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430)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430화(430/439)
430―――――
다시, 시온 클라우젠입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
권력판 위에서는 가족도 친구도 전부 의미를 잃는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게 생존을 위한 최선의 길이다.
시온 클라우젠이 누디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을 때, 북쪽 부족들과의 평화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북부 귀족들의 소요 사태를 일거에 처단했을 때, 남쪽의 해적들을 소탕했을 때.
귀족들은 그때까지는 그래도 클라우젠 변경백령에 대해서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외부에서 오는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고 내부에서 혼란이 일지 않도록 해준 일이니 현 상황이 계속해서 지속되기를 바라는 귀족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그게 클라우젠 변경백령이 백작위에 있음에도 거의 후작가에 준하는 권리를 가진 것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시온 클라우젠이 연합을 결성하고 신성 프러센과 결전을 벌여 승리한 바로 그 순간, 히스파냐 내부의 귀족들은 뭔가 자신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일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갑작스레 히스파냐의 국력이 엄청나게 커졌고, 북쪽 부족들과 수인들, 요정들, 누디아, 심지어 일부 남은 천족들까지 그 히스파냐를 인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왕실에 엄청난 권력과 힘이 쏠리게 되고 그 강력한 권위를 가지게 되는 왕실이 이후 어떤 일을 벌일지는 안 봐도 훤한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바네사 여왕과 시온 클라우젠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처음에는 서로를 아주 든든한 우군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쪽은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신하로, 다른 하나는 그 신하를 믿어주는 군주로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서 결국 어느 한쪽이 강해지면 당연히 다른 한 쪽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권력이라는 걸 깨우친 모양이다.
처음에는 호감, 그리고 신뢰로 감쌌으나 그 안에서 너무 커진 것이 아닐까.
믿을 수 있는 이라고 생각하여 최선을 다했더니 혹 이용만 해먹고 돌아오자마자 견제를 하려 드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들어도 이제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어느 쪽에 줄을 대야 할지 중견 귀족들은 골머리를 싸맸다.
바네사 여왕, 그리고 시온 클라우젠, 모두가 히스파냐의 떠오르는 젊은 신성들이다.
심지어 하나는 한 나라의 군주이고 다른 하나는 영웅이라 불리는 대귀족.
3후작가나 다른 백작가들은 지금의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우니 여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밑의 귀족들은 히스파냐가 급격하게 성장함에 따라 차후 이 권력판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예상하고 차후 행보를 결정해야만 했다.
해서 그들은 일단 가장 만만해 보이는 이를 먼저 포섭하여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자 했다.
“트리샤님, 어차피 당신에게 기사 작위는 크게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당장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견습 기사로 있는 것도 클라우젠 변경백령에서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머무르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오빠가 클라우젠에서 역시 견습 기사로 있으니까요.”
“정식으로 기사 작위를 받으신다면 클라우젠을 떠나서 더 큰 세상을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기회가 되신다면 저희 영지에 한 번 들리시는 것도 좋을 듯 한데.”
트리샤에게 귀족들이 은근히 달라붙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시온 곁에서 떨어져 나와 파티장을 홀로 전전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시온 역시 그녀가 떨어져도 딱히 찾는 모습이 아니었기에 귀족들은 둘 사이에 뭔가 일이 있다고 짐작하고는 바로 이 틈을 노리려던 것이었다.
‘기사들이나 마법사와는 또 다른 무력을 지닌 실력자.
헌데 시온 클라우젠은 곁에 워낙 쟁쟁한 이들이 많으니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대할 수는 없을 거다.
거기에 자신들도 공을 세웠으니 이제 그만 클라우젠의 그늘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을 테고!’
중견 귀족들은 그런 생각으로 트리샤에게 열심히 작업을 했다.
단순하게는 왕성을 지킨 이와 연을 맺을 수 있는 것이고, 더 크게 보면 시온 클라우젠과 줄을 대든 아니면 왕성을 지킨 덕분에 여왕과 제법 친밀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를 통해 왕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으니 트리샤는 꽤나 먹음직스러운 먹이였다.
몇몇 귀족들이 트리샤에게 공을 들였다면, 또 다른 몇몇 이들은 시온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바네사 여왕의 처사가 너무 섭섭한 것 같았다며 시온을 위로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해보이고는 그의 기분에 맞춰주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시온 클라우젠 공자.
여왕께서도 시온 클라우젠 공자를 너무 칭찬만 하시면 자칫 다른 귀족들 눈에 좋지 않게 비춰질 수도 있으니 생각을 해주신 부분일 겁니다.”
모든 이들이 자신들의 잇속만을 생각하여 다가온 건 아니었다.
어떤 귀족은 진심으로 그리 말하며 혹 바네사와 시온의 사이가 이전의 군주와 신하처럼 소원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온 곁에 모여드는 모든 이들은 그런 의도를 지닌 이들보다는 다른 뜻을 품고서 다가오는 이들이 더 많았다.
“보는 내가 다 섭섭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공자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여왕께서 아직 젊으셔서 더 먼 곳까지 보시지 못 한 모양입니다.”
“시온 공자만 아쉽게 되었습니다.
이전 누디아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에는 엄청나게 반기는 모습늘 보이시더니.”
“아무래도 여왕께서는 누디아와의 협력 구도보다는 아예 그들을 완전히 침묵시키고 히스파냐가 대륙의 질서를 통제하는 상황을 그리시는 것 같습니다.”
에라더를 다시금 왕위에 올리려고 했던 사건 이후, 귀족들은 더더욱 몸을 사렸다.
지금도 대놓고 왕실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고 다만 시온이 안 됐다는 투로 말을 늘어놓으며 은근하게 그의 속을 확인하려고 들었다.
“그 어떤 귀족, 신하라고 해도 제 주인인 군주의 마음을 어지럽혀서는 안 됩니다.
어쩌겠습니까?
그 분께서 섭섭하다 하신다면 저로서는 다만 사과의 말씀을 드릴 수밖에요.”
답은 그렇게 하지만 내심 서운하다는 기색을 내비치는 시온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귀족들은 속으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왕실의 힘이 커지면서 3후작들조차 몸을 잔뜩 웅크리는 마당에 바네사 여왕이 혹 귀족들을 압박하는 정책을 내놓아도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런 때에 영웅으로 불림에도 여왕에게 섭섭한 대접을 받은 시온 클라우젠이 다른 귀족들이 그러하는 것처럼 제 가문에 대한 것을 우선순위로 둔다면 귀족파의 거두가 등장할 수도 있음이었다.
어찌 되었든 시온 클라우젠도 결국 귀족이니, 왕실의 힘이 너무 커져서 자칫 귀족들을 압박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건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권력의 장에서 밀려난다는 건 단순히 그 링 위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약해지면 무시 받고, 무시 받다보면 자연스레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으로만 보이게 된다.
나라에 충성하던 자들도 한 번 권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하는 경우다 부지기수, 하물며 원래부터 대귀족 가문에 있던 시온 클라우젠이 엄청난 공을 세웠음에도 이리 견제를 받는다면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전하, 아무래도 마음에 걸립니다.”
“그렇습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가 굳이 누디아에 그런 엄청난 이점을 준 것이나, 누디아의 영토를 받은 곳이 하필이면 클라우젠의 영향력이 가장 많이 닿는 곳이라는 점.
그 모두가 자꾸만 귀족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곁에 있는 귀족들만큼이나, 왕실을 택해서 거기에 의지하고자 하는 자들은 자연스레 바네사에게로 몰려들어 걱정스럽다는 말을 한 마디씩 보탰다.
그들에게는 누디아의 서쪽, 그리고 남쪽이 클라우젠과 가깝고 또 국경 인근을 개발하며 영향력을 가장 많이 행사할 수 있다는 부분이 좋은 공격 대상이었다.
왕실과 클라우젠이 서로를 견제하며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못 하게 하고, 그러는 사이 귀족들은 흔들림 없이 자신들의 입지를 다져놓는다.
이것이 현재 그들이 가장 원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도 누디아에게 신성 프러센의 영토를 전부 내어준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린다.”
군주가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말을 막 던질 리는 없다.
그럼에도 바네사가 굳이 저 말을 한다는 건, 그녀도 클라우젠의 힘이 너무 막강해졌음을 깨닫고는 지금부터 그들의 권력을 조금이나마 줄이겠다는 의지로 비쳐질 수도 있음이었다.
바네사의 마음을 눈치 챈 귀족들은 혹 클라우젠을 대놓고 의심하는 모습이나 분란을 조장하려는 느낌이 나지 않도록, 그저 왕실에 대한 걱정만이 전부라는 충신들의 모습을 보이며 아주 조심스럽게 클라우젠에 대한 이야기들을 돌려서 말했다.
결국 바네사 여왕이 며칠 뒤에 있을 대회의에서 다시 한 번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하니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이 얼추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이나 계속된 축하 파티가 끝나던 날.
바네사 여왕이 마침내 왕성에 모여 있던 귀족들 전원을 대회의실로 불러 모두 착석케 했다.
“시온 클라우젠.”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여왕의 지목을 받은 인물은 역시나 시온 클라우젠.
여왕의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선 시온은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히스파냐가 누디아에게서 받을 영토는 서쪽의 대다수와 남쪽 전부다.
구 신성 프러센의 땅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넓고 무엇보다 한쪽은 꽤나 비옥한 토지, 다른 한쪽은 잘 정돈된 항구 도시들을 끼고 있는 곳이지.”
“여왕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누디아가 우리 히스파냐에게 내어주겠다는 영토를, 그대는 어찌 하면 좋겠는가?”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의 히스파냐에 있어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열에 열 모두가 그대를 꼽을 것이다.
그러니 가장 먼저 그대에게 묻는 것이다.
시온 클라우젠 그대는.
클라우젠 변경백령은 그대들 바로 앞에 새로이 들어설 땅을 원하지 않는가?
이미 국경 일대에 클라우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들었는데, 바로 그 부분을 원하고 실행한 바가 아니냐, 이 소리다.”
“다만 클라우젠이 가장 가까웠고 또 가장 여유가 되어서 한 일입니다.”
“허면 그 땅 어느 한 뼘도 클라우젠은 원하지 않는다, 이런 말로 받아들여도 되겠는가?”
“다만 여왕 전하의 뜻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시온의 말에 이전에 바네사를 찾았던 중견 귀족들은 미소를, 그리고 시온을 찾았던 이들은 아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 했다.
그렇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을 해주었음에도 결국 제 가문보다는 히스파냐에 대한 충성을 택한 것인가.
결국 돌아오는 건 왕실의 가장 강력한 견제라는 걸 알아듣게 말했음에도 말이다.
“그 땅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자들이 피땀 흘려 지켜낸 땅이자 히스파냐에 선물한 땅이다.
허니 나는 그 땅을 허투루 내어줄 생각이 추호도 없다.
다시 묻겠다, 시온 클라우젠.
그대는 정녕 내게 하고자 하는 말이 없는가?”
“···공을 세웠으니, 그에 걸맞은 포상은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시온의 입에서 마침내 그를 찾았던 중견 귀족들이 원하던 대답이 나왔다.
국가와 왕실을 위한 충신도 좋지만, 일단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으며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 가문을 챙기는 게 먼저 아니겠는가.
전쟁 영웅인 시온 클라우젠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정도라면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 약간이나마 대립각이 다시 한 번 세워지는 꼴이니 왕실의 독주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호재였다.
반대로 바네사의 곁에 있던 귀족들은 시온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나?
그것도 아니다.
바네사 여왕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라는 시온 클라우젠이 약간이라고 해도 대립각을 세운다면 결국 왕실의 믿을 수 있는 우군이라는 타이틀은 자신들이 채갈 확률이 높아지기 마련.
시온이 저런 답을 하든, 하지 않든 그들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걸맞은 포상이라.”
한편, 바네사는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시온의 말에 그리 중얼거렸다.
그 모습이 시온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자리에 모인 귀족들조차 쉽사리 예측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선왕이었던 에드가 4세와 마찬가지로 귀족들을 휘어잡는 모습에 몇몇 이들은 안도를, 또 몇몇 이들은 걱정을 하던 찰나, 바네사가 말을 잇는다.
“그러니 말해보라는 것이다.
그대가 원하는 것, 그대가 받고 싶은 포상.
그대가 세운 공을 내가 모르는 게 아니고 히스파냐가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말하라.
무엇을 원하는가?
영지를 넓혀주기를 바라나?
아니면 그대가 곧 받을 클라우젠 가문의 작위를 올려주기를 원하는가.
말을 해야 알 수 있는 법이고, 고민이라도 할 수 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
여왕의 재촉, 일등 공신에게 원하는 상을 주겠다는 군주의 선언이다.
그것이 정말 상을 내려주는 것만으로 끝날지, 아니면 다른 길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될지 바네사 여왕을 제외한다면 아무도 알 수 없었기에 모두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왕이시여.”
바로 그 때, 침묵하고 있던 시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한가?
그렇다면 그대의 주인인 내 앞에, 히스파냐의 군주인 이 앞에 말하라.
그대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 마음 놓고 당당히 말해보란 말이다.
땅을 원하는가?
작위를 원하나?
그도 아니면 재물?
명예?
무엇이냐, 시온 클라우젠.”
관객들이 전부 모였다.
조연들이 주연들의 연기를 신호탄으로 하여 이 연극에 빠져들 준비도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이 길고 길었던 모든 연극의 끝을 낼 차례다.
“저는 히스파냐 역사상, 아니.
대륙 역사 전체를 뒤져보아도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공을 세웠습니다.
그 어떤 영웅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그런 영웅이 되었습니다.”
은근히 시온을 견제하던 이들이 슬쩍 눈살을 찌푸린다.
다른 이도 아니고 여왕 앞에서 저런 말을 하니 그 모습이 상당히 아니꼬웠던 모양.
하지만 다음 이어진 말에, 그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들이 넋이 나가고 말았다.
“이런 제가 몸담고 있는 이 히스파냐가 왕국임이, 이런 영웅이 주인이라고 떠받드는 분이 왕의 호칭에 머물고 있음이 그저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니 여왕이시여.
더 높은 곳으로, 더 위대한 곳으로 나아가주시길 간청 드립니다.
세상 그 어떤 이도 반대하지 못 할 것이니, 지금의 왕좌가 아니라 저 위의 더 찬란한 자리로 가시길 바랍니다.
이게 바로 제가 전하께 부탁드리고자 하는 포상, 폐하께 원하는 유일한 것이 될 것입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소서!
히스파냐의 주인이시여!”
시온의 말, 그 속에 담긴 내용, 폐하, 황제.
그것에 자리에 모여 있던 내로라 하는 귀족들 전원이 두 눈만 껌뻑였다.
여태껏 히스파냐도, 누디아도, 천족을 품고 있던 신성 프러센도 언급하지 못 하던 단어다.
자칫 이 선포로 인해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기에, 오만함을 무너트리겠다며 사방에서 적들이 몰려들 수도 있기에 어느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히스파냐가 전성기라고 할 때도 황제의 자리는 꿈도 꾸지 못 했고, 그건 누디아도 마찬가지였으며 구 신성 프러센도 사정이 같았다.
그만큼 제국이라는 타이틀이 지니는 것은, 황제라는 호칭이 가지는 것은 그 전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제국임을 선포하소서!
황제 폐하!”
“황제 폐하!”
시온의 입에서 다시금 제국을 선포하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가장 먼저 옆에 서있던 루드비히가 바로 무릎을 꿇으며 바네사를 향해 황제라 칭했다.
그 뒤를 따라 시온과 루드비히와 함께 전장에서 고생을 했던 지휘관들, 귀족들이 역시나 극상의 예를 취하고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고, 제국의 이름을 선포해 달라 외친다.
‘둘이 이미 샤바샤바 해서 이야기 다 끝낸 마당에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든 편 가르기를 해서 잇속을 챙기려던 자들이 있었으니, 바네사 속이 아주 끓어오르겠군.’
자신만큼이나 꽤나 연기레 소질을 보이던 바네사에게 박수를 보내며.
시온은 바로 어제 조사를 끝낸 라이도가 보내준 장부, 일명 ‘살생부’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목숨을 빼앗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한 톨의 권력이라도 더 쥐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자들이 역으로 그것을 빼앗기는 건 그들에게 있어 죽음과 다름이 없으니, 살생부라 부르는 것이 옳은 말일 것이다.
‘신나게 털어봅시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
깨끗하지 못 한 자신이 역시나 깨끗하지 못 한 자를 거꾸로 들고 탈탈 털 때다.
어디다가 무엇을 숨겨두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꿰고 있으니까.
진리의 ‘역시사지’ 는 어디든 써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작품 후기―――――――
킹지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