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405)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405화(405/439)
405―――――
가망 없음
“오랜만에 뵙네요, 시온 클라우젠님.”
“어서 와요, 시리엔.
이렇게 다시 보게 되는군요.
라프나 님도 오시느라 고생했습니다.”
“···뭘요.
그냥 산책이었어요.”
히스파냐의 원군이 도착한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도착한 이들은 요정들과 수인 측 선발대.
그들을 이끈 이는 요정 쪽은 시리엔, 수인 쪽은 파울가 대모의 손녀, 라프라.
전부 한가락 한다는 이를 대장으로 삼아 빠르게 당도한 것이었다.
“본대는 늦어도 사흘 안으로는 도착할 거예요.
다들 워낙 빨라서.”
“수인들도 마찬가지에요.
히스파냐가 싸우는데 넋 놓고 볼 수 있나요.”
“하하하.”
여태까지 지켜만 보다가 김유현이 협박 좀 하고, 이대로 두 손 놓고 있다가는 뭐라도 건질 게 없을까봐 이제야 참전하는 주제에 말들은 잘들 하는군.
시온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슬쩍 입술을 깨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복수를 하겠다느니 따위의 멍청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고 이들이고 결국 자신과 제 동족들의 이득을 먼저 할 뿐이다.
시리엔조차 인간들에게 호의적이라고 하지만 결국 요정이니 그 요정들의 미래에 대해 더 민감할 수밖에 없고, 상황을 살피며 이득이 되는 방향을 보자는 위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답잖은 이유로 통수든 손절각이든 재고 있었다면 열불이 뻗치겠지만, 당장 자기랑 제 가족, 동족 목숨이고 뭐고 다 달린 일인데 눈치 좀 안 보고 있을 수는 없지.
다 감안하고 벌인 일이니 내가 이번만큼은 넘어가준다, 이것들아.’
이건 복수고 사이다고 할 일이 아니다.
당연한 일, 당연한 고민, 당연한 갈등일 뿐이다.
거기에서 더 매력적인 제안, 그리고 약간의 협박, 그렇게 해서 답을 내어준 건 빛의 교리이니 천족이 아닌 시온이었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저들이 마침내 그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이제는 돌아설 수 없는 발걸음을 떼어 여기까지 온 것이고 말이다.
“소식 들었어요.
김유현 경이 나서서 적들을 전부 쓸어버렸다고요.”
“그가 아니었다면 큰일 났었겠죠.”
“정말이지, 한계를 알 수가 없는 남자네요.
서쪽 끝자락에서 누디아까지 어떻게 그리 빨리 갈 수 있는지, 그리고 단신으로 최상위 천족을 참살할 수 있는 것인지.
혹 김유현 경이 사실은 진짜 빛의 후예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네요.”
맨 처음에는 그냥 편하게 김유현, 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그 뒤에 ‘경’ 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시리엔이었다.
아마 요정의 숲으로 들어갔던 김유현이 무력 시위를 한 것이 제대로 먹혀들었던 모양.
그건 수인인 라프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는지 고개만 얌전히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헛소리.”
물론 옆에 서있던 김유현은 짧고 굵은 한 마디로 시리엔의 말에 바로 반박했지만 말이다.
“나를 그런 이상한 자들의 종교에 가져다 붙이지 마라.
기분 더러워.”
“아, 아아.
넵!”
빛의 교리, 그리고 빛의 후예라 하는 천족들의 본모습을 알게 된 후 더더욱 그들에 대한 적개심을 열렬히 드러내고 있는 김유현이었다.
그 앞에서 사실은 빛의 후예이니 뭐니 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를 칭찬하는 듯 하면서 도발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쩌냐, 시리엔.
점수 좀 얻으려다가 오히려 깎아먹은 모양인데.’
지금 상황이 김유현에게서 점수를 따기 좋은 상황이면서도, 동시에 잃기도 딱 좋은 때였다.
당장 그에게 있어 악몽이라 할 수 있는 무림맹을 떠올리게 하는 자들을 상대하고 있으며 그들은 자신과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죄인이니 타락한 자들이니 떠들고 있는 중이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열 받는 와중에 샤의 치료를 받은 이후 새로이 부활한 에카테리나와 샤이엘라가 또 은근슬쩍 그를 건드리고 있다.
전처럼 대놓고 싸우자고 하거나 괴롭혀 달라는 건 아니어도, 여유가 된다면 조금은 싸우고 싶다는, 약간은 당하고 싶다는 느낌을 주면서 말이다.
평소라면 그냥 날 잡아서 두들겨 패면 그만이지만 지금은 전쟁 상황, 언제 전투가 벌어지고 언제 적들과 싸워야 할지 모르는 때이다.
당장 그 여자 둘을 밑으로 들인 것도 이런 때에 써먹기 위함인데 자꾸 부상당하겠다고 들덤빈다면 김유현 입장에서는 한숨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시온의 말마따나 정말 죽기 직전까지 죽여두었던 터라 김유현이 인상 몇 번 찡그리면 이제는 바로 바로 진화가 된다는 것이었다.
“김유현 경.
당신의 강함에 우리 호비 일족의 전사로서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그 와중에 마치 시리엔이 빈틈을 노렸다는 듯 라프라가 먼저 고개를 숙인다.
수인 중에서도 가장 자존심이 강하고, 또 인간에게 가장 강렬한 적의와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호비족이 바로 그 인간에게 강자에 대한 예를 취해 보인 것이었다.
“김유현.”
시온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렇게 속삭이며 팔꿈치로 툭, 치니 김유현은 눈치 빠르게 라프라가 보이는 예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자존심 강한 자가 저렇게 먼저 숙인다면 응당 바로 받아주어 그 자존심을 세워주고 계속해서 이쪽의 편으로 잡아두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말이다.
물론, 요정들을 소홀히 할 생각도 없었지만.
“아니, 시리엔한테 너무 그러지 말라고.
그녀는 그냥 네게 대단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요정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걸 빛 쪽에 비유한 거 아니겠냐.
너무 뭐라 하지 말라는 거다.”
시온이 눈치를 주니 김유현은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바로 제 실수를 알아차렸다.
시리엔이 무슨 동네 굴러다니는 요정 1도 아니고, 나름 장로들의 뜻을 인간 세상에 전달하고 바네사 여왕 앞에 요정 측 대표로 나아가 의견을 전달할 정도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한 이다.
그런 요정 앞에서 비록 자신의 옛 과거사를 들추는 것 같은 말을 했다고 해도 어찌 되었든 의도한 게 아닌 실수인데 너무 날카롭게 반응해서 이쪽에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걸 말이다.
김유현은 시온이 원하는 바를 깨우치고는 고개를 숙이며 시리엔에게 예의를 갖추었다.
“···미안합니다, 시리엔.
너무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김유현 하나만 있어도 전쟁은 승리할 수 있지만, 이후 잡음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신경을 써야 할 곳이 한 둘이 아니다.
시온은 제아무리 김유현이라고 해도 그 검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고 전부 죽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오직 무력이면 다 되는 줄 알았다가 무림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공적이 되어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는 비참한 삶을 살았던 주인공 김유현이 아니던가!
자신은 물론이고 김유현도 그런 삶을 조우하지 않으려면 단순히 전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그 이후의 모든 싸움에서 항상 우위를 점하고 상대의 반감을 사지 않는 게 중요했다.
“에?
아, 아뇨.
저야말로 실수를 했네요.
천족들과 싸우고 있는 김유현 경인데 정작 그들과 비유하는 짓을 했으니까요.”
바로 숙이고 들어오는 김유현의 모습에 시리엔이 두 손을 내저으면서 그리 답한다.
다행히도 시리엔을 따라온 요정 전사들은 김유현의 빠른 사과에 수긍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요정과 수인 쪽의 유력한 인사들에 대한 민심 관리를 한 번 해준 시온은 그들에게 묻고 싶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오시는 길에 국경 쪽은 어땠습니까?
듣자하니 피난민들 때문에 소란스럽다고 들었는데.”
이미 대충의 상황은 예상하고 있고, 또한 알고 있지만 그걸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들은 이들에게 듣는 건 또 다른 일이었기에 그런 질문을 던지는 시온이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대로, 시리엔이 대단한 것을 봤다는 듯 손뼉을 치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시온 클라우젠님의 혜안에 감탄했어요.
누디아가 공격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피난민들을 돕기 위해서 본인이 가지고 있던 것에 더해서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자금까지 하여 그들에게 내어줄 식량은 물론이고 각종 필요한 모든 것을 구비해두셨다고요.”
“전쟁이 나면 응당 그 불길을 피하려는 이들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국경 인근은 땅이 은근히 괜찮은 지역이니 그들이 자리를 잡는 데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건 이 땅에서 천족들과 광신도들을 제대로 막는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야 했잖아요.
당신은 전쟁이 나자마자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건가요?”
라프라의 날카로운 지적이 날아든다.
어떻게 누디아 전선에서 적들을 꽉 막아둘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엄청난 돈이 드는, 아니 단순히 돈만 드는 작업이 아니라 조금만 수틀려도 모든 것이 날아갈 수도 있는 도박을 했냐는 어투로 말이다.
단순히 라프라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품고 있을 의문일 것이다.
피난민들이 몰려드니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바로 물품을 풀어주는 클라우젠.
그리고 그 클라우젠에 미리 준비를 하라고 일러둔 시온.
이 부분을 매끄럽게 설명하지 못 한다면 괜히 트집 잡기 좋아하는 자들이 나중에라도 헛소리를 할 수 있기에 시온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서 답을 내놓았다.
“히스파냐와 누디아와의 싸움에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두 나라 모두 강하구나, 그래서 외침(外侵)에 꽤나 버틸 수 있겠구나, 라고 말이죠.
더해서 제가 그동안 히스파냐 전역을 돌아다니며 김유현 경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우수한 인재들을 많이 끌어 모았습니다.
그들이라면 상대가 설사 빛의 후예이니 뭐니 하는 자들이라고 해도 능히 싸울 수 있을 거라 믿었죠.”
“그 인재들을 모은 것도 혜안 아닌가요?”
“글쎄요.
운이 좋았다고 해두죠.
처음에는 클라우젠에 힘을 주기 위해, 그 다음에는 누디아 전선에서 써먹을 만한 이들을 찾기 위해, 그 다음에는 북부 부족들과의 갈등, 그 후 남부에서 발생한 해적 퇴치, 다시금 이어진 누디아와의 대규모 전면전까지.
혜안이니 뭐니 하기 전에 당장 히스파냐에 인재들이 너무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지요.”
정작 그 사건들은 시온이 거의 혼자서 정리한 꼴이 되었지만 말이다.
시온의 대답에 라프라는 그래도 시온의 준비 능력에 조금은 감탄한 듯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다가 바로 얼굴을 붉히고는 헛기침을 하며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아무튼 두 분 모두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김유현?
이 두 분을 막사로 안내해드려.
부디 정중하게.
알겠지?”
“알겠습니다, 시온 공자님.”
시온이 리시키다가 아닌 굳이 김유현을 시켜먹는 이유는 둘.
하나는 여전히 호감을 품고 있는 시리엔과 강자에게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어 있는 호비족 차기 대모인 라프라를 은근슬쩍 김유현에게 붙여두기 위함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그 김유현이 어찌 되었든 자신의 사람이며 그가 확실하게 이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귀족을 따르고 있다는 걸 두 여자를 포함하여 이종족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내가 마나가 없지 사람이 없는 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인지시켜야지.’
말 안 들으면 그냥 이 녀석 시켜거 싹 밀어버릴 수도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지금은 물론이고 이후 모든 상황에서 잡음 없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모든 일을 이끌고 나갈 수 있다.
펜이니 이성이니 떠들지만 결국 중요한 순간에 빛을 발하는 건 칼이고 힘이요, 무력이다.
그걸 손에 꽉 틀어쥐고서 다른 손으로는 펜을 잡고 멋 좀 내고, 입으로는 이성이니 뭐니 하며 떠드는 자가 진정한 강자인 거다.
그 ‘강자’ 가 바로 시온이 닿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였다.
‘지금쯤이면 요정들과 수인들이 곧 합류할 거라는 소식이 놈들에게도 전해졌을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신성 프러센, 그리고 급진파 요정들, 그들을 이끄는 천족까지.
한나절 거리에 떨어져서 진을 치고 있는 그놈들이 움직일 낌새가 전혀 보이지를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이쪽을 흔들기 위해서, 혹은 간이라도 보기 위해 무슨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데 마치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는 듯 멍하니 기다리고만 있던 것이었다.
‘뭐 또 꾸미고 있군.
뻔하지, 뻔해.
속이 너무 훤히 보인다, 이놈들아.’
상대방을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곳에 데려다 놓는 방법.
이게 먹히면 모든 게 끝난다, 이것만 성공하면 모든 것이 탄탄대로 흘러갈 수 있다.
모든 것은 오직 그 길만 걷는데만 집중하면 된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 그 어떤 희생이든 강요하게 되고, 어떤 말도 안 되는 논리도 펴게 만들며.
뒷일은 생각지 않고 오직 자신이 원하는 앞일만 바라보게 만드는 것.
그렇게 해서 스스로 막다른 길에 들어가게 만들면 된다.
오직 하나만 바라보며 달린 자들은 둘 중 하나, 비로소 원하던 곳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거나.
시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시리엔과 라프라를 안내해서 막사로 이동하던 김유현은 문득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걸음을 멈추고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두 여인, 특히나 시리엔이 허둥거리는 것이 바로 시야에 들어왔다.
“···뭐하는 겁니까?”
그냥 편하게 말을 놓고 싶었으나 시온과 나름 중요한 관계에 있는 종족인지라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 김유현이었다.
그 질문에 시리엔은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그, 에오스님이 보이지 않으셔서요.
저번에 다시 만나게 되면 차 한 잔 하자고 약속했었는데 보이지를 않으시네요.”
“현재 정찰 활동 중일 겁니다.
북쪽 전사들은 가만히 앉아서 몸을 놀리는 걸 가장 싫어하는 이들이니까.”
“아, 네.
그렇군요.”
“···에오스에게서 이야기는 좀 들었습니다.
요정임에도 으스대는 것이나 오만한 모습 없이 항상 웃는 낯이었다고요.
앞으로도 서로의 좋은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김유현은 그냥 히스파냐와 요정 사이가, 그리고 시리엔과 에오스의 사이가 계속 좋게 지속되었으면 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시리엔에게는 그게 자신과 김유현 간에 사이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식으로 전해지고 말았다.
“물론!
물론이죠!
저야 환영이에요!
좋은 관계라니.
당연한 거죠!”
“···?”
뭔가 이상하게 전달된 것 같은데, 이거 이대로 괜찮으려나?
김유현은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포기 단계에 들어간 지라 그냥 한숨을 내뱉으며 알아서 되라는 식으로 반응을 하고 말았다.
이미 자신은 에카테리나와 샤이엘라 만으로도 상당히 귀찮은 상황이니까 말이다.
“···흐음.”
그런 인간 남자와 요정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소외된 것 같은 느낌의 호랑이 여인은 빈틈을 노리는 맹수의 눈빛으로 그 둘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 후로도 지루한 대치가 계속 이어졌다.
심지어 그 대치가 일주일이 넘도록 진행되어 히스파냐의 3차 지원군이 도착하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연합군과 거의 동수를 이루던 신성 프러센이 이제는 그 수에서조차 밀리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그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물론 신성 프러센에 남아있던 병력들이나 누디아 각지에서 모여든 의용군들도 속속 합류하며 그들 역시 세력을 불리긴 했지만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하다는 건 자명한 것이었다.
“천족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알 수가 없군요.”
전선으로 파견된 요정 전사들의 지휘관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죄인들을 전부 심판하겠다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광란의 불길을 태우던 자들이 쥐죽은 듯 조용해진 것이었다.
“아무래도 우리 사위님이 무서워서 저러고 있는 거 아니겠는가!
하하하!”
옆에서 시온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그렇게 말하는 건 역시나 거스 대왕.
제발 그렇게 부르지 좀 말라고 리아가 잔소리를 얼마나 했는데, 그걸 못 버리고 기어코 내뱉는 묘은족의 지도자였다.
사위님이라고 하니 다른 이들이 충분히 이상하게 쳐다볼 수도 있지만 다들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가벼운 모습을 보여서 그 딸인 리아가 대놓고 ‘저 분은 그냥 무시하면 돼요!
냐앙!’ 하고 동네방네 소문을 낸 것이었다.
그게 변질되어 지금은 그냥 제 딸과 시온 클라우젠을 결합시키고 싶어 안달이 난 묘은족의 지도자, 하는 모습으로 비쳤기에 다른 이들도 신경을 쓰지 않는 중이었다.
“제발 좀!
시끄럽다고요!”
물론 리아는 자꾸 시온 옆에 들러붙어서 해괴한 짓을 하는 제 아비가 너무나도 부끄러운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또 다시 앙칼진 울음소리를 내며 투닥이는 두 부녀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는 시온.
놈들의 침묵이 길어지니 처음에는 날카롭게 갈려있던 아군의 기세도 조금씩 무뎌지는 중이라 그도 슬슬 긴장이 되던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조금 이상하죠?”
역시나 얼마 전에 도착한 루시아가 주먹을 폈다가 쥐었다가 하며 그리 중얼거렸다.
당장 자신들이 도착하면 바로 격전에 투입되어 싸울 줄 알았는데, 이리 지루한 대치가 계속될 줄은 미처 몰랐던 것.
그녀의 말에 시온이 대답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리시키다가 무척이나 다급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저기!
저기요!”
리시키다 가리킨 곳에는, 백기를 내건 채 다가오고 있는 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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