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426)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426화(426/439)
426―――――
내일로 가는 계단
“거절, 하시겠다고요.”
“네.
클라우젠은 딱히 그들을 설득하여 누디아로 보낼 생각이 없습니다.”
“···.”
다른 누디아의 인사였다면 어이가 없다고 하거나, 너무한 거 아니냐는 답을 했을 것이다.
비록 클라우젠이 그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한 건 사실이나 결국 그들은 누디아의 영토 안에 머물던 누디아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다시금 누디아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게 아니라 역으로 클라우젠 측으로 계속 다가오도록 하는 건 누디아와의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다음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군요.”
하지만 아이브는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온의 입에서 당연히 명백한 거절의 답을 내놓을 것이라고 예상한 모양새다.
“국경 인근의 사람들을 설득한다는 걸 거부한다는 건, 원래 정해져있던 히스파냐의 국경 너머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제 말이 틀린가요?”
“맞습니다.”
“몇 달 전까지 누디아의 모든 역량은 오직 전선에 나가있는 자들에게 집중되어 있었죠.
상대적으로 피난길에 오른 자들에 대한 지원은 미흡했고요.
특히나 누디아의 서부는 그렇지 않아도 저번 전쟁으로 피해가 다 회복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여러 지역의 피난민들, 귀족들, 그리고 왕실까지 받아들이느라 더더욱 피로감이 커졌죠.
그런 때에 클라우젠의 지원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한 줄기 빛 수준으로 찬란했고요.”
“누디아가 하지 못 한 일을 친우인 히스파냐가, 클라우젠이 대신 한 것이죠.”
“···덕분에 매우 날카로워져있던 그들의 신경을 많이 무디게 할 수 있었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감사의 뜻을 전해둘게요.
클라우젠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서 어떤 행동을 했을지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까.”
후우, 한숨을 내뱉은 아이브는 잠시 제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마치 체스를 두듯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히스파냐의 영토를, 정확히는 클라우젠의 영지를 이번 기회에 넓힐 생각이죠?”
“···.”
“처음에는 단순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인 줄 알았는데, 그 양이나 준비되어 있던 수준을 보면 신성 프러센의 전쟁이 벌어지고 그 직후부터 준비한 모양새였어요.
그리고 나중에 당신이 국경 인근의 땅을 전부 개간할 수 있도록 허락하게 해달라는 것도 조금 마음에 걸렸고요.”
“그렇게 잘 알고 있었다면, 왜 진작 견제하지 않았습니까?”
“막을 수 있을 줄 알았고,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누디아의 사람들이니까, 고향을 등지고 잠시 떠난 이들이니까 언제든 돌려보낼 수 있다고요.
그런데 클라우젠의 리히텐 변경백이 너무 뛰어나신 분이었고, 시온 클라우젠 사령관님이 준비해둔 안배가 예상 외로 너무 거대해서 거기에서 실수를 한 거죠.
그들은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을 텐데.”
“흠.”
“누디아의 사람들이 누디아라는 것에 지쳤을 무렵 클라우젠이 다가왔죠.
그리고는 직접 증명했어요.
클라우젠의 이름으로 들어오면 이보다 더 한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당장 히스파냐를 넘어 누디아, 신성 프러센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는 시온 클라우젠이 차기 가주가 될 터인데 그 밑에서 지내면 그 어떤 이보다도 더 편안한 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말이에요.
솔직히 그 말이 비겁한 선동이 아니라 사실이니까 더더욱 믿을 수밖에 없을 테고.”
“더 말해보세요.”
“땅만 차지해서는 좋은 게 없다는 걸 당신은 알았어요.
그래서 이전에 누디아가 협상의 조건으로 왕국 서쪽을 내어준다고 했을 때 거절했죠.
민심이 날카로운 와중에 땅을 받아봤자 거기에 안정시키는 데에만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테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죠.
땅이 아니라 사람을 끌어들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땅을 일구었고 마을을 건설하고 있죠.
그들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 거예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생겼죠.
그리고 그들을 돌봐주는 건 누디아가 아니라 클라우젠이라는 확신을 안겨주었고요.”
잠시 말을 멈춘 아이브는 ‘혹시 물 좀 주실 수 있나요?’ 라고 부탁을 했다.
시온이 사람을 불러 물병을 들고 오자 그녀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까딱이곤 물을 몇 잔이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렇게 목을 축이고서 길게 한숨을 내뱉은 아이브는 시온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전 당신이 정말 무서워요.”
“···.”
“솔직히 이건 진짜 너무하잖아요.
아무리 뛰어나도, 이 정도로 미래를 내다보고 예상을 하고, 거기에 확신을 가지고 준비를 할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들어가는 자금, 시간, 인력이 얼마인데.
만약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여태 퍼부은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터인데 당신은 너무나 당연한 일을 행하듯 툭툭 던지죠.
그런데, 그게 전부 다 맞아떨어지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게 이루어져요.
마치 신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듯이.”
작가놈 님을 신이라고 칭한다면 그게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더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도 거의 대부분은 맞는 소리고 말이다.
아무튼 여인들이라는 존재는 참 감이 뛰어나도 너무 뛰어난, 그야말로 무서운 존재들이란 말이야.
라고 중얼거리며 시온은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걱정 마세요.
나는 누디아를 적대시 할 생각은 없으니까.
나중에 어떨지는 몰라도 최소한 지금부터 꽤나 많은 시간이 흐를 때까지, 당신과 이렇게 둘이 앉아서 오붓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러면 참 다행이네요.
저도 당신이 히스파냐에 남아있는 동안은 절대 싸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서요.”
고개를 끄덕인 아이브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시온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당신의 뜻은 잘 알았으니 이제 슬슬 그쪽의 본론을 꺼내달라는 듯이.
“누디아의 뜻은 여전히 국경을 유지하고 모든 왕국민들을 제자리에 돌려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인가요?”
“귀족들은 그걸 원하겠죠.
하지만 그렇게 강렬하지도 않아요.
동부와 남부의 배신한 귀족들 영지는 당연히 몰수할 것이고 그 밑에 있던 이들의 권리를 주장할 자들도 많이 없어졌죠.
시온 클라우젠 사령관님도 아시다시피 현재 국경 인근에 머물고 있는 이들은 절반 이상이 동부와 남부 출신들.
돌아가도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만이 남은 자들이에요.
다시 돌아가서 또 고생할 바에 자리를 잡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들을 계속해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당연히 반발이 심해지겠죠.”
“그리고 현재 누디아는 그런 조그마한 반발도 무척이나 민감하니 아예 입을 열지 못 하도록 강하게 억누르거나, 아니면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테고요.”
시온의 말에 아이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국경 인근의 사람들과 마을이 다름 아닌 클라우젠 변경백령, 즉 시온의 세력이 주도하는 것에 의해 많은 지원을 받고 그들 영향력 아래서 자리를 잡았다는 걸 누디아의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시온 클라우젠이 세운 공적, 가진 명예, 사회적 위치를 따지면 히스파냐의 중추에서도 최고 핵심으로 들어설 인물이니 갈등보다는 손을 내미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어줄 건 내어주고, 대신 받아야 할 건 확실하게 계산해서 받기로 결정을 내렸고 그에 따라 아이브가 그 부분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위해 직접 여기까지 온 것이고 말이다.
“대충 서로의 뜻을 알게 되었으니 빠르게 말하겠습니다.
현재 히스파냐와 누디아 사이의 국경을 재조정했으면 합니다.”
“어디까지 원하시는 거죠?”
“동쪽으로는 바수라 백작령을 포함하여 이전 2차 방어선이 만들어졌었던 지역까지.
그리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남부 영지들과 항구도 내어주었으면 합니다.
특히, 남쪽 바다로 돌출되어 있는 부분은 반드시 받았으면 좋겠군요.”
“···.”
시온의 말을 들은 아이브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계산에 들어갔다.
상대가 말하는 지역을 따지자면 누디아의 서쪽 중 알짜배기 땅은 거의 다 가져가는 셈이다.
바수라 백작령은 누디아의 중앙과 서쪽 사이에 위치하여 히스파냐의 침입을 저지하던 곳인 만큼 중요한 곳이고 그 위의 북쪽은 딱히 쓸모가 없으니 가져가지 않겠다는 말.
더해서 남부의 돌출 지역을 내놓으라는 말은 누디아의 남부 영지를 전부 다 가져가겠다는 소리나 다름이 없었다.
‘어차피 남부는 동부 다음으로 귀족들의 이탈이 심했기에 반발할 자들도 없어.
시온 클라우젠이 계속해서 요구한다면 줄 수도 있는 땅이야.
하지만, 현 누디아의 거의 1/7에 해당하는 엄청나게 넓은 땅인 만큼 내부의 반발도 충분히 예상되는데.’
누디아 서부 영토의 대부분, 그리고 남부 전부를 떼어주는, 이 정도면 거의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서 목숨을 연명하는 대가로 땅을 떼어주는 것과 다름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항복이 아닌, 거래를 하고 있는 중.
그렇다는 건 시온이 그 넓은 영토를 받는 만큼 누디아에게 넘겨줄 것이 있다는 소리였다.
“대신, 신성 프러센의 모든 영토는 누디아에게 넘기겠습니다.
그리고 신성 프러센의 그 어떤 땅에도 히스파냐가 권리를 주장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
순간 아이브의 두 눈동자에 불꽃이 번뜩였다.
단순히 계산만 해도 이건 누디아가 몇 십 배는 더 이득인 상황이니까 말이다.
당장 영토만 봐도 그렇다.
누디아가 시온에게 내어줘야 할 건 서쪽 대부분과 남부 전체인데, 그 대신 얻는 신성 프러센의 땅은 클라우젠에 내어줄 땅보다 거의 6배는 더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신성 프러센을 무너트리는 데에 누디아의 영향력보다 히스파냐의 영향력이 10배 이상 차이가 났고, 때문에 완전히 붕괴된 구 신성 프러센 영토의 일부에 대해서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눈치가 보이던 누디아로서는 엄청난 소식임이 틀림없었다.
더해서 항구 도시가 대부분인 남부를 내어주는 일도 충분히 상쇄 가능한 것이, 신성 프러센은 누디아의 남부 도시만큼 항구 시설이 발달한 곳이었다.
남부를 내어주고 신성 프러센 전체를 받게 된다면 누디아는 오히려 남는 장사를 하는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왜 이런 후한 조건의 거래를 내미는 거지?’
누디아에게 너무나 좋은 조건이라 절로 의심이 갈 정도다.
아이브는 혹 자신이 놓친 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놓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서부와 남부 영토를 떼어주는 것으로 신성 프러센의 모든 땅을 정당하게 소유할 수 있다면 이건 누디아 측으로서는 무조건 받아들어야 하는 최고의 거래였다.
“히스파냐 왕실에서 이 거래를 허락하겠습니까?”
아이브가 이런 걱정을 하는 게 당연할 정도였다.
누디아가 이번 전쟁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는 하나 공을 가장 많이 세운 건 그들이 아니라 히스파냐이이다.
이건 누디아의 국왕조차 인정할 정도이니 전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건 히스파냐임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서쪽과 남쪽의 영토를 받는 조건으로 신성 프러센 전체를 내어준다고 하면 과연 히스파냐 왕실에서 그것을 듣고 수락을 하겠느냐, 아이브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귀족들 사이에서 많은 말들이 나오겠지.
시온 클라우젠이 너무 오만해져서 감히 여왕과의 상의도 없이 거래 조건을 마음대로 내밀었다.
히스파냐가 흘린 피가 얼마인데 신성 프러센의 영토를 단 한 뼘도 차지하지 못 하는 게 말이 되느냐.
이런 식으로 말이야.’
그런 말을 하는 귀족이 있다면 시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서 그놈의 주둥이를 찢어버릴 생각이었다.
조금만 생각을 해도 히스파냐가 구 신성 프러센의 영토를 주장한다고 해서 이득될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그곳을 히스파냐의 것으로 하게 되면 응당 그 땅을 지킬 병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병력이 구 신성 프러센과 정 반대편에 위치한 곳에서 와야 하는 히스파냐의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또 언제 도착하고, 와서 얼마나 지키다가 또 언제 집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그렇다고 현지인들을 쓰자니 아직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은 상황인데 뭘 믿을 수도 없고.
더해서 시온이 요구한 히스파냐의 서쪽과 남쪽은 이미 클라우젠이 누디아의 사람들에게 베푼 것이 있고 히스파냐 군이 누디아와 연합해서 싸운 일도 있으니 거기에 있던 누디아 사람들은 히스파냐라고 해서 적대감보다는 그래도 괜찮겠지, 식으로 클라우젠을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구 신성 프러센에 머물던 이들은 어찌 되었든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자들이 대부분이다.
당장 민심 관리에서부터 극심한 차이가 나는데 뭐가 좋다고 거기를 차지한단 말인가.
‘전쟁도 결국 길게 보면 장사다.
손해보다 이득이 더 많으니 일으키는 것이고 진행하는 거야.
이득 되는 건 적고 손해 보는 일만 많다면 빠르게 접어야 하는 게 맞는 거지.’
이 이상 군대가 외부로 돌면 히스파냐의 부담이 너무 심해진다.
군대는 단순히 소집되어서 이동할 때도 자금을 펑펑 쓰는 집단이다.
생산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소비만 하면서 국가에 엄청난 부담을 준다.
그리고 그 소비는 전시일 때 더 극심해지니 어떻게든 병사들을 다시 집으로 불러들여 창칼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 최선책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브는 잘 모르는 것 같지만···.’
미쳤다고 천족들이, 요정들이, 그리고 신성 프러센의 광신도들이 도망치듯 떠나면서 너희 곱게 먹으라고 제대로 뭘 남겨두었겠는가?
당연히 성소로 후퇴하면서 적들이 유용하게 이용할 만한 것은 파괴하거나 불태웠고 그게 구 신성 프러센의 현재 상황이었다.
시온이야 이걸 북쪽 전사들을 통해서 싹 정찰을 해 보고를 받고 있었으나 누디아는 당연히 그 소식이 훨씬 늦을 수밖에 없으니 이걸 알 턱이 없었던 것이다.
“주인님!
샤님 모셔왔습니다!”
딱 타이밍 좋게 리시키다가 시온의 명령대로 샤를 데리고 왔다.
시온은 리시키다에게 샤를 들여보내라는 답을 했고 잠시 후, 순백의 날개를 등 뒤에 고이 접은 채로 고요한 모습의 샤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절 찾으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일단 여기 와서 앉으세요.
아, 그리고 이쪽은 누디아에서 온 아이브 기 레스티온입니다.
아이브, 이쪽은 이번에 이곳에 남기로 하신 최상위 천족, 샤라고 합니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는 자들과는 다른, 참된 의미의 빛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분이라고요.”
아이브가 정중한 기색으로 인사를 하니 샤 역시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두 여인의 인사가 끝난 후, 아이브는 슬쩍 시온을 바라본다.
이 천족을 갑자기 이 자리에 왜 불렀냐고 묻듯이 말이다.
“말씀드렸다시피, 신성 프러센의 모든 것은 누디아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단.”
그래, 어쩐지 거래 조건이 너무 후하다 싶었다.
당연히 히스파냐가, 시온 클라우젠이 원하는 것이 있으리라고 예상하던 아이브는 그의 입에서 어떤 조건이 나올지 가만히 기다렸다.
“성소는, 성소 그 자체로 남았으면 합니다.”
“···네?”
“누디아나 히스파냐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계신 샤가 빛의 이름으로 관리하며 반성하고 속죄하고자 하는 자들을 위한 곳으로서.
그리고 더 나은, 더 밝은 길로 걸어가기 위한 기도를 올리는 곳으로서 영원히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여태까지 성소라고 불렸음에도 그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 했으니 이제라도 그 성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빛의 시작점으로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제 제안이?”
아이브와 샤, 두 여인은 시온의 말에 두 눈만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승자로서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자비, 그리고 빛을 위한 싸움이었다는 모든 명분에 그야말로 완벽한 마침표를 찍는 결정.
그런 시온의 말에 누디아의 여인은 감탄을 하면서도 내심 이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 더 증가했고, 반대로 천족 여인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이 남자가 있다는 클라우젠, 그리고 그 남자가 충성을 다하는 히스파냐야말로 진정한 빛을 사랑하는 곳이 틀림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면 히스파냐의 영향력은 몰라도 내 영향력은 그대로 남게 되거든.
명분은 명분대로 다 챙기고, 대외적인 모습은 영웅 그 자체인 인물, 시온 클라우젠.
키야, 이거야말로 차후 일어날 히스파냐 제국 공작령의 주인이 가질 타이틀 아니겠냐!’
···역시나, 전혀 순수하지 못 한 시온이었지만.
―――――――작품 후기―――――――
본편은 조금 더 남았습니다···.!
많지는 않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