동지들 중 절반 이상이 스러질 것이라고 마음의 각오를 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지금과 같은 역경과 고난을 딛고 일어서야 진정한 빛이라고 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은 더욱 고고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법이니, 지금이야말로 가장 어두운 순간이요, 곧 가장 밝게 떠오를 때라고 핀츠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조에게 넘길 준비를 한다.
오늘 하루도 고생들 많았어.”
“핀츠님께서 가장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한 거다.
빛의 뜻으로, 그 고귀한 이름으로.”
최악의 패배를 당한 시점에서 괜한 분란으로 힘이 흩어지는 건 절대 안 된다.
그런 이유로 핀츠는 인간들에게조차 침묵하고 넘어가는 중이었다.
당장 그들에게 그러할 진데 동족들에게 함부로 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 그녀였다.
‘···음?’
그러다가 문득, 핀츠는 뭔가 묘한 감각을 느꼈다.
평원 너머에서 뭔가가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어둠이 깔리고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상대방의 기척을 그녀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어둠이 깔리고 월광조차 미미한 때를 노려서 잠입하려는 적들의 첩자일까?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그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핀츠는 활을 드는 대신 눈매를 좁히며 그쪽을 계속 주시할 뿐이었다.
‘뭔가 이상해.
마치, 마치 일부러 기척을 드러내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워.’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 마침내 기척을 느낀 다른 요정들이 바로 적의를 보이며 시위에 화살을 걸기 시작했다.
동족들의 모습에 핀츠는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하고는 경계심은 거두지 않았지만 적의는 품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주시했다.
그리고 곧 그들은 크게 놀라고 말았다.
“샤님?”
릴의 죽음 다음으로 아군 진영에 있어 최악의 소식이었던 샤의 행방불명.
적에게 붙잡혔던가, 아니면 릴처럼 목숨을 잃었다고만 생각하던 그들 입장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샤의 모습은 비교적 멀쩡한 모습이었다.
“아, 핀츠 모아덴.
역시 당신이었군요.
익숙한 기운이 느껴져서 일부러 조금 기척을 냈는데 다행히도 알아차린 모양이네요.”
“제가 어찌 감히 위대하신 빛의 후예 분의 몸에 해를 가하겠습니까!”
“···위대한 빛의 후예.”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샤였다.
핀츠가 혹 자신이 무슨 말실수라도 한 건가 싶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니 샤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보다 정말 다행이네요.
솔직히 이대로 더 걷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샤의 말에 핀츠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고 대경실색을 하고 말았다.
멀쩡한 줄 알았던 그녀의 가슴 쪽에서는 여전히 붉은 피가 배어나오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핀츠는 물론이고 다른 요정들까지 놀라서는 급히 샤를 자리에 앉히고는 그녀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최상위 천족, 심지어 그들 중 마음 씀씀이가 가장 빛이 난다는 샤가 큰 부상을 입은 상황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저들이 급한 치료는 해주었으니까요.”
“그런···!
죄인들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샤님의 몸에 무슨 해로운 짓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어서 돌아가셔서 제대로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겁니다!
말!
말!”
핀츠는 자신이 타고 다니던 말 위에 샤를 앉히고는 자신이 직접 그 말을 몰아 신성 프러센 군의 정중앙에 위치한 천족들의 막사로 그녀를 안내했다.
최상위 천족 하나를 잃은 마당에 역시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샤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이것이 빛이 이쪽을 돌보고 있는 확실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샤님!”
“샤님이 돌아오셨다!”
샤의 생환에 천족들도 다급히 나와서는 그녀에게 안부를 물으려고 했다.
그러나 샤가 미소와 손짓으로서 일단 지금은 쉬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하였기에 그들은 혹 그녀의 정신을 사납게 할까 입을 다물며 허리만 숙일 뿐이었다.
“샤님, 다른 빛의 후예 분들을 모셔오겠습니다.
그동안 편히 쉬시길.”
“고마워요, 핀츠.”
막사 안에 들어선 후 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간이 의자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슬쩍 옷과 붕대를 들추고는 안의 상처를 대충 훑어보기 시작했다.
‘···확실해.
그들이 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분명 죽었을 거야.’
김유현이라는 인간 남자에게서 받은 피해는 결코 상쇄할 수 없는, 정말 무시무시한 것.
정확하게 방어 자세를 취하고 방어 마법까지 사용했는데도 그 모든 걸 양단해버리며 정확히 가슴을 찌르고 들어온 그 섬뜩한 칼날의 기운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 했다.
마법으로 바로 치료라도 하고 싶었지만 몸이 완전히 탈진 상태였기에 마나도 거의 없을뿐더러,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것인지 이 상처로 인해 내부의 마력이 완전히 진탕이 되어 제대로 운용조차 불가능했다.
한 마디로, 검이 몸에 닿는 순간 이쪽의 모든 것이 봉인 당했다는 소리였다.
“샤!”
가장 먼저 막사로 들어온 건 샤와 가장 친분이 두텁던 앤이었다.
그녀는 설마 샤가 살아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 했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쥐고는 이리저리 살피다가 가슴에 난 흉한 상처를 보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바로 치료 마법을 사용했다.
“···뭐에요.
왜 마법이···.”
하지만 그녀의 마법조차 잘 들어먹지를 않았다.
자신의 예상보다 치료가 너무 더디게 진행되자 앤은 무척이나 당황스럽다는 모습.
이미 대충 그 이유를 알고 있던 샤는 놀라지 말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앤의 치료 마법을 계속 허락했다.
어느 정도 상처가 아물어 갈 무렵, 뒤를 이어 나머지 이들이 속속 안으로 들어섰다.
“이야, 살아 돌아왔네?
난 또 여기저기 망가져서 죽은 줄 알았는데.”
“시끄러워요, 단.
못 하는 말이 없군요.”
“난 그냥 내 생각을 솔직히 말한 거야.
거짓말은 나쁜 거잖아?”
“그러다가 앤이랑 또 다투지 말고 입 좀 다물고 있어.”
핀의 경고에 단은 어깨를 으쓱하며 알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릴과 샤를 둔 채로 물러서야만 했던 혼이 침울한 얼굴로 샤에게 다가와서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미안하다, 샤.
그 때 너를 두고 이탈해서, 정말 미안해.
그리고 릴의 일도···.”
“아니에요, 혼.
오히려 내가 사과해야죠.
말리는 당신을 뿌리치고 릴의 앞에 섰다가 오히려 그녀의 짐이 되어서 결국 릴이 스러지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으니까요.”
“그래도 내가···.”
“아, 좀!
그만들 해요.
여기서까지 누가 더 사과 잘 하는지 내기 할 생각이에요?
혼.
자꾸 말 시키지 마요.
지금도 치료가 잘 안 되어서 속 터져 죽겠는데!”
“미, 미안하다, 앤.”
앙칼진 여인의 고함에 혼은 쩔쩔매며 뒤통수만 긁적였다
그에 샤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보다 의외네.
살아있었다면 결국 그 추악한 자들 손아귀에 붙잡혀 있었단 소리잖아.
그런데 어떻게 돌아온 거야?
설마 자력으로 탈출한 건가?”
“그건 아니에요, 핀.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이 날 놓아주었다고 봐야겠죠.”
“음?”
“에?”
샤의 말이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그녀를 제외한 모두가 놀란다.
당장 릴을 그렇게도 잔혹하게 살해한 자들이 정작 샤는 붙잡아서는 이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그냥 되돌려 보냈다는 게 무척이나 낯선 것이었다.
“놈들이 드디어 미쳤나?
릴을 죽였다고 뭐 자비라도 베풀겠다는 거야?”
“우리가 엄청 많이도 얕보인 모양이야.
이야, 이거 갑자기 분노가 치솟네.”
“그 미친 것들이 기어코 우리들을 하찮은 자들로 여기겠다는 건가!”
핀, 단, 그리고 혼까지.
세 명의 최상위 천족이 제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내자 막사 내부가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살기로 인한 칼바람이 몰아쳤다.
제 기세를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분노했다는 감정만을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건 오직 하나를 의미한다.
김유현한테 밀렸다고는 하나 그걸 제외한다면 어찌 되었든 이 대륙에서는 비교할 만 한 자가 없는, 말 그대로 최강자들이라는 사실 말이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다 나가요.
샤 좀 쉬어야 한다고요!
부상 입은 거 안 보여요?
얼른 다 나가요, 나가!
시끄러우니까 다 나가라고!”
앤이 나서서 그 셋을 일거에 퇴치해버렸다.
그 기세가 워낙 흉흉해서 핀과 단, 혼 모두 저항다운 저항은 하지도 않은 채로 바깥으로 쫓겨났고 막사 안에는 다시금 샤와 앤, 둘 만이 남게 되었다.
“무슨 할 말이 있군요, 앤.
그렇죠?”
샤의 질문에 앤은 침음을 내뱉고 말았다.
서로 친하고, 또 잘 알고 있다 보니 무슨 행동을 하면 그에 따르는 이유 정도는 이제 가뿐하게 예상할 정도였던 것이다.
“샤, 당신이 알고 있었으면 하는 사실이 있어서요.”
“그게 뭔가요?”
“···.”
앤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 하고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뭔가 좋지 않은 내용의 이야기라는 걸 직감한 샤는 어서 해보라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고, 결국 앤은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차가 당신이 적들에게 붙잡혀 그들의 손에 의해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공표하고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던 도중이었어요.”
“···차가요?
루는 어찌 하고···.”
“릴을 잃고, 당신마저 잃었다고 판단되자 그가 루를 밀어내고 리더 자리에 올랐어요.
더는 모호한 행동으로 같잖은 짓을 하거나 피해를 받지 말고 그냥 한꺼번에 전부 쓸어내자는 식으로 말이에요.”
최상위 천족 중 차는 루와는 반대의 인물, 가장 강경하고 또 가장 천족답지 않은 인물이다.
같은 천족이라고 하지만 샤는 그런 차를 은근히 경계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지금의 상황이 그에게는 루를 밀어내고 과업을 자신의 뜻대로 완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앤, 지금 루는 어디 있죠?”
“차와 함께 있을 거예요.
아마 당신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이후의 일을 어떻게 변경해야 할까 고민하는 중이겠죠.”
“당장 그를 만나러 가야겠어요.”
그러자 앤은 조금이라도 더 치료를 하고 가라고 그녀를 말렸지만 샤는 이 정도면 되었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 것도 모르고 여전히 심판이니, 처단이니 하는 자들에게 현재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릴 의무가 자신에게 있었다.
‘루는 몰라도 차는 위험해.
그 자는 아무리 천족이라고 해도 과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자야.’
최고위 마족들을 하나씩 끌어내서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이도 그였다.
천족들이 알게 모르게 두려워하는 인물, 급진파 요정들이나 빛의 교도들에게 있어서는 이단 심판관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한 천족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루.”
막사 입구를 헤치며 안으로 들어가니, 앤의 말대로 루는 차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이었다.
그러다가 샤가 들어선 걸 확인한 루는 반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반대로 차는 흠, 하고 가볍게 혀를 차며 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사지 멀쩡히 돌아왔다더니, 정말이군.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설마 그 더럽고 추악한 자들에게 살려달라고 빌었다던가, 아니면 무슨 이상한 거래라도 한 건 아니겠지.
샤?”
“차!
말 가려서 해라!”
“이게 내 의무야, 루.
너도 알잖아?
내게 있어 중요한 건 동족도, 교도도, 교리도 아닌 과업의 완수다.
그것만 가능하다면 무엇이든 상관없고, 그걸 방해하는 것이라면 또한 무엇이든 상관 안 해.
내겐 오직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루에게 그리 쏘아붙인 차는 다시금 샤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말해라, 샤.
내가 걱정하는, 그런 일이 있었나?
맞다면 맞다고 대답하고, 아니라면 아니라고 대답해.
솔직하게, 내가 널 의심하지 않게.
동료를 처벌하지 않게 말이다.”
“당신이 걱정하는 그 어떤 일도 없었어요, 차.
그러니까 그만 하세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군.
그러면 됐어.
그걸로 끝이지.”
평소의 그 미묘한 웃음을 띈 얼굴로 돌아온 차.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내 의무이기에, 우리들의 과업이 있기에 이러는 것뿐이다.
서운했다면 사과한다.
그리고 이해해줬으면 한다.
릴을 잃은 터라 나도 조금은 신경이 날카로워진 모양이다.”
그렇게 말을 마친 차는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라는 듯 자리를 비켜주었다.
샤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자리에 주저앉아있는 루를 바라보았다.
“루.”
“다쳤다고 들었는데.
아직 다 낫지 않았다면 가서 쉬는 게 먼저다.”
“할 말이 있어요.”
“돌아온 건 다행이지만 그 몸으로는 도움이 안 돼.
일단 돌아가서···.”
“할 말이 있다고 했어요.”
샤의 강경한 어조에 루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이마를 감싸 쥐며 고개를 내젓는다.
“놈들이 무슨 말을 했든, 어떤 행동을 보였든 간에 속지 말고 넘어가지 마라.
그건 나와 동족들, 그리고 우리들을 믿고 따르는 모두를 실망시키는 행동이다.”
“네, 바로 그 부분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에요.
우리 천족들 때문에, 우리들만 바라보고 있다는 그 인원들 때문에, 정작 우리가 살펴야 했던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질문 말이에요.”
“그만해.
의미 없는 질문이요, 쓸모없는 궁금증이다.
이미 핀이 적들의 목을 조를 명분을 찾아냈으니 조만간 저들이 기세를 신나게 끌어올려 스스로 여기까지 밀고 올 때까지 기다릴 거다.”
“명분이라면?”
“마족의 흔적을 찾았다.
그걸로 놈들이 아닌 척 하고 있었지만 마족과 결탁하여 이 대륙 전체를 혼란에 빠트리려고 했다는 것으로 이 무의미한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거다.”
“릴을 죽인 그 남자는 어찌하고요?”
“너를 제외한 전부가 그를 상대할 거다.
성흔을 지닌 자들도 전부 불렀다.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고, 이제는 오직 앞만 보고 달려야 하니까.”
루의 말에 샤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외칠 뻔 했다.
그 앞만 보고 달리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고.
우리가 지나친 것들을 돌아보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건 인정하지 않고 자꾸만 이상한 곳으로 향하고만 있다고 말이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어, 샤.
이건 우리들에게 놓인 과업이요, 숙명이다.”
루의 말에 샤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이미 들을 상태가 아니었다.
루 역시 릴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것과 함께 분노하고 있는 듯 했으니까.
“루.”
잠깐의 침묵 후, 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빛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곳만 가리키는 건 아니에요.
옳은 곳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게 진정한 빛이죠.
부디 그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도, 당신도, 그리고 우리들 모두가 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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