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55)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55화(55/439)
55―――――
파티는 끝났다
파티가 재개되고 수일이 흐르도록 별 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의 귀족들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고는 다시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동안 시온은 일부러 루시아를 파티장으로 불러 김유현까지 끌어들인 다음 바네사 왕녀와의 접점을 마련해보려고 애썼지만, 김유현은 딱히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 외에는 다른 부분에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의 시니컬한 외모나 분위기에 이끌린 귀족 영애들, 그리고 호기심을 느낀 귀족 몇몇이 다가가긴 했다.
‘개새끼.
누가 라이도 제자, 또라이 2호기 아니랄까봐.’
그래도 귀족 영애들한테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던 김유현이었다.
최소한 ‘나 고자는 아님.’ 이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남성 귀족들, 특히 혈기 왕성한 귀족 가문 자제들한테는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서는 닿기만 하면 베어버리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결투 신청도 몇 번 받았는데, 그 때마다 낄낄거리며 상대를 아주 아작을 내놓곤 했다.
‘루드비히야.
참아줘서 고맙다.
그래도 넌 아직 죽을 때가 아니야.’
참은 건지, 아니면 괜히 나대다가 본전도 못 찾고 뒈지게 처맞을 수도 있다는 걸 안 건지.
루드비히는 그저 혀만 차며 애써 김유현과 시선을 피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름 우수한 인재라고 불리던 귀족 자제들을 넷이나 꺾은 김유현.
바로 그 때 비로소 귀족들은 눈치 챘다.
저 새끼와는 얽히는 일이 없는 편이 이로울 것이라고.
“상당히 괜찮은 검사군.”
그래도 다행인 점은 왕녀가 비로소 관심을 보였다는 부분이었다.
은근한 요청으로 하이네스에서 들여온 탄산음료를 홀짝이며 그녀는 김유현에게 다가갔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시온은 ‘시바, 드디어!
드디어 이어지나요?’를 외쳤었다.
“상당히 훌륭한 검술이었다.
칭찬하고 싶군.”
“···감사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
“···?”
오오오, 설마 데이트 신청이라도 되는 겁니까.
왕녀님 믿고 있었다고, 젠장!
“검 한 번 섞고 싶군.”
와장창.
바네사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시온은 뭔가 깨부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기껏 핑크한 분위기 내놓고는 갑자기 ‘한 판 붙자.’ 는 도대체 뭐냔 말이야!
“왕녀님이라고 해서 적당히 할 생각 없습니다.”
“바라던 바네.”
그걸 또 좋다고 수락하지 마, 이 등신아!
얼마나 기가 막힌 지 시온은 다른 귀족들이 연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와중에도 두 남녀를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혹시 애새끼들 마냥 뭐 싸우면서 정이라도 드는 건가?
원래 소설에서 그딴 내용은 없었는데?
시온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유현과 바네사는 정말 목검 하나씩 들고 왕실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귀족들이 바라보는 가운데에서, 정말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아주 신명나게 싸웠다.
“자네, 왜 그렇게 초조해 보이는 눈치인가?”
“혹시 왕녀님 좀 다친다고 해서 저 김유현이 무슨 벌이라도 받는 건 아니겠죠, 볼코 후작님?”
김유현이 지킨 왕궁이 그의 손에 의해 반파가 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은 시온이었다.
몸 상태가 아직 정상은 아니라고 해도 김유현은 ‘김유현’ 이다.
상급 기사인 리시키다를 어렵지 않게 상대하고, 마음만 먹으면 일개 기사 소대 정도는 단 한 번의 검격으로 반토막을 내는 무지막지한 괴물 새끼!
지금이야 손상된 몸을 회복하느라 ‘조금’ 사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또라이는 영원한 또라이였다.
“적당히 하겠지.
왕녀님도, 저 남자도.
자네도 알지 않나?
왕녀 저하의 검술이 웬만한 사내놈들보다 낫다는 거 말일세.”
알기야 안다.
왕가 식구들의 기본 소양 중에 검술이 있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왕녀의 검술은 그저 제 몸 하나 지키기 위한 호신용 목적이고 김유현 저 놈의 검술은 그야말로 필살의 의지를 담은, 흉악하기 짝이 없는 칼질이다.
‘유현아, 제발.
갑자기 혹 해서 이상한 짓 하지 마라.
제발 적당히 해라.
웬만하면 져주고 져줄 생각 없어도 최소한 적당히 어울려주다가···.’
따악!
탱그렁!
단 한 번의 검격에 바네사가 들고 있던 목검이 튕겨져 나갔다.
힘없이 땅바닥을 구르는 목검을 바라보는 왕녀의 목 바로 앞에는, 김유현의 목검이 닿아 있었다.
“···.”
시온은 저도 모르게 제 얼굴 부여잡았다.
오, 신이시여.
저 주인공 새끼를 어찌 하면 좋겠나이까.
“그 어떤 말로 포장한다고 해도, 결국 검의 본질은 하나입니다.”
“···.”
“상대방을 죽이는 것.
그 숨을 끊는 것.
그런데 왕녀님의 검에는 그 의지가 하나도 없군요.”
망할 새끼.
우리 왕녀님 기는 또 왜 죽이는데.
그리고 이거 대련이었어, 새끼야.
누가 대련에서 죽고 죽이는 걸 걸고 넘어지냐고.
그래도 바네사가 검술의 기본적인 부분은 알고 있으니 혹 김유현이 적당히 어울려 주면서 모자란 부분을 말과 검으로 메꾸어주고,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는 상상을 했던 시온이었다.
기껏 행복회로를 가동했는데, 단 3초 만에 홀라당 태워먹은 김유현.
‘도대체 왜 저러지?
무림에서는 만나는 여자마다 신파극 찍기에 바빴던 놈이?’
그래도 달달했던 기운 넘쳐나던 무림과는 달리 이세계에서는 달라붙는 여자만 많을 뿐, 정작 이어지는 라인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밥숟갈이 오는 족족 퉤!
하고 뱉어버리는데 먹을 수가 있겠는가.
‘···어쩌면 무림 세계 이후의 시점이라서 내가 알던 김유현과 조금 다른 것일 지도 모르겠어.’
시작부터 괴물에 가까운 이세계의 김유현과는 달리, 무림에서의 김유현은 약했다.
당연했다.
그 때는 차원이동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니까.
약했기에 항상 위험에 빠졌고 그럴 때마다 주변인들이 죽어 나갔다.
그 중에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도 여럿 껴있었다.
‘아니, 그래도 이건 상당히 억울한데.
힘든 일 전부 다 내가 해주고 있잖아.
마음 고생 할 일 없었잖아, 이 새끼야!’
클라우젠 변경백령과 원수 사이가 될 뻔 한 걸 자신이 막았다.
누디아와의 전쟁에서도 일부러 자신이 나서 김유현이 영웅 대접을 받아 왕실 파티에서 수많은 이들의 눈초리와 질투를 받는 것도 대신 해주었다.
심지어 나중에 그에게 최악의 악몽을 선사해 줄 흑화 소녀 트리샤 페이커도 시온 자신이 맡아줄 텐에 아직도 땅 파고 들어가서 앉아있는 꼴이라니.
‘루시아 코인이 없으니 저 새끼 마음의 상처 치유가 안 되고 있어.
빌어먹을, 루시아가 나한테 호감을 가지게 된 게 이렇게 작용한다고···?’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상황이 이상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루 빨리 괜찮은 여자 소개시켜줘서 갑자기 급발진하는 저 성질머리 좀 죽여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미치고 팔짝 뛸 판국이었다.
‘루시아한테 이제 와서 사실 김유현 좋은 남자입니다.
라고 말하는 건 개소리고.
왕녀한테는 관심도 없고.
릴리트는 애초에 아웃.
그러면 남은 히로인 코인이 누가 있었지···?’
요정 쪽에 하나, 천족에 하나, 그리고 인간 셋.
모두 김유현과 꽤나 괜찮은 분위기를 이루었지만 결국 이어지지 못 하고 리타이어 하거나 공기화 되어 갑작스레 사라진 히로인들이었다.
‘요정이랑 천족은 아직 시기상조고.
인간 셋 중 하나가 그나마 킹능성이 있는데··· 문제는 하필 클라우젠 변경백령과는 반대에 있다는 거지.’
북부 영토에서 발생한 반란을 토벌키 위해 참가했던 김유현.
단순히 반란 수준이 아니라 그 너머의 야만족과 내통까지 한 국제전으로 치닫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유현은 겨울의 딸이라 불리는 한 부족의 족장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것도 망했네.
반란이 일어날 분위기가 아니잖아.’
카슈가르를 저렇게 조져놨는데 누가 이 날카로운 상황에서 반란을 도모하겠는가.
아니, 애초에 반란의 원인이었던 급진파 요정돌의 왕국 내부 균열 유도는 시온 자신에 의해 완벽하게 파훼되었는데 말이다.
‘미안하다, 유현아.
연애보다 다음 생이 더 빠를 지도 모르겠다.’
일단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로 한 시온이었다.
혹시 또 모른다.
루시아는 어찌 되었든 계속 김유현과 붙어서 행동할 테니 자연스레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김유현과 가까운 사이가 될 수도 있다.
바네사 왕녀도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지금보다 더 미소를 지어줄 지도 모르고 말이다.
“···마지막 날까지 다들 편히 즐기도록 하시오.”
바네사의 축사와 함께, 왕실 주최 파티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오늘이 끝나면 다들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왕실은 본격적으로 카슈가르 백작가를 인수분해 할 것이다.
세페르는 죽지도 못 하고 있는 사실 없는 사실 전부 토해내서 한 편의 소설을 쓸 때까지 자백을 할 것이고 그와 연관이 된 귀족 가문들은 혹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며 지내게 되리라.
‘통수 치는 놈들은 미리 솎아내야지.
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는 시온이었다.
며칠 사이에 왕실 파티에 탄산음료를 제공한 하이네스 상단이 거금을 벌어들였다니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자신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생산은 하이네스 상단이 맡는다.
그로 인해 벌어들이는 돈에 대해서는 단 한 푼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이 물품에 한해 전폭적인 상단의 지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상이 헬렌 하이네스와 맺은 거래였다.
‘···그런데.’
아까부터 갑자기 귀족들 사이에서 소란스러움이 느껴진다.
시온이 슬쩍 그들 사이에 끼어서는 이야기 좀 들어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
“아, 바네사 왕녀님?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그대도 소식 들었는가?”
“무슨 말씀이신지···.”
시온의 질문에 바네사는 무거운 한숨을 내뱉고는 뭔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도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서 상당히 언짢았는데 말이야.
마지막 날에는 기어코 불청객이 찾아오고 말았어.”
“불청객이라 하시면?”
“누디아의 사신들이네.”
누디아의 사신들, 이라는 말에 시온 역시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속으로 휴전 협상의 날짜부터 해서 지금의 때까지, 일수 계산을 해본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하나, 바수라 백작령이 협상 조건을 받아들이고 휴전을 체결하자마자 누디아에서 출발했을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이었다.
‘···설마 이제 와서 협상 무르자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가능성은 일단 매우 낮다.
당장 협상 파토가 나면 난처해지는 쪽은 클라우젠이 아니라 바수라다.
시온이 쥐고 있는 약점이 몇 개이며, 그게 까발려지면 반 역적으로 취급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바수라 백작령이 미쳤다고 누디아 왕실에 사신단을 파견해달라고 했을 테는 만무.
“조금 전 왕성에 도착하여 현재 부왕 전하와 독대를 할 거라고 하더군.”
“그걸 국왕께서 허락하셨다는 겁니까?”
“공식적으로는 사신단이니 말일세.
무턱대고 돌아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도대체 그 놈들이 갑자기 무슨 속셈으로 사신단을 이리 빨리 파견한 건지.
시온은 슬쩍 불안해졌다.
혹시 선물이라고 해놓고 이상한 물건이라도 보낸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일단 그대는 마지막 파티를 즐기고 있게나.
그대가 거둔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이고, 그 마지막 밤이니 말일세.
난 올라가서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확인해야겠군.”
그 말을 끝으로 바네사는 파티장을 빠져나갔다.
시펄, 갑자기 그놈 새끼들은 왜 등장한 거야.
마지막 날에 꼭 초를 치네.
시온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유지한 채 오늘도 자신에게 달라붙는 귀족 영애들과 어떻게든 연을 대려는 지방 귀족들에게 둘러싸여 고생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간신히 탈출해서 발코니 근처에 앉아있던 루시아에게 다다를 수 있었다.
“···푸흣.”
“왜 웃는 겁니까.”
“시온 공자님이 상당히 힘들어 보여서요.
전장 한복판에서도 그러시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거기서는 적과 아군이 선명히 구별되었으니까요.”
“여기서는 아니라는 건가요?”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터에서는 어제의 아군이 오늘의 적이 된다고 하지만.
정치판에서는 3초 전의 아군이 3초 후에는 내 뒤통수를 후려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모두가 명백한 적은 또 아니니 대놓고 적대할 수도 없는 전장.‘참 피곤한 곳이야.’
동시에, 참으로 즐거운 곳이기도 하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돌리려는데, 잠시 자리를 비웠던 에드가 4세가 파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귀족들이 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그의 등장에 기립하자 그는 좌중을 한 번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누디아 왕국에서 사신이 도착했다.
여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들은 접어두고 양국이 평화를 도모하며 서로가 강성해지면 좋겠다는 누디아 국왕의 친필 서한을 가지고서 말이지.”
오.
그건 상당히 나쁘지 않은 일인데.
한 나라의 국왕이 평화를 주제로 직접 써서 보낸 서신이라면, 그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최소한 자신 대에서 전쟁을 또 일으키는 일은 없으리라는 보증과도 같았다.
“때마침 파티의 마지막 날, 누디아의 사신이 찾아와서 두 나라 간의 짧지만 또한 아름다운 평화를 약속해주었으니 자리에 모인 귀족들은 오늘 밤을 그 어느 때보다 즐거이 보내기를 바란다.”
그 말에 시온은 슬쩍 에드가 4세의 옆을 바라보았다.
잠깐 모습을 드러낸 에라더 왕자, 그리고 그 옆에 서있는 바네사 왕녀.
그리고 그 뒤쪽으로 처음 보는 중년 남성과, 병약해 보이는 여인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