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424)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424화(424/439)
424―――――
내일로 가는 계단
비록 시온에게 패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기본부터가 아예 글러먹은 자들은 아니었다.
자신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자신들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는 듯 그들은 가장 먼저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신성 프러센들의 일반 교도들부터 재빠르게 배에 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어서들 가시오!
어서!”
“혹 저들이 무슨 악랄한 짓을 벌일지 모릅니다.
먼저 여기를 탈출하세요!”
“빛의 후예들이시여!
꼭, 꼭 오셔야 합니다!”
거 참 눈물겨운 이별이다, 염병할 놈들.
시온은 병신이 갖은 지랄을 다 한다더니 지금이 딱 그 짝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저 불쌍한 교도들은 천족들이나 요정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적들로 가득한 이곳에 남아 자신들을 먼저 배에 태워서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피난시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면, 저들은 그들을 단순히 이용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일단 사람들부터 보내보겠다, 이런 소리잖아.’
배에 구멍을 뚫는다던지, 아니면 숨겨두었던 해군으로 대륙에서 떠나는 자들을 공격한다던지.
그 외에도 온갖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일단 위험한 건 너희가 먼저 가보라는 식이다.
안전한 게 확인되면 따라가면 되고, 이상한 수를 쓰려고 했음이 알려지면 죽는 그 순간까지 적들과 싸우면서 최대한 큰 피해를 입히고 죽으면 그만이다.
아마도 놈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개새끼들.’
참 가지 가지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시온이라고 뭐 심심해서 저들을 놓아주었겠는가?
이 정도 쇼를 했으면 이제 그건 단순한 쇼가 아니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도박 수준이다.
머리가 좋은 이들이 있다면 이 도박에 같이 좀 어울려주면서 은근슬쩍 다가와서 뭐라도 좀 더 얻어내던가, 하다못해 서로 간에 뭔가 대화라도 주고받았을 텐데 그런 놈이 하나도 없다.
그나마 머리가 좀 돌아갈 것 같은 최상위 천족, 샤는 회개와 속죄, 반성의 시간을 보내며 오직 자신만의 과업을 위한 생각에 여념이 없고 루는 여전히 늘어져있는 상황.
이 정도면 그 섬인지 뭔지 하는 곳까지 잘 찾아갈까 그걸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쟤네 일체 건드리지 마라.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원래 가장 골치 아프니까.
자극하면 차라리 피해.”
“걱정마라.
그대가 기껏 만들어 둔 평화의 세상을 흐트러트릴 생각은 하나도 없다.”
“평화, 평화라.
이것도 평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침울한 척 연기하지 마라.
내가 그것도 구별 못 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아.”
역시 쟌답게 시온의 발연기 정도는 가볍게 간파해냈다.
안 속네?
하고 웃으면서 시온은 계속해서 해안가로 이동해 배에 오르고 있는 자들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혹시나 허튼 짓 하는 놈들이 생기면 바로 보고해.”
“어쩔 생각이냐?”
“딱 그 전의 배까지만 보내고 나머지는 싹 수장시켜야지.”
“진심인가?”
“한 번 베풀면 호의인데, 그걸 두 번 베풀면 그때부터는 권리인 줄 알아.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누가 더 우위에 있고 누가 더 열세에 있는지 잊어먹는다는 소리지.
이쪽이 저쪽의 사정을 최대한 봐주었다는 건 이제 지휘관들도, 병사들도 전부 다 알아.
이 이상 내가 마음씨 좋은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다는 거지.”
“도대체 그대의 진짜 모습을 종잡을 수가 없다.”
“이게 진짜 내 모습이야.
나를 위해서, 내 주변을 위해서 움직인다.
그러니까 그 둘만 지켜주면 무조건 적으로 돌려서 싸그리 쓸어버릴 생각도 안 한다.
이 정도?”
“우리 부족들도 그런 이유로 이렇게 그대와 함께 하고 있는 건가?”
“그건 네가 너무 아름다워서, 내 것으로 하고 싶어서 강제로 품은 거고.”
이런 부끄러운 말을 해주면 알아서 펑!
하고 터지는 쟌이었다.
틈만 나면 김유현을 마구잡이로 몰아치는 동생인 에오스와는 달리, 쟌은 이런 구석에서 상당히 약한.
정정하겠다, 완전히 무방비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리시키다도 이제는 은근히 자신 쪽에서 먼저 유혹하는 중인데, 쟌은 아직도 명예로운 전사랍시고 먼저 안겨서 앙앙거리는 건 생각도 못 했다.
“제, 제발 그런 말은 둘만 있을 때···.”
“지금도 둘 아닌가?”
“내, 내 말은!
두, 둘이 같은 막사에 있을 때 해달라는 거다!”
“혹시 부끄럽다거나?”
“당연히, 당연히 부끄러운 거 아니냐.
그건 시온, 그대도 마찬가지···.”
“난 안 부끄러워.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좋다고 말하는 건데 뭐가 부끄럽다고.”
100퍼센트 가식으로 이루어진 거짓말은 아니다.
확실히 쟌이란 여인은 매력적인 존재, 릴리트로 흉내 낼 수 없는 그녀만의 모습이 있다.
물론 시온도 그런 말을 이렇게 누가 들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하는 취향은 없었으나 요즘 들어서 다른 여인들이 묘하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와중에 아직도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쟌에게 조금이나마 경쟁 심리를 부여하기 위해서 이러는 중이었다.
뒤처지는 이가 생겼다고 그 손을 붙잡고 일어나서 같이 뛰면 다른 여자들이 더 질투한다.
뒤에서 슬쩍 밀어주고 더 적극적으로 달리라고 몇 번 속삭여주는 것이 훨씬 더 이롭다.
“아, 알겠으니 그만해라.
문제가 생기면 바로 보고할 테니 제발 그만 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이 붉어진 얼굴로 쟌이 그렇게 중얼거린다.
전장에서는 상대방에게서 뿜어진 피로 아주 온몸을 적시는 여인이 그곳만 벗어나서 시온 옆에 서면 과거의 리시키다 저리 가라 할 만큼 소녀가 되니 참 재미있는 장면이다.
“며칠 뒤에 헬렌이 도착할 거다.”
“헬렌이라면··· 그 거대한 상단의 주인 말하는 건가?”
“맞아.
저들이 전부 이곳을 떠나기 위해서 준비할 게 많을 텐데 당연하지만 그게 전부 여기 있을 리는 없지.
이왕 베풀게 된 거 아주 제대로 베풀어주고 멋지게 보내주려고.”
“···괜찮겠느냐?
저들이 받아먹을 것들 다 받아먹고 나중에 다시금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돌아오면 상당히 귀찮아질 것이다.
저들을 살려서 보내준다는 것이야 승자의 자비로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식량과 식수, 더해서 온갖 물건까지 지원해준다는 부분은···.”
“그러니 더더욱 확실한 명분이 생기는 거지.”
“확실한 명분?”
“나중에 저들이 정말 네 말대로 돌아온다면, 그 때는 잔혹한 학살을 벌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그런 명분 말이야.”
이미 대패한 전쟁에서 굳이 살려서, 심지어 줄 거 다 줘서 살려 보내주었다.
그런데 돌아온 건 그거 들고 좀 살다가 다시 한 번 싸워보자고 들덤비는 미친놈들.
이러면 당연히 대륙의 모든 여론이 저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것이다.
빛의 후예인지 교리인지 다 집어치우고, 그냥 비겁하지 짝이 없는 존재들이 되니 호의적인 시선을 받을 수가 없으리라.
그래서 시온이 베풀 때 확실하게 베푸는 것이다.
괜히 찔끔찔끔 해주다간 이도 저도 아닌 결과만을 얻을 뿐이다.
그럴 바에 차라리 나는 관대하다!
한 번 외쳐주고 그 후를 기다리는 게 낫다.
조용하면 ‘내가 베풀어서 이렇게 되었다.’ 라고 으스댈 수 있고, 시끄러워지면 ‘이것들이 은혜도 모르고 또 지랄이니 이제는 싹 다 죽여 없애겠다.’ 라고 해도 나중에 토를 달 놈이 없다.
“···나는 다만 부족원들과 전사들을 이끌고 말을 달리며 창칼을 휘두르는 게 적성이라, 그대가 정확히 어떤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지 이해하지 못 하겠다.”
“이미 대충 예상하고 있으면서 또 그러네.”
“허면 여기에는 얼마나 머물게 되는 것이냐?”
“저들이 이용할 배들을 계속 끌어 모으고 있는 중이야.
특히 놈들이 압수한 히스파냐의 배들까지 그냥 싹 다 내어주려고.
빨리 떠나라는 내 깊은 뜻이라고 할까.
내가 예상키로는 한 달 정도면 이곳도 얼추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너무 오랜 기간 동안 떠나있으면 그 피로감도 상당한 법이다.
때문에 시온은 늦어도 한 달 안으로는 이곳의 모든 것을 끝내고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의 치안은 누가 맡느냐고?
그거야 당연히 인접한 누디아가 맡아야지.
얼마 후면 국경 일대의 지역과 바수라 백작령이 통째로 넘어갈 텐데 그걸 달래려면 먹음직스러운 다른 뭔가를 내밀어서 구슬리는 방법이 최고였다.
‘물론 이미 다 망가진 땅과 이제 개발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땅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겠지만 그래도 왕실의 권위를 드높일 수 있다고 좋아할 테니 문제없어.’
그로부터 며칠 뒤, 미리 시온에게 언질을 받았던 헬렌이 원래는 전쟁 물품으로 준비해두었던 식량과 함께 배를 수리하는데 필요한 각종 도구들, 그리고 새로이 마을과 도시를 건설할 때 필요한 것들을 거대한 규모의 보급대와 함께 성소까지 가져왔다.
처음에는 시온이 그런 물건들을 준비하라고 했을 때 이해를 하지 못 했던 헬렌이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단박에 시온이 적들을 다 죽이는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내쫓아 명분과 실리 모두를 취하려 한다는 걸 깨닫고는 바로 준비 작업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시온이 원하던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의 물품들을 준비하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시온 공자님.
대승을 거두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적들조차 탄복할 정도의 자비로움을 지니신 귀족이 된 것도요.”
“상인인 네가 보기에는 어때.
내 거래가 꽤나 괜찮아 보이나?”
“저들 전부를 죽여서 얻을 수 있는 건 성소, 그리고 적들을 전부 해치웠다는 것 정도죠.
하지만 이미 대승을 거두었다는 건 누디아, 히스파냐 전부에 알려진 사실들.
그런 와중에 공성전을 치르면서 희생이 좀 크게 났다거나 저항하는 적들을 학살했다 하면 분명 좋은 기회라고 틈을 노리던 자들이 물어뜯으려고 할 거예요.
부족하나마 제가 보기에, 꽤나 훌륭하신 거래를 하신 것 같습니다.”
입에 발린 소리 따위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인간들의 전쟁을 몇 번 봤었던 헬렌으로서는 자신들에게 큰 피해를 입혀준 적이 있었던 적대 세력의 저항하는 이들을 순순히 살려주는 자비를 베푸는 장면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훗날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까, 자신을 해치려 하는 창칼이 될까 우려해서.
그런 의미에서 시온은 그 살아남은 적들이 자신에게 장애물이 될까, 창칼이 될까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명분 삼아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적들에게조차 자비를 베푸는 것으로 빛의 이름으로서 일어난 세력의 명분에 화룡점정을.
그리고 단순히 전쟁에서 잘 싸울 줄만 아는 군인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도 월등한 능력을 지닌 귀족임을 확실하게 세상에 인지시켜두었다.
누군가가 그의 능력이나 충성심에 의문을 품는다면, 동조의 기운을 받는 게 아니라 미쳤냐고 욕설을 바가지로 먹도록 만든 것과 다름이 없었다.
“저, 그런데 시온 공자님?”
헬렌은 시온과 이야기를 하다 말고 뭔가 발견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분들은 왜 저기서 저런···.”
“아아, 항상 그런 부류가 있잖아.
깨우침을 얻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반성하고 속죄하고자 하는 자들.
딱 저런 이들이지.”
샤를 필두로 하여 몇몇 천족들이 부상당한 이들을 치료하고 있는 모습을 본 헬렌의 반응.
성소에서는 전투가 없었다지만 신성 프러센에 오고 나서 산발적인 전투가 몇 번 있었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주기 위해서 빛의 극렬한 교도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게릴라전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기동력에서 어느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북쪽 전사들과 요정들이 연합군에 포진하고 있었으니 큰 피해를 입기 전에 바로 그들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부상병들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병사들의 적의와 거부감이 심할 것이라는 시온의 경고에도 샤는 나서겠다고 했다.
그 어떤 습하고 더러운 곳이라도 비추는 것이 바로 빛인데, 하물며 자신들로 인해 고통 받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말과 함께 말이다.
처음에는 모든 지휘관, 모든 병사들이 샤와 천족들에 대해 극렬한 거부감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노골적인 적의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자신들 앞에서도 항상 고요한 모습을 보이니 그 눈길도 점점 무뎌져갔다.
‘아무튼 껍데기가 중요해요, 껍데기가!’
다친 이들 중 대부분, 그리고 연합군의 거의 전부가 인간들이다.
특히나 히스파냐와 누디아의 사람들은 천족을 거의 본 적이 없으니 그들의 모습, 등 뒤에서 펄럭이는 순백의 날개나 도저히 뭐라 함부로 할 수 없는 외모, 악한 생각을 할 것 같지 않은 말투나 행동에 오히려 자신들이 으르렁거리고 있는 게 잘못은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물론 샤나 그녀를 따르는 천족들의 진심 어린 행동이 아니었다면 그런 것도 필요없이 바로 다 꺼지라고 한 소리 들었을 테지만.
“···모두가 다 악한 것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겠지만은···.”
시온이 넘어간 일이니 헬렌은 믿고 넘어가자, 하는 모양이었다.
대신 그녀는 또 다른 궁금한 부분을 질문했다.
“저 병사들은 또 뭘 하고 있는 건가요?”
“병사들?”
헬렌의 질문에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린 시온.
곧 그는 그 물음에 웃음을 내뱉고는 이렇게 답했다.
“계단.”
―
시온이 말했던 한 달의 시간이 거의 다 흘렀다.
그러는 동안 대륙에 남을 바에 차라리 바다를 건너 다른 곳으로 가겠다던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연합군이 지원해준 배를 이용하여 섬으로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얼마 전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루와 그를 호위할 천족들.
“샤, 정말로 빛을 저버릴 생각이냐?”
“저버리고 아니고 할 것도 없어요.
그저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에요.”
“네가 가고자 하는 그 길이 옳고, 동족들이 가고자 하는 길은 옳지 않다는 것이냐?”
“피차 똑같은 상황에요.
당신도 나를 이해하지 못 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더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 해요.
빛이라면, 빛의 후예라면 응당 이래야 했어요.”
“···.”
더는 설득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루는 배에 올랐다.
이 이상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의견 차를 좁힐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빠르게 이별하여 서로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편이 나았다.
“···.”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선단을 바라보며, 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들이 전부 떠났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곳에 남은 이들이 꽤나 많다.
당장 신성 프러센 왕국에 속해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땅을 떠나는 것에 난색을 표하며 차라리 남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시온의 말대로, 그저 강요만 했던 빛을 따를 이들이 하나도 없음을 다시 한 번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샤였다.
“샤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동안 그녀를 수행하던 유일한 상위 천족이 샤의 손을 잡았다.
그에 샤는 여태까지 자신을 믿고 따라준 여인의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이제 거의 정리가 끝난 연합군 진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는 진영 내부가 평소와는 달리 소란스럽다는 것을 눈치 챘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축하하며 병사들과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잔치를 열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시온 클라우젠 사령관이 함께 하며 분위기가 더욱 달아올랐고요.”
“시온 클라우젠이 같이 했다, 라.”
갑자기 호기심이 동한 샤는 발걸음을 떼어서는 한창 시끌벅적한 진영 내부로 이동했다.
그 중앙에는 히스파냐, 누디아, 북쪽 전사들, 요정, 수인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웃고 떠들며 정말 오랜만에 편한 얼굴로 즐거이 웃고 떠드는 중이었다.
여태 듣던 이야기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적의를 보이며 항상 싸울 생각만 한다던 자들이었는데, 큰 위협 앞에 이렇게 힘을 합쳐 맞섰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샤는 이들이 빛을 향해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평화로운 분위기가 깃들어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시온의 손짓에 병사 몇몇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 샤가 궁금해 하는 와중에, 시온의 옆에 검을 찬 채 호위 중이던 여기사가 품에서 류트를 꺼내들고는 그에게 내밀었다.
곧 시온의 외모만큼이나 아름답고 빛이 나는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고 흠흠!
목을 가다듬던 병사들이 한 달 가까이 연습했던 것을, 시온이 말하던 ‘계단’을 쌓기 시작했다.
내일로 가는 계단
그곳에 열린 문
미래를 향한 그 길
행복을 약속해
모두가 풍요로운 세상
저 뒤에서 우릴 기다려
내일로 가는 계단
찬란하게 빛나네
웃음소리가 잠깐 잦아들고, 국가도 종족도 살던 방식도 다른 모든 이들이 침묵한다.
그리고 귓가에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그리고 류트의 아름다운 선율에 집중한다.
은빛 바다 위 반짝이는
빛이여 이 밤을 밝히라
내일로 가는 계단
과거는 잊고
내일로 가는 계단
새 꿈을 찾아
찬란한 태양 아래
저 빛의 바다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자유가 넘실대는 세상
내일로 가는 계단
멋진 희망으로···
샤는 저들의 선율이 미소를 지으며, 저들이 오르고자 하는 그 계단에 자신도 함께 할 수 있기를, 언젠가 제 동족들이 지은 죄를 자신이 대신하여 모두 사죄하고 상처 입고 배신당한 이들을 빛으로 인도하여 미소 짓게 하는 순간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작품 후기―――――――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내일로 가는 계단
주말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