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69)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69화(69/439)
69―――――
어쩔 수 없다!
주인공 투하!
시온 일행이 머무는 여관은 일반 여관이 아닌, 상인들이나 여행 중인 귀족들을 위한 공간.
즉 최고급 여관이라고 봐야 했다.
덕분에 주변에 소란스러움을 유발하는 것은 거의 없었고, 상점이나 식당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이 최고급 여관에 머무르는 이들에게 걸맞은 품위를 지닌 곳이었다.
‘루시아가 밀크티라면 아주 사족을 못 썼다고 했지?
달달한 걸 엄청 좋아하는 여자니까.’
차와 커피, 그리고 약간의 디저트를 파는 카페에 자리한 시온과 루시아.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늦은 오후의 햇살을 즐기며, 시온은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아아!’를 외치는 이들 만큼은 아니었지만 자신 역시 커피를 꽤나 사랑하는 카페인 성애자 중 하나였다.
‘야발 작가놈님.
그래도 이 소설에 커피가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탄산도 없는 세상에 커피까지 없었으면 진짜 물만 마시며 살았을까 싶은 시온이었다.
그렇게 한참 커피를 홀짝이며 나른한 오후 햇살을 즐기고, 오랜만에 만끽하는 게으름에 절로 청산!
소리가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저기··· 시온?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질문 좀 해도 될까요?”
“무엇이든지요?”
대화 없이 마시고만 있다가는 이대로 햇살에 취해서 잠이 들 정도였다.
시온이 흔쾌히 수락하자 루시아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찻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시온의 이야기가 좀 듣고 싶어요.”
“내 이야기요?”
“네.
소문만 들었을 때에는 정말, 그··· 뭐라고 해야 할까···.”
“개새끼였죠?”
시온의 갑작스러운 셀프 디스.
덕분에 루시아는 무심결에 그만 ‘네.’ 라고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네··· 아,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안 그랬어요!
저, 저는!”
“누가 뭐라나요.
내가 느끼기에도 나 자신이 개새끼였는데요, 뭐.”
정확히는 소설 바깥에서 봤을 때의 이야기였지만.
아무튼 확실히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놈은 구제 불가능의 개새끼가 확실했다.
제 잘못은 조금도 생각지 않은 채 남이 자신을 이상하게 보면 무조건 보복을 가하는 미친놈.
자신이 휘두르는 잔혹한 칼날에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나가는 건 즐기면서, 정작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면 그게 분하고 억울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최악의 찌질이.
‘이런 놈 몸에 들어와서 여기까지 온 게 용하다.
이런 게 그야말로 레게노지, 시펄···.’
물론 대게의 악역들이 그러하듯 이놈도 과거가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다.
리히텐 변경백은 분명 뛰어난 지휘관이자 믿음직한 군인이었고 훌륭한 귀족이었다.
하지만 그 의무에 충실하느라 정작 ‘남편’ 과 ‘아버지’ 라는 의무에는 소홀히 하고 말았다.
시온의 어머니는 그를 낳고서 급격히 몸이 약해져 그가 5살이 되던 해에 숨을 거두었다.
겨우 5살, 그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어리고 부족한 소년.
한창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던 시기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계속되는 누디아와의 전쟁으로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가진 것은 많았지만 정작 아무 것도 가지지 못 했던 유년기.
시온 클라우젠은 그렇게 점점 비뚤어져갔고 끝내는 돌아오지 못 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지랄.
그렇다고 해서 이 몸뚱이가 벌였던 일은 커버가 불가능해.’
누구나 다 불행한 시기는 겪는다.
중요한 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당장 눈앞에 앉아있는 루시아도 어릴 적에 제 어미를 여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녀는 비뚤어지기는커녕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살뜰히 보듬어줄 수 있는 이가 되었다.
그 마음에 철옹성이었던 김유현도 결국 넘어갔고 말이다.
‘그 루시아를 시온이 처참하게 망가트려놓고는 결국 살해했고 말이야.’
그런데 그런 루시아가, 이 몸뚱이의 원 주인에 의해 가련한 인생을 마친 그 여자가.
이제는 자신을 좋아한다며 사랑해달라고 귀여운 투정을 부리는 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시온 클라우젠이 이룬 일이지만 또한 시온 클라우젠이 이룬 일이 아니기도 했다.
정확히는 시온 클라우젠의 몸뚱이를 뒤집어쓴 독자가 해낸 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별 거 없었습니다.
그냥 국가를 수호해야 하는 의무에 너무 매달리셨던 아버지와, 너무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연스레 홀로 버텨야 했던 외톨이의 이야기죠.”
“···어머니라.
저도 제가 어릴 적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죠.”
“라이도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었죠.
그런 의미에서 참 다행이네요.”
“뭐가요?”
“루시아가 라이도님이 아니라 돌아가신 어머니 분을 닮았다는 거 말입니다.”
분위기가 갑자기 무겁게 변하자 그걸 깨트리기 위해 던진 시온의 농담이라는 것을 루시아도 알아차린 듯, 그녀는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밀크티를 홀짝였다.
“아무튼 내 이야기는 정말 별 것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외톨이로 커서, 거기에 마나를 다룰 수조차 없어서 약점만 무성한 몸뚱이.
거기에 갑자기 생긴 새어머니와 동생까지.
혼란스럽고, 두려웠으며 걱정되었습니다.
나 자신과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이.”
“···.”
“이후 그냥 나 자신을 숨기기로 했습니다.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
세상 어느 누구도 내 편이 아니더라고 해도 혼자 버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상한 소문이 나도 대응은커녕 오히려 비슷하게···.”
당연히 그런 적 없지만 시온은 무거운 표정을 지어보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를 생각하면 우울해진다는 듯 애써 미소를 지어보이며 괜찮다고 중얼거리는 건 덤이었고 말이다.
“그러다가 누디아의 공격이 머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졌죠.
그런 와중에 우연히 루시아, 당신을 만났고 말입니다.”
“아아, 그 때는 정말이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나도 그 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해요.
라이도님이 이렇게 살려두신 것만 해도 용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루시아 당신과 만난 때를 시작으로 전면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바로 당신과 만나면서 말이에요.”
일부러 당신, 루시아라는 부분에 악센트를 넣는 시온이었다.
그 바람에 루시아의 얼굴이 오후의 태양보다도 더 붉게 물들었다.
네가 그렇게나 소중하단다!
라고 대놓고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 어떤 여자가 넘어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자, 자꾸 강조하지 마세요.
그때 일만 생각나면 아직도 두근두근하고 막··· 좀 그러네요.”
“미안해요, 루시아.
그때 험한 일을 당하게 해서요.
그 기사 녀석은 처벌을 끝냈고 저도 이렇게 계속 사과하고 있으니 용서는 아니더라도 이해만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네요.”
“네?
아니.
저, 저는 그게 아니라···.”
당신이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걸 말하는 거예요.
라는 말은 끝내 루시아의 입에서 나오지 못 했다.
‘부끄럽잖아!
으아아아앙!’
라는게 그 이유였다.
‘끼이이잉!’
이 부끄러움을 밀크티에 다 녹여서 마셔버리겠다는 듯, 루시아는 아껴서 조금씩 먹던 차를 이번에는 꽤 급하게 들이마시고 말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시온은 뭔가 발견했는지 두 눈을 살짝 크게 뜨곤 갑자기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났다.
“시온?”
“잠시 만요, 루시아.
입술에 차가 좀 묻어서.”
아무래도 눈앞의 이 남자가 입에 묻은 차를 닦아주려는 모양이다.
라고 생각한 루시아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도 그가 어서 다가와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온이 생각하는 건 그것보다 한 단계 더.
아니, 몇 단계 더 위의 것이었다.
‘···어디서 갑자기 라이도가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사실 루시아와의 관계를 조금 더 진전시키겠다는 생각은 전부터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자니 루시아 뒤에 떡하니 서있는 라이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다.
딸바보 속성을 지닌 그 미친 마법사에게 ‘내 딸을 건드리다니!
딸바보의 이름으로 널 용서치 않겠다!
반갈죽이다!’ 라는 괴성을 들을까 상당히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이상은 넋 놓고 있으면 안 돼.
남자고 여자고 좋아하는 상대가 관심을 주지 않으면 결국 떠나가는 법이니까!
관리해야 할 때 팍팍 해둬야 한다!’
해도 될까?
해도 되겠지?
시발, 진짜 해야 하는 건가?
안하면 안 되나?
존나 부끄러운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이미 자신의 몸뚱이는 뇌가 결정을 하기도 전에 알아서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손을 내밀어 천천히 루시아의 턱을 잡고서는 살짝 위로 당겨 올리곤.
자신의 몸은 앞으로 기울여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채 마지막으로 고민해본다.
‘야, 정말 이게 최선이야?
확실해?’
응, 시발.
별 다른 방법이 없어.
이제 와서 물릴 거야?
그랬다간 뺨 맞아도 할 말 없다.
그냥 먹어달라고 할 때 먹어주는 게 최고인겨, 이 등신 새끼야!
‘에라, 모르겠다!’
뇌가 결심을 하고 명령을 내리니, 기다리고 있던 몸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멍하니 턱을 붙잡혀서 앞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루시아에게로, 시온의 숨결이 와 닿으며 그대로 따스한 입술이 여인에게 다가간 것은,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으응?”
갑작스레 벌어진 남자의 키스.
그것도 잠깐 입술을 붙였다 떼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여인의 입술과 거기에 묻은 밀크티의 달콤함까지 함께 맛보겠다는 듯 혀까지 놀리고 있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루시아는 작게 버둥거렸지만, 시온은 그녀의 턱을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어서 이쪽에 적응하라는 듯 루시아의 입술을 혀로 벌리곤 그 안으로 침입했다.
“흐으으!”
도대체 왜 이러냐는 듯 어쩔 줄 몰라하는 루시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온을 밀쳐내거나 자신이 뒤로 물러서지는 않았다.
다만 귀엽게 앙탈을 부리면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안절부절 못 하는 모습이었다.
마침내 시온의 입술에 떼어졌을 때, 루시아의 입술에는 밀크티 대신 남자가 잔뜩 남겨둔 영역표시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혹시 근처에 라이도 없이?
막 양손에 마나 두르고 달려드는 미친 사람 없지?
몇 번을 확인한 끝에 신변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든 시온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좀 깨끗해졌네요.”
“아으으?”
“밀크티가 참 달달하네요.
그렇죠, 루시아?”
“저, 저기.
그, 이건···.”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얼굴이 터질 듯이 붉게 변하는 루시아였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양 팔을 파닥거리며 입술을 만지작거리다가 또 ‘으아아!’ 하고 작게 감탄사를 토해내고, 그러다가 또 ‘으으으!’ 하고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한다.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여워서 소리 내어 웃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루시아가 울상이 되어서는 입을 열었다.
“너, 너무해요.”
“뭐가요?
아, 혹시 기분 나빴다면···.”
“이, 이런 건 반칙이잖아요.
나, 나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할 시간은 줘야지···.
이게 뭐야, 나만 바보된 것 같잖아···.”
“그래서 싫었어요?”
시온의 돌직구에 루시아는 으으으!
하고 침음을 내뱉다가 이내 발갛게 물든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미치도록 부끄러웠지만, 또 미치도록 기분이 좋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처, 첫 키스였어요!
첫 키스였다고요!”
“그게 나라서 다행이죠?”
또 이어지는 강속구였다.
루시아는 또 어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히 답하기로 했다.
“···네에···.”
역시나 순수한 여인이었다.
소설에서 봤던 그대로, 김유현의 곁을 끝까지 지켜주려 했던 히로인의 모습 그대로.
‘갑자기 김유현한테 ‘조금’ 은 미안해지는군.’
아무래도 정말 좋은 여자 하나 구해서 붙여줘야 할 듯 싶었다.
그래야 그 유리 멘탈 걱정도 안 되고, 무엇보다 부려먹을 때 약간이나마 마음의 짐을 줄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슬슬 김유현이 노예시장에 쳐들어갔을 타이밍이네?’
투하를 위한 위치 조준 시간이 끝났으니 슬슬 반응이 올 때이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하고 중얼거리며 시온은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왜, 왜요?”
“그냥 보는 거예요.
아름다운 여성분이 앞에 있는데 안 쳐다볼 남자가 있나요?”
“그, 그런 말 막 하지 마요!
이상해!”
“루시아니까 하는 말이에요.”
이번 컨셉은 ‘내 여자한테는 부드럽고 상냥하고 조금은 느끼하면서도 달달한 소프트 아이스크림, 커피 위에 잔뜩 올라간 생크림 같은 남자’ 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연기가 잘 먹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오늘도 이 얼굴은 열일을 했다는 점이었다.
“일단은···.”
콰아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시온이 쏘아올린 작은 하마.
아니, 작은 유현이가 마침내 폭발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대기가 진동하며, 대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저 멀리 있던 자작의 성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무, 무슨 일이죠?
서, 설마 시온을 노린 적들이 또?”
물론 사정을 알지 못 하는 루시아는 당황해서는 바로 전투 준비를 갖추었지만 말이다.
시온은 그런 루시아에게 안심하라는 듯 손짓을 하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상당히 화가 난 모양이네요.”
“네?
그게 무슨 말···.”
“보면 알 겁니다.”
루시아가 보기에 김유현은 제 아버지의 제자이자 꽤나 실력있는 검사로만 보였을 테지만.
사실은 김유현 역시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악역 못지않게 어디 한 군데가 돌아도 아주 단단히 돌아버린 남자였다.
다만 다행인 점은, 시온과는 달리 스스로를 제어할 줄 안다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결국 그 심성이 악하거나 모질지 못 해서 끝까지 악역으로는 남을 수 없다는 놈이라는 정도.
‘그래도 코네안 자작의 머리통을 반으로 갈라버리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노예를 극도로 혐오하는 김유현으로서는 코네안 자작이 명예로운 숙청 대상 1호였다.
부디 목숨만은 붙어있기를 바라며, 시온은 슬슬 자작의 성으로 가보기로 했다.
아, 왜 목숨이 붙어있기를 바라냐고?
‘살아있어야 돈 더 뜯어내니까.’
···정말이지, 사탄보다 더 한 새끼였다.
―――――――작품 후기―――――――
추추추처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