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58)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58화(58/439)
58―――――
파티는 끝났다
“···하아.”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흘린다는 이유 모를 한숨.
시온은 창밖을 바라보며 그 한숨을 내뱉었다.
이유?
별 거 없다.
그냥 미친 듯이 지루해서가 전부지.
“야.
아주 땅이 꺼지겠다?
왜 자꾸 한숨인데?”
“그냥요.”
“그냥?
그냥이 어디 있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정말 그냥 한숨 쉰 겁니다, 릴리트님.”
그럼에도 릴리트는 흐으음, 하고 수상하다는 기운을 팍팍 보내고 있었다.
시온이 억울합니다!
라고 제스쳐를 취해도 말이다.
“너, 루시아 생각하지?”
“예?”
“그거 외에는 딱히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이 누님이 갑자기 헛다리를 거하게 짚으시네.
왜 갑자기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생각하던 시온은 곧 마차 안에 있어야 할 두 남녀가 보이지 않다는 걸 자각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시온 공자님.
아무래도 같이 출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죠, 루시아?’
‘왕성에 남아서 마무리 할 일이 좀 있어요.
걱정 마세요, 바로 뒤따라 갈 테니까.’
떠나는 당일, 갑작스레 나타난 루시아의 행색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어디서 불장난이라도 하다 온 건지 얼굴 곳곳에는 채 지우지 못한 그을음이 남아있었고, 그 고운 머리의 끝이 살짝 탄 것도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지만 루시아는 난감한 웃음만 지으면서 답을 해주지 않았다.
답답해진 시온이 김유현에게 사실대로 말해달라고 눈짓으로 사정도 해보았지만 그 역시 고개만 저으며 답할 수 없다는 뜻을 보일 뿐이었다.
‘설마 그 짧은 사이에 김유현이랑 눈이라도 맞은 건가?’
루시아가 왕궁에 머물 때, 그리고 클라우젠의 별장에서 머물 때 그녀의 호위를 맡은 것은 언제나 주인공 ‘김유현’ 이었다.
김유현은 몰라도 루시아는 한창일 때의 여인이니 가능성이 아예 없는 부분이 아니었다.
슬쩍 의심이 고개를 들었지만, 이내 시온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루시아 코인이 그렇게 흔들렸으면 진작 상장폐지 되었을 걸.
그 힘든 시간, 그렇게나 외골수인 김유현 곁에 남아서 끝까지 그를 보듬어주던 히로인이었는데 말이야.’
쟁쟁하던 히로인들 중에서 그저 그런 실력을 지니고 있던 루시아가 꽤나 많은 지지층을 지니고 있던 이유는 명백하다.
오직 한 남자만을 바라보는 순애!
그 치명적인 단어!
당장 루시아의 입에서 자신을 향한 달달한 고백까지 나온 게 한 달도 채 전의 일이다.
설마 그 짧은 사이에 사랑이 움직였을까 싶은 시온이었다.
‘잠깐···.
설마 나한테 이상한 거 옮아서 흑화 했다거나 성격 이상해진 건 아니겠지?’
만약 루시아가 변해버린다면 그건 다름 아닌 자신 때문이 아닐까, 슬쩍 걱정이 되었다.
뭐, 그녀가 원래대로 김유현의 곁에 붙어서 그의 멘탈 케어를 도와준다면 그것도 그거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니 또 갑자기 속이 쓰려왔다.
내 거라고 생각한 것이 난데없이 다른 사람한테 가버리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일까.
“야.
아주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려 한다?”
“크흠!
절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주 아련해져서는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았는데.”
이 누님이 요즘 따라 왜 이리 날카로우시지?
생각해보니 릴리트의 투덜거림이 평소보다 조금 더 심했다.
잠시 그녀의 감정 변화를 따져 본 시온은 그게 리시키다와 밤을 보낸 이후부터 라는 결론을 내고는 피식, 미소를 짓고 말았다.
“질투 안 하신다면서요?”
“응?”
“질투 하시는 것 같은데?”
“뭐라는 거야?
내가 질투를 왜 해!
미쳤어?”
“지금 반응이 딱 질투 아닙니까?”
“아니라고!”
아니시면 말고요.
시온이 어깨를 으쓱이자 릴리트는 그제야 이 남자가 재미로 자신을 놀리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우씨!
라고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던 그녀는, 슬그머니 제 본심을 털어놓았다.
“···왜 나보고 도와달라고 안 했어?”
“예?”
“그 때 말이야.
왕궁에서 일어난 폭발에 휘말릴 때.”
“그건···.”
“리시도 놀랐겠지만, 나도 놀랐어.
그래도 네가 그 위험한 장소에 있지는 않겠지 싶었거든.
그런데 웬걸?
대놓고 거기에 들어가서는 엉망이 되었다네?
너, 예속의 계약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계약자의 몸에 전해지는 충격 정도도 감지 못할 줄 알았냐고.”
“릴리트님.
그건 제가 설명을 드리지 않았습니까.”
“알아.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는 거.
너희 인간에게 환영 받지 못 하는 존재라는 거.
그래도 무슨 뒷방 늙은이 마냥 뒤로 치워두고 네가 하는 일을 지켜보기만 하라는 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지 알아?”
릴리트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시온은 끄응, 하고 침음을 내뱉었다.
왕성에서 릴리트가 활동하게 되면 어떤 후폭풍이 불지는 안 봐도 훤하다.
당장 마족이 이런 일을 벌인 게 분명해!
라는 괴소문이 퍼질 것이며 분열을 조장하는 이들은 옳다구나!
하고 마족들의 짓이란 누명을 뒤집어씌울 것이 뻔했다.
‘카슈가르와 마족이 결탁했다는 결론으로 만들어 볼까 고민도 했지만.’
서큐버스 퀸, 릴리트는 이제 자신의 여자다.
그녀가 없어도 자신 스스로 충분히 일을 키우고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릴리트를 투입해서 마족의 존재에 대한 욕설과 저주가 다른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딱히 보고 싶지 않았다.
“릴리트님을 믿지 못 해서 일을 맡기지 않은 건 아닙니다.
오히려 도와달라고 애교라도 부릴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가감 없이 솔직하게 말해라.
그게 마누라 속 덜 뒤집는 방법이다.
어차피 남자의 거짓말은 웬만한 여자들은 다 눈치 채는 법이란다, 아들아.
오늘도 인생의 참교훈을 알려주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며 시온은 릴리트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역시나 조금은 진정된 목소리로 시온의 다음 이야기를 원하는 릴리트.
그는 속으로 되어쓰!
라고 외치곤 담담히 말을 이었다.
“또 헛소리 늘어놓기 좋아하는 놈들이 ‘이번 일은 모두 사악한 마족의 짓이 분명하다!’ 라는 말을 듣기 싫었을 뿐입니다.”
“뭐어?”
“릴리트님이 이상한 잡놈들한테 욕먹는 게 듣기 싫었다고요.”
“아···?”
“크흠.
비록 계약으로 맺어지긴 했어도 그렇고 그런 사이인데 말이죠.”
잠시 두 눈을 깜빡이며 시온을 바라보던 릴리트.
그러다 말고 갑자기 헤에?
하고 배시시 미소를 짓더니 무슨 한 마리의 뱀이라도 된 듯 흐느적거려서는 순식간에 시온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덕분에 화들짝 놀란 시온이 징그럽다며 그녀의 얼굴을 밀어냈지만 릴리트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우후후!
하고 웃어대며 점점 더 시온에게로 달라붙었다.
“매번 묘한 분위기를 풍기기에 엄청난 남자인 줄 알았는데.
이런 귀여운 면이 있었네?”
“아 좀!
달라붙지 마세요.
가슴 닿습니다!
아, 뜨겁다고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다.
서큐버스의 몸은 보통의 인간들보다 훨씬 더 뜨거운 기운을 품고 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막 활활 불타는 건 아니고, 딱 몸을 섞을 때 적당한 자극과 열기가 된다고 할까?
“뭐야, 뭐야.
사방에 아주 페로몬을 막 뿌리고 다녀서 나라는 여자는 그냥 심심하면 먹다가 버리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요 귀염둥이가 내 생각을 그렇게 해주고 있었을 줄이야!”
“···뭡니까, 그 말?
어째 상당히 저를 쓰레기처럼 여기고 있었다는 반응 같은데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아아아, 갑자기 몸이 확 달아오르는데.
으으으!
아, 시온, 그냥 여기서 하면 안 될까?”
“에?”
아니, 누님!
이건 또 무슨 급발진이냐고요!
카섹스도 아니고 갑자기 마차 안에서 거사를 치르겠다니.
시온은 퍼덕거리며 릴리트에게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당장 문만 열면 리시키다와 기사들, 그리고 병사들까지 있을 텐데 그 한가운데에서 미친 척 하고 관계를 가지기에는 아직 자신의 똘끼 레벨이 그리 높지 않았다.
“릴리트님.
며칠만 더 가면 클라우젠입니다.
그 때까지만 좀 참아주시죠.”
“못 참아.”
“아니, 출발하기 전날에도 꽉 넣어드렸잖습니까!”
“가득 아니었어!
가득 넣어달라고 했는데 뺐잖아!”
“아니, 세 발이나 뺐는데 그게 가득이 아니면 뭐가 가득이란 겁니까!”
시온의 발악에도 릴리트는 ‘아, 몰라.
네가 먼저 유혹한 거니까 난 죄 없어!’ 라고 외치며 막무가내로 시온에게 들러붙었다.
‘아니, 도대체 이 누님이 왜 이러는 거여!’
퍼덕거리면서 반항해보지만 애당초 릴리트의 고집을 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 번 고삐가 풀린 서큐버스를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이성과의 관계, 그 뿐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자동차든 마차든 어디서 한 번 해보고 싶긴 했지.’
좀 불편하기는 해도 가끔 가다 품는 로망 아니겠는가.
끝내주는 차 안에서 더 끝내주는 여인과 함께 하는 과열 가득한 시간 말이다!
“응?
응?
응?
하자, 하자.
해줘, 해줘!”
조금 전까지 손만 내밀어도 발톱을 세우고 하악질을 하며 앙칼진 반응을 보이던 고양이가 몇 분 만에 태세 전환을 해서는 그르릉거리며 연신 자신의 몸에 부비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디르급 태세 전환이시네.’
뭐, 따지고 보면 그 원인 제공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니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동 시간동안 넋만 놓고 있기에는 너무나 지루했기에, 시온은 자꾸만 릴리트가 불을 붙이는 본능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고 더 태우기로 했다.
“대신 많이는 안 넣어드릴 겁니다.
가득 없어요.”
“쳇.
알았어.
대신 이번에는 내가 위에 있을래.”
릴리트는 말을 마치곤 제 다리를 쫙 벌리고서 시온의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상대의 체취를 전부 자신이 마셔버리겠다는 듯 아주 깊게 숨을 들이쉬며 무척이나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너도 상당히 원하고 있던 모양인데?
냄새 진하잖아.”
“릴리트님이 유혹하는데 원하지 않는 놈이 더 문제 아닐까요.”
“하긴 그래.
그런 놈은 진짜 남자 구실 못 하는 놈이지!”
그 말에 시온은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고 말았다.
어째 남자 구실을 못 한다는 그 말이, 김유현을 노리고 한 말 같아서였다.
“왜 웃어?”
“릴리트님이 너무 예뻐서?”
“···와.
진짜 유치해.
그런데 그거에 또 기분 좋아지는 나는 병신 같아.”
그렇게 말한 릴리트는 살짝 다급한 기색으로 얼른 안아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남자의 팔이 자신의 허리에 둘러지자, 여인은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 얼른 제 입술로 남자의 입술을 덮고는, 마치 달콤한 사탕을 먹듯 이리저리 혀를 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마차 안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야릇한 향이 풍기기 시작했다.
“흐으으···.”
“후.”
서로의 숨결과 입술을 전부 탐한 남녀의 몸에 불꽃이 튀겼다.
여인의 몸을 안고 있던 남자의 손이 풀어져서는 상대의 앞섬을 풀어헤치기 위해 막 이동하려던 참이었다.
“아?”
“왜 그러세요.
릴리트님 가슴 만져주시는 거 엄청 좋아···.”
“엎드려!”
릴리트가 그렇게 말하며 다급하게 시온을 끌어안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바깥에서 한 여기사의 비명 같은 고함이 날아들었다.
“시온님!”
콰아아앙!―.
―
“성공이다.”
“···이봐, 문엘.
정말 괜찮겠어?
이걸 대장이 알았다가는···.”
“상관없어.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왕성 습격이 실패한 이후로 조용히 지내라고 했잖아.
이건···.”
“시끄럽다고.
저 인간 놈이 수상하다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대장한테 보고하고 이것저것 허락을 받는 순간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끙.”
“인간이란 하등 종족은 이렇게 불씨만 남겨주면 알아서 자멸하고 말 거야.”
멀리서 불타고 있는 마차를 바라보며, 두 천족은 재빠르게 자리를 이탈하려고 했다.
해냈다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수고했다는 미소를 지으면서.
“···빌어먹을 비둘기 새끼들이 이렇게 통수를 치네.”
싸늘한 목소리의 한 여인이 그들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 어어?”
“뭐, 뭐야.
이 여자가 왜, 왜 여기서?”
“시발 놈들.
간신히 유혹해서 화끈하게 놀아보려고 했더니, 와!
그걸 이렇게 엿을 먹여?
아이고, 이 미친년아.
왜 방심을 했어!
왜 마음을 놓아서 결정적인 순간에 방해를 받아!
아, 시발!”
파지직―.
파직―.
여인의 두 손에서 요사스러운 붉은 기운들이 스파크를 튀기며 으르렁거린다.
당장이라도 바로 앞에 있는 가증스러운 적들을 찢어발기고 싶다는 듯이.
“리, 리, 릴리···.”
콰아아앙!
천족 하나가 그대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상위 천족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단 일격에 말이다.
“으으으!”
“각오는 했지?
식사 전의 서큐버스 퀸을 건드린 대가가 무엇인지 말이야.”
인간들은 밥 먹을 때에는 개도 안 건드린다 했다.
건들면 물리니까.
그러면 서큐버스가, 그것도 그녀들의 여왕이 막 맛나게 식사를 하려는데 방해를 받는다면 그 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너희들의 그 잘난 신은 성소에 두고 왔지?”
“자, 잠깐.
잠깐···.
꺼헉!”
남자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발로 짓누르며, 밤의 여왕이 실로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부디 두고 왔기를 바랄게.
다음 이어질 일들은 너희 신도 보기 싫어할 것 같으니까.”
―――――――작품 후기―――――――
비축분 연재로 전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