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439)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439화(439/439)
439―――――
외전 1.
황제 폐하, 이러시면···
“그대들은 이만 나가보라.”
“폐하.”
“혹 시온 클라우젠 공작을 의심하는 것인가?
짐이 다 불쾌하다.
그대들이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아나 그게 저 남자에게 향하는 건 곧 내 안목을 무시하는 것과 같으니 군소리 말고 전부 나가 있으라.”
“···명령 따르겠습니다.”
바네사의 차가운 어조에 황가 비밀 수호 기사단원들이 전부 물러난다.
시온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리시키다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그러자 그녀 역시 그들의 뒤를 따라 응접실을 나섰고 곧 그 안에는 시온과 바네사 둘 만이 남게 되었다.
“저를 너무 믿으시는 것 같습니다.”
“이 제국에서 내가 그대를 믿지 않는다면 또 누구를 믿을까.”
“그것도 그렇군요.”
시온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되어 있던 차를 잔에 따라서 바네사에게 내밀려다 말고.
“제가 먼저 마셔봐야 할까요?”
하며 셀프 의심을 시전했다.
장난스러운 기색이 서려있음을 눈치 챈 바네사는 되었다는 듯 손을 내젓고는 시온이 내민 차의 향을 잠시 맡더니 미소를 지으며 내용물을 홀짝였다.
“공작령은 어떻게 잘 돌아가나?”
잠시 동안 말없이 차를 마시던 황제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역시나 공작령에 관한 것.
히스파냐 제국에서 가장 큰 영지를 가진 클라우젠 공작령, 거의 조그마한 왕국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 넓이가 방대한 만큼 쏟아지는 일도 많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위에 있는 자는 누리는 권리가 많을수록 감당해야 할 의무가 많으니까.
“한 달 동안 정말 많이 바빴습니다.
미처 폐하께 연락 한 번 못 드릴 정도로 말이죠.”
“이해한다.
누디아의 영토를 받았고 그곳으로 이제는 그대들의 사람이 된 이들을 이주시켜야하니 정신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법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그럴 수밖에 없지.
이해해야지.’ 라고 중얼거리는 바네사.
하지만 그러다가 못 참겠다는 듯 찻잔을 소리 나게 탁!
하고 내려놓는다.
“그래도 그대가 너무했다.”
“예?”
“내 분명 말하지 않았더냐.
그대가 황성에서 떠나는 날, 분명 그대에게 말했다.
가끔이라도 좋으니 얼굴이나 좀 비추라고.
그런 이유로 마법통신까지 허락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한 달 동안이나 감감무소식일 수 있단 말이더냐.
한 달이나!”
잠깐이나마 왕녀 시절의 모습이 나왔던 바네사였다.
물론 숨을 가다듬고는 헛기침을 하며 황제의 진중한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황명을 가볍게 여긴 것이냐.”
“절대 아닙니다.
다만 황제 폐하께서 바쁘시다고 생각하여···.”
“아무리 바빠도 그대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 정도는 있다.”
분위기가 갑자기 묘해지는 걸 눈치 채지 못 할 시온이 아니다.
바네사가 평소와는 달라도 너무 다름을 알아차린 시온은 슬쩍 입술을 깨물었다.
이거, 어째 분위기가 자신이 원치 않던 방향으로 흐르는 느낌이다.
“알게 모르게 귀족들 사이에 말이 많다.”“
예?”
“지금이야 시온 클라우젠 공작.
그대가 이 제국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니 대놓고 반발을 하거나 우려하는 분위기를 보이지는 않겠지.
그건 이 제국을 위해 많은 부분을 희생한 그대를 모욕하는 꼴이 될 테고 그대를 믿은 내게 반하는 게 될 테니까.”
다시금 차를 홀짝이는 바네사.
그러다말고 그 안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보며 말을 잇는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것, 당장 그대의 뒤를 이을 차기 클라우젠 공작이 어떤 이일지 아무도 모른다.
세상을 지배한 자도 정작 자기 자식을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
“귀족들은 차기 클라우젠 공작이 행여나 제국에 반기를 들까 우려하는 모양이군요.”
“그대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현실이 그러하다.”
이해한다.
당연히 이해한다.
당장 역사를 들여다봐도 부모가 우수하다고 해서 자식까지 우수한 법이 없다.
물론 호랑이가 개새끼를 낳지 않는다고, 부모만큼 잘난 자식이 나올 수도 있지만 원래 정치란 최선보다 최악을 먼저 고려하게 되는 일이다.
귀족들이 보기에 이 거대한 영지를 가진 클라우젠 공작령이 행여 역심을 품으면 누디아보다 더 무서운 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귀족들의 불안감을 일소시키지 못 한 내 과가 크다.”
“아닙니다.
당연한 걱정입니다.
이렇게 큰 영지를 가진 귀족이 없었으니까요.
제가 알기로는 3후작의 영지를 다 합쳐도 클라우젠 공작령보다 작지 않습니까?”
시온의 말대로 3후작가의 영지를 다 합친다고 해도 클라우젠 공작령보다 못 했다.
레데넨 후작가가 전공을 인정받아 영지를 더 받았음에도 그 정도이니 다른 귀족들이 보기에 클라우젠의 성장이 너무 과하다고 여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제국과 황실에 충심으로서 걱정을 하는 것이든,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든 결국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지금의 클라우젠은 거대하죠.
황실의 직할령 다음으로 많은 땅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
“더해서 이번에 백작이 된 김유현은 저와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런 두 사람이 영지까지 인접해있으니 귀족들은 더더욱 걱정할 겁니다.
자신들이 완벽하게 정착한 제국이 흔들리면 가장 많은 피해를 받는 건 본인들이니까 말이죠.”
귀족들이 시온과 김유현을 경계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단순히 히스파냐에 대한 충심 때문만이 아니라, 혹 그들로 인해 제국이 흔들리면 제국을 택한 자신들의 입지가 인정사정없이 흔들리니까.
손해 보기를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자들이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황제 폐하.”
“말하거라.”
“이 먼 곳까지 어쩐 이유로 오신 겁니까?”
“···.”
“아무래도 저는 황제 폐하께서 여기 오신 이유나, 굳이 제게 그 부분을 언급하시는 이유가 제게 뭔가를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
황제는 말이 없었다.
다만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입술을 깨물고 있을 뿐이다.
“폐하.
차라리 제가 죽기 전에 모든 걸 내놓겠습니다.”
“···.”
“아무리 생각해도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당장 대외적으로는 북쪽 출신인 쟌과 이어질 사이입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폐하께서 대충 아시다시피 저는 복잡한 여인 문제로 얽혀있습니다.”
“···.”
“고귀한 황실과 얽혀서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대의 핏줄이 어디 천한 것이더냐.
클라우젠은 변경백령일 때부터 이미 대귀족 가문이었고 지금은 제국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공작가다.
황제 다음 가는 권세를 누린다.
뭐가 문제란 말이냐.”
바네사의 말에 시온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 말을 내뱉었다.
“저는 이미 마음에 품은 여인이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닙니다.”
“···.”
“공작으로서 정실 외에 첩실을 들일 수도 있음을 알기에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폐하는 다릅니다.
황제는 오직 스스로 고귀하게 빛나셔야 합니다.
오직 유일한 존재가 되셔야 합니다.
그러니 지금 생각하시는 건 옳지 못 합니다.”
“그대에게 압박한다면?”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바네사가 저도 모르게 찻잔을 강하게 틀어쥔다.
뭔가가 못내 서운하다는 눈빛을 빛내며 입을 연다.
“분명 그대가 그대의 입으로 말했다.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대답은 무엇이었느냐.”
“그 부분에 대한 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다른 누군가를 포기할 정도로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혹 그들이 마음 아파하는 건···.”
“나는 아파도 된다는 소리더냐.”
바네사 정도 되는 여인이라면 무엇이 지금 상황에 더 이성적인 대답인지 알 것이다.
그런데도 자꾸만 그녀는 감정적으로 변해서 물러서기는커녕 다가오고 있었다.
시온이 난처해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렇게 다가가면 상대가 포기하기는커녕 도망갈 수도 있음을 잘 알면서 말이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클라우젠 공작령의 상황을 보기 위해서, 그리고 새로 자리한 김유현 백작이 잘 하고 있는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대의 말을 듣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자신이 너무 달려나갔음을 자각한 것일까.
바네사는 목소리에 서려있던 흥분기를 가라앉히고 평소의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누디아 측의 움직임에 특별한 사항이 있던가.”
“없습니다.
아마 구 신성 프러센의 영토를 흡수하는 데에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 모양입니다.”
“비교적 비옥한 땅이었던 서쪽과 항구 도시가 있는 남부를 넘겨주었으니 사활을 걸어야 할 사안이겠지.
그렇기에 그 중요한 영토들을 넘겨준 것일 테고.
항상 주시해라.
지금은 같은 길을 걷는 친구라도 하나 이 세상에서 영원한 건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정말 명심했느냐?”
갑작스러운 바네사의 질문에 시온이 슬쩍 고개를 든다.
거기에는 황제 바네사가 아니라, 과거에 봤었던 왕녀 바네사가 앉아있었다.
“나라고 해서 영원히 황제일 수는 없다.
때로는 누군가의 여인이 되고 싶기도 하지.”
“폐하.
그 부분은···.”
“피곤하구나.
이만 일어서겠다.
저녁에 다시금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자리에서 일어선 바네사는 미처 시온이 말을 붙이기도 전에 도망치듯 응접실을 나섰다.
그 뒤로 미리 대기하고 있던 리시키다가 급히 안내하겠다면서 바네사의 뒤를 따르는 것이 느껴졌다.
‘돌겠네.’
바네사가 사라지자 시온은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 한숨을 내뱉었다.
대충은 예상했다.
이 거대한 영지를 시온 클라우젠에게 너무나 거침없이 내어준 것부터 시작해서 귀족들의 걱정이 가면 갈수록 심해질 텐데도 걱정이 없다는 반응까지.
이미 바네사가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생각해두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문제는, 그걸 자신이 받아들이기 무척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당장 대외적인 부분부터 문제다.
이러면 북쪽 부족과의 관계가 엉망이 될 수도 있다.
아직 쟌이 부족 대표의 자리를 내려두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러면 정말 심각해진다.’
쟌도 쟌이지만 다른 여인들도 다 문제다.
시온 자신이 공작에서 멈춰있으면 여인을 몇이나 들이든 문제될 것이 없다.
능력 있는 자라면 이성을 몇이나 데리고 있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황제의 반려는 다르다.
이건 황실의 권위와 직결되는 것, 황제의 반려가 다른 이를 또 안을 수는 없다.
권위 문제를 떠나서 그렇게 되면 후계 문제도 무척 복잡해진다.
바네사가 자신과 이어지려 하는 건 둘 사이에서 태어날 이에게 히스파냐 제국과 클라우젠 공작령의 모든 후계권을 넘기겠다는 생각으로서 생각해낸 결과물.
그런데 다른 여인과 자신이 이어진다면 클라우젠 공작령의 또 다른 후계자가 생기는 것이니 절대 불가한 일이었다.
‘그러면 내가 다른 여인들을 포기할 수 있느냐?’
그것도 절대 불가능하다.
그나마 릴리트나 헬렌, 리아는 어떻게 가능성이라도 있다.
하지만 리시키다는?
루시아는?
쟌, 트리샤는?
전부 다 이쪽만 보고 있는 여인들인데 그걸 황제가 낼름 가로채서 어떻게 해볼 수도 없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리시키다나 루시아는 몰라도 쟌, 트리샤는 반드시 사고를 칠 여인들이다.
그리고 그 사고가 단순한 ‘사고’ 수준이 아님을 시온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일을 벌여도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 벌여야 한다.
이건 누가 봐도 그냥 자폭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 행위다.
바네사가 그걸 모를 리가 없는데 왜 자꾸 이 길을 고집하는 것인지, 시온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내가 여자 많은 걸 아직 몰라서 그런가?’
이쪽 생각도 확실히 가능성이 있기는 했다.
바네사가 보기에 리시키다와 트리샤는 그냥 충성스러운 기사, 리아는 수인족과의 친분을 위해 사귄 친구, 루시아는 리히텐 클라우젠과 라이도 사이의 친분이 이어진 사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해봤자 쟌 정도만 있다고 생각하고 그 부분에 대한 해결책만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예 릴리트의 존재 자체는 모르고 있으니 그쪽은 생각지도 못 할 테고.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릴리트님의 정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알리기 위해서 또 한 건 준비 중이었는데, 이러시면 정말 곤란하단 말입니다.
황제 폐하.’
어떻게든 저녁 때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 적당한 말을 생각해야 할 듯 싶었다.
바네사도 잠깐 제 감정에 휘둘린 모양이니 지금쯤이면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 중일 것이라고 시온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국을 경영하는 황제로서 무엇이 더 옳은 길인지 금방 찾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전과가 있네?
이런 염병!’
생각해보니 소설에서 그 감정에 못 이겨 왕성의 마법 방어진을 날려버린 게 누구인가.
바로 바네사 왕녀, 지금의 히스파냐 제국 황제인 바네사와 동일 인물 되시겠다.
소설에서 보인 모습이 그녀가 제 안에 감추고 있는 격한 감정적인 모습이라면 이후 그녀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어렵지 않게 예측이 되었다.
“환장하겠네.”
시온이 이마를 감싸 쥐고 끙끙거리는데, 뒤에서 여인의 달달한 향이 풍겨왔다.
“왜 또 이러고 있는데?”
“···오셨어요?”
“조금 전에 나간 거 너희 황제 아니야?
황성에 있어야 할 여자가 여기에 왜 온 거래?”
릴리트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시온은 하하, 하고 힘없는 미소를 내뱉었다.
그리고는 그나마 가장 믿을 수 있는 여인이자 안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릴리트에게 현 상황에 대해서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혹 그녀라면 뭔가 괜찮은 지혜를 빌려주지 않을까 싶어서.
“난리 났네?”
시온의 이야기를 다 들은 릴리트는 아주 간단하게 감상평을 내놓았다.
“정말 황제가 너랑 혼인하겠다고 들이대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긴요.
당연히 그 여자 하나만 바라보며 사는 거죠.”
“우와.
그건 좀 심각하네.”
“단순히 황제에 대한 존중이나 그쪽 자존심 문제 때문이 아니에요.
지금 귀족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제국과 클라우젠의 후계자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으로서 해소하겠다는 건데 그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다른 여인을 안습니까.
그건 또 분란의 불꽃을 만드는 셈인데.”
“확실히 그럴 바에 황제랑 이어지지 않는 게 낫겠네.”
그리 대답하다 말고 시온은 응?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릴리트가 너무 평온하다.
당연히 뭐 그런 황제가 다 있어?
하고 화를 낼 줄 알았는데.
“화 안 내세요?”
“내가?
왜?”
“아니, 릴리트님도 못 하는 독점을 황제가 하게 생겼는데요.”
“성 막는다고 함락이 안 되나?
그리고 나야 문제될 거 없잖아.
너와 나 사이의 2세는 이까짓 인간 영지를 물려받는 게 아니라 더 멋진 곳을 줄 생각인데.”
뭔가 조언을 받기를 기대했는데 다른 대답을 받아서 더 엉망진창이 되는 머릿속이었다.
시온은 다시금 한숨을 내뱉으며 이 황제와 어떻게 결론을 봐야 할지 고민했다.
―――――――작품 후기―――――――
과연 바네사와 시온은 거사를 치를 수 있을까요, 김유현님?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