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56)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56화(56/439)
56―――――
파티는 끝났다
파티 첫날, 그리고 왕궁 습격 이후 다시 열린 파티 날.
그 이틀을 제외한다면 에드가 4세가 파티장에서 계속 머물렀던 적은 없었다.
대신 에라더 왕자나 바네사 왕녀가 그를 대신했었다.
하지만 파티 마지막 날인 오늘은, 특히나 누디아의 사신이 온 이 날은 달랐다.
에드가 4세는 아예 파티장을 돌면서 누디아의 사신과 제 귀족들을 인사시켰고, 간간이 사신에게 농담도 던지고 같이 웃기도 하면서 꽤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누디아와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로 인해 열린 파티라는 걸 사신이 모를 리 없는데.’
무슨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있는 것일까.
시온은 에드가 4세의 속마음을 대충은 예상했지만, 확신은 할 수 없었다.
먼저 내민 화해의 손길을 ‘승자’ 의 넓은 아량으로 잡아주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당신들은 꽤나 강한 적이었다는 걸 인정하겠다는 제스쳐인지.
“그리고 이쪽.
이 청년이 바로 시온 클라우젠 공자일세.”
“아!
저희 군대가 싸워보지도 못 하고 물러가게 만들었다는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그 천재 지략가가 바로 이 분 이었군요.”
에드가 4세의 소개에 누디아의 사신으로 온 중년인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
누디아의 아돌프 페럴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돌프.
시온 클라우젠입니다.”
“···정말 젊으시군요.
이런 분이 그렇게 비상한 지략을 지니셨다니.”
이제 겨우 스무 살이니 확실히 젊기는 젊겠지.
아, 나도 한 때는 스무 살이었는데, 참으로 아쉽··· 아아, 재입대는 사절이다.
“어째 그대는 나보다도 시온 공자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군.”
“히스파냐의 국왕이시여, 어찌 그런 말씀을!”
“아하하!
농담일세, 농담.
그보다 뒤의 여성분 소개도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아, 그렇군요.
어떠냐.
내가 대신 해주랴?
아니면···.”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병약해 보이지만 눈동자에만큼은 총기가 가득한 여인이 살짝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허리를 살짝 숙이곤 입을 열었다.
“아이브입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아이브?”
여인의 소개에 대한 반응은, 시온이 아니라 그 옆에 서있던 호아킨 후작에게서 나왔다.
그러자 에드가 4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나 호아킨 후작이군.
바로 반응하는구만?”
“전하.
혹 저 여인이 누디아의 체스 킹이라 불리는 이가 맞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난 킹이라 하여 남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리 젊은 여성분이었더군.”
“그런···.”
뭔데, 뭔데.
체스 킹이 뭔데, 도대체.
이세계에서 체스가 귀족들의 건전한 놀이 중 하나라는 거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체스 킹이란 단어는 처음 듣는데?
“아하하!
후작은 벌써부터 근질근질거리는 모양이군.”
“크흠.
제가 워낙 체스를 좋아해서 말이죠.
저, 아이브 양?
혹 시간이 된다면···.”
“체스 한 판 두시고 싶으시다면, 전 항상 환영입니다.”
사신단을 소개시켜주는 자리가 갑작스레 체스판이 되었다.
순식간에 국왕과 왕자, 왕녀가 자리할 곳이 다시 배치되고, 그 뒤를 이어 테이블이 놓인 다음 체스로 승부를 겨룰 이들을 위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호아킨 후작은 껄껄거리며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듯 반응이었다.
“이거 영광이군.
누디아의 그 유명한 체스 킹과 맞붙게 되다니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시온은 슬쩍 주변을 살폈다.
거의 대부분의 귀족들이 호기심을 드러내며 이 두 남녀의 체스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그 볼코 후작마저 아닌 척하면서 슬금슬금 보고 있는 것이 진풍경.
‘···귀족들 생활 설정에 체스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거기에 누디아에서 체스 킹이라 불리는 체스 고수가 있다는 건 아예 본문 내용에는 없었는데.’
물론 체스는 이쪽도 경험이 있다.
가끔 가다가 할 거 없으면 장기나 체스 몇 번 두던 게 전부긴 하지만.
그런 시온의 관점에서 봤을 때, 호아킨 후작이나 아이브라는 저 여인이나 개쌉고수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호아킨 후작은 고수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끄으으응···.”
체스를 두고 나서 정확히 10분이 흘렀을 때.
호아킨 후작은 바로 기물을 옮기지 못하고 침음만 흘리고 있었다.
아웃 된 기물은 몇 개 없었지만 애당초 체스는 기물 한 두 개만 잃어도 치명적인 게임.
호아킨 후작은 아이브의 캐슬링(킹과 룩을 한 번에 움직이는 룰) 을 깨려 했지만 역으로 그녀의 수에 말리며 기세를 잃고 말았다.
호아킨 후작 본인도 체스로는 거의 패배하지 않던 실력자였음에도.
거기에 더해서 제 나라의 수많은 귀족들, 심지어 국왕과 왕자 왕녀까지 보고 있는 상황인데 이렇게 말리는 꼴은 정말이지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하지만 한 번 수렁에 빠지니 결국 빠져나갈 수 없었다.
아이브의 공격이 시작되고 얼마 뒤, 호아킨 후작은 자신의 패배를 시인했다.
히스파냐의 실력자가 누디아에게 패퇴하고 말았다.
“흐음.”
에드가 4세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침음을 흘리니 몇몇 귀족들이 나섰다.
이 상황에서 아이브를 이긴다면 단순히 누디아의 체스 킹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제 나라의 왕 앞에서 그 체면을 살려주는 것이 되니 최고의 기회였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내가 보기엔 그냥 개 탈탈 털릴 각인데?’
호아킨 후작이 저렇게 패배할 정도라면 다른 놈들은 안 봐도 비디오다.
잠시 후, 에드가 4세는 히스파냐의 귀족들이 하나 같이 영혼까지 털리며 아웃되는 꼴을 지켜봐야만 했다.
“···.”
분명 조금 전까지는 엄청 화목하던 분위기가, 묘하게 싸늘해진다.
‘시발, 설마 누디아 새끼들.
이거 노린 거 아냐?’
사신단에 굳이 체스 킹이라 불리는 아이브를 넣은 이유.
전쟁에서 패배했으니 속이 뒤틀릴 텐데 소심한 복수라도 할 겸 그녀를 보낸 건 아닐까.
협상도 아니고, 무슨 항의를 하는 것도 아닌, 단순한 게임으로 히스파냐를 상대한다.
도전자가 나오는 족족 개박살을 내면서 ‘괜찮은 실력이셨어요.’ 라고 하는 도발은 덤.
이 상황에서 히스파냐 측이 화를 내자니 겨우 게임 좀 가지고 지랄하는 것 같아 그렇고, 그냥 껄껄 웃고 넘어가자니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남게 된다.
전쟁에서 패한 자신들이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장 확실하게, 히스파냐 측의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방식일지도 몰랐다.
“후우.”
아이브는 철저하게 도전자들을 박살낸 이후,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다.
더는 나설 이가 없냐는 무언의 도발.
“···.”
팡팡―.
누군가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친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바네사가 ‘이런 그림을 원한 게 아니었는데.’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시온의 눈에 보였다.
신속히 사이다 수혈이 들어가지 않으면 답답해서 돌아가실 표정이다.
이쯤 되면 눈치 있는 놈들은 차라리 나서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걸 깨닫는다.
여기서 더 패하게 되면 그 때는 농담 반 해서 역적으로 취급당할 수도 있다.
그걸 알기에 시온은 슬쩍 뒤로 몸을 빼려고 하는 와중이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아이브의 입에서 제 이름이 나오자 시온은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예?”
“저희 누디아 측에 보여주셨던 그 뛰어난 지략을, 부족하지만 이 조그마한 체스판에서 겪어보고 싶습니다.
저와 한 수 나누어 주시겠어요?”
아니.
아니요, 시바!
하기 싫은데요!
그건 지략도 아니라 대놓고 파둔 함정일 뿐이었고, 체스의 ‘체’ 자 정도만 간신히 안다고!
체스를 그렇게나 좋아하고 또 실력도 있다는 노장, 호아킨 후작마저 영혼까지 털렸는데 여기서 시온이 나서서 이길 확률은 다 찍어서 공무원 시험에 붙을 확률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시온은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버틸 요량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걸 도와줄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영웅이 있지 않았는가?”
“시온 공자!
누디아의 도전을 받아주시죠!”
“부끄러워하지 말고 가봐라.”
야 이 망할 팀킬러들아!
영웅이랑 체스랑 뭔 상관이야!
도전 안 받아, 안 받고 싶다고!
볼코 후작, 당신은 뭔데 자꾸 등을 떠미는 건데?
어어?
아차, 하는 사이에 이미 아이브의 맞은편에 앉게 된 시온이었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귀족들은 다 이긴 거라고 설레발을 치고 있었고, 조금 전까지 불편한 기색을 보이던 에드가 4세는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며, 바네사는 두 눈을 반짝이며 시온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9회 말 4:4 원 아웃 만루 상황에서 검증된 구원 투수가 나설 때의 반응이었다.
‘···좆됬네.’
답이 안 나왔다.
이건 아무리 봐도, 보고 또 봐도 그냥 노답이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무를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속으로 욕설을 내뱉던 시온은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식으로 기물을 옮겼다.
혹시 기적이 발생해서 자신이 아이브를 상대로 엄청난 명승부를 하는 건 아닐까 상상하면서!
‘···는 꿈, 어림도 없지.
시벌탱!’
패배!
라는 빨간 색의 단어가 자신의 앞에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엉망이 된 체스판을 바라보며, 주변의 모든 귀족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 어떤 귀족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시원하게 털린 시온 클라우젠.
“···.”
에드가 4세는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더는 이 통탄스러운 광경을 볼 수가 없다는 듯.
‘이미지 조졌네.’
도대체 이걸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온갖 고민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이브가 입을 열었다.
“시온 공자님.”
“네.”
“한 번 더 두시죠.”
“···이미 승패는 결정 났는데요, 아이브 양.”
“제대로 두지도 않으시고 패배를 인정하시다니.
비록 제가 그저 이런 기물이나 옮기는, 정작 가장 중요한 병법이나 지략들에 대해서는 아직 부족하다고는 해도 너무 하시는군요.”
“예?”
이 여자가 지금 뭐라는 거야.
실컷 털어놓고 갑자기 ‘왜 제대로 안 함?
원코 고.’ 란다.
이건 또 무슨 신종 도발인가 싶어 가만히 아이브를 바라보는 시온.
그러자 그녀는 말없이 기물들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승전을 거두었다지만 상대는 완벽하게 새로이 구성된 군대.
그런 군을 앞에 두고 성문을 활짝 여는 수를 던지는 그 과감함.
하지만 그 과감함 안에 숨어있는, 무섭도록 치밀하고 소름 끼치는 칼날과도 같은 예리함.
저는 결코 그런 수를 둘 수 없었을 겁니다.”
“···.”
“그 뿐 입니까?
그 자리에서 공자님은 류트 하나로 수십 개의 수성 병기를 대신하셨습니다.
연주 한 번으로 공격자의 의지 자체를 완벽히 깨부수셨죠.”
아니, 난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가서 공명한테 따지시라고!
“그런 진풍경을 보여주시고선, 여기는 그저 아무런 의미 없는 장난일 뿐이니 나서지 않으시겠단 겁니까?
제게 가르침을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
당장이라도 얼굴을 부여잡고 한숨을 내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대체 자신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와전되었기에 저런 반응인 것일까.
시온은 잠시 고민하다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패배로 인해 풀이 죽어있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아진 얼굴들이다.
‘믿고 있었어, 시온 공자!
믿고 있었다고, 젠장!’ 이라고 외치는 게 다 느껴질 정도.
‘···그래도 체스는 진짜 안 되는데.’
이건 어쭙잖은 연기나 얼굴로 해결 가능한 부분이 아니다.
무조건 실력으로 승부를 내야 하는 게임인데, 도대체 어떻게···.
‘어.’
번개 같이 뭔가가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갑작스레 어두컴컴하던 터널 안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후회 안 하겠습니까, 아이브 양?”
미청년의 기세가 갑자기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부드러운 기운이 감돌던 눈동자는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빛을 내뿜으며 살벌하게 번뜩였으며, 당장이라도 베일 듯 한 예기까지 뿜어내고 있었다.
그에 아이브는 저도 모르게 꿀꺽, 하고 침을 삼킬 정도였다.
“네, 시온 공자님.”
“좋습니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시온 클라우젠.
귀족들은 흥분했고, 아이브는 긴장했다.
그리고 바네사와 루시아는 혹여 또 시온이 패할까 심장이 쫄깃해졌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다시 체스가 시작되었다.
잠시 후, 아이브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뭐야, 이거?’
자신의 폰을, 시온의 퀸이 먹어치웠다.
체스의 가장 핵심적인 기물인 퀸을 고작 폰을 먹는데, 그것도 바로 자신의 킹에게 먹히고 마는 위치에 두는 선택을 하면서까지 말이다!
‘···캐슬링을 깨려고?
하지만 퀸을 버리는 건 너무 무모한 판단인데.’
그 어떤 전략이 있다고 해도 퀸을 잃게 되면 급격히 힘을 잃게 된다.
체스에서 그만큼 퀸이라는 기물은 중요했고, 그 퀸을 잡는다는 건 승부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다.
‘무슨 수를 쓰시려는지 모르겠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아이브는 킹을 옮겨 퀸을 잡아냈다.
그러자 시온은 기다렸다는 듯 나이트를 움직여 길이 난 비숍으로 체크, 그리고 다시 나이트로 더블 체크를 하기에 이르렀다.
일단 적의 공세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선이었기에 아이브는 킹을 전진시켰다.
탁―.
다시 시온의 나이트가 체크.
또 남은 길이 전진 밖에 없어진 아이브는 킹을 한 칸 더 앞으로 보냈다.
비록 캐슬링이 깨지긴 했지만, 이 공세만 벗어나면 승리는 무조건 자신의 것이었다.
“체크.”
시온의 폰이 이동하여 아이브의 킹을 노린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어쩔 수 없이 킹을 움직이려는 순간.
‘···어?’
섬뜩한 감각이 아이브의 등골을 휩쓸고 지나갔다.
뒤로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건 오직 앞으로 향하는 길 뿐, 그리고 그 앞은 아군이 아닌 적군의 진영.
그리고 그 안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자신일 뿐이다.
“체크.
체크.”
비숍에 의한 체크, 이동, 룩에 의한 체크, 또 이동.
‘이, 이게 도대체?’
시작은 퀸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잡아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잡으면 이기고, 잡히면 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가장 중요한 무엇.
그것만 잡으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승리로 향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떼었다.
하지만 아이브가 마주한 것은, 적진에 갇혀 오도 가도 못 한 채 처참한 죽음을 맞이할 그녀의 킹, 그리고 그녀 자신이었다.
“체크메이트.”
자신의 킹을 옮겨 룩으로 마지막 비수를 꽂아 넣는 시온이었다.
“···.”
멍하니 체스판을 들여다보는 아이브.
그리고 말을 잃은 관객들까지.
이게 조금 전까지 누디아의 체스 킹에게 처참히 패배하던 남자가 보여줄 수 있는 광경이란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보고 또 봐도, 믿을 수가 없었다.
“···끝났군요.”
“···끝났네요.”
시온과 아이브의 입에서 동시에 그 말이 터져 나왔다.
“아이브 양.
다음···.”
“제 완벽한 패배입니다.
방금과 같은 무시무시한 수들을 직접 보고 나니 더는 체스를 둘 용기조차 나지 않는군요.
제 부족한 식견을 넓혀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남은 경기는 포기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아이브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지만, 지금 그녀는 자꾸만 떨리는 제 몸을 추스르느라 바빴다.
완벽한 수, 완벽한 패배.
절로 오소소, 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체스 킹이라는 그 오만한 이름을, 저 남자는 그야말로 아주 가뿐하게 박살내버렸다.
진짜 자신과 맞붙어 보고 싶다면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듯이.
“우리 아직 1:1입니다.
아이브 양.”
“···그렇긴 하죠.”
“남은 한 번의 승부는 그대가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다시 찾아오는 날 두도록 하죠.
어떻습니까?”
다시금 아까 전과 같이 부드러운 빛이 감도는 눈동자, 은은하게 피어오른 미소.
바라보고 있는 상대방마저 절로 웃게 만드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미청년.
그러나 저 안에 숨겨져 있는, 그 어떤 창칼보다도 날카로운 지략들.
한 번 꿰뚫고자 마음먹은 상대는 무조건 죽음을 맞이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사형 선고.
저런 남자가 누디아가 아닌 히스파냐에 있다는 것을 한탄하며 누디아의 떠오르는 신예, 왕국의 재상 에텔모 기 레스티온의 외동딸, ‘아이브 기 레스티온’ 은 입을 열었다.
“꼭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브가 그렇게 대답하자 사방에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모두가 시온 클라우젠이 보여준 명경기에 정신이 쏙 나가있었던 모양.
특히나 체스 매니아인 호아킨 후작은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고 있었으며 에드가 4세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는 듯 껄껄거리고 있었다.
‘역시, 저 남자는.’
‘역시, 저 분은.’
그리고 같은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짓고 박수를 보내는 바네사와 루시아까지.
마술 같은 한 편의 명승부를 보여준 시온은 그들의 박수에 미소로 화답했다.
‘너튜브 만세!
만만세!’
뜬금없이 관련 재생으로 체스 명경기 영상을 틀어주었던 ‘빨간 재생 버튼’ 을 찬양하는 시온이었다.
―――――――작품 후기―――――――
병원 좀 다시 가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