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43)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43화(43/439)
<훌륭한 거래의 표본이로다>
“어제도 꽝이던가요?”
“···응.
딱히 크게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놈들은 없었어.”
“흐음.”
“시온, 도대체 뭔데, 내가 인간 세상에 대해서 많이는 모르지만 일단 왕궁은 무척이나 중요한 곳 아냐?
그런 곳의 바로 턱 밑에서 도대체 무슨 수상한 짓을 벌이는 놈들이 있다는 건데?”
“원래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고 하잖아요.”
“어··· 멋있는 말이긴 하네.”
이상한 부분에서 감탄을 하는 릴리트였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리시키다는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릴리트님의 말이 맞아요, 주인님.
아니, 공자···.”
“그냥 네편하게 불러라.
이제는 주인님이 공자님인지 나도 헛갈린다.”
“아, 네.
감사합니다, 주인님.”
“···.”
1초의 고민도 없이 바로 주인님, 이라고 부르는 리시키다를 바라보며 시온은 ‘역시 강아지.’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온 공자님.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루시아는 옆에 앉아서 가만히 차를 마시다가 그렇게 입을 열었다.
여기서 무턱대고 미래의 일을 발설하면 일이 이상한 부분으로 꼬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자신이 의심 받을 수도 있으니 대답을 잘 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의 대답은 20퍼센트의 진실에 80퍼센트의 거짓을 섞는 거지.’
어차피 김유현도 이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전혀 모른다.
그는 그저 소설 기준으로 2006년에 무림으로, 다시 무림에서 이세계로 전이된 남자였으니까.
“상당히 의심 가는 부분이 있어서요.”
“의심 가는 부분이요?”
“누디아와 협상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히스파냐와 누디아 사이의 관계를 이간질 시키려 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시온은 혹시 리시키다가 그런 적이 있었냐고 반문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충실한 부하답게, 그녀는 묵묵히 입을 다문 채 시온의 다음 말만 기다릴 뿐이었다.
시온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어떤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 그, 그건 너무 말이 안 되는 부분 아닐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루시아.
하지만 누디아 측의 말을 잘 들어보니 확실히 이상한 부분이 느껴졌습니다.
당장 전쟁을 선포해놓고 전투 한 두 번 치르고 당황해서는 끝낸 부분.
마치 누군가가 거짓으로 ‘히스파냐의 국경 방어 수행 능력이 떨어졌다.’ 라고 부추긴 것처럼 말이죠.”
그 말에 루시아는 물론이고 김유현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전쟁을 시작해놓고 바로 휴전을 하자고 나선 것이 뭔가 상당히 이상했던 모양이다.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애초에 내가 누디아 왕실과 바수라 백작령 사이의 관계를 벌어지게 하고 이간질시켜서 서로 더는 전쟁을 수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게 만든 것뿐이지.’
낄낄, 속으로 웃어대며 시온은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그 정체불명의 세력이 과연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무슨 목적,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들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까, 말입니다.”
“다음 행선지···.”
“왕국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려는 놈들입니다.
루시아, 당신이라면 그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잡겠습니까?”
“유력한 귀족들이 전부 모이는··· 이번 왕실 주최 파티겠군요.”
이그젝틀리!
바로 그겁니다!
라고 말하듯 시온은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러자 릴리트는 ‘칫, 나도 알았는데.’ 라고 투덜거렸고 리시키다는 가만히 루시아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온 공자님.
아무리 그래도 왕성이고 왕궁이에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원래 미친 짓을 하는 놈들은 과정은 머릿속에 없습니다.
오직 결과만을 도출하기 위해 그 어떤 수단이라도 가리지 않고서 수행한 다음 결실을 노리는 거죠.
나는 그 수단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 중이고 말입니다.”
사실 결말은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봐주는 뒷배도 줄줄이 꿰고 있다.
지금 시온이 찾는 것은 명분, 그 뒷배를 통째로 꿀꺽할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이었다.
“음··· 시온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딱히 수상한 점은 없었어.”
“귀족들이 몰리면서 예전보다 더 활기찬 분위기라고는 합니다, 주인님.”
“왕궁의 성벽 보수를 위해 작업 중이라고 했고.”
“왕국의 흥겨운 분위기에 맞추어 왕성 내부에서도 여기저기서 축제가···.”
“잠깐.”
시온의 레이더에 포착된 것이 있었다.
“릴리트님.
방금 뭐라고 하셨죠?”
“응?
왕궁 성벽 보수 공사.
그런데 크게 문제될 건 없을 텐데?
듣자하니 커다란 상단 하나가 인부들을 고용해서 왕궁의 관리와 기사들 감독 및 감시 하에 작업 중이라고 했어.”
···잡았다, 이놈 새끼들.
“자세히 말씀해보세요.
성벽 보수 공사?
왕궁에서 공사 발주를 내고 상단에서 인부들을 고용해서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는 거죠?”
“응.
그런데 딱히 이상 없다고 판단한게, 상단은 왕성에서 5년 넘도록 거래를 한 믿을 수 있는 곳이고 작업 인부들 역시 그냥 왕성에 거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래, 거기까지는 진실일 것이다.
5년이 넘도록 왕성의 상업 일부를 맡고 있던 상단, 원래부터 왕성에 거주하던 사람들.
하지만 반대로 그들이 원래부터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아니면 최근 들어 갑자기 돌변했을 수도 있다.
“공사 발주를 받은 상단이 어디죠?”
“하이네스라고 하던데··· 시온?
정말 왜 그래?
뭔가 이상해?”
하이네스, 그래, 분명 그런 성이었다.
헬렌 하이네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요정인 혼혈아.
과거 한 귀족 가문의 남자에게 여인으로써 당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을 겪고 동족에게서도, 그리고 그 남자에게조차 버림 받은 채 가슴 가득 슬픔과 원한을 품고서 정처 없이 세상을 거닐던 여인.
천족들의 세상 정화 프로젝트, ‘일곱 번의 뿔피리’ 를 앞당기겠다며 급진파 요정족들이 인간 왕국들을 들쑤실 때에 뒤에서 지원을 해주던 곳이 바로 그녀가 상단주로 있는 하이네스였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모든 것을 망가트린 자들을 벌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오직 쓰레기만 가득한 인간들을 전부 지워버리기 위해서.
‘사실 겨우 이것 가지고 찾아가서는 진실을 말하라고 떠드는 건 개쌉에바지.’
결말을 알지 못 한 채 그저 과정만 본다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
왕궁에서 내린 성벽 보수 공사 발주.
그것을 받은 신뢰할 수 있는 상단.
왕성에서 거주하던 사람들로 이루어진 인부들과 착실히 그들을 감시하고 있는 기사들.
어느 누가 봐도 아무런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시온은 다르다.
애초에 누가 범인인지 다 알고 있는데, 그 용의자가 무슨 동선을 짰든, 어떤 확실한 알리바이를 주장하던 다 개소리처럼 들리고 뭣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가죠.”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렇게 말하는 시온 때문에 그를 제외한 모두가 당황하고 말았다.
상단 이름 한 번 나오니 바로 찾아가자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시온?
지금 바로?”
“네.
아직 오전 시간이니 왕실 파티에 늦을 걱정은 없을 겁니다.
빨리 다녀오는 편이 좋겠지만 말이죠.”
“저, 시온 공자.
제가 알기로도 하이네스 상단은 왕성 내부에서 나름 신망을 얻고 있는 곳이라서요.
무턱대고 찾아가서 수상한 점을 찾는 건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들의 말에 시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현실에서야 수사 영장이 없으니 어서 꺼지라고 반박이라도 할 수 있을 테지만.
여기서는 ‘사회적 지위’ 와 ‘계급’ 이 훨씬 더 잘 먹힌다.
강압적이라고는 해도 밀어붙이다 보면 결국 둘 중 하나로 나뉘기 마련이다.
정말 캥기는 것이 없으면 ‘알아서 하세요.’ 라던가, 혹은 애써 불안한 마음을 숨기며 ‘증거 못 찾으면 어떻게든 불이익을 드릴 겁니다.’ 라고 말하던가 말이다.
시온과 함께 이동할 인원은 자리에 모인 모두로 결정되었다.
원래 시온이 원했던 인원은 김유현을 제외한 이 중 하나면 되었으나, 그렇게 되면 나머지 둘이 상당히 억울해지는 터라 부득이 전부가 함께 가게 된 것이었다.
물론 이동 간의 소란스러움을 막기 위해 기사들이나 호위병은 대동하지 않았다.
그들이 우려를 표했지만 시온은 웃으면서 ‘상단에 잠시 찾아가는 것뿐인데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라고 그들이 전부 별장에서 대기하도록 만들었다.
“주인님.”
“응, 리시.”
“정말입니까?
누디아와 히스파냐 사이의 관계를 이간질 시키려던 세력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씀 말입니다.”
당연히 개뻥이지.
“당연히 뭔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어, 리시.
생각해봐.
아무리 패전을 했다지만 휴전 협상이 너무 빨랐잖아?
누디아 측이 잘못된 정보를 받고 전쟁을 일으켰다면 그들이 그토록 빠르게 협상을 제시한 가능성이 높아지지.”
“···그랬군요.”
사실을 말하자면, 그런 거 없이 그냥 디셰 바수라의 모든 약점을 쥐고서 탈탈 흔들었기에 휴전 협상이 빨라진 것뿐이다.
누디아 왕실이 나서지 않은 건 그들 내부에서 권력 다툼이 심해져서고.
협상 테이블의 상황까지는 알아도, 대부분의 시간을 바수라 백작령에서 보낸 리시키다로써는 누디아의 왕실 상황이 어떠한지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릴리트님.
후드 제대로.”
“우씨.
답답하다고.
그냥 벗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러면 변형을 제대로 하시던가요.”
“안 돼.
거기에만 시온이 준 힘을 전부 쏟아 부을 수는 없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전투에 돌릴 힘 정도는 남겨둬야 한다고.”
“그러니 잘 쓰세요.
다른 건 몰라도 그 은발은 너무 눈에 띄니까.”
서큐버스가 내뿜는 엄청난 유혹의 페르몬이나 머리 위의 검은 뿔, 그리고 이성의 눈깔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외모까지는 가렸다고 해도 머리색까지는 그러지 못 했다.
때문에 시온은 릴리트에게 무조건 후드를 쓰라고 강조했고, 잔소리도 쏟아 부었다.
“도착했어요, 시온 공자님.”
왕성의 지리를 잘 알고 있던 루시아가 한 건물로 그들을 안내했다.
이곳이 하이네스 상단의 사무실인 모양이었다.
동시에 급진파 요정들의 아지트일 테고 말이다.
“어서 오세요, 하이네스 상단에 무슨 일로 오셨나요?”
카운터로 다가가니 한 여인이 웃는 낯으로 시온과 그 일행을 맞이했다.
시온은 그에 말없이 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내려놓았다.
“저, 고객님?
이게 무슨···.”
금화 하나의 의미를 물으려던 여인은 그대로 덜컥, 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사실은 금화를 내미는 척 하며 그 밑으로 시온이 내민 것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건···.’
순은의 원판에 조밀하게 세공된 방패, 그리고 세심히 쓰여 진 문구들.
마지막으로 정중앙에 박혀있는 루비까지.
‘클라우젠 변경백령!’
대귀족 가문의 증표를 위조할 정도로 간 큰 놈일까?
아니, 아니다.
이런 커다란 상단에 그런 미친 짓을 하며 찾아올 놈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얼마 전부터 왕국의 귀족들이 왕성으로 모여들었으니 눈앞의 저 증표는 진짜일 확률이 99쩜99퍼센트였다!
‘V, VVIP 다!’
카운터의 여인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웬만한 귀족들도 상단에서는 꽤나 괜찮은 물주인데, 클라우젠 같은 대귀족가는 그야말로 거물급에서도 초거대 거물이었다.
“어, 어서 오십쇼.
혹시 성함이···.”
“시온 클라우젠.
용건은 당신이 아니라 상단주와 만나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네, 넵.
바로 알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다급하게 벨을 누르는 여인.
그러자 뒤쪽의 방에 있던 남자 둘이 나와서는 무슨 일이냐고 묻다가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무척이나 놀란 눈빛으로 시온과 그 일행들을 돌아보았다.
이번 왕실 주최 파티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누디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 갑작스레 상단을 방문했으니 당연한 결과이긴 했다.
“다들 허겁지겁이네요.”
“당연하죠, 루시아.
명색이 대귀족 가문인데 긴장들 좀 해야 재미있지 않겠어요?”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잠시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시온은 다음 일들을 정리했다.
막느냐, 이용하느냐의 사이에서 참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적당히 막고 적당히 보내주어서 적당히 이용해 먹는다는 것이었다.
“고, 공자님.
상단주님이 안으로 모시라고 합니다.”
그 말에 시온과 그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상단 내부의 한 방으로 향했다.
마치 대회의실을 연상하게 하는 긴 테이블 끝에, 한 여인이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서서는 그들을, 정확히는 시온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서 오세요,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히스파냐의 전쟁 영웅이 제 상단을 다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개인적으로 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부탁도 있고 해서.
상단주.”
“그런가요.”
자리를 권하는 여인의 손짓에 시온은 편하게 그 자리에 앉았다.
그 뒤로 리시키다가 자리하고, 릴리트와 루시아, 김유현은 그 옆에 앉아서는 상황을 주시한다.
“···혹 무례하다고 하신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직업병이라서.
저를 찾아오신 용건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만.
시간 끌지 말고 대답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시온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청초해 보이는 외모, 밝은 녹색의 머리와 눈동자.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건 인간의 것과는 다르게 뾰족한 형태의 귀였다.
딱 거기까지 보자면 정말 숲속에서 지낼 듯 한 요정이었다.
차갑다 굳다 못해 아예 죽어버린 눈빛이 조금 으스스하긴 했지만.
“헬렌 하이네스.”
“네, 공자님.”
“나와 거래 하나 하지.”
“거래 말씀입니까?”
조건을 이야기 해보라는 듯 시온을 바라보는 요정, 헬렌
상대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여전히 빛 하나 보이지 않은 채 죽어있었다.
하지만 곧, 시온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오자 번뜩 하고 이채가 서렸다.
“카슈가르 백작가에 대한 처분을 양보해주었으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