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62)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62화(62/439)
62―――――
악역은 나쁜 놈이 하는게 아니라 머리 좋은 놈이 하는 것
솔직히 시온은 노예시장, 하면 으레 떠오르던 이미지가 있었다.
더러운 공간, 철장 너머에서 악을 쓰고 저주를 내뱉는 이들과 그들을 제압하는 덩치들.
판매장 위에 발가벗겨진 채로 올라가서 즉석 경매로 그 자리에 팔려나가는 장면들 말이다.
심지어 지상도 아니고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지하라고 하니 그런 생각은 더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코네안 자작령의 노예시장에 들어선 순간, 시온은 생각을 달리 해야만 했다.
‘···이건 예상외인데?’
너무나 멀끔히 정리되어 있는 풍경, 당연히 들릴 것이라 예상되던 비명소리나 누군가의 울음소리,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닥치라고 일갈하는 경비병들의 소리도 없었다.
마치 밤거리를 걷듯 어둑한 공간에 등들이 매달려 있었고, 자극적이진 않지만 또 묘하게 사람의 심장을 간질거리게 만드는 야릇한 향이 코를 맴돌았다.
‘아니, 오히려 당연한 건가.
여기는 멍멍이나 음메 같은 놈들이 오는 곳이 아니라, 오직 귀족들 같은 VVIP 전용 공간일 테니 말이야.’
시온의 예상대로였다.
이종족 노예가 무슨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아니고, 대규모 전쟁을 통해 붙잡은 포로가 많은 것도 아니니 그 공급이 적은 것은 안 봐도 뻔한 일.
당연히 그 값이 보통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금액일 수밖에 없었다.
그 금액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이들은, 당연히 귀족들일 테고 말이다.
물론 노예에 대한 모든 것이 왕실의 이름으로 금지되어 있으니 수요는 공급되는 양보다도 적은 편이었지만 워낙 귀족들이 험하게 ‘물건’ 을 굴리다 보니 금방 망가져서 버리는 일이 잦았고, 그렇게 되니 자연스레 수요와 공급이 비슷한 수치를 이루게 된 것이었다.
“이쪽으로.”
노예시장이라고는 하지만 무척이나 한적한 분위기.
그 중 한 천막으로 시온과 그 일행을 안내한 코네안 자작은 릴리트와 리시키다를 보고선 슬쩍 시온의 곁에 다가가 입을 열었다.
“시온 공자.
일행 분들은 여기서 잠시 대기하라 하시고 가는 편이 어떨까요.”
“이유를 물어도 될는지?”
“으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둘러보실 텐데 혹 여인들의 눈치를 보느라 물건 구경을 제대로 못 하시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어서 말이죠.
간혹 여인들을 데리고 오는 분들이 계셨었는데, 그 분들 눈치 때문에 이쪽까지 곤혹을 치른 적이 많아서 말입니다.”
그 말에 시온은 큭큭거리며 짧은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혹 눈앞의 이 남자가 저 둘에게 무슨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지만, 정말 그럴 계획이라면 김유현이 아니라 릴리트와 리시키다에 의해 자작령이 그야말로 개박살이 나는 꼴을 보게 될 것이 확실했다.
“두 분의 처우에 대해서는 걱정마시길.
설마 시온 공자의 일행인데 허투루 대하겠습니까.”
“흐음.
자작의 호의를 거절하기에는 좀 그렇군요.
그러면 자작의 말대로 하죠.”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겨두고 시온은 릴리트와 리시키다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별 특별한 것 없은 없었다.
의자와 테이블, 어울리지 않게 꽂혀있는 책들과 등불.
‘···그런데 침대는 존나 좋은 거 가져다 두었네?’
한 눈에 봐도 여러 명이 동시에 나뒹굴어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자랑할 것 같은 침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좋은 침대 위에서는 여자를 녹이는게 더 쉽다더니, 아무래도 이런 곳에서 흘러나온 말인 듯 했다.
역시 장사 할 줄 아는 놈들이었다.
여기에서까지 정사를 위해 저런 침대를 구비해서 가져다 둘 줄이야.
폴짝―.
출렁―.
릴리트도 눈 앞의 침대가 범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린 듯 몸을 날려서는 그 위에 누웠다.
그리고는 잠시 데굴거리다가 고개를 살짝 들어서는 시온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인간들은 이종족 노예 금지한 거 아니었어?”
“맞죠.”
“그런데···.”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말을 들으면 그게 사람이겠습니까.”
원래 당당하게 하는 것보다 몰래 하는 게 더 짜릿하고 죽여주는 뭔가가 있긴 하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것, 그게 바로 사람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특히나 그게 쾌락과 돈을 가져다주는 일이라면 더더욱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적당히 좀 어울려주고 돈이나 좀 받을까 해서요.”
“···확실해?”
릴리트가 묘한 눈길로 시온을 바라본다.
그러자 그는 ‘무슨 문제라도?’ 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너 이 새끼.
혹 다른 여자가 고파서 이러는 거 아니야?”
“릴리트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무슨 소리야?”
“릴리트님이 확실하게 제 마음을 붙잡을 수 없는, 그저 그런 여자라고 생각하시나요?”
갑자기 날아온 남자의 반문에 서큐버스 퀸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날 의심하는 이유는 ‘너 스스로 매력이 부족하다.’ 라고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냐는 뜻이었다.
“야,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리···.”
“그게 아니라면 조금만 참아주세요.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니까.
그보다 질투 절대 안 하신다는 분이 갑자기 그러시니 색다르게 느껴지네요.
귀여우시네.”
원래는 릴리트나 리시키다가 이런 곳에 오는 건 좀 아니지 않냐고 투정을 부려도 모자를 판국인데, 시온은 아주 당당하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당황스러운 판인데, 다음 이어진 리시키다의 말은 릴리트를 환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주인님.
버리는 거 아니죠?”
“절대 아니지.
절대 아냐.”
“그러면 다행이네요.
다녀오세요.
저는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저는 항상 시온님의 뜻에 따르면 그 뿐이니까요.”
뭔가 속 좁은 여인이 된 것 같아 속이 쓰려오는 릴리트였다.
둘이 연합해서 시온을 압박했다면 또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까 했는데 저렇게 순종적으로 나가면 이쪽은 뭐가 되느냔 말이다!
“···야.
너 잊은 거 아니지?”
“무슨 말씀이신지?”
“마차에서 나 아무 것도 못 먹었고, 못 받았어.
이거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거야.
알아들어?”
아무래도 천족의 기습으로 인해 진하게 한바탕 하려고 했던 시간이 날아간 것이 아직도 마음속의 앙금으로 남은 모양이었다.
솔직히 그럴만한 것이, 서큐버스가 제 식사를 방해받았는데 어떻게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만은.
“아, 갑자기 그 때 생각하니 또 열 받네.
그냥 여기서 한 발 뽑고 갈래?”
“···농담이죠?”
“침대 좋은데 뭐 어때.
밖의 남자한테는 가기 전에 한 번 하고 간다고 하면 되잖아.”
“···.”
마치 훌륭한 단백질원을 바라보는 베어그릴스의 눈빛이 바로 저것이리라.
시온은 ‘여기서는 절대 사절입니다.’ 라는 말을 끝으로 도망치듯 천막 밖으로 나섰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었다가는 정말 릴리트에게 붙잡혀서 단백질 공급원이 될 것 같았다.
“이야기는 다 끝난 모양이군요.
가시죠.”
기다리고 있던 코네안 자작이 이번에도 앞서 걸음을 옮겼다.
어떤 곳은 천막, 어떤 곳은 가건물.
그리고 어떤 곳은 광장.대피소로 지어졌다가 이제는 노예시장으로 개조된 공간답게 꽤나 넓은 공간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었다.
“음?”
그러다가 시온은 저 앞에서 지나가는 몇몇 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세히 보지는 못 했지만 아무래도 저들 역시 자신과 같은 ‘고객’ 인 모양이었다.
“대리인을 보내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직접 오지 않아도 물건을 판매하는 모양이군요.”
“몇 번의 전례가 있고, 증거가 확실한 경우에 한해서입니다.
하지만 딱히 추천 드리지는 않습니다.
원래 이런 물건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골라야 오래 가는 법이죠.”
아까의 그 멍청한 모습은 어디 가고, 그 사이에 경험 있는 상인의 모습이 되어서는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는 코네안 자작이었다.
“어떤 물건을 원하십니까?
총 수량은 100여 개, 성비로는 30:70 정도이며 종류는 4가지입니다.”
“4가지라 하면?”
“요정이 일단 가장 많고 그 뒤를 이어 수인, 다음이 난쟁이, 그리고 극소수에 하급이긴 하지만 마족도 몇 있습니다.”
“마족을 잡았다는 말입니까?”
시온의 질문에 코네안 자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에 시온은 속으로 호오, 하고 작게나마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급이라고는 해도 마족은 마족인데, 그들을 죽이는 것도 아니라 산 채로 붙잡아서 이렇게 노예시장까지 끌고 온 것을 보면, 노예상들도 보통 놈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 이렇게 조금은 괴롭힐 맛이 나야 이쪽도 신나는 법이지.
라고 중얼거린 시온은 코네안 자작의 말에 다시금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마족은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괜히 데리고 있다가 정말 발각이라도 된다면 그 이후 뒷감당이 힘드니까요.”
“그렇겠죠.
대륙에 혼란을 야기하는 종족들을 노예로 부린다는 것부터가 더 사악해보이지 않습니까.”
“수인은 묘은과 월랑, 호비까지 전부 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월랑의 미호 녀석들은 없습니다.”
월랑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존재한다는 미호족.
그들은 대게 적에게 붙잡히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라 노예는 고사하고 제대로 보기조차 힘들다는 설정을 지닌 수인 중에서도 특히 희귀한 존재들이었다.
‘아쉽네.
원래 늑대보다는 여우라고 작가가 후기에 썼었는데 말이야.’
그러다가 시온은 이종족 중 하나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참고로 천족은 이종족임에도 ‘이종족’ 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노예상들조차 ‘천족은 천족이다.
건드리면 천벌을 받는다.’ 라는 인식이 뼈 속까지 깊숙이 박혀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용인은 없는 겁니까?”
“···농담이 지나치군요.
그들이 어디 순순히 붙잡혀주는 존재입니까?
죽을 때까지 싸우자고 호탕하게 웃으며 정말 싸우다가 다 죽을 년놈들입니다.”
“하긴, 그렇겠군요.”
인간들을 무시하는 요정들도, 어지간해서는 싸우려는 본능이 강한 수인들도, 하다못해 마족들도 싸우다가 도저히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무기를 버리고, 꼬리를 내리고, 싸울 의지를 내려놓으며 항복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용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이 삶이 그저 싸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고, 그걸 그대로 행하는 종족들, 제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싸우고 또 싸우는 자들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저 전투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
그야말로 무한 한타, 노빠꾸, 뇌절은 필수, 전투민족 그 자체.
‘하도 싸워 대서 원래부터 그 수가 극히 적었고, 덕분에 인간과 이종족들이 싸울 때 최악의 적이긴 했지만 그 수가 적어서 결국 전부 쓰러지고 말았다고 했지.’
나중에 천족들이 거꾸로 창을 잡아 대륙 위의 모든 종족들을 향해 그 끝을 돌렸을 때.
용인들이 남아있었다면 전력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며 독자 중 몇몇이 한탄을 쏟아냈었다.
대륙 대전쟁을 걸치면서 네임드들이 전부 쓸려나간 상황이라 김유현과 그 동료들, 그리고 몇몇 이름 난 이들을 제외하곤 천족들에게 대항할 수단이 전혀 없었으니까.
“상세한 선택이 난감하다면 찬찬히 고민하셔도 됩니다.
일단 남자냐 여자인데 공자는 당연히 여성 노예를 찾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남자한테는 관심 없습니다.”
시온이 냉정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자작은 자신도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가다가 얼굴 반반한, 여자들이 꽤나 마음에 들어 할 법한 남성 귀족이 남성 노예들을 찾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취향은 존중한다지만 그래도 그 때의 어색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이 대는 어느 정도로 원하십니까?
참고로 요정족은 본래 나이보다 훨씬 더 성숙해 보이는 경향이라는 걸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으음.
인간 기준에서 보자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가장 무난하려나요.”
“그렇습니까?
연상이 공자의 취향인 모양이군요.
저는 공자의 취향보다도 더 어린 것들의 살결이 가장 보드랍던데 말입니다.
어디 보자.
10대가 가장 좋았지요.”
“···.”
네놈 취향에는 관심 없어, 신발아.
그리고 10대?
이 새끼 이거 포돌이 형님한테 잡혀갈 상이구나.
혹여나 코네안 자작의 입에서 ‘저는 두 자리의 나이를 지닌 여자는 여자로 보지 않습니다.
한 자리 수가 최고죠.’ 라는 말이 나올까 노심초사하던 시온이었다.
정말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한다면 그냥 머갈통을 후려친 다음에 돈이고 뭐고 콜링 김유현을 시전해서 여기를 싹 다 밀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런 시온의 속마음을 전혀 알 리가 없는 코네안 자작은 여전히 상냥한 말투로 고객님을 모시고 있었지만 말이다.
“수인들이 인간과 똑같이 나이를 먹고 똑같이 성장하는데 그쪽으로 하겠습니까?”
“···종족에 대한 선택은 조금 더 고민해보고 싶군요.
일단 전체적으로 한 번 제대로 살펴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어차피 시온이 여기에 온 목적은 하나.
물건을 구매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들을 속속들이 다 파악하고 직접 눈에 담은 다음 스스로가 코네안 자작의 목을 겨누고서 삥 좀 뜯기 위한 칼날이 되기 위함이었다.
“그게 낫겠군요.
그러면 일단 준비가 끝난 물건부터 천천히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온의 본격적인 노예시장 탐방이 시작되었다.
―――――――작품 후기―――――――
오늘 오전 퇴원입니다!
멍청한 작가에 대한 잔소리는 추천으로.
불쌍한 작가에 대한 걱정은 역시 추천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