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71)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71화(71/439)
71―――――
아아, 이것은 ‘ 희생 ’ 이라는 것이다
“부단장님.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이런 적은 나도 처음이군.”
왕실 기사단의 부단장, 슈마허는 제 부하 기사의 질문에 한숨을 내뱉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카슈가르 백작가의 사건으로 인해 왕성 전체가 뒤숭숭하던 와중에 소식 하나가 왕궁으로 날아들었다.
‘···허허.’
부단장은 아직도 그 소식을 접하던 국왕 에드가 4세의 표정을 잊지 못 한다.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두 눈에서 번뜩이는 살벌한 기운과 그의 손에서 마구 구겨져 아예 형태조차 사라진 서신은 덤이었다.
그 직후 에드가 4세는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왕실 기사단 중 자그마치 3개 소대를 차출하여 코네안 자작령으로 출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에 더해서 왕실 기사단 1개 소대가 움직이게 된다면 자연스레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왕성 방위군까지 더해지니 도합 500명에 달하는 병력이 움직인 것이었다.
‘전하.
왕실 기사단도 그렇고 왕성 방위군까지 너무 과한 수를 차출하시면 자칫 왕성 방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에라더 왕자가 그런 에드가 4세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바네사 왕녀가 제 오라비를 막아서고 나섰다.
‘오라버니.
코네안 자작령에서 노예시장이 발견되었다는 보고입니다.
심지어 그 전에 시온 클라우젠 공자가 정체불명의 이들에게 습격을 당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더더욱 왕성 방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 아니겠느냐!’
‘아니요.
이런 때일수록 왕국의 건재함을 외부에 알려야 합니다.’
왕성의 방위군과 왕실 기사단은 한 나라의 국력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였다.
따라서 되도록 불필요한 노출을 줄이고자 하면서도 이 때다 싶으면 공개해서 자신들의 무력이 이 정도다!
라고 외부에 알리기도 하는 것이 바로 왕성에 주둔해있는 정예병들이었다.
에라더는 정예병들이 나간 틈을 타 적들이 또 왕성을 노릴까 걱정한 것이라면.
바네사는 오히려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해도 왕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규모의 병력을 외부로 보낼 정도라는 것을 ‘과시’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부왕 전하.
그리고 오라버니.’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클라우젠은 몇 대 째 국경을 지키며 방패 역할을 해온 이 나라의 공신 가문입니다.
그런 곳의 자제가 정체불명의 이들에게 기습을 당했다는데 왕실에서 그를 소홀히 대한다는 인식을 주면 차후 왕국에 충성을 바치던 귀족들의 마음이 꺾일 수도 있음입니다.’
‘흐음.’
에드가 4세는 고민에 빠졌다.
카슈가르 백작가는 저항 의지조차 가지지 않은 채 얌전히 성문을 열었다.
여전히 그 정체불명의 세력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 한다는 세페르 백작 때문에 자세한 정보는 얻지 못 했지만, 최소한 그들의 습격이 더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클라우젠의 자제를 노렸다.’
머리를 베지 못 한다면 수족이라도 자르겠다는 심보 아닌가.
에드가 4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왕에게 있어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혼란으로부터 나라 전체를 지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동시에 최고 권력자로써 해야 할 일 또한 명백했다.
아군은 강력하게 원호하여 곁에 두고, 적은 끊임없이 공격해서 말살하던가 아니면 고개를 숙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슈마허 부단장.’
‘네, 전하!’
‘그대가 직접 가라.
가서 코네안 자작가에서 발견되었다는 노예시장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여 진상을 파악하라!
그리고 히스파냐의 굳건함과, 왕국의 충실한 신하들을 해하려는 자들에게 왕국의 창칼이 번뜩이고 있음을 확실히 알려주라!’
‘명 받들겠나이다!’
그것이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슈마허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왕성 바깥으로 나온다면 국가 간의 총력전을 의미하거나, 아니면 그와 동급의 대사건이 터져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거나, 그도 아니면 왕국의 건재함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만 왕성을 벗어나는 방위군과 왕실 기사단이 행군을 하는 모습은 장관 그 자체였다.
거기에 원래대로라면 일주일이 가까이 걸리는 거리를 단 3일 만에 주파했다.
왕국의 정예병이라 불리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부단장님, 곧 코네안 자작령입니다.”
“본대보다 앞서 출발했던 이들에게서 온 소식은?”
“시온 클라우젠 공자께서 휘하를 데리고 사실이 알려지자 반항하던 코네안 자작을 제압하고 저희를 기다리고 있다 합니다.”
“···공자님의 호위 수가 그리 많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슈마허는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누디아에서 투항했다는 상급 기사, 리시키다 암셸.
그녀라면 혼자서도 능히 자작령의 기사들을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진실은, 꼭지가 돌아버린 한 남자가 검을 뽑았다가 이것만으로는 분에 안 찬다며 주먹으로 친히 참교육을 시전 한 것이었지만.
“그리고 노예시장에서 자작의 명을 받고 일하던 이들 중 반수 이상이 불구가 되었고 몇몇은 아예 죽기까지 했답니다.”
“흐음.
그건 조금 문제가 될 수도 있겠는데.”
“그런데 그 일을 벌인 이가 시온 클라우젠 공자의 휘하 기사가 아니라 다른 남자가 벌였다고 하더군요.
왕성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남자라고 했는데···.”
“부단장님.
도착했습니다.”
“2개 소대는 바로 코네안 자작의 성으로 이동한다.
나머지 소대는 왕성군과 함께 영지 주변을 돌며 혹 수상한 자가 없는지 확인토록.”
왕국에서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노예시장이 발견되었다지만 자작령은 비교적 조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예시장이 왕국민들의 생활 공간 근처가 아니라 자작의 성 바로 밑에 있었다고 하니 그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던 것이다.
“왕성의 손님들이 드디어 다 도착한 모양이군요.”
원래라면 코네안 자작이 자신들을 맞이해야 정상이지만, 성에서 나온 건 이 영지의 주인이 아닌, 시온 클라우젠이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슈마허 텐버라고 합니다.”
“아이고, 슈마허 경이라 하면 왕실 기사단의 부단장님 아니십니까.
상급 기사 분이 일개 귀족 자제에게 너무 겸손하시군요.”
“일개 귀족이라뇨.
클라우젠 가문은 히스파냐를 수호하는 방패와 같은 곳입니다.
하물며 공자께서는 누디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신데 이러한 대우는 당연한 것이죠.”
“하하!”
예의를 차리고 자신을 낮추니 역시나 상대도 스스로를 낮춘다.
만약 눈치 없이 ‘아, 그러면 말 놓을까요?’ 라고 말이라도 했다면 바로 손절 각이었겠지만, 왕실 기사단의 부단장답게 검술뿐만 아니라 처세술에도 상당히 능한 모습이었다.
‘너무 고지식하고 꽉 막히면 터져 죽기 십상이지.
암암!’
시온은 부단장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는 바로 상황 설명으로 들어갔다.
클라우젠으로 복귀하던 와중에 갑작스레 받은 기습으로 인해 마차가 박살나고 병사 몇이 상했으며 말들도 크게 다쳤다.
하여 근처의 코네안 자작령으로 이동해 잠시 쉬면서 필요한 것들을 요청할 생각이었는데 코네안 자작이 갑자기 자신을 성으로 초대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연줄을 대기 위해 수작을 부리고 있더군요.
제 소문 중 일부를 듣고는 여인에게 약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종족 노예를 건넸습니다.”
“···왕국의 경계나 외진 곳도 아니고, 왕성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코네안 자작령에서 이종족 노예시장이라니.
나 원, 어이가 없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군요.”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하여 이번 일을 왕성에 고하겠다 하니 클라우젠도 노예시장과 연관되어 있다고 거짓 자백을 할 수도 있다며 저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례한!
감히 왕국의 전쟁영웅을 협박했다는 것입니까?”
슈마허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코네안 자작을 요절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모습에 시온은 절로 박수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역시 귀족보다는 기사들이 편하다니까.’
아마 귀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저렇게 분노하기보다는 그럴 가능성을 생각하며 혹 있을지 모르는 클라우젠과 코네안 자작령 간의 비밀 거래를 상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슈마허 같은 기사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권력 암투나 비밀거래보다 더 중요한 건 전투, 승리, 명예, 그리고 영웅 같은 웅장한 단어들이었다.
“진정하시죠, 슈마허 부단장님.”
“후우.
죄송합니다.
공자님 앞에서 이런 무례를.”
“아닙니다.
저도 지금 생각만 하면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코네안 자작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장 그를 만나봐야겠습니다.”
그에 시온은 코네안 자작은 현재 성에 감금되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슈마허는 바로 가봐야겠다는 말을 하며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전쟁영웅을 협박하고 왕실이 금지한 이종족 노예까지.
이 빌어먹을 귀족 놈이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아주 작정을 한 게로구나!
오냐, 아예 요절을 내주겠다!’
라고 생각하며 거칠게 발걸음을 옮기는 슈마허 부단장.···하지만 슈마허는 곧 자신의 결심을 물러야만 했다.
죄를 짓고 방에 감금되어 있다는 코네안 자작은, 사실 감금당한 것이 아니라 그냥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 이게 정말 코네안 자작이라는 겁니까?”
“보다시피 상태가 조금 엉망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족 티를 좌르르 내던 남자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어찌나 두들겨 맞았는지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있었고, 온 몸에도 역시 시퍼런 멍들로 가득했으며 코는 돌아가 있었고 앞니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자작이라는 꽤나 괜찮은 작위를 지니고 있던 남자가 보일 몰골은 결코 아니었다.
무엇보다 몸 여기저기에 검으로 베여서 난 상처가 많이 보였는데, 저 정도의 부상을 입으면서까지 싸울 수 있는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슈마허는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비록 죄인이긴 하지만 왕국의 귀족을 저렇게 만든 이가 혹···.”
슈마허 부단장이 시온을 바라보며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제가 그랬습니다.”
시온의 뒤에 서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 남자의 정체는 당연히 김유현이었다.
“···그대는?”
“슈마허 부단장님.
이쪽은 라이도님의 제자이자 루시아 양의 호위로···.”
“왕궁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비록 라이도님의 제자라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귀족도 아니고, 왕가의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 이가 어찌 왕국의 귀족을 이리 처참한 몰골로 만들 수 있단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슈마허는 코네안 자작을 상하게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처벌할 수 있는 건 오직 왕가만이 가능한 일인데, 그 권위에 대귀족도 아닌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남자 하나가 대들었다는 것이 상당히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저 자가 헛소리를 지껄이기에 그만큼 되돌려준 것뿐입니다.”
왕성에서 조사대가 내려오기 전까지 코네안 자작을 감시하는 일을 맡게 된 이는 바로 김유현.
당연히 정신을 차린 코네안 자작은 김유현에게 또 헛소리를 내뱉었고, 잔뜩 화가 난 김유현이 자작을 온 몸이 ‘사맛디 아니하게’ 만들어준 것이었다.
“···시온 공자님.
코네안 자작이 비록 죄를 지은 것은 확실하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몸이 상할 정도로 처벌을 할 수 있는 건 최소한 3후작 분들이나 가능한 일입니다.
알고 계시지요?”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번 일에 가담했던 기사들과 사병들을 해쳤다는 이도 저 남자인 겁니까?”
시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슈마허는 공식적으로는 왕국의 영토 내부인 이곳에서 자국민들을 해한 외지인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말을 이었다.
“허면 저 남자도 왕성으로 일단은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계시겠군요.”
돌려 말하고는 있지만 어찌 되었든 김유현도 죄를 지었으니 좌시하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그 말에 그들을 따라왔던 루시아가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시온이 제지했다.
“죄를 지었으면 응당 벌을 받는 것이 맞겠지요.”
“그렇습니다, 시온 공자님.”
“그렇다면 김유현 뿐만이 아니라 저를 왕성으로 압송해야겠군요.”
“···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당황하는 슈마허 부단장.그 뿐만이 아니었다.
루시아나 리시키다, 그리고 김유현까지도 살짝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온은 무척이나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루시아 양과 그 호위인 김유현은 ‘공식적’ 으로 우리 일행에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 그 책임은 책임자인 제게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또한 미처 상황을 살피지 못 하고 코네안 자작의 곁에 김유현을 두었으니 그 또한 제 과실입니다.
그러니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제가 받거나, 둘 모두가 받는 것이 맞을 겁니다.”
“시온 공자님!”
“주인님!”
루시아와 리시키다가 그럴 필요 없다는 듯 급히 시온을 말렸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옳은 일을 한 이에게까지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면 저 또한 당연히 그 범주 안에 들어야 할 겁니다.
그것이 맞는 일이겠죠.
그렇지요, 슈마허 부단장님?”
“···.”
슈마허 부단장은 침음을 내뱉었다.
시온이 공손하고 예의바른 기색으로 말을 하고는 있지만, 결국 그가 내놓은 결론은 하나였다.
코네안 자작을 저리 만든 것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넘어가던가, 아니면 전쟁영웅에 이어서 노예시장까지 발견한 저 대단한 남자를 죄인으로 포박해 왕성으로 끌고 가던가.
‘곤란하게 만드시는군.’
차마 대답을 하기 애매한 질문에 슈마허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하게 인지시켜 둘 필요가 있어.’
시온은 시온대로 생각하고 내뱉은 말이었다.
슈마허를 포함한 왕성의 기사들에게는 코네안 자작이 죄인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김유현에게는 ‘아군이다.
쏘지 마라!’를 내세울 생각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