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41)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41화(4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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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귀족들과 어울려 준 후, 밤이 늦기 전 시온은 일단 왕궁을 나섰다.
그 자리에 더 있다가는 아마 귀족 영애들한테 둘러싸여서 무슨 이상야릇한 일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꾸만 자신을 묘한 눈길로 바라보는 에스티아와 그런 에스티아를 바라보며 동시에 죽일 놈 바라보듯 자신을 노려보는 루드비히의 시선도 상당히 피곤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
아까부터 황녀가 자신쪽을 계속 응시하고 있던 것이었다.
마치 지루한 교회의 기도 시간 속에서 무척이나 흥미로운 뭔가를 발견한 꼬마 아이처럼, 누구도 바라보지 않은 채 오직 자신만을 말이다.
‘아니,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고 할 말이 있어도 말로 하시라고요, 젠장!
저러다가 눈에서 레이져 빔!
하고 지지직 나가겠네.’
결국 주위의 시선에 진절머리가 난 시온은 이만 가보겠다고 입을 열었다.
당장에 여러 귀족 영애들이 아쉬운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그를 붙잡았지만 시온은 어차피 내일도 다들 이 자리에 있을 것 아니냐며 유들유들하게 답했다.
내일도 파티, 그리고 모레도 파티, 애초에 왕실 주최의 파티 기간은 5일이나 된다.
다만 소설에서는 파티 사흘째인 모레에 일이 터져서 중단되고 말지만.
“오셨습니까, 주인님.
아니, 공자님.”
여전히 주인님과 공자님 호칭 사이에서 고민인 리시키다였다.
웬만해서는 그냥 아무렇게나 부르라고 하고 싶지만, 아직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백작도, 그렇다고 대외적으로 공표된 후계자도 아닌 지라 일단은 공자님이 편한 시온이었다.
“파티는 어땠어?”
왕성 안에 마련된 저택 형식의 별장에 들어서자 릴리트가 슬쩍 다가왔다.
그러면서 슬쩍 팔짱을 끼니 보드랍고 따스하면서고 말캉한 감촉이 팔뚝에 와 닿았다.
그 모습을 영 못마땅한 눈치로 바라보던 루시아가 대신 입을 열었다.
“다른 귀족들이 붙잡는 걸 억지로 나오셨어요.
이런 자리는 오래 있고 싶지 않다면서.”
“흐음?
왜?
너 은근히 이 파티 기다리는 거 아니었어?”
“기다리긴 했죠.
다른 걸 기다렸지만.”
귀족들에게 있어 왕실의 파티는 그저 먹고 마시기 위한 자리가 아닌, 자신들의 동맹을 더욱 견고히 하는 자리이자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동시에 정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자리다.
항상 먹잇감을 노리는 번뜩이는 그 눈빛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냥 빠져나온 시온이었다.
루시아는 파티 내내 도대체 왕궁 안에서 뭘 했나 했더니, 아무래도 라이도의 소식을 궁금해 하던 마법사들에게 붙잡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그들의 질문 공세에 얼마나 진절머리가 났는지 ‘미친놈들!’ 이라고 욕설까지 내뱉을 정도였다.
상당히 피곤했는지 루시아는 먼저 가서 쉬겠다며 방으로 올라갔고, 김유현은 잠시 시온 쪽을 바라보다가 루시아의 뒤를 따라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 둘이 위층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시온은 슬그머니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킁킁.
우으으으, 역시 시온의 몸에서 다른 여자들의 냄새가 잔뜩 나네.”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만.”
“알아, 알아.
내 말은 그냥 너를 탐내는 여인들의 냄새가 가득하다는 거지.”
“릴리트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리시도 참.
내가 괜히 서큐버스겠어?
성적 욕망을 지닌 채 바라보면 그 흔적이 남는 법이거든.
뭐랄까.
침 발라두었다고 해야 할까?”
“···그게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능하다고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감정이 남아있는 거지.
난 그걸 다른 어떤 이보다 더 민감하게 알아낼 수 있는 거고 말이야.
킁킁킁!”
무슨 마약 탐지견도 아니고 자꾸만 코를 들이대는 릴리트였다.
이러다가 또 분위기가 묘해질 것 같아 바로 화제를 전환하기로 했다.
“그보다 제가 맡긴 일은요?
진척이 좀 있었나요?”
시온의 질문에 릴리트는 고개를 저었다.
리시키다 역시 ‘죄송합니다.’ 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꽝인 모양이었다.
“그냥 탐색으로는 턱도 없어.
내가 힘을 쓴다면 또 모를까.”
“그건 안 되는 거 아시죠?
왕성 한가운데라서 마력 탐지가 아주 민감하다고.”
“당연히 알지.
아니까 내가 그냥 인간처럼 바닥에 고개 쳐박고 찾은 거 아니겠어.”
한숨을 내뱉는 릴리트였다.
“지금이라도 가볼까?
밤중에 놈들이 은밀하게···.”
“아뇨, 그럴 필요는 없어요.
야근까지 자발적으로 하는 놈들인데 그냥 놔두죠.”
“에엥?
그러면 왜 지금까지는 찾으라고 한 건데?”
“불쑥 찾아가면 좀 이상해서.”
이틀 후에 있을 전대미문의 사건.
왕궁 기습과 귀족 암살 미수가 그것이었다.
한창 왕실 주최의 파티가 진행되고 있던 시점에서 갑자기 엄청난 폭음이 들리며 왕궁의 단단하던 그 성벽 중 한 쪽이 완전히 주저앉았다.
히스파냐 왕국 역사상 처음 있던 왕궁 피습이자, 거의 2백년 만에 있었던 왕성 공격이었다.
바로 기사단이 투입되었지만 빈틈을 노린 침입자들이 기어코 안으로 들어가 사태를 주시하던 귀족들을 습격했다.
천만다행으로 귀족 사망자는 없었다.
왕실의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습격을 가한 자들은 몇몇은 도망치고, 나머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살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던 이들이, 시간이 지나자 ‘과연 누가 나를 공격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어제까지 지옥에서 죽다 같이 살아난 이가 나를 죽이려는 계획을 짰을 지도 모르는 개새끼가 되는 순간이었다.
알게 모르게 지속되던 귀족들 간의 알력 다툼, 그리고 서로에 대한 견제.
왕가의 귀족들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 왕가를 수상하게 여기는 귀족 가문들.
그 모든 것이 맞물려 순식간에 히스파냐를 냉전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진짜 돌 하나 던졌을 뿐인데 그 돌멩이를 두고 네 짓이니 내 짓이니 싸운 셈이지.’
왜 그리스 신화 보면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병사들 사이로 돌을 던지니 너네 나네 하며 싸우다가 전부 다 뒈져버렸다는 거.
앞으로 벌어질 일이 딱 그 짝이었다.
누구는 또 물을 것이다.
아니, 병신들도 아니고 다른 외부의 세력은 의심 안 하냐고.
어떤 미친놈이 자신도 있는 파티장에 공격을 하겠냐고 말이다.
‘원래 진짜 쇼란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법.’
암살 시도를 받으면 떨어지던 지지도가 오른다.
분열되던 국론이 하나가 된다.
뻔한 스토리, 뻔한 전개이지만 상황은 그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나 개인의 일이 아니라, 온갖 정치적 요소가 뒤섞이면 1플러스1은 2의 상황이 아니라 시팔 같은 상황으로도 둔갑한다.
‘나중에 밝혀진 부분이지만, 그 왕궁 폭파 사건은 요정족의 세뇌에 걸린 놈들이 저지른 일.
그리고 그 세뇌를 써먹은 요정 놈들은 과격파들의 행동대장들이었고.’
대륙에서 가장 천족을 잘 따르는 종족이 바로 요정이다.
자칭 천사가 남긴 종자(從者) 라는 그들은 후일 천족들의 대륙 정화 전쟁이 벌어질 때 가장 먼저 나서서 그들을 돕겠다고 했었다.
물론 천족들은 ‘응, 너희도 숙청.’ 라고 중얼거리며 그대로 전부 불태웠지만.
‘리시키다와 릴리트가 되도록 그 과격파 IS··· 가 아니라 요정족들을 지원하는 세력을 찾았으면 했지만··· 이렇게 되면 그냥 내가 나서야 하나?’
이미 시온은 그들을 지원하는 자를 알고 있다.
다만 시작하자마자 찾아가서는 ‘다 알고 왔으니 순순히 불으쇼.’ 라고 하면 미친 새끼 1 정도로 취급당할 것이 분명했기에 적당한 빌미를 붙잡으려 했다.
“일단 내일도 한 번 부탁드릴게요.
릴리트님, 그리고 리시.”
“알겠어.
뭐, 인간들 어떻게 사는지 구경도 하고 나쁘지는 않았어.”
“주인님, 그러니까 공자님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따를 뿐입니다.”
만약 내일도 괜찮은 수확이 없다면, 시온은 그냥 이틀 후 사건이 있기 전에 그들에게 찾아갈 생각이었다.
물론 진심을 다해서 설득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들이 일을 저지르게 만들고 그걸 역으로 이용할까 고민 중이었다.
‘살생부가 대충 완성되었다고 할까···.’
대충 히스파냐의 존속에 해가 되는 이들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 중 가장 깔끔하게 매장해버릴 수 있는 이를 고르기 위해 고심 중인 시온이었다.
‘음?’
자신의 방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왔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방 앞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루시아인가 했는데, 그녀라고 보기에는 키가 너무 컸다.
무엇보다, 어둠 속에서도 번뜩이는 그 눈동자가 실로 소름끼치기 짝이 없었다.
2층에 루시아와 자신 말고 또 누가 올라갔더라?
그렇게 생각하던 시온은 순간 한 남자를 떠올리곤 그대로 자리에 굳어버렸다.
‘염병!’
김유현이다, 분명 김유현이 틀림없었다.
저 무시무시한 놈이 왜 갑자기 자신의 방 앞에 서있는 거란 말인가.
순간 시온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상상이 다 들었다.
‘혹시 그동안 마음에 안 들던 거 이 야심한 밤에 조지려고 하는 건가?
막 루시아는 내 여자니까 건드리면 네 똘똘이를 영원히 보지 못 하게 해주겠다, 뭐 이런 거?
아니면 혹시 내가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란 걸 눈치 깠을까?’
분명 아까 파티장에 김유현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약간 바꾸어서 어느 병사의 편지라고 하고 귀족들 앞에서 아주 슬프고 아련하게 낭독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내용을 귀족들이 떠벌대고, 또 그걸 김유현이 듣지 못 했으리라는 법은 없어.’
그렇게 생각해보니 심장이 섬뜩해지는 시온이었다.
만약 저 남자가 ‘너 이 새끼, 어디 출신이야.’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무슨 잡소리인지 이 시온 클라우젠은 모르겠습니다만.
라고 대답할까?
아니면 사실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라고 말해야 할까.
“시온 공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시온은 등골이 싸늘해졌다.
그의 목소리가 무섭다거나, 혹은 살기가 짙어서가 아니었다.
지금 김유현은 아무런 부정적인 감정 없이, 딱히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자면 루시아한테 꼬리 흔들지 마라, 이 새끼야.
라던가 너 집이 어디냐, 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소리인데 왜 시온은 더더욱 긴장하는 것일까.
‘시벌!
난 지금 이 상황이 더 무섭다고!’
두 가지 경우의 수를 제외하니, ‘혹시’ 가 진짜가 되는 기분이다.
왜 그동안 김유현이 수많은 여성 등장인물들 앞에서도 돌부처였는지, 여자들 마음만 아작 내놓고 정작 본인은 유유자적이었는지 충분히 예상이 가는 상황이었다.
그냥 작가가 먼치킨 주인공이 여자들을 수도 없이 옆구리에 끼는 장면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이런 비밀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너, 너 이 새끼.
고자가 아니라, 여자는 취향이 아니었던 거냐!’
본능적인 거부감에 슬쩍 뒷걸음질을 치자 김유현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리 가라, 미친놈아!
난 여자가 좋아.
남자는 취향 아니라고, 시펄!’
이 반반한 얼굴이 그래도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까지 빛을 발하는 외모라면 정말 그냥 걷어차고 싶은 시온이었다.
“뭐 하나 물어볼 것이 있는데.”
“···뭐, 뭔데.”
김유현은 자신을 향해 바짝 경계심을 드러내는 시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대충 흐르는 이야기를 듣자 하니 파티장에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그러자 시온은 다시 한 번 가슴이 뜨끔해지는 감각이 들었다.
저 놈, 설마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알고 있는 건가?
김유현이 자신마냥 이것저것 잡다하게 알고 있다는 설정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시온의 우려를 조금도 알지 못 하는 김유현은 가라앉은 눈동자로 상대를 응시했다.
“전쟁에서 이겼음에도 그리 즐겁지 않다는, 유쾌하지 않다는.
전쟁을 직접 목도하며 그 어떤 것도 전부 부질없다는 그 말, 말입니다.”
“···그런데?”
“진심이었습니까?”
저딴 표정을 짓고 ‘진심이었습니까?’ 라고 답하면 어느 누가 와도 ‘네!
진심입니다!’ 라고 답하지 않겠냐고 시온은 한 소리 하고 싶었다.
기세 한 톨 흘리지 않고 표정으로 상대방 기를 죽이는 놈은 정말 질색이라고 생각하며, 시온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입을 열었다.
“넌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보는 모양이지?”
“···.”
“나도 그 자리에 있었어.
그들과 같이 싸웠고, 같이 죽을 고비를 넘겼지.”
“···.”
“전쟁이 끝내주고 멋지다는 놈들은 그 한복판에 던져줘야지.
그래야 깨달을 거야.
세상에서 가장 끝내주고 멋진 일은, 내 집에서 밥 배불리 먹고 가족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가 아늑한 이불 위에 누워서 잠드는 일이라고 말이야.”
시온의 날이 선 대답에 김유현은 꽤나 오랫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딱히 더 할 말이 없다면 먼저 들어가 보겠다는 소리와 함께, 시온은 조금 전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김유현의 옆을 지나쳤다.
물론, 지나가면서 속으로는 ‘움직이지 마라, 입 열지 마라, 그냥 나 갈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마, 시펄.’ 이라고 중얼거렸지만.
“나도 뭐 하나 묻자.”
방으로 들어가기 전, 시온은 김유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몸을 돌린 채 자신을 바라보는 김유현.
무슨 무거운 주제의 질문을 하려는 것일까, 살짝 긴장한 것 같기도 했다.
“왕녀님 어떠냐?”
“···?”
순간 김유현은 뭔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이 분위기에서 갑자기 저런 질문이 왜 나오는 거지?
“파티 전에 왕녀님이 루시아한테 한 번 찾아갔다는 거 알아.
라이도님의 딸이라고 하니 다들 궁금해 하고 또 만나보고 싶었을 테지.
당연히 넌 바네사 왕녀님을 봤을 테고 말이야.”
“보긴 봤습니다만.”
“그러니까.
왕녀님 어땠냐고.
뭐 첫인상, 그런 거.”
잠시 두 눈을 껌뻑이던 김유현은 이 질문의 의도 자체를 알 수가 없었기에 그냥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오.”
하지만 시온은 그 대답을 약간 이상한 방향의 모르겠다로 알아들은 모양.
알겠다며 씨익, 미소를 짓곤 방으로 들어가는 시온.
그런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공자를 잠시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던 김유현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일 뿐이었다.
그리고 왕실 주최 파티의 두 번째 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