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77)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77화(77/439)
77―――――
집으로
“우으응···.”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들었다는 게 바로 저런 것이리라.
이불 속에 파묻혀 세상 모르고 잠든 루시아를 바라보며 시온은 뭔가 묘한 기분을 느꼈다.
소설에서는 바로 이 몸뚱이의 주인에 의해 잔혹하게 범해진 여인, 루시아.
비로소 발견된 재능을 채 꽃 피우지도 못 하고 처참하게 망가진 그녀는 사랑하던 남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다가 결국 살해되고 만다.
끝까지 김유현에 대한 열등감과 적개심, 분노, 그리고 원한 등으로 사무쳐 있던 시온 클라우젠은 그렇게 아무런 죄가 없던, 그저 마음씨 여리고 사람을 조금은 쉽게 믿는 경향이 있었던 여인에게 끔찍한 결말을 선사하고 말았었다.
“···.”
갑자기 진지하게 담배 한 모금이 절실해졌다.
금연을 한 지도 3년이 넘었지만, 가끔 기분이 좆같아질 때에 한 모금이 그렇게 그리웠었는데,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더욱 간절해지는 상황이었다.
‘하.’
자신이 시온 클라우젠이고, 시온 클라우젠이 곧 자신이다.
그러니 그 망나니, 쓰레기처럼 행동할 필요도 없고 눈치를 볼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자신은 제 살 길 강구하면서 모든 것을 이용해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고 여겼었다.
소설에서는 분명 루시아가 시온 클라우젠에게 간살 당했다지만 아직 이 시점에서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 그리고 이제는 일어날 수조차 없는 일이 되었다.
그러니 걱정할 것 하나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죄책감 따위 가질 필요가 없는데 도대체 왜 이리 기분이 영 찜찜한 건지 알 수가 없는 시온이었다.
‘아, 시발.
몰라.
다 작가 때문이야.
쓸데없이 루시아의 죽음 파트에 영혼을 갈아 넣어서 보는 사람들 미치게 만들어서 그렇다고.
울부짖는 루시아, 낄낄거리는 시온,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천족과 싸우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루시아를 생각하며 버티던 김유현까지.
아오!
작가님 시펄!
으아아아아악!’
성질을 부리며 머리를 막 헝클어트리는데 한창 잘 자고 있던 루시아가 몸을 뒤척이며 뭔가를 찾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조금 전까지 자신을 껴안아주던 누군가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자 본능적으로 그를 찾는 모양이었다.
“시온···.”
루시아의 입에서 나온 옹알이는 시온이었다.
그래, 시온.
김유현의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말이다.
‘···어쩌겠냐, 유현아.
형이 다 잘난 탓이지.
미안하다, 마!
형이 꼭 괜찮은 히로인 엮어줄 테니 그 때까지만 멘탈 유지하고 버티자.’
검선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강한 실력을 지녔던 주인공, 김유현.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여전히 멘탈은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유리, 조금 좋게 말하자면 강화 유리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워낙 많은 견제를 받았고, 무림 세계에 익숙지 않다보니 배신도 엄청 당했으며 그로 인해 소중한 이들을 수도 없이, 아주 많이도 잃었다.
신체야 단련하고 또 단련하면 단단해진다지만, 유감스럽게도 마음은 그렇지가 못 하다.
닳고 닳아 아무 것도 느끼지 못 하는, 그저 검만 휘두르는 검귀가 아닌 이상 한 번 마음을 다친다면 이후에 그 자리에는 흉만 생길 뿐, 결코 원상태로 치유되지가 않는다.
때문에 그걸 보듬어주는 상대가 필요하다.
소설에서도 그를 위해서 조력자와 히로인이 있는 것이며, 실제 삶에서도 친구와 연인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천족과의 대전쟁에서 가장 크게 활약하는 놈은 역시나 김유현이야.
그리고 녀석이 그 전투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싸워야 하는 이유지.
자신의 소중한 뭔가를 지키려는 그 굳건한 마음가짐!
빼앗는 놈보다 지키는 놈이 강한 게 바로 그 때문이니까.
김유현의 상태가 최고조여야 나도 마음 놓고 살 수 있거든.’
그런 이유로 김유현을 늦지 않게 커버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시온이 왜 자꾸 김유현 옆에 여인을 두려 하느냐.
그것도 다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다.
자고로 남자란 원래 사랑하는 여인을 등 뒤에 둔다면 어떤 적과도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지극히 비과학적인 생물체였으니까 말이다.
“우응···.”
또 다시 시온을 찾아 허우적거리는 루시아.
저 여자 잠버릇이 저랬다는 건 소설에서 본 기억이 없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시온은 반쯤 내려간 이불을 다시 끌어올려 루시아의 어깨까지 제대로 덮어주었다.
소설 속 히로인이었던 루시아는 이제 그 자리를 잃었으니, 다른 후보군을 찾아봐야 했다.
‘원래였다면 지금쯤 김유현은 북부로 향했고, 거기에서 겨울의 딸을 만났었지.
거기서 나름 괜찮은 분위기를 가졌지만 결국 제 미친 쌍둥이 언니랑 싸우다가 나중에 동귀어진 했고 말이야.’
김유현이 루시아를 제 마음 안에 받아들이기 전까지 거의 진 히로인이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내던 북부의 야만족장이 있었다.
왕국에서는 그녀를 두고 겨울의 딸이라 불렀으며 여인의 몸으로 그 거친 야만전사들을 이끌며 왕국과 싸우고, 또 때로는 왕국과 협상을 하기도 하며 살았던 여자.
비록 부족의 일로 김유현 바로 옆에 있지는 못 했지만 만날 때마다 괜찮은 분위기를 뽐내곤 했었다.
그래서 히로인이 되나 싶었더니 작가가 ‘응.
아니야!’를 시전하고 말았다.
‘당시 김유현을 몰아붙일 정도로 강력했던 악역이었던 ‘칸’.
겨울의 딸은 제 쌍둥이 언니였던 그 칸과 결투를 벌이다가 그만 둘 다 죽고 말았지.’
천족의 진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김유현은 비교적 천족을 믿지 않는 북부 야만족들에게 도움을 청했었다.
당시 북부의 야만족들은 크게 둘로 나뉘어 있었는데, 칸이 이끄는 칼타와 겨울의 딸이 다스리는 아이기오르가 바로 그것이었다.
칼타는 왕국에 무조건 적대적으로 나가자는 이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었고, 아이기오르는 비교적 유동적인 입장을 펼치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연히 서로의 사이는 좋을 수가 없었고, 때마침 들어온 김유현의 지원 소식을 듣고 나서야 한다, 말아야 한다로 싸우다가 두 부족장이 결투까지 하게 되었으며 결국 한 발도 물러서지 않던 자매들은 그렇게 어이없게 퇴장하고 말았다.
‘그 때도 작가 참 욕 많이 먹었지.
히로인이랑 메인 악역을 한 방에 골로 보냈으니까.
오죽하면 독자들이 열불이 뻗쳐서는 댓글 창에 향을 피우지를 않나, 무슨 오로라 공주도 아니고 뭐 그리 등장인물 죽이는 걸 좋아하냐고 난리를 치지를 않나.’
애정을 가지고 있던 캐릭터들이 하나둘씩 고인이 되어가는 장면은 독자들에게는 썩 유쾌한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더더욱 19금 소설에서 히로인들이 무슨 잊을 만하면 사망 판정을 받으니 그들로써는 미치고 팔짝 뛰어도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이후 김유현의 행보와 새 히로인 물색을 생각하며 밖으로 나선 시온을 붉은 눈의 여인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일어났네.
잘 잤어?”
“···크흠.
릴리트님 일단 상황 설명부터 하자면···.”
“됐어.
일일이 설명 안 해도 돼.
내가 말했지?
나도 여자라고.
네 주변의 여인들이 네게 무슨 감정을 품고 있는지는 내가 너보다 더 잘 알아차린다니까?”
“흠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질투 같은 거 안 해.
그리고 너를 독점할 생각도 없고.”
은빛 폭포수 같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릴리트가 시온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슬쩍 그의 귀를 입술로 물고는 앙앙, 거리며 말을 잇는다.
“대신 이거 하나는 알아둬.
혹 누군가가 너를 독점하려고 든다면, 그 때는 나도 어쩔 수 없어.
나도 최소한의 선은 알 거든?
그 선을 넘으면 그 때는 괴물이 되는 거야.”
“···.”
하는 짓이나 목소리는 앙큼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안의 내용은 무척이나 살벌했다.
그러니까 다른 여자들이 혹 자신의 자리까지 탐내지 않도록 네가 알아서 잘 제어하라, 라는 소리라는 걸 시온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
내가 잠시 잊고 있었어.
예속의 계약으로 인해서 릴리트님이 내 앞에서는 고분고분하지만 그 정체는 전성기 시절의 힘을 거의 회복했던 김유현도 애 먹이게 만들었던 최고위 마족, 서큐버스 퀸.
릴리트임을 말이야.
시펄, 조심하자, 시온아.
응?’
릴리트가 혹 자신을 해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예속의 계약이 있는 한 그런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다른 여인들이 자꾸만 릴리트의 영역을 침범하며 자존심을 건드린다면 그녀는 반드시 그 여자들을 박살내고 말 것이 확실했다.
리시키다라고 해도, 루시아라고 해도 릴리트를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리시도 루시아도 전부 제정신이 박혔다는 것 정도려나.’
그 둘은 욕심을 부려 다른 여인의 자리까지 탐낼 위인이 되지 못 했다.
애초에 하나는 주인을 따르는 기사고 하나는 마음 좋은 히로인이었던 여인이다.
남의 떡이 내 것보다 커 보이는 것이 패시브인 악역들과는 태생부터가 달랐다.
“당연한 말을 하시네요, 릴리트님.
그래서 어제 밤에 혼자 지루하셨겠네요?”
“흥!”
“에이.
왜 이러실까나.
고프시면 바로 할 수도 있는데.
아니면 조금 더 흥분되게 여기서 할까요?”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인들 못 하겠는가.
릴리트의 팬티만 꽉 붙잡고 있어도 목숨을 부지할 확률이 지금보다 높다면 시온은 당연히 그리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놈이었다.
정말로 여기서 해드리냐는 듯 시온의 손길이 슬그머니 가랑이 사이로 향하자 릴리트는 얼굴을 붉히면서 슬쩍 허벅지를 오므렸다.
“나, 나중에.
오늘은 아니야.”
“왜요?
아, 또 다른 여자가 먹다 남은 건 드시기 싫다, 뭐 이런 겁니까?”
“그것도 있고···.”
“어제 루시아랑 두 번밖에 안 했어요.
전 아직 쌩쌩합니다만.”
그렇게 말하며 한 마리 뱀처럼 꾸물꾸물 기어가며 릴리트의 허벅지를 벌리려는 시온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살짝 피곤하기는 했지만 요즘 들어서 릴리트를 많이 봐주지 못 했으니 기회가 될 때마다 그녀의 몸을 자주 탐닉해줘야겠다고 결심한 그였다.
말캉―.
다른 손으로는 가슴을 쥐자 여인의 몸이 움찔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애써 담담한 척 하고 있지만 릴리트 역시 점점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시온은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다시 확인하곤 기어코 릴리트의 허벅지를 뚫고서 그 안으로 침입했다.
“으응···.”
남자의 손길이 꽤나 그리웠던 듯 릴리트는 낮게 가라앉은 신음을 내뱉으며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간질거리는 시온의 손을 받아들였다.
꼭 닫고 있던 허벅지까지 스르르 열며 더 강하게 만져주었으면 한다는 듯 몸짓을 해 보인다.
‘뭐, 복도에서 하는 것이 한 때는 로망이긴 했지.’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 불가능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일찌감치 그 로망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던 시온이었다.
당장 누군가가 어디에서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둘째 치고 솔직히 그런 힘든 관계를 가지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를 만난 적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당장이라도 안고 싶은 최고의 매력을 지닌 여인이 바로 앞에 있지 않은가.
우리의 똘똘이만 쌩쌩하다면 며칠이라고 해도 계속 안고 싶은 치명적인 누님이었다!
“아, 아!
자, 잠깐!
진짜 안 돼!”
“예?”
그런데 오늘은 유독 릴리트의 반응이 다른 때보다 더 격렬했다.
시온 역시 화들짝 놀라서는 바로 손을 거두었고, 둘 사이에 난감한 침묵이 흘렀다.
이전에는 그냥 앙탈을 부리며 거부했다면, 이번에는 정말 진심으로 ‘안 돼!’ 라는 감정이 가득 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뭐 마음 상하신 일 있나?’
릴리트가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라고 생각하며 시온은 슬쩍 입을 열었다.
“저, 누님.
혹시 저 때문에 뭐 더 섭섭하신 거 있으세요?”
“아, 아냐.
그런 거.
그냥···.”
“말씀하세요.
혹 제가 잘못한 거 있으면 말해주세요.
그래야 이 멍청한 인간 놈이 들어먹고 고치던가, 아니면 핑계라도 붙이던가, 할 거 아니겠습니까?”
“그, 그게···.”
“그게, 뭔데요.”
“···이이, 야이!
그냥 그러려니 해!
그런 것까지 일일이 물어보지 마, 이 등신아!”
그렇게 외친 릴리트는 그대로 시온의 가슴을 후려쳤다.
그녀 딴에는 부끄러워서 부리는 앙탈이었겠지만, 시온에게는 그냥 ‘명존쎄’ 였다.
“깩!”
가슴을 부여잡은 채 그대로 뒤로 넘어간 시온은 낑낑대며 캘록거렸다.
와, 시바!
존나 아파!
뒈질 것 같아!
구아아아악!
“흐으응!”
들으라는 듯 코웃음까지 치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릴리트였다.
시온은 그런 릴리트를 바라보며 ‘누님, 당신마저···.’ 라고 개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달칵―.
“···시온?
바닥에 누워서 뭐해요?”
뒤를 돌아보니 이제 막 일어난 듯 눈을 비비적거리는 루시아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시온은 뭐라고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릴리트님이 상당히 마음 상한 모양이에요.
자꾸 다른 여자들 생긴다고.”
“앗, 앗아아···.”
“그래서 좀 달래드리려고 했더니 그것도 싫으시다네.
아무래도 남자인 나로써는 더 무리인 것 같은데 같은 여자인 루시아가 한 번 나서보는 건 어때요?”
“···저 분은 저도 조금 무서운데요···.”
하긴···.
이라고 중얼거린 시온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릴리트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주어야 하나 고민을 하며 일단 방 안으로 들어갔다.
―
“···진짜 엉큼하다니까.
기회만 보이면 자꾸 몸을 더듬어···.”
그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정작 릴리트의 표정은 그리 싫지 않았다는 감정이 가득했다.
오히려 아쉽다는 듯 쩝, 하고 입맛만 다실뿐이었다.
“오늘이 그 날만 아니었어도 그냥 거기서 하는 거였는데.
운도 없어, 아무튼.”
아직 시온과 하고 싶은 일도, 가고 싶은 곳이 많아도 너무 많은 그녀였다.
벌써부터 ‘엄마’ 가 되고 싶은 마음은 아직 없다는 소리였다.
―――――――작품 후기―――――――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