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52)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52화(52/439)
52―――――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탄산과 탄산과 탄산 뿐이다
별장을 나서 하이네스 상단으로 출발한 인원은 결국 둘.
시온와 리시키다 뿐이었다.
릴리트는 새벽부터 시온과 가졌던 화끈했던 시간에 꽤나 지쳤다는 듯 둘이 다녀오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는데, 피곤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무엇보다 천족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교육되어 있는 요정과 딱히 대면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혼혈이라고는 해도 애초에 가지고 있는 인식이란 것이 있고, 인간에 비해서 감각도 배는 더 탁월한 종족이니 괜히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 싫은 게 릴리트의 속마음이었다.
‘아, 그래도 다른 여자한테 자꾸 한 눈 팔면 네 물건 확 물어버린다?’
듣기만 해도 절로 으스스해지는 경고를 하는 릴리트였다.
시온은 절대 엄수하겠다는 듯 경례를 붙이곤 별장을 나서 하이네스 상단으로 향했다.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 뒤로 왕성 내 경계가 배는 더 삼엄해졌다.
평상시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후드나 망토는 이제 신분이나 무기 등을 숨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되었기에 그런 복장을 한 이들은 불시 검문을 받게 되었다.
덕분에 이제 후드를 쓰면 검문을 하는 경계병들로 인해 오히려 더 확실하게 신분이 드러날 수 있었기에 시온은 그냥 대놓고 돌아다니기로 결정했다.
길을 가던 남성들은 리시키다를, 그리고 여성들은 시온을 바라보며 어어, 하고 탄식을 내뱉었고 그 덕분에 리시키다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눈길에 더욱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진정해, 리시.”
“사방에서 눈길이 쏟아지니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집니다.
이런 때에 주인님을 노린다면 아무리 저라고 해도 전부 막아낼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걱정 마.
다른 건 몰라도 나는 그 놈들에게 그리 매력적인 먹이는 아니거든.”
영웅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무엇인가.
그건 ‘죽은 영웅’ 이다.
누디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때에 그 공을 세운 영웅이 습격을 당한다면 국론이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하나로 합쳐질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모 아니면 도라지만, 시온이 알고 있는 급진파 요정들은 그런 모험은 좋아하지 않았다.
급진파라고는 해도 결국 요정.
확실하면서도 안정적인 부분을 꾀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니 왕궁에 침입해서도 왕가 사람들이 아니라 귀족들 정도에서 만족한 거지.
나 같았으면 미친 척하고 왕가를 노렸어.
그랬으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파티를 이어서 열겠다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하이네스 상단으로 향할수록 검문이 더욱 많아졌다.
죄를 묻지 않겠다고 했지만 일단 정체불명의 세력들이 다음으로 노릴 곳 중 하나로 예상되는 곳이 그들을 배신한 하이네스 상단이었다.
당연히 함부로 접근하는 자들은 왕실 측에서 전부 막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멈추시오.”
병사 서넛이 시온의 길을 막았다.
그리고는 신분을 요구하자, 그는 옆의 리시키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시키다는 품 안에서 시온이 내주었던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증표를 꺼내 보였다.
“어, 어어?”
지금 자신들이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싶은 표정의 병사들.
하지만 곧 눈앞에 있는 남자가 이번 누디아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전쟁 영웅’ 임을 알아차리곤 다급히 경례를 올렸다.
“아, 인사는 됐어.
소란스러워지면 괜히 관심만 집중되니까.”
“알겠습니다.
그보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하이네스 상단에 무슨 목적으로 방문하시는 겁니까?”
“왜.
내가 의심스럽나?”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저희는 이것이 임무인지라···.”
“농담이야, 농담.
상단에 갈 이유가 뭐 더 있겠나?
이번에 새로이 왕성과 백작령 간에 물품 거래가 필요해서 상단 요청 좀 하려고 했던 거지.”
시온의 대답에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이곤 상단으로 향하는 길을 내주었다.
“주인님.
한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뭔데?”
“차라리 헬렌이라는 여인을 별장으로 부르시는 건 어떠했을 지요?”
“그건 안 돼.
현재 헬렌 하이네스는 내부 고발자니까.
괜히 밖으로 나섰다가 급진파 요정 놈들이 미친 척 하고 살해하면 그건 그거대로 손해거든.”
“···그렇겠군요.”
물론 그럴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당장 왕성 내에서 그들의 아지트로 사용되던 공간이 통째로 도려내진 것과 같은 상황.
아마 그들이 한동안 히스파냐 왕성에 개구멍을 마련해놓기는 힘들 것이 확실했다.
“거기에 하나 더.
이상한 말이 퍼지면 괜히 심란하거든.”
“무슨 말씀이신지요?”
“내가 헬렌을 찾아가면 정말 ‘상업’ 적인 이유로 찾아간다고 생각할 놈들이, 반대로 헬렌이 나를 찾아서 별장으로 오면 이상하게 이야기를 이해하거든.
말도 안 되는 헛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길 테지.
전쟁 영웅이 여인을 탐하는 거 아니냐, 뭐 이딴 식의 괴소문 말이야.”
“가당치도 않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자빠진 귀족이 한 둘이 아니야.
원래 한창 잘 나가는 인간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앞에 서있는 또 다른 벽이 아니라 뒤에서 박수를 치던 관객 놈들이니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옛 성현들의 말씀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원래 잘 되는 놈들을 보면 축하하는 마음보다 시기하는 마음이 더 커진다고.
뒤에서 나를 욕하는 놈이 있으면 그게 성공했다는 증거라지만 그걸 굳이 들을 필요는 없다고 시온은 생각했다.
이왕 잘될 거 박수는 박수대로, 칭찬은 칭찬대로 다 받아먹고 욕하는 놈은 철저하게 밟아서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놈들에게 던져줄 생각이었다.
그러면 어떻게든 잘 좀 보이겠다고 알아서들 물어뜯어줄 테니 말이다.
시온과 리시키다는 상단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며칠 전까지는 상당히 활발하던 곳이 지금은 침체되어서는 적막할 정도였다.
에드가 4세가 직접 나서서 죄가 없다고 말을 해주었지만, 상단의 신뢰도가 깎여나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휑하네.”
안으로 들어선 시온이 그렇게 말하던 찰나.
리시키다가 눈동자를 반짝이더니 이내 날카로운 기세를 흘리며 시온의 앞을 막아섰다.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붙잡은 채 여차하면 바로 검을 뽑겠다는 자세였다.
“···.”
리시키다가 이런 행동을 취할 정도의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닌 상대.
하지만 바로 공격치 않고 그저 어딘가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존재.
그런 이는 상단에 아마 하나뿐일 것이다.
“헬렌 하이네스.”
“···.”
“적당히 하고 그만 나오지 그래.
그쪽 상단이 손님을 이런 식으로 맞이했나?
저번에는 만족도 100점의 점수였었는데 말이야.”
“그 때는 저희 상단이 멀쩡하던 때나 그랬죠.”
“지금은?”
“지금도 겉보기에 ‘멀쩡’ 은 해요.
다만, 고객님들의 신뢰가 많이 깎여서 매출액의 30퍼센트가 한 번에 날아가게 생겼지만요.”
30퍼센트.
그 정도의 손해라면 다른 상인들은 당장 피 토하면서 땅을 쳤을 것이다.
3퍼센트만 깎여도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인데, 30퍼센트라.
‘한강물 온도 잰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겠어.’
상단주로서 상단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게 그 어떤 실패보다도 더 끔찍한 경험인지 시온은 소설 속 상인들의 설명들로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자면, 헬렌 하이네스는 어디까지나 상단을 복수의 일부분으로 이용하기 위해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게 아니라 진짜 본업으로 삼고 있었다면 당장 피를 토하며 분노의 외침을 일갈해도 남았을 상황이었다.
“어서 오세요, 시온 클라우젠 공자.”
마치 그림자 속에서 쑥, 하고 솟아나듯 뾰족한 귀를 지닌 요정족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인간과 요정의 혼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반은 요정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은, 엄폐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여인이었다.
‘행보관의 운명적 상대라도 되려나.’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헬렌이 앞으로 걸어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시온이었다.
찰랑이는 녹색 머리를 지닌 여인은 시온 앞에 서자마자 바로 질문부터 던졌다.
“세페르, 그 남자는 이제 어찌 되는 겁니까?”
역시나 그게 가장 궁금했던 모양이다.
시온은 어깨를 으쓱이곤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입을 열었다.
“죽겠지.”
“···.”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도, 빠르지도 않을 거야.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과연 죽을 수는 있을지 모르겠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시온은 대답 대신 헬렌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서로 듣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아 보이는데 언제까지 서서 대화를 나눌 것이냐, 라는 무언의 질문이었다.
그 부분을 헬렌 역시 알아차린 듯 이쪽으로, 라고 말하며 시온과 리시키다를 안내했다.
이내 상단주의 집무실에 들어선 시온은 권하지도 않았는데 가장 상석에 앉아서는 팔을 쭈욱 펴고 상쾌하게 기지개를 켰다.
리시키다는 그런 시온의 옆에 서서는 철통 호위 모드로 들어갔고 말이다.
“···대답을 마저 듣고 싶습니다.”
제 자리를 빼앗긴 것보다는 세페르 백작의 소식에 신경을 더 쓰는 헬렌이었다.
“내가 말했지?
허술하지도 않지만, 자세하게 정보를 주지 말라고.
그저 세페르 백작이 그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라는 식으로 답하라고 말이야.”
“분명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쪽의 습격자들을 이끌던 요정도 붙잡혔다고는 하지.
하지만 쉽게 입을 열 녀석이 아니란 건 왕가의 모두가 진작 알고 있을 거야.
아무리 조져도 입도 뻥긋 안 하겠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요정이 고작 인간들의 취조에 못 이겨 입을 연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혀를 깨물고 죽을지언정, 결코 원하는 정보를 내뱉지 않을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결국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건 세페르 백작뿐이지.”
“하지만 그는 이번 일과 아무런 연관도 없지 않습니까?”
“본인은 그렇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그런 건 이제 아무 상관없어.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이건 거대한 쇼일 뿐, 진실을 가리는 수사가 아니라고 말이야.
죄가 없으면 만들어야 하고, 있다면 더욱 키워서 아예 재기불능으로 만들고는 그대로 잡아먹는 세상이지.”
“···.”
“이미 귀족 대부분이 카슈가르 백작가에게서 등을 돌렸어.
그런데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고 결국 무죄로 풀려난다?
그대로 그들 모두는 카슈가르라는 강대한 귀족가문을 적으로 두게 되는 셈이지.
그러니 더더욱 세페르가 무죄가 되는 걸 원치 않을 거야.”
“그렇다는 건···.”
“결국 세페르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해도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거야.
오히려 그의 입에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온갖 고문이 쏟아지겠지.
당장 왕궁에 칼을 들이민 것부터 극형에 처해져도 할 말이 없는 대역죄니까.
여태껏 쌓아올린 권력은 모래성 무너지듯 허물어지고, 재산은 모조리 압수당할 것이며 가족들은 줄줄이 엮여서 감옥으로 가겠지.
그와 조금이라도 붙어먹었던 놈들은 왕가의 번뜩이는 시선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벌벌 떨 테고 말이야.”
헬렌은 시온이 어떤 결말을 노리고 이번 일을 실행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단순히 세페르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카슈가르라는 거대한 귀족 가문 하나를 그대로 공중분해 시켜서 다시는 재기하지도 못 하게 파묻어버리는 수준이었다.
철저하게 깨부수고, 철저하게 농락하며, 철저하게 짓밟는다.
이게 과연 병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었다는 자애로운 귀족 자제가 맞는지.
마나 한 톨 쓰지 못 하는 불쌍한 운명의 변경백령 자제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난 네게 거래를 하자고 했고, 너는 내가 원하는 수준의 것을 내놓았어.
그래서 나도 네가 원하던 만큼의 복수를 해주고 있는 건데.
혹시 마음에 안 드나?”
그럴 리가.
헬렌은 고개를 내저었다.
세페르의 끔찍한 최후는 그녀가 항상 꿈꾸던 달콤한 미래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조심스레 품고 있던 희망을 전부 깨트려버린 원수.
그 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을 받으며 죽어간다면, 헬렌은 제 영혼이라도 악마에게 팔 수 있겠다고 여러 번이나 생각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 물을게.
이번 거래, 만족스러웠나?
네가 내게 협조한 것과 내가 네게 내어준 세페르 카슈가르의 최후 말이야.”
“···아직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지만, 나쁘지는 않을 듯 합니다.”
“다행이네.
사실 또 다른 거래를 하려고 찾아왔거든.”
또 다른 거래?
헬렌은 시온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요정의 감각, 그리고 상인의 직감, 마지막으로 여인의 촉이 동시에 외치고 있었다.
눈앞의 이 남자는 지극히 위험하지만, 그만큼 묘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뭔가가 있다고 말이다.
“이번에 손해가 막심하다고 했지?
그걸 내가 메꿔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농담이십니까?
이번에 손해액은 한두 푼으로 메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한두 푼의 거래가 아니니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
헬렌 하이네스?”
빈 말도, 농담도 아니었다.
시온은 지금 진심으로 자신에게 손해를 메울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나서고 있었다.
상인으로서 유혹도 나고, 여인으로서 저 남자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던 터라 헬렌은 그 뾰족한 귀를 쫑긋거리며 다음 말에 집중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내가 참 많은 상인들을 봤는데 말이야.
그 중에서 가장 잘 팔리면서, 동시에 망할 위험이 가장 낮은 물건 장사가 있더라고.”
“···그게 무엇입니까?”
헬렌의 질문에 시온은 씨익, 미소를 짓고는 답했다.
“물 장사.”
―――――――작품 후기―――――――
조금 늦기는 했지만 주말 4연참 완료 했습니당.
추천 ···.
설마 ···.
안 주고 가시는 건 ···.
야스 글도 썼고 .
2편 더 올려서 4편 올렸는데 ···.
안 주고 가시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