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44)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44화(4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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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 천족과 마족, 인간들로써는 거의 보기 힘든 그들을 제외한다면 가장 아름다운 종족은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아마 대다수의 독자들은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요정족.’ 이라고.
소설 속 세계관에서는 인간 외에도 수많은 종족들이 대륙 곳곳에서 살고 있다.
다만 그들이 잘 보이지 않는 건, 인간들처럼 ‘국가’ 라는 대규모 형태의 집단이 아닌, 마을이나 부족 정도의 중소 규모로 모여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그 중 요정은 스스로를 천족들의 종자라 부르며 그들을 흠모하고, 천족을 제외한다면 대륙에서 제일가는 종족은 바로 자신들이라고 당당히 말하곤 했었다.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마나 운용이 전부 가능한 대부분의 종족들 가운데에서도 요정족은 특히 마나를 활용하는데 있어서 뛰어난 선천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
원래 잘난 놈들이 서로 사이좋게 못 지내고 으르렁거린다고, 그 우수한 선천적 재능 가지고 한다는 것이 맨날 편 가르기였어.’
그들의 편 가르기 역사는 그야말로 시작부터 개그 판타지나 다름없었다.
요정족의 주식인 빵에 과일 잼을 발라서 먹느냐, 아니면 먹지 않느냐.
그래, 농담이 아니다.
빵에 잼 발라 먹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반농담처럼 시작되었던 일이 잼을 먹는 요정의 우수성, 내지는 잼을 먹음으로써 인해 숲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등 온갖 이상한 쪽으로 불길이 번져갔다.
인간들이 보기에는 ‘생지랄 꼴갑들을 떨고 자빠지셨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상황이었지만 요정들에게는 나름 중요한 문제였나 보다.
결국 잼을 발라먹는 부족과 발라먹지 않는 부족이 갈라져서는 제 갈 길을 갔다.
더 웃긴 건, 그 뒤로 온갖 사소한 문제로 갈라지고 갈라지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잼을 발라야 한다면 무슨 잼이냐, 바르지 않는다면 무엇을 곁들어 먹냐 등.
오죽하면 그 웃긴 상황을 보며 독자들이 ‘혹시 작가님 탕수육 먹다가 부먹파랑 찍먹파에 의해 해코지 당해서 여기서 울분 토해내는 건 아니냐.’ 고 나름 타당한 의심까지 내놓을 정도였다.
‘그런데 요정들의 특성을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건 또 아니야.’
자신들이 제일이라는 심각한 사상, 거기에 수명이 다른 종족보다 길다보니 도통 잘 바뀌지 않는 세대, 거기에서 나오는 심각한 갈등, 그리고 한 번 굳혀지면 벗어나기 힘든 그들만의 계급.
경직되다 못해 아예 굳어서 화석이 되어버린 요정들의 사회였다.
당연히 변화의 바람에 민감하고, 여태 유지되어오던 방식을 타파하는 것에 엄청나게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그렇게 쪼개지고 쪼개져서 그렇게나 무시하던 인간들한테 심심하면 털리는 약골 중의 약골들이 되었지.
머저리 같은 놈들.
부먹이든 찍먹이든 그냥 처먹하면 될 것을.’
눈앞의 헬렌 하이네스도 그렇게 잘게 쪼개진 요정 부족의 한 일원이었다.
그 당시 요정 기준으로 아직 소녀였던 그녀는, 숲의 경계로 사냥을 나갔다가 그만 인간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공식적으로는 이종족 노예가 금지되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식적’ 일 뿐이다.
편법이야 넘쳐났고 뒷구멍으로 빼돌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헬렌은 노예로 팔려 귀족 가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차라리 죽고 싶었지만 죽지도 못 하는 그녀의 삶은 더욱 비참해졌다.
그 귀족은 온갖 희한한 방법으로 헬렌을 능욕했다.
‘차라리 범해달라고 빌게 만들어주마.’ 라고 중얼거리며 음흉한 미소를 짓던 그 모습을 헬렌은 아직도 잊지 못 한다고 했다.
결국 순결까지 잃고, 밤마다 침대로 불려가 그 귀족의 노리개 생활을 이어가던 헬렌.
버티고 버티던 정신도 서서히 무너져가고 그냥 이대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그녀는 갑작스레 그 귀족 가문에서 내쳐지게 되었다.
자신을 그렇게나 몰아붙이고 괴롭히던 그 귀족이 혼인을 한다며, 더는 필요 없는 장난감을 폐기처분 한 것이었다.
‘죽이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했는데.
그 귀족이란 놈이 낄낄대며 이렇게 말했지.’
어차피 저년의 말은 아무도 믿지 않을 거라고.
그저 정신 나간 요정족이 지껄이는 헛소리라고 치부할 것이라고.
증거도 없는데 감히 자신과 이 가문을 어느 누가 의심하겠냐고 말이다.
그렇게 처참히 망가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헬렌은 간신히 제 마을로 돌아갔다.
하지만 반겨줄 것이라 알았던 그곳에서, 그녀는 또 다시 절망을 맛보고 만다.
인간의 손에 더럽혀진 년이 어디를 기어 들어오냐는 것이었다.
‘천족의 종자?
지랄.
사탄도 울고 가시겠어요, 요정님들.’
산산이 깨져버린 모든 것을 마음에 억눌러 담은 그 순간부터.
헬렌은 그냥 감정 자체를 제 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렸다.
복수, 복수를 위해.
그 가증스러운 귀족을 죽이기 위해.
“···뭐라고 하셨습니까, 공자님?”
그런데, 그 복수의 대상을 양보해달라니.
순간 헬렌은 다 뒤로 제치고 눈앞의 남자의 멱살을 쥐고 물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여전히 그녀의 눈동자는 깊이 침잠해있었다.
마치 아무런 흥미도 없다는 듯,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눈앞에 앉아있는 이 남자는, 여태까지 그녀가 만났던 이들과는 전혀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모든 걸 다 알고 찾아온 이 앞에서 뭔가를 숨기려 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었으니까.
“카슈가르 백작가의 가주, 세페르.”
“···.”
“누디아라는 외부의 적을 치웠으니 이제 내부의 적을 치우려 하는데.”
시온은 테이블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자네가 먼저 노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
“지금 하시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하시는 겁니까?”
“왕궁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중 일부는 오늘 밤에 무너진다.
와르르!
하고.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집결하지만 역으로 그 틈을 이용, 내부자들을 통해서 내부로 침입한다.
그리고 귀족들을 습격한다.
죽여도 좋고 부상을 입혀도 좋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인간들은 알아서 서로 물고 뜯고 싸울 테니.
그렇게 왕국이 분열되면 정화 작업은 더더욱 쉬운 일이 될 것이다.
이상이, 이번 거사의 내용이겠지.”
움찔―.
시온의 말이 다 끝나자 헬렌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급진파 요정들이 직접 말해준 내용과 너무나도 똑같았다.
마치 그들이 다시금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글자 하나 틀리지 않았다.
“···지금 제가 한낱 상인이라고 장난이라도 치시는 겁니까?”
“네가 얻는 건 뭘까.
당연히 세페르의 죽음이겠지.
왕국에 혼란이 가속화되면 가주가 죽었다고 해도 정쟁이 더욱 격화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할 테니까.”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그런데 말이야.
헬렌 하이네스.
숲의 딸이여.
만약 내가 당신이었으면 그렇게 무르게 복수는 안 할 거야.”
콰앙!
시온의 말이 끝나자마자 헬렌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동시에 테이블을 그대로 내려쳤는데, 얼마나 세게 쳤는지 그 큰 테이블이 그대로 두 쪽이 나서는 우지끈!
소리를 내며 무너질 정도였다.
“워우, 화끈하시네.”
하지만 시온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요정족은 분명 강하고, 혼혈이라고 해도 웬만한 인간보다는 훨씬 강하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옆에는, 보통의 인간이 단 하나도 없었다.
“손가락 하나만 더 움직인다면, 목을 베어버리겠다.”
헬렌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그 순간 이미 리시키다는 검을 뽑은 상태였다.
릴리트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헬렌이 조금이라도 더 적대감을 보이는 순간 바로 마법을 날릴 수 있도록 이미 준비를 끝마쳤다.
루시아 역시 바짝 긴장한 모습이긴 했지만 마법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고, 김유현의 손은 이미 검 손잡이에 올라가 있었다.
헬렌이 뭔가를 하기도 전에 최소한 3번은 죽일 수 있는 정도였다.
“헬렌.
나는 여기 싸움질을 하러 온 게 아니라 거래를 하러 왔어.”
“···.”
“그러니 다들 앉지 그래.
리시, 넌 검 거두고.
나머지 분들도 진정하시고 앉죠.”
능글맞게 웃으면서 두 쪽이 난 테이블을 바라보곤 ‘꽤나 좋은 원목이었는데 아쉽구만.’ 이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하는 시온이었다.
하지만 헬렌은 자리에 그대로 서서는 시퍼런 안광을 쏘아 보내며 시온을 노려보고 있었다.
보다 못한 리시키다가 불쾌하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다시 검을 뽑으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시온의 제지에 막혀서는 다시금 검을 되돌리고 말았다.
잠시 묘령의 요정 여인을 바라보던 시온은 작은 한숨을 내뱉곤 입을 열었다.
“귀족이라는 게 아까운 쓰레기, 구제 불가능한 애송이.
제 가문을 말아먹을 망나니.”
“···?”
“한 때는 다들 나를 그렇게 불렀다지.
소문에 의하면 매일 여자를 탐하고 띵가거리면서 제 가문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고도 들었어.
내가 조금 우울하게 처박혀 있기는 했어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말이야.
그 호칭들이, 그 소문들이 꽤나 마음에 들었어.
왜 그런지 알아?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넘어갔거든.”
시온의 말에 헬렌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뜻으로 눈앞의 미청년을 응시했다.
“왕국의 혼란을 불러일으키려는 자들을 은밀히 알아내는 것도, 겉으로는 좋은 귀족, 자애로운 가주 연기를 하면서 뒤에서는 온갖 더러운 짓들을 하는 놈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도 내게는 그리 어렵지 않았던 일이라는 소리지.”
“그 말은···.”
“잡아뗄 생각 마, 헬렌.
여기가 몇 년 전부터 급진파 요정족들의 아지트로 사용되고 있을 거라는 예측과, 거기에 맞는 증거들을 전부 가지고 있으니까.”
당연히 개뻥이다.
예측이 아니라 그냥 진실을 말할 뿐이고, 증거는 당연히 없다.
“동시에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지.
네게 지옥 같은 삶을 선사해준, 그리고 끝내 제 손을 더럽히기조차 거부한 비겁한 귀족 놈의 죽음 말이야.”
“그걸··· 그걸 어떻게···?”
헬렌의 눈동자에 당황의 빛이 언뜻 머물다가 사라졌다.
여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한 비밀을 어떻게 저 남자가 알고 있다는 말인가!
“일단 앉아.
올려다보고 있자니 고개가 좀 아파서.”
분위기를 풀려고 하는 농담인지, 아니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하는 경고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헬렌은 그 말에 반사적으로 자리에 앉고 말았다.
혹여 고집이라도 부리다가는, 결코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감이 들어서였다.
“비밀을 파헤치려고 한 적은 없어.
이건 진실이야.
그저 카슈가르 백작가의 비리를 조사하다보니 한 여인이 갑작스레 사라졌다는 것과, 당신의 등장이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져서 말이야.”
“그건 그저···.”
“예측이라고?”
시온의 반문에 헬렌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상대가 하고 있는 저 눈동자는, 확신에 가득찬 눈빛.
그 어떤 말로도 넘길 수 없는 이미 확실한 증거를 손에 쥐고 있는 자나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미리 말해두는데, 헬렌.
난 네 과거를, 아픔을, 그 끔찍했던 삶을 이해하지 못 해.”
이해하지 못 하겠다는 그 말에, 헬렌은 또 다시 가슴에 불길이 이는 것을 느꼈다.
같은 인간이라고 편이라도 들겠다는 건가?
아니면 노예로 붙잡힌 요정족의 끝이 대부분은 죽음이었으니 오히려 감사하고 살라는 소리인가.
하지만 그 다음 이어진 말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이해 못 하지.
어느 누구도 남의 고통을 그 사람이 느꼈던 것만큼 공감 못 하니까.
남의 아픔보다 내 아픔이 더 큰 법이니까.
이해한다는 말, 동정한다는 말은 찔리는 것이 있는 놈들이나 하는 소리지.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해.”
“···.”
예상치 못한 대답이 흘러나와서일까.
헬렌은 살짝 놀란 눈동자로 시온을 응시했다.
하지만 시온의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또한 나는 네 복수를 말릴 생각은 추호도 없어.
어떤 머저리 새끼들은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수라고, 세상 어디에도 달콤한 복수는 없다고, 그저 허무함만이 몰려오는 것이 복수라고 하는데, 난 그런 말 지껄이는 놈들 보이면 그대로 머리통을 깨부술 생각이야.
진짜 제대로 된 복수는 달콤하고, 후련하고, 상쾌하지.
그 따위 헛소리들은 그저 제대로 복수할 용기도, 능력도 없는 병신들의 핑계에 불과해.”
“···.”
“그런 의미에서, 네가 하고자 하는 복수.
그 남자의 목숨을 빼앗겠다는 그 복수 말이야.
그런 진짜 ‘복수’ 가 아니지.”
“그러면.”
가만히 듣고만 있던 헬렌이 입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는 감정 하나 실려 있지 않고 죽어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지금은 거세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은 그 복수가 뭐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내 모든 것을 빼앗은 그 자에게.
죽음이 아닌 다른 복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한 소리를 하네.
왜 죽여?
죽이지 말아야지.”
“···뭐?”
“네 모든 것을 빼앗은 남자라며.
그러면 너도 다 뺏어야지.
권력도, 재산도, 명예도, 가족도 전부 다.
그리고 죽을 권리까지 빼앗아서 쥐고 흔들어야, 흔들면서 낄낄거리고 웃으며, 지옥보다도 더 한 고통을 선사해줘야지.
그게 진짜 복수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뭔가를 말하려고 하던 헬렌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10년에 가까워지는 세월동안 벼리고 벼렸던, 복수의 칼날을 품고 있던 자신이었다.
하지만 광기로 번뜩이는 남자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시온 클라우젠, 전쟁 영웅이라는 저 남자는, 그냥 미친놈이었다.
“마지막으로 제안한다, 헬렌 하이네스.
거래하자.
그 어떤 복수보다도 더 통쾌한 결말을 내줄 테니 내게 이거 하나만 약속해주면 돼.”
그 스스로는 이해하지 못 한다고 했지만.
어느 누구보다, 심지어 제 동족들보다도 더욱 자신을 이해해주고 복수의 대상자를 거칠게 욕하고 있는 시온을 바라보며, 헬렌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러자 시온은 씨익, 미소를 짓곤 답했다.
“오늘 치르려던 그 거사.
앞으로 조금 땡겨서 하는 거 어때.”
[작품후기]오전 오후 내내 노트북이 맛이 가서 큰일 날 뻔 했었습니다···.
추천은 항상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