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419)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419화(419/439)
419―――――
나는 당신들과 다릅니다
누디아에서 신성 프러센으로 향하는 동안, 시온은 계속해서 보고를 받는 중이었다.
마지막 전투를 치르기 전부터 착착 진행되던 국경 인근 개발은 신성 프러센으로 출발하기 전 휴식을 취했던 1주, 그리고 이동을 시작하여 오늘 목적지에 도착하는 동안 걸린 한 달까지.
그 짧은 시간동안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나 누디아가 막 탈환한 왕성에 집중할 동안 시온은 처음에는 은밀하게, 그 이후 대충 왕성이 정리되었다고 판단한 누디아 왕실이 다시금 왕성으로 돌아갈 때는 거의 대놓고 그쪽에 클라우젠의 영향력을 행사토록 주문했다.
‘아마 누디아는 왕성 정리를 끝내고 왕국이 안정되었다는 걸 보여주며 이제는 왕국민들에게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겠지.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을걸?’
누디아에서의 전투는 끝났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연합군이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신성 프러센으로 진격하고 있는 중이 아니던가.
피난민들의 대다수가 동부, 남부 사람들임을 감안하면 전쟁이라는 그 끔찍한 곳에서 더 멀리 떨어지고 싶어 할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 전쟁과 가장 거리가 먼 국경 인근이야말로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곳이었다.
더해서 누디아 본국의 병사들보다 클라우젠의 병사들이 훨씬 더 따뜻하게 대해주고, 자신들을 보듬어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으니 그 힘들던 상황에 받은 도움의 손길에 막연한 기대감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시간을 끈 거지.’
군대의 이동을 느리게 하여 누디아가 왕성 탈환을 하는 것도 며칠 늦추었고, 그 뒤로도 행군에 있어 절대 무리가 가지 않게 하며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광고라도 하듯 아주 화려하면서도 확실하게 이동하는 시온이었다.
만약 이곳에 히스파냐 군과 누디아 군, 이 둘만 있었다면 누디아 측 인사들이 곁눈질을 하면서 군대가 빨리 신성 프러센으로 들어가서 이 전쟁을 끝내는 게 좋지 않겠냐고 눈치라도 줬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에는 북쪽 전사들, 수인들, 그리고 요정들까지 함께 하고 있다.
서로의 출신, 혹은 종족이 다르나 결국 스스로를 빛의 후예라 하며 천족들과 당당히 싸운 전우들이니 신성 프러센으로 향하는 동안 이들은 서로 간에 친분을 쌓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투에서는 이겼고, 적들은 꽁지 빠지게 달아났고, 눈을 돌려보면 신기하게 말을 타는 놈들에 옆에는 수인들, 뒤에는 요정들이니 누디아 병사들이고 지휘부 인사들이고 행군 속도가 평소보다 느리다는 걸 오히려 좋게 여길 테지.
군에서도 친분 쌓기는 필수 소양이니까.’
어릴 적 충무공 이순신의 위인전을 읽으며 감동을 얻는 대신, 시온은 교훈을 얻었다.
군대도 줄 잘 서야 하고 친분 안 쌓아두면 곤란하다는 사실.
그래서 시온은 그런 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주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
―마을들이 벌써 완성된 곳도 있다.
치안이 안정되고 살 수 있다는 희망과 지원을 밀어 넣어주니 마치 다 죽어가던 불에 장작이 들어간 것 마냥 타오르더구나.
―
아들 녀석이 전쟁터에서 또 한 번의 대승을 거두는 동안,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묵묵히 받쳐주는 역할만 하던 리히텐 변경백이 보낸 서신.
원래는 전쟁터를 전전하는 아들에 대한 걱정이 써져있어야 하나 이제는 그도 시온을 걱정하는 일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 인정한 듯 걱정이 많이 줄어든 모습이었다.
물론, 그래도 ‘몸조심하라.’ 는 부모의 걱정까지는 다 지우지 못 했지만 말이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네가 수락하든 말든 변경백 자리를 물려줄 것이다.
그러니 제발 부탁인데, 이제 그만 쏘아 다니고 집에 좀 붙어 있거라.
어릴 적 너무 집에만 있다고 뭐라 해서, 나가서 뭐라도 좀 하라는 그 말에 이제 와서 그러는 건 아니리라고 믿는다.
―
그렇지 않아도 이번 일이 끝입니다, 아버지.
이제 뭐 더 해야 할 일이 없어요.
제가 알기론 말이죠.
시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리헤텐 변경백의 서신을 고이 접어서는 품에 넣었다.
“누구입니까?”
“아버지.”
“아아.”
시온에게 말을 건 것은 리시키다가 아닌 김유현이었다.
원래는 오늘도 에카테리나한테 시달리고 있어야 하겠지만 며칠 전에 구원을 받았다.
버티다 못 한 김유현은 릴리트에게 거의 빌다시피 해서 에카테리나를 그녀에게 던져준 것.
며칠이라도 좋으니 저 미친 여자 상대 좀 해달라고, 자신도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통 사정을 해오던 세계관 최강자였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 샤이엘라가 나흘에 한 번 꼴로 괴롭혀달라고 찾아왔던 것과는 달리, 에카테리나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김유현을 괴롭혔다.
싸워달라고,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패달라고, 네 강함을 보여 달라고.
‘환장하겠네.’
정말 성질이 났는지 언제는 검을 빼어들고 ‘죽일까?’ 고민도 하던 김유현이었다.
그러나 일단 인연이 쌓인 상대에게는 은근히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인지라 또 차마 그러지는 못 하고 그저 끙끙거리며 에카테리나를 구타해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때리고 검을 휘둘러서 다치게 만드는 건 자신인데, 어찌하여 괴로운 것도 자신인지 슬슬 지쳐가던 그는 결국 시온에게 구조 요청을 한 것이었다.
―릴리트님한테 부탁해봐.
어제 넣어드려서 지금 쌩쌩하실 거다.
―
어찌나 단백질을 많이 뽑아먹었는지 하룻밤 사이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릴리트였다.
원래는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자중하려고 했으나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든 여인들이 자기들끼리 순서를 정한 후 틈이 날 때마다 대놓고 유혹을 해왔다.
시온이 무슨 목석도 아니고, 김유현처럼 선택적 정신 고자도 아니고, 그저 머리 좀 뛰어난 인간 남자에 불과하다.
그런 상황에서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들이 바로 앞에서 꼬리를 살랑거리는데 어떻게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예쁘게 풀어헤쳐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전부 먹어치워야지.
―흐음, 미친 도마뱀 혼내주는 건 취향에 안 맞는데.
그래도 잔뜩 먹었으니 일단 일이란 걸 해야겠지?
그래야 또 나중에 다시 채워질 수 있는 이유가 생기니까!
―
좋은 건수가 생겼다며 좋다고 날아가는 릴리트였다.
에카테리나는 김유현이 아니라며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지만, 최고위 마족도 분명 별미이긴 하니 애써 아쉬움을 접고 아무도 없는 먼 곳까지 가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돌아오곤 했다.
“좋은 분이십니다.
변경백께서는.”
“이런 자식에게는 과한 분이지.”
김유현조차 인정했던 사람이었으나 정작 제 자식에게 살해당한 변경백이다.
소설에서는 지금쯤 다 무너진 히스파냐를 바라보며 무덤에서 피눈물을 쏟고 있었을 테지만 모든 것이 바뀐 지금에 와서는 제발 부탁인데 좀 집으로 돌아오라고 아들에게 성화를 내는 아버지였다.
‘자세히 보면 이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놈도 나름 머리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심성이 글러먹어서 문제였어.
자격지심은 엄청난데 질투심도 많고 속 좁고 아무튼 문제가 참 많았어.’
몸뚱이가 병신인데 머리까지 병신이었다면 김유현을 그리도 괴롭히지 않았을 것이다.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캐릭터는 원래 원수로 생각하던 김유현을 지옥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괴롭히겠다는 한 남자의 증오 때문에 무지막지하게 성장한 케이스였다.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김유현이 그렇게 말해서 시온은 ‘응?’ 하고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했지?”
“공자님께 과분하다는 그 말씀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
“비록 공자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시듯 성인군자는 아닐 지라고 해도 분명한 건 제 사람을 챙기겠다는 그 말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
그 어떤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제게는 이미 훌륭하신 분입니다.”
원래는 이 몸뚱이 주인이 너를 엄청나게 증오하고, 너도 이 몸뚱이를 용서치 않고 죽인다는 사실을 알까 몰라.
시온은 그리 생각하며 이제는 완벽하게 조력자로 만들어둔 김유현을 응시했다.
“착각하지 마.
넌 어떨지 몰라도 난 지극히 평범해.
그냥 사람의 빈틈을 이용하고, 남보다 나와 내 곁을 더 많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지.
굳이 따지자면 악한 자에 가깝다고 할까.”
“선하고 악한 건 상대적이지 않습니까.
저도 적들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악한 존재일 테지만 당장 주변 사람들에게는 히스파냐의 검이라고 불리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자신과 지내다보니 알게 모르게 말빨이 늘어난 모양이다.
김유현답지 않은 꽤나 논리적인 말에 시온은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짧고도 길었습니다.
2년 여 만에 제가 이렇게 변할 거라곤 저조차도 생각지 못 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를 이렇게 믿기는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오랜만이라는 소리는 한 때 그러했다는 소리지.
과거사라도 이야기해줄 생각인가?”
“···과거라.”
참고로 시온은 이세계로 건너온 이후 무림 세계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서로 몸과 마음을 허락한 루시아에게조차 그 부분에 대해서 일절 말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과거를 숨겼다.
‘김유현에게 있어 그 과거는 자신의 과오고, 약점이며, 잊고 싶은 치욕이자 자신의 못난 모습이니까.
떠올리기도 싫겠지.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몇 십 배는 더 많았고.’
그런 김유현이 과거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볼만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이야기를 해주는 대상이 에오스나 다른 여인들이 아니라 시온,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이 조금 껄끄럽기도 했지만 말이다.
“궁금하십니까?”
야, 이놈아.
궁금하냐고 물어보면서 표정을 그렇게 지으면 누가 묻고 싶겠냐?
아무튼 무력은 사기적인데 왜 저리 멘탈이 약한지 모르겠단 말이야.
에오스도 안 죽었고, 다른 친한 이들 모두가 멀쩡한데 저렇게 약한 모습 보이면 김유현이라는 검을 휘둘러야 하는 자신이 피곤해지는데!
“아니.”
어차피 다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들어봤자 8할 이상은 우울하고 안타깝고 속이 터지는 과거사.
이세계에서는 생각하는 부분이나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만 고구마를 먹인 김유현이었으나 무림에서는 약하기까지 해서, 그리고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서 독자들에게 아주 미치도록 고구마만 처먹였던 주인공이다.
시온 클라우젠이기 전에 앞서 한 명의 독자이기도 한 시온으로서는 그 속터지는 이야기들을 다시는 듣고 싶지도 않았다.
아마 듣다가 김유현한테 ‘에라이, 등신 같은 놈아!’ 라고 쌍욕을 박을 것이다.
“남의 과거사에 왜 관심을 가지냐.
네가 말해준다고 해도 듣고 싶지 않아.
들어봤자 빚 하나만 얹고 가는 기분이거든.
왠지 내 이야기도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됐다.
이야기하지 마.
너도 네 과거는 그냥 과거로 묻어둬.
추억이라는 것이 있다면 힘들 때 잠깐 기억 속에서 꺼내서 봐도 된다고 하지만 힘든 이야기는 떠올리지 말자고.
지금 이렇게 사는 것도 힘든데 왜 굳이 힘들었던 때를 생각하려고 하는지 난 이해를 못 하겠다.”
“누구는 거기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해서요.”
“대부분은 거기에서 패배감과 박탈감만 얻을 뿐이야.
넌 모르겠는데, 난 대인배가 아니라서 과거의 내 병신 같은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면 아마 대갈통을 후려쳤을 지도 모르겠어.”
시온의 마지막 말은 조금이나마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것.
그걸 눈치 챈 김유현은 일부러 평소보다 과장되게 미소를 띠었다.
물론 시온은 괜히 일부러 웃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고 말이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번에도 자신이 나서서 다 죽이면 되겠냐는 질문임을 시온을 알아차렸다.
아직 샤는 이쪽으로 붙지 않았고, 그런 대패를 당했음에도 꽤나 많은 수의 인원들이 성소에 틀어박혀 죄인들 손에 산 채로 붙잡혀 치욕을 당하느니 싸우다가 죽겠다고 외치고 있단다.
최상위 천족은 샤를 제외한다면 이제 딱 하나가 남았다곤 하나 그 하나도 위협적인 전력임에는 분명하니 김유현이 나선다면 모든 것이 깔끔할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데.”
시온은 일부러 김유현에게 그에 대한 대답을 돌렸다.
이제 김유현도 외곽에서 벗어나 히스파냐의 중심으로 완벽하게 들어섰으니 때로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내놓을 수도 있어야만 했다.
“내 뜻대로 하겠다, 따위의 재미없는 대답을 하면 바로 릴리트님 불러올 거다.
네가 다시 에카테리나와 진하게 해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하면서 말이야.”
“제발 참아주세요.”
에카테리나를 죽일 만큼 마음을 모질게 먹지는 못 하고, 그렇다고 그녀를 계속 난도질하고 두들겨 패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니니 김유현은 조금의 휴식을 얻기 위해 그렇게 부탁했다.
시온의 경고를 들은 이후 잠시 고민하던 세계관 최강자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더 싸울 필요가 있겠나 싶습니다.”
호오?
“이유는?”
“싸울 만큼 싸웠고, 얻을 만큼 얻었으며 잃을 만큼 잃었습니다.
여기서 적들을 완전히 전멸시키는 것이 물론 당장은 좋겠지만, 그건 아무리 봐도 시온 공자님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잔혹한 모습, 물러설 곳도 없이 적을 밀어붙이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확실히 이놈도 성장했네.
시온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얼추 예상은 하고 있는 모양이다.
장하다고 박수라도 쳐줄까 했으나 그건 너무 오버하는 것 같으니 관두기로 한 시온이었다.
“가끔은 나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는데.
항상 같은 모습만 보여서 뭐 좋을 것이 있다고 말이야.”
“그 가끔 다른 모습을 보여주실 때도 있으나 그건 항상 가까운 사람들 곁에서만 그랬습니다.
그리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시온 공자님이 보이시는 모습은 항상 같았죠.
그게 본래 시온 공자님의 진짜 모습이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세상이 옳다고 받아들이면, 된 것이니까요.”
“수수께끼라면 사절이야.”
“문제는 공자님이 먼저 내셨습니다.”
어깨를 한 번 으쓱인 김유현이 말을 잇는다.
“공자님의 뜻대로 하겠다고 답한다면 안 된다고 하셨으나, 이미 결정을 내리신 것 같으니 그 답을 하겠습니다.
저는 공자님의 ‘뜻’ 대로 하겠습니다.”
우리 주인공이 눈치가 참 많이 느셨어.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시온은 미소를 지었다.
김유현의 말대로 이미 시온은 다 생각을 하고 결심을 마쳤다.
남은 건 이 연극의 마지막 장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
그리고 그 화려함은 역시나 특수효과가 최고이고, 지금의 그 특수효과는 CG 따위가 아니라 세계관 최강자가 만들어내는 현실이 될 것이다.
“김유현, 미안한데 힘 한 번만 더 쓰자.
물론, 피 보는 일은 절대 아니니 걱정 말고.”
―
또각―.
루의 상태를 보던 천족이 나서자 샤는 어떠냐는 뜻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에 천족 여인은 아직은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들다는 대답을 해보였다.
몸의 부상도 부상이지만,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터라 더 문제였다.
“그래.
고생했어요.”
그녀를 돌려보낸 후, 샤는 걸음을 옮겨 성벽 위로 향했다.
성소라고 불리는 이곳은 하나의 거대한 요새이자 성이었다.
이곳에서 마지막 항전을 하자고, 죄인들에게 살아서 붙들릴 바에 전부 다 죽자고 생존한 이들이 그렇게 괴성을 내지르며 항전의 의지를 내비쳤다.
샤나 몇몇 천족들이 그들을 말리고자 했으나 전투에서 수도 없이 많은 동료들을 잃은 천족들, 요정들, 그리고 신성 프러센의 병사들, 빛의 교도들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적들이 몰려오면 하나라도 더 죽이고 빛을 위해 스러지겠다며 외칠 뿐이었다.
‘이게 옳은 일이 결코 아닌데.’
지금이라도 저들을 설득하고 싶었으나, 이쪽으로 군대를 이끌고 오고 있는 자들이 있으니 저들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을 건 뻔한 것이었다.
상대가 군을 이끌고 왔다는 건 전부 다 죽이든, 아니면 항복한 자들을 끌고 가서 전리품으로서 사용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니 마지막으로 남은 자들이 전부 싸우자고 들덤비고 있는 중이었다.
“샤님, 샤님.”
그나마 그녀를 따르는 몇 없는 천족들 중 하나가 다급히 말을 걸어왔다.
샤가 왜 그러냐는 뜻으로 천족을 바라보니 그는 침울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적들이 방금 성소 앞에 다다랐습니다.
대군··· 대군을 이끌고 말입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작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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