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421)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421화(421/439)
421―――――
나는 당신들과 다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시온이 그리 하자고 해서 바로 이해가 된 사항은 결코 아니었다.
누디아를 떠나 신성 프러센을 넘어 성소에 이르기까지, 시온은 꽤나 오랜 기간 동안 자신과 절친한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설득을 해왔다.
“···사령관님, 저는···.”
“물론 그들이 볼코 후작님을 전사하시게 만든 원흉임은 잘 안다.
그 부분만 생각하면 나도 치가 떨리고 분노가 솟아올라.
그분과 전장을 돌며 정말 훌륭한 분임을 알았으니까.”
이제는 시온의 조력자가 된 루드비히도 설득 대상 중 하나였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원수들을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자는 말인데, 그 아들인 루드비히가 그걸 그냥 넘어갈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걸 알아야 한다, 루드비히.
지금도 세상 곳곳에 빛의 교리를 알게 모르게 따르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많아.
그들은 다만 우리가 싸운 자들처럼 따르지 않으면 적이라고 규정하는 논리를 따르지 않았던 것뿐이지.
그들의 눈과 귀가 열려있는 상황에서 비록 광적인 부분이 있다고는 하나 어찌 되었든 빛의 교도들을 학살한다면, 성소를 피로 물들인다면 과연 그들이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일까.”
“···.”
“너는, 나는, 그리고 우리는 군인이자 동시에 귀족이다.
무엇이 내 나라, 내 왕국민들을 더 위하는 길인지 판단하고 결행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누디아의 손을 잡은 것이고 더 나아가 저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볼까 한다.
혹 이 손을 잡는 자가 있다면 활짝 웃지는 못 해도 환영한다고 인사 정도는 해주면서 일으켜 줄 생각으로.”
쉽지 않은 길이었다.
루드비히 말고도 다른 지휘관들도 차라리 남김없이 죽이는 편이 더 낫겠다고 정말 오랜만에, 내지는 처음으로 시온의 의견에 반대되는 뜻을 내놓았다.
이럴 때 권위로 밀어붙이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다른 이들의 시선도 중요하나 그 못지않게 이들의 지지 또한 시온에게 매우 중요하다.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도움이 될 자들이니 척을 쌓아서 좋을 게 없다.
“우리들은 스스로를 빛이라 표명하고 길을 나섰다.
그런 우리가 저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이면 결국 저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지 않은가.
믿지 않는다고 몰아붙이고, 빛을 따르지 않는다고 불태우고 하는 저자들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우리들은 그러지 말자.
밉고, 증오심이 피어오르고 죽이고 싶다 해도 참고 자비를 베풀자.
저들이 왜 망했는지 그 이유를 교훈 삼아 우리들은 그러지 말자.”
사실 천족들이 망한 건 전적으로 시온과 김유현 때문이지만, 시온은 그 이유를 교묘하게 바꿔서 빛이라곤 믿을 수 없는 그들의 극단적이고 잔혹한 성정을 이유로 꼽았다.
칼로서 흥한 자는 칼로서 망한다는 말도 있고, 남을 고통스럽게 한 자 그보다 더 한 고통에서 몸부림치다가 죽을 것이라는 말도 역시나 이 세상에 있다.
시온은 그런 식으로 히스파냐, 누디아, 수인, 요정, 북쪽 전사 측의 지휘관들을 설득했다.
“저들을 다 죽인다고 해서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산 자는 어쩔 수 없이 삶을 이어가야하고, 그 삶은 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행해져야 한다.
그것만이 먼저 떠난 자들에 대한 최고의 예를 표하는 것일 테니.
그들이 죽음으로서 우리에게 만들어준 세상을 적들과 똑같은 짓을 행하여 사납고, 피로 가득한 곳으로 만들지 말자.”
그 절절한 말들에 루드비히를 시작으로 원래부터 시온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었던 자들은 전부가 그의 뜻을 받아들였다.
천족들과 그 끄나풀들을 믿는 게 아니라 시온을 믿은 것이었다.
물론 그래도 따르기 어렵다고 한 자들도 여럿 있었다.
눈치가 없는 히스파냐의 몇몇 지휘관, 그리고 누디아의 높으신 분들.
시온은 그런 자들에게 이제 조곤조곤한 설득보다는 날이 선 협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성소는 요새입니다.
단순한 땅 하나 덜렁 있는 곳도 아니고, 단단한 성벽과 굳건한 성문으로 이루어진 요새 말입니다.
공성전이 대규모 회전 그 이상으로 피곤하고 힘들며 피해가 얼마나 많이 나는지 잘 알고 있을 텐데요?
거기서 나오는 희생을 오롯이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마음대로 하세요.
아, 그리고 적들은 절대 항복하지 않을 테니 그들 전부를 죽이는 것도 알아서 하고, 그 잔혹함에 대한 눈초리도 재량껏 견디시기를 바랍니다.”
저들이 시온을 따르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방패막이가 되기 때문이다.
공을 세우면 나눠먹을 수 있으면서 문제가 생기면 총사령관 탓이라고 돌릴 수 있다.
나는 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을 어쩔 수 없이 이행한 것이다, 라고 떠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시온과 대립각을 세우면 그 모든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된다.
더해서 히스파냐는 물론이고 북쪽의 부족들, 수인, 요정, 심지어 누디아에서조차 인정하는 영웅인 시온 클라우젠의 뜻에 정면으로 맞섰다는 말이 퍼진다면 정계에서 절대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없다는 건 그 어떤 병신 머저리가 와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면 결정이 난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결국 시온은 성소에 도착하기 얼마 전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룩할 수 있었다.
병사들에 대한 부분도 물론 걱정이 있긴 했으나 일단 지휘관들을 전부 설득했고, 무엇보다 전투를 거치지 않고 승리했으며 성소를 되찾았다는 공적은 병사들에게 그 무엇보다 달콤한 것이니 큰 불만이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공성전이 얼마나 끔찍한지, 죽겠다고 하는 놈들을 상대하는 것만큼 더 최악인 건 없으니 병사들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는 기류가 흐를 거야.
문제 될 건 없어.’
그렇게 성소에 도착한 이후, 김유현을 보내서 적들의 싸울 의지를 꺾다 못 해 아예 박살을 내버린 후 시온은 자신의 제안을 내놓았다.
물론 성벽을 날려버린 것은 저들이 거절할 경우 그냥 이쪽 실력자들을 밀어 넣어서 싹 정리할 수 있는 진입로 확보 목적도 있었고 말이다.
“시온 클라우젠.”
다행히도 김유현 덕분에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렸다는 루가 아니라 시온 자신이 은근히 점찍고 있던 후보 선수, 샤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중요한 전투에 나타나지 않았을 정도로 혼란을 겪고 있던 천족이다.
심지어 루가 정신을 차리지 못 하는 상황에서 모든 결정권을 쥔 인물이기도 하고.
때문에 시온은 그녀라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내놓아서 그녀를 마구 흔들었다.
“어째서···.”
뭘 어째서, 야.
당연히 이러는 게 나한테 훨씬 더 좋으니까.
여기서 저들을 반드시 다 몰아내고 차지해야 할 만큼 좋은 땅이냐?
절대 아니다.
상징적 의미가 있는 곳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아군의 피해를 감수할 만큼 중요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저들은 적 수십을 죽이고 자신도 죽을 거라고 아주 미쳐 날뛰는 놈들이니 거기에 맞부딪쳐서 손해를 볼 필요는 조금도 없다.
김유현을 투입하면, 전술핵을 투하하면 그만 아니냐?
그 전술핵도 케어해줘야 한다.
이제 완벽히 내 사람이라고 막 굴리다가는 바로 손절 당하기 십상이다.
내 것이라고 판단되었을 때 오히려 더 신경 써주고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가장 중요한 순간, 그리고 가장 힘든 순간에 뒤통수를 맞는 게 아니라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다.
‘무엇보다 전쟁 영웅이면서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가져다주는 영향력이 상상 그 이상으로 아주 막강하거든.’
적에게조차 자비를 베푸는, 진정 빛을 따르고자 하는 히스파냐의 귀족, 시온 클라우젠.
당장 사방에서 탄성을 토해내며 박수를 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전쟁을 겪은 자들에게도, 겪지 않은 자들에게도 찬사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뻔히 보이는데 그걸 놓아두고 굳이 피곤한 길로 걸어갈 생각이 전혀 없는 시온이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취한다면 갈등하고 있을 최상위 천족을 완벽하게 붙잡아서 이곳에 세워두고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공을 빛내는 트로피로 이용도 할 수 있었다.
“그대들은 들으라.”
샤를 돌려보낸 후, 시온은 연합군 앞에 섰다.
루시아가 준비해준 증폭 마법을 사용하여 목소리를 높여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한다.
“누구는 내 결정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고, 분노할 수도 있다.
저들은 바로 내 동료들을 살해한 적이고, 내 나라를 어지럽힌 원수들인데 왜 용서하냐고.
확실히 말해두겠다.
용서가 아니라, 다만 불쌍한 자들에게 우리들이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자신들의 것만 옳다고 여기는 지극히 불쌍하고 안쓰러운 자들에게, 진정한 빛의 후예인 우리들이 응당 빛을 따르고자 하는 자들로서 보여야 할 모습을 보이는 것뿐이다.”
잠시 말을 멈춘 시온은 주변을 넓게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서, 성소를.
그리고 그 안을 가리켰다.
“저 안에 갇혀서 아직도 제 잘못을 모르고 울부짖는 자들의 전처를 밟지 말자.
저들은 빛이라면서 빛이 되지 못 했기에 추락했다.
우리들은 빛으로서 빛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
저들이 행했던 일들을 잊자는 것이 아니다.
용서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불쌍히 여겨 이번 한 번은 자비를 베풀자는 말이다.
만약 저들이 우리들의 자비를 저버리고 언젠가 돌아와 또 다시 오늘과 같은 일들을 벌인다면 그 때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시온은 그냥 고개를 돌려 김유현을 바라보는 것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여주었다.
“그때야말로, 빛의 이름으로 단죄하면 되는 순간이다.
그러니 그대들도 이제 그만 내려두고 어두컴컴했던 마음속에 다시금 빛을 담아라.
그리고 기다리는 이들에게로 돌아가자.”
집으로 돌아가자, 라는 말에 병사들은 적의를 잊고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서, 그리고 이겨서 집으로 간다는 소식은 병사들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좋은 소식.
그들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떠들다가 곧 창칼을 들고 거대한 함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아!”
“끝이다!
끝났다!
와아아아!”
그래, 저들의 말대로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시온이 원하던 세상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었다.
이 소설 속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채로 들어왔는데, 먹으라고 숟가락 위에 밥이고 반찬이고 다 얹어주었는데 그걸 먹지 못 한다면 그것만큼 병신인 경우도 없을 것이다.
그래, 특전을 받았으면 아주 힘을 다 해서 써주는 것이 매너 아니겠는가.
“리시.”
“네, 주인님.”
“아마 헬렌이 저들에게 나누어 줄 필요한 물품들을 싣고서 이곳으로 오는 중일 거야.
혹시나 그걸 약탈하려는 무리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북쪽 전사들에게 알려서 치안 강화에 힘쓰라고 전해.
물론 피를 보는 일은 되도록 없게 하고.”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아, 그리고···.”
막 북쪽 전사들에게 향하려던 리시키다가 쭈뼛거리며 다시금 다가온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건가 싶어서 시온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몸을 배배 꼬더니 이내 손가락을 자신을 가리키며 개미 목소리만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오, 오늘··· 저, 저요···.”
“응?
아, 아아.
아아아아!
알겠어,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마.”
“네, 넵!
그, 그러면 가보겠습니다아!”
여전히 강아지 같은 여인이다.
다른 여인들은 잘 모르겠는데, 리시키다는 볼 때마다 깨물어 주고 싶은 시온이었다.
실제로 침대 위에서도 여기사의 몸을 가볍게 무는 걸 즐기기도 했고 말이다.
“자, 그러면···.”
이제 성소에서 쓰레기들을 전부 빼내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딱히 저 성소인지 뭔지 하는 것에 관심은 없으나 세상 사람들은 저 곳이 빛의 시작점이라고 알고 있고, 또한 믿고 있다.
자신들이 빛의 후예임을 자처한 상황에서 저 성소를 피로 물들게 하는 것보다 아무런 싸움 없이 평화롭게 얻는 것이 최고의 그림임을 시온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그런 제안을 했고, 결국 성소를 손아귀에 쥐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성지에 대한 처분은 이 연합군의 사령관인 시온, 자신에게 있었다.
‘성소를 해방시켰으니 이제 그걸 빛의 후예에게 되돌려주면 완벽해.’
단순히 자비로움, 그것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 전쟁을, 저 수많은 이들을 빛을 위한 전쟁에 나서야 한다고 끌어들였으니 그 명분을 훼손시키지 않으려면 그 빛의 뜻을 충실하게 받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위선자들을, 빛의 후예라고 하며 빛을 더럽히는 자들을 심판한 전쟁이다.
히스파냐가, 누디아가, 수인들이, 그리고 요정들이 빛 자체를 부정하고 다른 뭔가를 대신 세우고자 일으킨 것이 절대 아니니까 말이다.
“시온 클라우젠.”
고개를 돌려보니 라이도가 팔짱을 낀 채 뚱한 표정으로 시온을 바라보는 중이다.
시온 본인이 예전의 그 멍청하다는 클라우젠의 후계자 따위가 아니라 히스파냐의 영웅, 누디아의 구원자, 이종족의 신뢰할 수 있는 친우 등 온갖 명예란 명예는 다 쥔 상태였으나 그래도 라이도가 제대로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면 반쯤 죽어나가는 건 다르지 않다.
더해서 어찌 되었든 루시아의 아버지되는 사람이니 장인 어른 대접도 해야 하고 말이다.
“라이도님.”
“네가 이럴 것이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다.
아마 이 소식을 여왕께 전해드리면 기가 막히다는 듯 웃으시다가도 그럴 줄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시려나.”
왕성의 마법진을 완벽하게 보강한 후, 그는 여태껏 잠들어 있던 제 안의 무투가를 깨우기 위해서 전장으로 합류했었다.
천족인지 요정인지 하는 놈들 전부 두들겨 패고 그렇게 무시하던 인간에게 피떡이 되도록 맞은 느낌이 어떠냐고 물을 계획이었다.
‘염병, 망할 놈!
반갑게 맞이해 주기에 손이라도 부족한가 싶었더니 그렇게 부려먹냐!’
물론 자신이 처음으로 마법에 특출난 재능을 보인 분야가 다름 아닌 치료 마법이긴 하다.
주먹을 한 번 휘둘렀다 하면 상대를 정말 말 그대로 반은 죽여 놓는 바람에 일이 더 커지게 하지 않으려면 실컷 두들겨 패고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편이 좋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제 재능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적들 머리통을 깨부순다거나, 하다못해 화려한 마법들로 히스파냐 전 궁정마법사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정작 한 일은 웬 용인족 여인의 치료 마법 전담이 전부였다.
제 딸, 그리고 루시아와 비슷한 나이의 여인들이 전투를 치르는데 정작 자신은 그냥 치료 마법만 쓰다가 막판에 가서야 공격 마법 좀 날려보았고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서 끝나버렸다.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다고!’
본인이 과거 무슨 소문을 달고 살던 놈이었던 간에, 아무튼 사람이다.
예전보다 확실히 몸이 무거워지고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있다는 걸 느끼는 사람 말이다.
어쩌면 이 전장이 자신의 마지막 화려한 무대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서 시온이 자신을 치료 마법 전담으로만 써먹다 말았으니 라이도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서운하시죠?”
“···.”
“침묵은 긍정이라고 하던데.”
“알면 묻지 마라.
지금도 영 기분이 좋지 않으니까.”
“마음 푸세요, 라이도님.”
“내가 여왕 전하께서 그렇게 붙잡으셨음에도 왕성을 나선 이유가 뭔지 아느냐?
어디 한 번 그 잘났다는 빛의 후예들 머리통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이 몸이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는지 직접 알고 싶었다.
그런데 그 기회조차 주지 않으니, 참 너도 대단한 놈이야.”
이 영리한 남자가 라이도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있었을 리 없다.
더해서 그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어떤 짜증이 돌아올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그런 역할을 맡겼다는 건 그 짜증을 감내해야 할 만큼의 이유가 있다는 소리.
“혹 다치시면 루시아 얼굴 어떻게 봅니까.”
“뭐?”
“어떤 자식이 부모를 위험한 곳에 몰아넣는 이를 좋다고 보냐, 이 말입니다.”
“너, 너 이 새ㄲㅣ···.”
틀린 말이 아니니 이건 뭐 반박할 수도 없다.
라이도를 전선으로 내세웠으면 루시아가 그걸 편히 여길 수가 없는 노릇.
그리고 어찌 되었든 그녀의 연인이라 할 수 있는 시온으로서는 그런 제 여자를 생각해서 라이도를 뒤로 빼버린 것이고 말이다.
“야, 이놈아!
그러면 루시아는!
자식이 앞에서 싸우는데 어떤 부모가 손 놓고 있어!”
라이도는 그렇게 반박했지만, 곧 날아온 대답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루시아가 라이도님보다 더 강하거든요.”
“···뭐?”
“예전의 루시아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뭔 되도 않는 소리냐고 쏘아붙이려는 찰나, 라이도는 시온의 눈을 바라보고 직감했다.
지금 이 남자는 거짓말 따위는 할 생각도 없었다.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루시아가 라이도를 뛰어 넘은지 오래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
어이가 없고, 허탈하기도 한데 그 속에서 묘하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여왕조차 인정한다는 그 남자가 제 딸에 대해서 극찬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 딸의 아버지로서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품 후기―――――――
추천은 항상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