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438)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438화 (외전)(438/439)
438―――――
외전 1.
황제 폐하, 이러시면···
“심심해.”
“···.”
“아, 심심해.”
“···.”
“아,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그냥 나가요, 좀!”
더 이상 버티지 못 한 시온은 큰 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원래의 릴리트였다면 ‘갑자기 얘가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라고 중얼거렸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애당초 모든 것이 혼자 피똥 쌀 정도로 일하고 있는 시온을 놀리기 위함이었으니까!
“아, 꼬우시면 일 관두고 나랑 놀던가!”
“이런 젠장!
어제도 그 꾐에 넘어가서 하루 종일 일도 못 하고!
예!”
“에헤이.
말은 제대로 해야지, 시온?
솔직히 어제 너도 엄청 즐겼잖아.
오구오구, 누나 가슴이 그렇게 맛있었어요?
조금 더 줄까?”
릴리트의 아주 적극적인 구애에 시온은 그만하자는 뜻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그에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닌 릴리트는 바로 그의 기분을 알아차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한 달 째지?”
“한 달 째죠.”
“어째 네가 여기저기 쏘아 다니던 때가 더 안 바빴던 것 같아.”
“저도 요즘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어디서 뭔 일 터져서 잠깐이나마 이 업무에서 해방되었으면 할 정도에요.”
“하지만 그 일 해결하고 오면 그만큼 이 종이뭉치들은 더 생겨있지 않을까?”
“···.”
생각해보니 그도 그렇다.
지금도 시온 자신이 이렇게 업무의 바다로 풍덩 빠진 것이 새로이 클라우젠에 들어온 누디아의 영토에 대한 조사 및 보고, 확인 작업 때문임을 감안하면 새 사건이 터질 경우 이 업무량이 배가 될 것이 확실했다.
후우, 한숨을 내뱉으며 시온은 다시금 서류 작업에 열중했다.
지금의 클라우젠은 이전의 백작령이 아닌 공작령, 제국에 단 하나밖에 없는 영지다.
넓이만 봐서는 거의 일개 국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기에 그만큼 그 공작령을 총괄하는 자신의 위치가 매우 중요했고 조그마한 일 하나라도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사륵―.
일단 누디아에서 새로이 편입된 영토에 대한 조세를 감면해주고 파괴된 도시들을 복구하는데 미리 비축해두었던 자금을 풀면 되겠지.
식량이야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농토 개간이 완료되니 재해가 닥치지 않는 이상 영지민들이 개를 곯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시온은 눈으로는 서류의 내용을 읽고, 손으로는 중요한 부분을 체크해가며, 머리로는 이후 일어날 사건들을 생각하고 상상하며 일에 집중했다.
“흐음.”
남자가 일에 집중하여 혼신의 힘을 다 하는 것에 여인들이 매력을 느낀다고 했던가.
릴리트는 그렇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남자가 일에 집중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꾸 장난이 치고 싶어지는 것을 참느라 혼이 났다.
그러다가 결국 끝에는 버티다 못 해 또 말을 걸 뻔도 했지만 그 전에 새 얼굴이 등장해서 거기까지는 막아주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작님.
저번에 맡기셨던 조세 부분과 식량 생산에 대한 조사 건에 대한 서류를 가져왔습니다.”
“아, 헬렌.
고마워.
좀 확인해도 될까?
널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전혀요.
오히려 공작님께서 저를 믿으신다고 하셔도 확인을 반드시 하셔야 한다고 제가 직접 말씀을 드릴까 고민도 했었답니다.”
루시아, 트리샤와 함께 공작령으로 들어온 후 헬렌은 시온을 도와서 행정 업무에 집중했다.
그동안 상단을 운영하면서 특히 자금 쪽에 능통했던 그녀는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일에 특히 유능했기에 시온은 당연히 그녀를 행정 업무에 채용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지금은 돈이 들어가는 곳만 넘쳐나는군.”
“각오는 했지만 확실히 이전 전쟁으로 인해 복구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혹 공작령의 자금이 걱정이시라면 제 상단의 자금을 쓰셔도 되는데.”
“아니, 아니!
절대 안 그런다.
상단 자금은 상단 자금일 뿐이야.
거기에 손대는 일은 없어.
그러니까 헬렌 너도 그런 말 하지 마.
알았지?”
“네, 네.
알겠습니다.”
돈 문제에 관해서는 칼 같은 시온이었다.
설사 헬렌이 이제는 자신에게 완벽하게 들어와서 그 상단도 결국 클라우젠 공작령의 소유나 다름없다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상단은 헬렌이 가꾸고 일으킨 것이다.
거기에 벌써부터 손을 벌리는 멍청한 놈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웬만하면 못 이기는 척 호의 좀 받아.”
“에?”
“헬렌 입장에서는, 그러니까 요정 입장에서는 굉장히 신경을 쓰는 거야.
배우자라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아낌없이 주는 자들이 바로 저 종족이지.
그런데 그걸 또 거절당하면 겉으로는 알겠다며 웃어도 속으로는 무척 실망하거든.”
“하지만 제가 안 받고 싶다는데 어쩝니까.”
“어차피 저 아이는 자신의 것은 곧 네 것이라고, 자신조차 네 것이라고 여길 텐데.”
그래도··· 라고 운을 떼려던 시온은 고개를 내저었다.
요 근래 자신이 업무에 미치는 동안 릴리트는 마족임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조용히 지내면서도 여인들 간의 마찰이 일지 않도록 안주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아직 쟌과 리아가 돌아오지 않았기에 신경 써야 할 건 트리샤 밖에 없는 게 있긴 했지만 아무튼 그 트리샤도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제 차례를 기다리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건 전부 릴리트 덕분이었다.
그 릴리트가 하는 말이라면, 그게 심지어 여인에 관련된 일이라면 따르는 게 좋다.
마누라 말 들어서 안 좋은 건 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니까!
“그보다 김유현, 그 인간은 잘 하고 있을지 모르겠네.”
“잘 하고 있겠죠.”
“걱정 안 돼?
검 휘두르는 건 나도 인정해.
그런데 그 일이랑 네가 하는 일이랑은 완전히 다른 거잖아.
시온, 너도 그 부분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했고.”
김유현 역시 백작의 작위를 받고서 누디아에게서 받은 남쪽의 제 영지로 내려갔다.
다만 시온과는 달리 영지 관리의 일이 전혀 익숙하지 않은 주인공이었기에 바네사는 행정 업무에 능통한 이들 몇을 김유현의 영지로 향하게 했다.
지금 당장은 그들이 김유현을 돕고 있다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있게 된다면 귀족령에 대한 황실의 과도한 간섭으로 비쳐질 수도 있으니 아무리 길게 잡아도 두 달에서 세 달 안에는 그들이 김유현의 영지를 떠나서 황궁으로 복귀할 것이다.
즉, 김유현은 두 달에서 세 달 후에는 제 힘으로 영지를 이끌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항구 도시들이 많은 곳이라 상업이 발달했으니 농사가 안 된다고 문제가 될 건 없고.
혹 문제가 생겨도 클라우젠이 도와주면 되니 별일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명색이 히스파냐 제국의 백작인데 제 힘으로 뭔가는 좀 해야 한다.
검만 휘둘러서는 제 모든 것을 지킬 수 없음을 김유현은 시온을 통해서 알았다.
때로는 검을 휘둘러 만 명을 죽이는 것보다 말 한 마디로 천 명을 제 편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라는 걸 이제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 어떻게든 뭔가를 해보려고 할 터인데, 그게 마음대로 잘 안 되니 답답할 것이다.
‘아무래도 공작령이 조금 진정되면 헬렌을 파견 근무 보내야 할 듯 싶다.’
지금은 제 코가 석 자인 지라 도울 형편이 되지 않았다.
누디아에게서 받은 영토가 워낙 넓었기에 그 부분에 대한 인프라를 재구축 하는 것만으로도 현재 시온은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수준이었다.
“릴리트님.
마족들 준비는 잘 되어가죠?”
“대충은.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누디아랑은 사이 좋았던 거 아니야?”
“공식적으로는 그렇죠.
하지만 누디아가 힘이 점점 커지면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평화가 지속되면 자연스레 내부에서 치고받고 싸우기 마련이죠.
그럴 바에 위기 상황을 좀 만들어서 적절하게 긴장 상태를 유지할 겁니다.”
“샤는 너 엄청 좋게 보고 있던데.
이렇게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걸 알면 엄청 화낼 거야.
아니, 화를 내는 수준이 아니라 배신감을 느끼고 너를 벌하겠다며 달려들 것 같은데.”
“이런 말이 있어요, 릴리트님.
나쁜 짓을 안 할 수는 없다.
대신 걸리지만 마라.”
어디선가 자꾸 휴대폰의 냄새가 난다며 주의를 주던 주임원사가 하던 명언이었다.
나쁜 짓을 안 할 수는 없다.
대신 들키지만 마라.
그러면 된다.
“···진짜 자신만만하네.”
“릴리트님하고 저, 그리고 주변 여인들만 입조심하면 되니까요.
그 외에 릴리트님의 정체를 아는 분들도 제가 이런 방법까지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 할 테니까.”
한 달 정도가 지나니 누디아도 혼란을 많이 잠재웠다.
그리고 이제는 구 신성 프러센의 영토를 조금씩 조금씩 흡수해가고 있었고.
물론 그 와중에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고 아예 무력 투쟁으로 저항하는 이들도 있었다.
천족들이 데리고 떠난 이들은 구 신성 프러센의 수도에 있던 자들 뿐이었다.
자연스레 다른 지역에 있는 극렬한 빛의 지지 세력들은 누디아를 인정하지 않으며 저항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말이다.
“이럴 때 조용하면 마족이 아니죠.
슬슬 누디아와 구 신성 프러센의 북쪽을 치고 내려가세요.
적절히 혼선 좀 주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누디아가 판단할 무렵에 물러서고요.”
“구 신성 프러센의 영토를 흡수하기는커녕 마족들의 공격이 시작될까 걱정되어서 북쪽부터 신경 쓰는데 급급하겠네.”
“그동안 부지런히 커서 누디아가 어떻게 다시 일어선다고 해도 히스파냐한테 한 번 대들어보겠다는 생각을 못 하게 해야죠.”
“정말이지, 누디아가 다 불쌍해질 정도다.”
“어쩌겠어요?
저는 히스파냐의 사람이지 누디아의 사람이 아니거든요.”
와, 진짜 사악한 놈.
내가 이래서 반할 수밖에 없다니까.
릴리트의 장난스러운 중얼거림에 시온은 미소로서 감사하다는 뜻을 대신했다.
그렇게 다시 일에 집중하려는데, 밖에서 다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네.
황궁에서 사람들이 당도했다고 합니다.”
황궁에서?
시온은 한창 들여다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두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 들어서 제국 전체가 바쁜 상태라곤 하지만 바네사 황제가 자신을 찾을 정도로 급한 사항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미 그전에 시온이 교통정리를 거의 완벽하게 해두었고 바네사는 시온이 뚫어준 길을 영리하게 이용하며 히스파냐가 탄탄대로의 길을 걷는데 주력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황궁에서 사람이 온 거지?’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었지만 일단 황궁에서 왔다는 사람을 만나보는 게 우선이다.
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아, 제발 부탁인데 또 장난친다고 서류 숨기지 마세요.”
“안 해.
나도 분위기는 읽는 여자거든?
네가 여유 하나 없을 때 그 일로 장난을 칠 정도로 바보 같은 여자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죠.”
“야!”
시온의 장난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역시나 장난으로 소리를 지르는 릴리트였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이제는 일상이 장난이고 장난이 일상이 된 느낌이랄까.
“주인님.”
“리시, 고생하네.
그래, 황궁에서 사람이 왔다고?”
“네.
그런데···.”
갑자기 말끝을 흐리는 리시키다.
그녀가 말끝을 흐리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시온은 바로 뭔가가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슬쩍 몸을 숙여 그녀의 입가에 귀를 가까이 했다.
“살짝 이상해요, 주인님.”
“무슨 소리야?”
“분명 황실 기사단은 아니에요.
대부분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어요.
그런데 그들보다 강하면 강했지, 결코 약하지 않은 이들로 이루어진 이들이 왔어요.”
리시키다의 말에 시온은 잠시 두 눈을 껌뻑였다.
황실 기사단보다 더 강하면 강하지 약하지는 않은 자들이 왔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황궁에서 보낸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빌려 클라우젠으로 들어왔다?
“···리시.
지금 그들이 어디에 있지?”
“일단 응접실로 다 모셨어요.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루시아와 트리샤 모두···.”
“아니야.
전부 다 물려.”
“네?”
“응접실에서 다 물리라고.
대신 성의 방비를 최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어디 하나 흠 잡히지 않게 최선의 준비를 다 하라고 세바스찬에게 말해줘.”
“주인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마도.
“아마도, 엄청나게 중요하신 손님이 오신 것 같다.”
―
응접실에 들어선 시온은 황궁에서 왔다는 사람을 마주하게 되었다.
자신을 황제가 보낸 특사라고 소개하는데 자신도 안면이 없는 이였다.
‘···.’
시온은 슬쩍 주변을 살폈다.
특사라는 이의 뒤에 총 세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묘하게 양 옆의 둘이 가운데에 있는 이를 완벽하게 보호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거기에서 나오는 기세가 대단했는지 리시키다는 날카로운 기세를 거두지 않은 채로 시온의 옆에 붙어서 만에 하나 사태를 대비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해서 황제 폐하께서 클라우젠 공작의 의견을 묻고자 저를 보내셨습니다.”
“제 의견을 묻고자 당신을 보내셨다고요.
황제 폐하께서?”
“그렇습니다.
뭐라 답을 보내시렵니까?”
목소리 하나 흔들리지 않고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연기력은 출중한 이다.
아마 뒤에 서있는 두 기사가 너무 경직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시온도 바로 눈치를 채지 못 하고 황제의 질문에 대답을 했을 것이다.
‘리시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데.’
김유현에게 속성 과외를 받은 상급 기사다.
애당초 재능을 가진 여인이 세계관 최강자의 지도를 받았으니 일취월장하는 거야 당연한 일.
그런 리시키다의 앞에서 아무리 기세를 숨기려고 해도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시온은 눈앞의 왕가 비밀 수호 기사단.
아니, 이제는 황가 비밀 수호 기사단이라 불러야 할 집단의 일원들을 바라보았다.
“내 대답은 내가 황제 폐하께 직접 들려드리고 싶은데.”
“···예?”
뭘 이해 못 하는 척이야.
이미 다 들켰어.
시온은 속으로 피식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그냥 단순한 일행처럼 보이는 누군가를 향해 정중한 기색으로 예를 취했다.
“이 먼 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황제 폐하.
이렇게 비밀리에 황성을 나서시다가 자칫 페하께서 사라지셨다는 말이 퍼지기라도 하면 제국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
“제 대답을 물으셨고, 그걸 듣고자 하신다면 모른 척은 그만 해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잠깐의 침묵이 응접실에 맴돌았다.
그러기를 몇 분, 마침내 여인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하는구나.
정말이지, 너무해.”
나이에, 그리고 지위에 걸맞지 않게 투덜거린다.
히스파냐 제국의 황제, 바네사는 그렇게 제 불만을 토로하며 자신의 모습을 가리고 있던 후드를 뒤로 젖혔다.
“한 번은 모르는 척 넘어가주면 안 되는 것이더냐.
속아주는 게 그리도 싫으더냐.”
바네사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삐죽였다.
일국의 황제, 제국의 절대자라고 보기에는 꽤나 귀여운 모습이었다.
―――――――작품 후기―――――――
바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