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54)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54화(54/439)
54―――――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탄산과 탄산과 탄산 뿐이다
시온은 잠시 바네사의 곁에 서서 시간을 보내다가 슬쩍 운을 떼었다.
“왕녀님.
실은 오늘 오전에 변경백령의 상단 요청과 관련해서 하이네스 상단에 잠깐 다녀왔습니다.”
“하이네스 상단에 말인가?”
“네.”
그에 바네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요정 여인이 상단주로 있는 곳 말이군.
세페르의 협박에 못 이겨 준비를 하다가 거사 당일 날 위험을 무릅쓰고 고한 충신이지.
그런데 그게 왜?”
“오늘 찾아가보니 그런 흉악한 일을 조금이라도 더 일찍 고하지 못해 왕궁에 그런 변고가 생기게 된 것을 꽤나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쯧.
이미 부왕께서 그 어떤 죄나 책임도 물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그래도 상인에게 있어서 한 번 쌓은 신뢰도가 무너지는 건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니 말입니다.
승리를 기념하는 파티가 엉망이 된 것도 사죄를 하더군요.”
시온의 말에 바네사는 침음을 내뱉을 뿐 딱히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하이네스 상단이 이번 일에 개입된 건 분명 왕가로써는 상당히 언짢은 일이었다.
그들을 믿고 성벽 보수를 맡긴 것인데, 비록 갖은 협박과 위협이 있었다지만 어찌 되었든 이번 흉계에 개입한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뭐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어찌 되었든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와서 변고를 알린 이가 또한 하이네스 상단주였다.
비록 죄가 있다지만, 그에 상응하는 공을 세웠으니 처벌을 하는 건 뭔가 맞지 않았다.
“부왕께서 이미 이번 일에 대해서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기로 하셨다.
후일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거든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지 그런가, 시온 공자.”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보다 오늘부로 다시 시작되는 이 왕실 주최 파티에 하이네스 상단이 차후 천천히 풀려고 했던 상품을 선물로 드린다고 합니다.”
“선물?”
바네사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혹 말도 안 되는 짓들, 예를 들자면 뇌물이나 상납금 따위의 것으로 환심이라도 사겠다는 것인가 싶은 속마음이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허어, 이 왕녀님이 순진하시네.
요즘 누가 촌지를 줍니까, 촌지를.’
시온은 혹 바네사의 입에서 험한 말이 흘러나오기 전에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파티에서 쓰일 음료라고 합니다.
저도 혹 이상한 뜻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했지만 상단주가 내어준 것은 분명 마실 거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대가 직접 확인했다면 조금은 믿음이 가는군.”
“이미 국왕 전하께도 허락을 구했고 수락을 받아냈습니다.”
파티장에 들어서기 전, 시온은 이미 에드가 4세를 찾아갔었다.
축 늘어진 파티장의 분위기를 환기시킬 방법이 필요한데, 술에만 의지하기에는 그림도 썩 좋지 않고 무엇보다 모든 이들의 관심을 다른 곳에 집중시킬 수가 없었다.
그 어떤 귀족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는 시온의 말에 에드가 4세는 ‘그런게 있느냐?’ 라고 질문을 던졌다.
‘있습니다.
당연히 있고말고요.’
입만 즐거워도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존재.
그게 바로 인간이다.
그 어떤 힘든 시련에도 혀가 즐겁고 배가 부르다면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먹는 것이 주는 그 위대함, 그리고 그 마법.
그걸 시온은 아주 확실히 알고 있었다.
시온은 슬쩍 위쪽을 바라보며 시종장에게 고갯짓을 해보였다.
그러자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왕실 시종들과 시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잠시 후, 한 줄기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알싸한 알코올 향을 내던 술 대신, 다른 무언가가 잔에 담겨서는 쟁반 위에 세팅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첫 테이프를 끊어줄 이는 역시 왕녀가 제격이지.’
에라더 왕자는 세페르 카슈가르와의 일로 인해 잠시 근신 중인 상황.
이런 때에 국왕이 나서지 않는다면 왕가의 대표는 바네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시온은 슬쩍 잔 하나를 들어서는 바네사에게 내밀었다.
“왕녀님은 술을 싫어하셨죠.”
“···그걸 어찌 아는 것이지?”
아.
그러네.
왕녀가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구나.
이런 댕청한 놈.
잠시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시온은 그냥 대충 질러보기로 했다.
“이번 파티 때 한 번도 술잔에 입을 대시지 않아서 말입니다.
제 예측이었는데, 다행히도 맞았던 모양이군요.
이건 술이 아니니 안심하셔도 될 겁니다.”
“···.”
자신에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줄 알았는데, 내심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살짝 가슴이 떨리는 바네사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면 왕녀의 자존심이 서지를 않았다.
“누, 눈치가 썩 나쁘지는 않구나.”
애써 그렇게 말하며 잔을 집어 드는 바네사.
얼음이 들어가 있는 그 안에는 보글보글 기포가 솟아오르는 투명한 액체가 들어가 있었다.
처음 보는 음료, 바네사는 잠시 내용물을 바라보다가 향을 맡아보기로 한 모양이었다.
슬쩍 코를 가져다 대고 시향을 한 바네사는 흠?
하고 입을 열었다.
“향은 나쁘지 않군.
이건···.”
“레몬과 사과라고 하더군요.”
둘 모두 역시나 바네사가 좋아하는 과일들이었다.
바네사는 잠시 시온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 그대가 이 두 과일을 추천한 것인가?”
“글쎄요.”
애매모호한 답을 내놓는 시온이었다.
다른 귀족이었다면 답을 하라고 압박할 수도 있었겠지만, 왕녀는 그러하지 않았다.
대신 미소를 짓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해 보이는 모습으로 들고 있던 음료를 들이켰다.
“···?”
그 순간 시온은 속으로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와인 같은 술에 담겨있는 알코올이야 그렇게 강하지 않으니 그냥 쭈욱 들이켜도 무방하다.
하지만 저 음료 안에 들어가 있는 건 알코올이 아니라 다른 종류다.
제대로 한 번 주욱 들이켰다가는 바로 목구멍과 코에서 난리 부르스가 나기 마련이었다.
“···크읏!”
짜릿하다는 듯 잘게 몸을 떠는 바네사.
그러다 말고 주변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었다는 사실에 아, 하고 탄식을 내뱉는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다급하게 다시금 내용물을 들이켰다.
‘···왕녀님?
님 그러다가 역류하면 진짜 주옥되는 수가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문 중 하나가 코에 탄산 들이붓기라는데.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는 시온도 몇 번 겪어서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탄산이 역류해 코로 분사가 되는 리얼 분수 쇼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키으으!’ 하고 몸을 떨던 바네사는 미소를 짓더니 잔을 시종에게 내밀었다.
“시온 공자.
이게 무엇인가?
처음에는 깜짝 놀랐는데, 무척이나··· 상쾌하군.”
“일단 다른 귀족들한테도 권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아아, 그렇군.
그대들도 한 잔씩 해보게나.
하이네스 상단주가 상당히 재미있는 마실 거리를 내주었어.
내 입에는 맞는데 그대들은 또 모르니 말이야.”
도통 파티장에서 유쾌한 분위기를 잘 내보이지 않는 바네사였다.
그런 왕녀가 미소까지 지으면서 권하니 귀족들은 호기심에 시종들이 내민 잔을 들고서는 냄새를 맡다가 하나 둘씩 내용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왕실 파티는 어쩔 수 없이 호화롭기 마련.
소설에서 보면 김유현은 이런 파티를 질색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나오는 음식들이 하나같이 자극적이고 또 기름지고 느끼해서 라고 했었다.’
그 부분을 읽었을 때 독자들은 하나 같이 ‘기름지고 느끼한 음식을 먹을 때 최고는 역시 김치!’ 라고는 했지만 아쉽게도 이세계에서는 김치를 만드는 게 불가능했다.
애초에 그런 맵고 짠 음식보다는 달고 기름진 음식들이 선호되는 세상.
그렇기 때문에 시온은 다른 부분으로 생각을 해보았다.
‘술도 좋은 선택이지만 호불호가 명확하고, 무엇보다 바네사는 술을 싫어하니까.
그렇다면 역시 최고는 사이다지.
탄산!
기름진 거 먹고 으으으, 할 때 뙇!
하고 청량감을 주는 탄산!’
탄산 음료를 마신 귀족들의 반응은 예상보다도 훨씬 좋았다.
당장 옆에 서있던 호아킨 후작과 에스티아는 물론이고, 볼코 후작마저 ‘오오, 이거 봐라?’ 라고 중얼거릴 정도였다.
알코올처럼 알싸한 것 같으면서도, 톡 쏘는 청량감을 지닌 음료.
은근히 자꾸 땡기게 만드는데 심지어 술처럼 숙취에 시달릴 일도 없다.
“오오오, 왕녀님.
정말 괜찮은 것 같습니다.”
“키야으!
으으으!
이거 뭐죠?
후우우!”
“뭔가 상쾌한 느낌이군요.
오오···.”
거기에 바네사는 이미 스스로의 입으로 ‘괜찮다.’ 라고 언급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어떤 귀족이 ‘음, 이거 별로인데.’ 라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에라더 왕자가 근신에 들어간 이후로 순식간에 중심으로 자리 잡은 왕녀인데 당장 줄을 새로이 서야 할 판국에 말이다.
“···제법이군.
하이네스 상단이 이런 것까지 준비했단 말인가?”
호아킨 후작은 턱을 쓰다듬으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상인 핏줄이 흐르는 귀족답게, 바로 돈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마침 다들 파티장에 준비되어 있는 자극적인 음식들을 조금씩이나마 먹은 후니까.
탄산이 주는 청량감은 바로 이런 때에 극대화되는 법이지.’
거기에 탄산수라는 것을 애초에 거의 마시지 않던 이들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몇몇이 마셔본 적은 있다지만, 음료가 아니라 소화제로 사용한 것이 전부였다.
‘나쁘지 않네.
일단 첫인상이 제대로 꽂히면 빛을 발할 수밖에 없지.’
절로 ‘사과 톡톡톡!’ 이라는 노래가 떠오르는 시온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라고 묻는다면, 그건 결코 아니었다.
사실 진짜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시온 공자.
혹 하이네스 측이 제공한 이 음료는 더 없는 것입니까?”
“좋네요.
저는 술을 마시지 못 해 매번 아주 약한 과일주나 물 정도만 마실 뿐이었는데.”
“신기합니다.
처음에는 아픈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런 상쾌함을 주는 음료라니!”
얼음 동동 띄운 탄산이 주는 마법은 강력하다.
당장 시온은 예전에 군대 훈련소 생활을 할 때 그런 마법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막 더워지던 날, 각개 전투 교장에서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고생을 하던 시절.
미치도록 원했던 것은 제대라던가, 에어컨 빵빵한 방이라던가, 혹은 여자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시원한 탄산 한 잔.
그거 한 모금만 마실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그에 더해서 바로 전에 있었던 불길한 사건들을 다른 새로운 사건으로 잊고 싶은 사람의 마음, 그리고 떠오르는 권력의 중심인 왕녀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욕망까지 겹치니 순식간에 하이네스에서 제공했다는 이 음료는 무슨 마법의 물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마지막으로 이걸 곁들이면 정말 완벽해지지.’
아무리 멋지고, 화려하고, 뛰어나고, 새로운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결국 그 희소가치를 잃고 그저 그런, 평범한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이들은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해 먹곤 했다.
“아쉽게도 하이네스 상단도 이제야 겨우 개발을 끝낸 물건이라고 해서 말입니다.
시장에 유통되지도 않았고, 재고도 쌓아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왕실 파티에 선물로 내놓은 것이 일단 가지고 있는 것의 거의 전부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여러분.”
“아이고···.
쩝···.”
“으, 그건 좀 아쉽네요.”
“한 잔으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인데.
흐으음.”
한번 만 더 마실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 같은데, 그게 안 되니 내심 아쉬운지 자꾸만 낑낑거리는 귀족들을 바라보며 시온은 속으로 웃음을 내뱉었다.
수량을 조절해서 희소가치를 강제로 높이는 방식, 통할 때가 있고 통하지 않을 때가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무 실망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하이네스 상단주가 말하길 조만간 대량 생산에 들어간다고 하니 말이죠.”
“오오, 그렇습니까?”
“네.
다만···.”
말끝을 흐리며 일부러 귀족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시온.
“아직은 대량 생산이 불가능해서 물건을 원하는 고객들에게 주문 제작을 받는 형식으로 판매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시장에 풀리는 것이 아니라 말이죠.”
왜 그런 것이 있지 않았는가.
OOO 프리미엄, XX 프리미엄, 혹은 OO 한정판 등등.
보통의 사람들은 몰라도 가진 자들에게는 저절로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이름들이었다.
‘저들은 귀족이야.
아주 사소한 것 하나로도 제 힘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욕망 덩어리들.
누가 보기에는 그저 마시면 끝인 음료수일지 몰라도, 저들에게는 자신들의 특별함을 다른 이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방식이 되지.’
본질은 탄산음료가 아니다.
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허영심, 그리고 과시욕.
시온은 바로 그걸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멍멍이나 음메나 다 파티장에서 마시는 음료가 되겠지.
다른 상단들도 욕심을 내서 제작 사업에 뛰어들 테고 말이야.
그 때는 어떻게 하느냐?’
별 거 없다.
그냥 시장에 풀어버리면 된다.
단, 필수적으로 붙일 말이 있다.
‘이 음료는 자그마치 왕실 파티에서부터 시작하여 귀족들도 함부로 마시지 못 하던 음료다!
그게 이번에 당신들 앞에 풀렸다!
귀족들도 간신히 사마시던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기회!
당신은 이 기회를 놓칠 것인가!’
물건에 대한 인식을 그저 음료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귀족들도 함부로 먹지 못 하던 것’ 으로 심어주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저들 사이에서도 소화제로나 쓰이던 물이 아닌, 높으신 분들이 항상 찾던 최고의 마실 거리로 불릴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어지는 아이템들의 연속이지.
포도나 다른 과일부터 시작해서 우유도 넣고, 커피도 넣고, 술도 넣고···.
변형은 무궁무진하다, 이거야!’
내가 너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탄산과, 탄산과, 탄산뿐이지만.
너희들은 그걸 스스로가 원하는 것에 투영시켜 취하려고 할 것이다.
시온은 다만, 그걸 노릴 뿐이었다.
―――――――작품 후기―――――――
하루 종일 앉아서 자판만 두들기다보니 몸이 도통 나아질 낌새가 없네요.
도대체 이 역류성 식도염은 언제 낫는 건지.
가슴은 아프고 어깨는 결리고 속은 답답하고.
야!
가서 사이다 한 잔 가져와라!
안주로는 추천!
추천이 좋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