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6)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6화(6/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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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저 답답한 일 때문에 바람을 좀 쐬다가 늦은 것이다.
무슨 일인지는 내일 생각이 정리되면 정확히 말씀드리겠다고 답한 끝에 간신히 리히텐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시온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리히텐이 이번에는 시온의 뒤에 미행을 붙이지 않았던 모양이었고, 그는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과 함께 그만 방으로 돌아가서 쉬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치겠네.’
시작부터 꽤나 선방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원래 스토리 흐름 상 이때의 시온은 루시아가 누구의 딸인지도, 라이도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자신이 겁탈하려 했던 여인이 한때 궁정 마법사라는 대단한 위치에까지 올랐던 이의 하나뿐인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뿐이었다.
덕분에 시온은 라이도에게 사심 가득한 복수를, 그것도 대연회장에서 그대로 당했으며 그 자리에 모인 많은 귀족들의 비웃음을 사게 된다.
그가 비뚤어진 이유는 다른 것도 많았지만 그 사건 역시 한 축을 차지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루시아는 아무런 일 없이 김유현과 함께 돌아갔다.
심지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심상치 않은데 그녀에게 라이도의 정체까지 언급해버렸다.
이 변경백령에서는 오직 자신의 아버지, 리히텐 클라우젠만이 알고 있는 진실을 말이다.
‘애독자 킹갓맨이라고 괜히 나대다가 역으로 털리게 생겼어.’
소설 내용을 전부 알고 있어서 무조건 유리할 줄 알았는데, 그 스토리의 흐름에 둔해지니 알고 있던 정보들이 너무 빨리 입으로 튀어나와 자칫 일이 이상하게 번질 가능성이 있었다.
시온은 앞으로 첫 번째도 입조심, 두 번째도 입조심이라고 결심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공자님.”
도대체 어느 틈에 다가온 건지, 소리 소문 없이 자신을 부르는 세바스찬 덕분에 경기를 일으킬 뻔한 시온이었다.
보통의 사람이 저렇게 기척도 없이 다가와도 놀라는 게 당연한 판국에, 껍데기는 그저 노년기의 집사로 보이는데 정작 알맹이는 주인공과 어느 정도 싸움이 가능할 정도의 굇수라면 보통의 심장을 가진 사람은 기절초풍하는 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제발 기척 좀 내고 다니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시온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 유혹을 떨처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초인적인 인내심이 아니라 초인적인 생존 욕구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테지만 말이다.
“세바스찬.”
“네, 공자님.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원래의 시온이라면 이 때 쯤에 시간낭비 말고 가서 하던 일이나 잘 하라고 타박을 할 테지만, 세바스찬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현재의 시온은 감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 노인 앞에서 깝죽대다가는 언제 모가지가 썩둑 하고 잘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서 저 무시무시한 노인 앞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시온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좀 쉬고 싶군요.”
“아아, 제 정신 좀 보십쇼.
죄송합니다, 공자님.”
이쯤 했으면 어서 물러가주었으면 하건만, 세바스찬은 굳이 시온을 그의 방까지 안내하겠다고 하면서 어서 가자고 재촉까지 해왔다.
시온이 무슨 외부 손님도 아니고, 제 방을 찾아가는데 안내까지 필요할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제발 좀 꺼지라고!
시발!
당신 존나 무섭다고!’
김유현과는 또 다른 또라이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검사였다.
오죽하면 왕가 비밀 수호 기사단에서 근무할 때도 영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며 그 명예로운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왔겠는가.
기사라기보다는 검사, 심지어 그보다는 암살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암습이라던가, 혹은 계략을 쓰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남자였다.
그런 무서운 노인이 지금은 입가 가득 싱글벙글 미소를 지은 채 어서 오시라고 재촉하며 무슨 사람 좋은 할아버지마냥 껄껄거리고 앉아있다.
속에서 ‘지랄 꼴값 떨지 말고 가서 검이나 휘두르시죠!’ 라는 말이 목구멍 바로 밑까지 치솟았지만 시온은 이번에도 초인적인 생존 욕구로 그걸 억누르는데 성공하고야 말았다.
‘부탁인데 어딘가로 꺼져줘···.’
시작하자마자 김유현, 그 뒤로 세바스찬까지.
소설 속에서 무력으로는 열 손 가락 안에 든다는 이들을 벌써 둘이나 만나고 겪었다.
이러다가 당장 심장 마비로 사망하는 건 아닐까 심각하게 걱정이 드는 시온이었다.
통―통―통―
‘응?’
어디선가 탱탱한 뭔가가 바닥에 튕기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점점 시온에게로 가까워졌고, 이내 조그마한 공 하나가 그의 발등에 톡, 하고 부딪치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시온이 속으로 ‘웬 공?’ 이라고 생각하며 막 그 공을 주워드는 순간이었다.
“아!”
비명 같은 탄식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시온이 마주한 건, 두 눈을 깜빡이며 바짝 얼어있는 채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조그마한 꼬마 아이였다.
‘저 녀석··· 혹시 아덴인가?’
시온 클라우젠의 이복 동생, 아덴 클라우젠.
클라우젠 백작가의 원래 안주인이자 시온의 모친은 병으로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리히텐 변경백은 또 다른 여인을 맞이하지 않고 꽤 긴 세월을 혼자서 지내왔다.
그러던 와중에 7년 전, 어떤 일을 계기로 한 귀족 가의 여식을 부인으로 맞이했고 그 사이에서 또 다른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가 바로 아덴 클라우젠이었다.
‘시온은 저 어린 동생을 무척이나 시기하고 경계했으며 증오했다고 했지.’
애초에 나이 차가 15살이나 난다.
아덴의 어머니가 첩이 아닌 정실이라곤 하지만 시온 역시 서자가 아니라 적자, 거기에 이렇게 자식 간에 나이 차가 많이 나면 후계자 자리는 당연히 연장자의 것이 된다.
가진 능력은 물론이고 세운 공도 없는 주제에 의심과 시기심은 많았던 시온.
결국 그는 제 이복동생에게 온갖 협박과 모진 짓들을 일삼았고 결국 아덴은 도망치듯 변경백령을 떠나고 만다.
고작 그의 나이, 12살 때 말이다.
‘···개새끼.
벌써부터 저 어린 녀석한테 꽤나 지랄을 했나 보구나.’
시온을 바라보는 아덴의 눈빛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길을 가다가 사납고 끈질긴 늑대라도 만난 듯.
“성 안에서 공놀이라.”
시온의 입이 열리자 아덴의 몸이 움찔 떨렸다.
진작 겁을 먹은 모습, 그에 시온의 뒤에 서있던 세바스찬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애송이가 또 동생을 잡아먹겠다고 들덤비겠구나.
백작 부인은 어디에 계시고 작은 공자만 저리 혼자 돌아다니다가 하필이면 이 녀석과 마주하게 되었는지.’
이대로 두다가는 이 사납고 예리한 톱날을 품은 녀석이 또 제 동생의 가슴을 마구잡이로 뜯어놓을 것 같아 세바스찬은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어떻게 그의 신경을 돌린다면 최소한 아덴이 재빠르게 도망갈 시간 정도는 벌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세바스찬의 속마음이었다.
“이리 와.”
하지만 시온은 그런 세바스찬이 미처 나서기도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차라리 이대로 도망이라도 치면 좋을 텐데 아덴은 시온이 너무 무서운지, 아니면 차마 형이라는 이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는지 쭈뼛거리면서도 결국 시온의 앞으로 다가왔다.
“···.”
스무 살 청년과 다섯 살 꼬마아이가 마주하고 서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느껴지던 차이가 더욱 심하게 느껴진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이라도 나는 건 아닌가 싶어 세바스찬이 무례를 무릅쓰고 시온을 말리려던 순간이었다.
‘음?’
세바스찬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시온이 천천히 무릎을 꿇고, 허리까지 숙여 아덴과 눈높이를 맞춘 것이었다.
“감이 이 형님께 공을 맞추었으니 벌을 받아야겠어.”
“혀, 형.
이, 이건···.”
“내일 이 형과 함께 공놀이다.
성 안에서 공을 가지고 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아주 질리게 놀아줄 것이니 단단히 준비하고 와야 할 거다.”
벌이라는 말에 당장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던 아덴의 두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덤으로 옆에 서있던 세바스찬의 두 눈도 보름달 만하게 떠졌다.
‘내가 지금 헛것을 듣고 있나?
꿈을 꾸나?
혹시 나 내일 죽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이건 헛것도 아니었고 꿈도 아니었다.
뭐, 내일 당장 죽을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허상은 아님이 확실했다.
“어서 받아.
이 형 팔 아프다.”
멍하니 서있는 아덴에게 공을 내어주는 시온.
아덴이 다급히 그 공을 받자 클라우젠 백작가의 장자는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아덴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세바스찬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신음을 내뱉다가 급히 그의 뒤를 따라잡았다.
“···.”
그리고 그들의 모든 대화를, 한 귀부인이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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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쉬십쇼, 공자님.”
편히 쉬고 싶게 해주고 싶으면 제발 꺼지라고!
시온이 폭발하기 전에 가까스로 문을 닫고 사라지는 세바스찬이었다.
비로소 혼자가 된 시온은 온 몸에 힘이 다 빠진 듯 그대로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푸하···.”
시간은 고작 해야 두 시간이 조금 넘게 흘렀을 뿐이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시온에게는 영겁의 세월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다.
분명 자신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소설을 보는 낙으로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극히 평범한 청년이었는데, 작가의 말도 안 되는 답장을 받고 나서보니 소설 속 악역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주인공을 사사건건 방해하며 능력도, 노력도 안 되는 주제에 꾸준한 찌질함으로 끝끝내 히로인이었던 루시아를 간살하고야 만 최악, 최약의 악당으로 말이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고···.”
살기 위해 그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별 짓을 다 했고, 별 말을 다 내뱉었다.
방금 전에도 아덴과의 관계가 원만하다면 혹 시온의 인생에 이로운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여 좋은 형 코스프레까지 하고 오지 않았는가.
정작 자기 자신은 동생 하나 없는 외동아들인데 말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시온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일단 앞으로 한 달 이내에 누디아 왕국과 전쟁이 벌어진다.
여기서 김유현이 짜잔!
하고 등장해서 주인공 버프로 무쌍을 찍고 리히텐 변경백 덕분에 중앙, 그러니까 왕성으로 가게 되는 게 소설 속 원래 흐름이지.
하지만 그 이후 누디아의 기습으로 리히텐 변경백이 부상을 당하고 영지는 엉망이 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아버지를 죽이고 마는 개씹 패륜까지···.’
그야말로 시온 클라우젠의 악의 연대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소설 속 흐름이 중요한 건 아냐.
일단 내가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하지만 멋대로 소설 진행을 바꿔버리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건들의 발생 장소나 시기가 뒤틀릴 확률이 높아.
그러니 함부로 개입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살 수만 있다면 소설 내용은 좆까라 하고 다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럼으로 인해 전혀 알지 못 하는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 때는 제대로 막을 수조차 없을 지도 모른다.
생각을 해보자, 생각을, 생각, 생각, 생각···.
다시 한 번 지능 상승을 꿈꾸며 시온이 모든 열량을 뇌 활동에 태우려던 참이었다.
“끌끌끌.
뭘 그리 고민하는 것일까?”
도대체 시발!
이놈의 소설 속 인물 새끼들은 번갈아 가면서 순회공연을 찍으시나!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시온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는 한 노인이 낄낄거리며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호오, 그래도 생긴 건 꽤나 괜찮구나.
물론 나보다는 아니지만, 루시아가 마음에 들만 하게 생겼어.”
루시아?
그 이름이 나오자 시온은 단박에 그의 정체를 알아냈다.
‘라이도!’
전 궁정 마법사, 현재는 변경백령에 거주하고 있는 노인.
누군가는 그를 뛰어난 마법사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비록 성격은 괴팍하지만 현자임은 확실하다고 하지만, 시온은 그의 정체를 아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형이 왜 여기서 나와!’
김유현이 그를 스승으로 모신 이유?
그에게서 마법 같은 잡기술이 아니라 살인적인 무투술을 배워서 였다.
마법사(물리), 마법보다 주먹이 먼저인 남자.
마법 지팡이로 적들을 때려죽이는 전장의 미친 마법사.
마법사가 아니라 무투가가 되어야만 했던 격투 천재.
궁정 마법사였음에도 온갖 해괴한 별명은 다 가지고 있는 남자가, 바로 눈앞에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