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78)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78화(78/439)
78―――――
집으로
“···흠.”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슈마허 부단장은 천천히 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체내의 마나를 순환시키다가 두 눈을 번뜩이곤 날렵하게 손에 들린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슉!
슈욱!
“핫!
하앗!”
찌르고, 베고, 쳐올리고, 횡으로 긋다가 다시 사선으로 베고 한 번 더 상대를 찌른다.
방어는 기세를 내어주는 가장 빠른 지름길, 검을 휘두름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격, 그리고 또 공격뿐이다.
“···!”
찰나의 순간, 슈마허는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시선을 의식했다.
검이 닿을 수는 없겠지만 일종의 무력시위를 목적으로 그 방향을 향해 똑바로 검을 내질렀다.
후우욱!
···짝짝짝!
그 방향에서 들려오는 건 다름 아닌 박수 소리.
슈마허는 검을 수습하고는 그곳에 누가 서있는지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아침부터 참으로 열심히 수련하시는군요.
감탄했습니다, 슈마허 부단장님.”
예상외의 인물이었다.
최소한 자신 휘하의 기사이거나 혹은 왕성 방위군의 일원.
그도 아니라면 자작령의 기사나 병사일 줄 알았는데, 모습을 드러낸 건 시온 클라우젠이었다.
“아직 이른 아침입니다만 벌써 나와계실줄은 몰랐습니다.”
“이른 아침에 부단장님은 검술 수련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하하··· 저야 이런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서 말이지요.”
기사로써, 심지어 웬만한 귀족가의 기사도 아닌 왕궁을 보호하는 왕실 기사단의 부단장으로써 단 하루라도 허투루 보낼 수는 없는 슈마허였다.
자신의 검이 곧 왕실을 지키는 창이고 방패인 것을 잘 알고 있는 이상, 매일 노력해도 부족한 나날이었다.
“헌데 시온 공자는 어쩐 일로···.”
“슈마허 부단장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수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한 수 가르침을 부탁드린다고 했습니다, 부단장님.”
“저, 시온 공자님.
그건 공자님께 자칫 위험이···.”
충분히 무례가 될 수 있는 언사라는 것을 뒤늦게 자각한 슈마허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마나를 전혀 다루지 못 하는 이가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사에게 검을 섞자고 하는 것은 창칼로 가득한 들판 위에서 맨발로 뛰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짓.
하지만 그걸 굳이 입 밖으로 드러낸다는 건 대놓고 상대를 무시하고 모욕하겠다는 뜻도 들어가 있을 수 있음을 슈마허가 모를 리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시온 공자님.
제 말은···.”
“아니요.
아닙니다.
오히려 부단장의 말뜻은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이해합니다.
혹 제가 다칠까봐 걱정하시는 것이겠죠.”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클라우젠의 자식입니다.
항상 병사들과 기사들 뒤에 숨어있을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는 놈입니다.
당장 제가 이 아무것도 없는 몸뚱이로 전장에 나섰다는 것을 부단장님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시온의 질문에 슈마허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점이 자신을 포함한 대부분의 왕실 기사단이 시온 클라우젠을 대단하다고 여기는 이유 중 하나였다.
수백, 수천의 병사들과 기사들이 어울려 피와 목숨이 오고 가는 잔혹한 게임을 치르는 곳이 바로 전쟁터다.
그 어떤 허풍쟁이나 거짓말쟁이도 그 곳에 가면 모든 가면을 벗어던지고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추한 모습을 띠게 된다.
하지만 시온 클라우젠은 달랐다.
아무것도 없는 몸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전장으로 나섰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이루었고, 결국 대승을 이끌어냈으며 병사들에게서 두터운 신망까지 얻게 되었다.
‘그 뿐인가?
그 외에도 수많은 일들을 해냈다.
마나의 도움 없이, 오직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저기까지 오른 사내라는 것이다!’
최소한 왕실 기사들 중에서는 시온 클라우젠을 마나 감응력에 제로라고 하여 무시한다거나 불쌍하게 여기는 인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를 인생 목표로 삼고 더욱 증진하는 극성 놈들까지 나온 판국이었다.
“마나를 다루지 못 하기에 저는 약합니다.
하지만 마나를 다루지 못 하기에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자만하지 않고, 항상 준비하고 대비해서 말입니다.”
“그렇지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여 저는 무엇이든 습득하고 탐구하여 제 것으로 만들 겁니다.
그게 어려운 일이든, 불가능한 일이든 상관없습니다.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관두면 되는 거지, 시작도 전에 지레짐작해서 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니까, 제게 가르침을 주시길 이렇게 청합니다.”
시온의 자세에 슈마허는 그만 감탄을 내뱉고 말았다.
저런 언행이야말로 진정한 기사의 자세가 아니던가.
스스로를 과신하지 않고, 그렇다고 하여 절망하지도 않고 묵묵히 앞만 보고 정진하는 것.
저런 청년이 차후 클라우젠의 차기 백작이라고 생각하니 이 나라의 축복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역시 국왕 전하의 안목은 틀리지 않으셨다!’
그렇게 생각하며 슈마허는 시온과의 대련을 허락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온은 밝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들고 왔던 두 자루의 목검 중 하나를 슈마허에게 내밀고 자신도 남은 한 자루를 쥔 채 슈마허의 앞에 섰다.
그런 시온의 입가에 지어져 있는 미소를 바라보며 슈마허는 괜스레 제 가슴이 다 뿌듯해졌다.
물론, 시온이 웃고 있는 이유는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 따위가 아니었지만.
‘조아쓰.
넘어와쓰.
이겨쓰!’
검을 다루는 일?
무조건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다.
지금 슈마허와 목검을 들고 대련을 하는 것도 그저 몸이 기억하는 한에서 간신히 버티고 또 버티는 것이 한계인 상황이다.
전투에 직접 나서는 건 이제 절대 피하고 싶은 순위 베스트 1이 되었다.
그런데도 굳이 슈마허 앞에 나와서 ‘대련을 하자!’ 라고 들덤빈 이유?
‘결국 저 남자는 기사니까.
머리 굴리느라 바쁜 귀족이 아니라 정직하게 검 휘두르는 놈 좋아하고, 전쟁터에서 도망치지 않고 앞장서서 싸우는 이들을 존경하는 무인들이니까.’
무를 숭상하는 이들에게 호감을 사는 방법은 지극히 간단하다.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한 번의 결심으로 증명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 맺어진 우호 관계를 잘 깨트리지 않는다.
적과 아군의 구분이 명확한 그들은, 일단 한 번 믿은 아군은 어지간해서는 끝까지 믿어주는 타입들이었다.
‘혹 코네안 자작이 왕실에 끌려가서 헛소리를 할 가능성도 있어.
그럴 때에 슈마허 부단장이 나서서 이 자의 말은 모조리 다 거짓이며, 자신이 그것에 대해 증인으로 설 수 있다고 말까지 할 정도로 친분을 쌓아두어야 한다!’
이미 세페르 카슈가르 백작이 자신은 반역과는 절대 무관하다며, 그 유리병은 시온 클라우젠이 내어준 것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억울함을 주장했었다고 슈마허가 전했다.
원래대로라면 시온 자신에게도 의심의 화살이 꽂히는 것이 당연했지만, 대부분의 귀족들과 특히 바네사 왕녀가 시온을 적극 변호하여 국왕 에드가 4세 역시 별말 없이 넘어갔다고 한다.
역시 믿을만한 아군이 많아야 인생이 편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시온은 이번 기회에 왕실 기사들까지 웬만해서는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판을 짠 것이었다.
“가겠습니다, 시온 공자님.”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말이다.
후, 시발.
어쩔 수 없다.
몸뚱이야.
고생 조금만 더 하자.
―
“공주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응.
난 그 인간 곁에 조금만 더 머물 생각이야.”
“하지만 대왕께서 걱정하실 텐데요.”
“아빠한테 설명 잘 해드려.
난 잘 있다고 말씀드리고.”
“으읏··· 그래도···.”
“일족의 오래된 관행을 어길 생각은 아니겠지?
나와 우리 모두 그 인간 남자에게 빚을 졌어.”
“그, 그렇다면 차라리 저희 모두가 함께 공주님을 호위하면서···.”
세 호위병들의 말에 위니는 고개를 저었다.
갑작스레 실종된 제 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을 아빠에게 자신은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야 했고, 무엇보다 아직 이들은 그 남자의 곁에 그 무시무시한 마족 여인이 붙어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도 이 증표 때문에 간신히 알았으니까.’
제 이마를 쓰다듬으며 위니는 더 이상의 이의 제기는 듣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의 호위 대상이 강한 거부의 의지를 보이자 세 고양이 여인은 귀를 추욱 늘어트리고는 힘없는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위니는 이러지 말라는 듯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 자꾸 이럴 거야?
그만 안 그쳐?
뚝!”
“네, 네.
뚝!”
“하아···.
걱정들 말고 돌아가.
다들 너무 고생했잖아.
괜히 나 때문에 겪지 않아도 될 일까지 겪고.
난 정말 괜찮으니 셋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해.
나도 은혜를 다 갚았다고 판단이 되면 지체하지 않고 바로 돌아갈 생각이니까.”
“정말 그러셔야 해요?”
“대왕께서 또 집이라도 나가면 정말 난리가 날 거예요!”
“알겠어.
우리 아빠 성격은 내가 더 잘 아니까.”
그 대화를 끝으로, 위니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가볍게 호위병들의 뺨에 제 볼을 부볐다.
묘은족 특유의 인사법을 끝으로, 그녀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서 어딘가로 ‘우다다다!’ 하고 뛰어가기 시작했다.
‘인간 남자.
그러니까 은인의 냄새가 이 근처에서 나고 있는데?’
월랑족 만큼은 아니어도 냄새로 상대를 추적하는데 있어서 묘은족도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위니는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순식간에 대련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2층 발코니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한창 한 중년의 남성과 검을 나누고 있는 미청년이 있었다.
“검이 아니라 발을 보셔야 합니다!
발이 나가지 않고서는 결코 공격이 제대로 나아가지 않으니 말이죠!
지금처럼 말입니다!”
“크윽!”
처음에는 하도 청년이 밀리기에 위니는 혹 저 중년의 인간 남자가 제 은인을 공격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고 저 둘을 막으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시온의 입에서 ‘이건 어떻습니까!’ 라고 외치는 목소리와, 그걸 어렵지 않게 막아내면서도 ‘이번 공격은 꽤나 훌륭했습니다.’ 라고 받아주는 중년 남성을 확인하곤 얌전히 발코니에 앉아서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어지던 대련은 결국 시온의 패배로 끝이 났다.
하지만 승자도 패자도 모두 만족스러웠다는 듯 웃고 있었다.
“역시 왕실 기사분들은 강해도 너무 강합니다.
누디아 군 따위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군요.”
“아하하!
그렇다니 다행이군요.”
그 와중에 잊지 않고 스리슬쩍 띄어주기를 시전하는 시온이었다.
말 한 마디에 기분이 좋아져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슈마허를 바라보며 위니는 흥미롭다는 듯 꼬리를 살랑거렸다.
“그보다 놀랐습니다.
마나를 다루시지 못함에도 이렇게 검술을 연마하셨을 줄은 말이죠.
만약 마나를 다루실 줄 알았다면 훌륭한 기사가 되셨을 텐데.
하늘이 참으로 무심합니다.”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마나를 다룰 줄 알았다면 스스로를 과신하여 지금의 제가 없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아하하!
공자님은 너무 겸손하셔서 탈입니다!
때로는 스스로를 조금 내세우셔도 됩니다!”
“그렇게 잘난 것이 없는 놈인데요, 뭐.”
끝까지 자신을 숙이는 시온이었다.
위니는 제 은인이 자꾸만 저자세를 취하는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마나를 다루지 못 한다는 부분을 캐치하고는 크릉, 하고 침음을 내뱉었다.
‘마나를 다루지 못 한다고?
그러면 엄청나게 약한 거잖아.
헌데 그 무시무시한 마족 여자가 옆에 있다니.
이상해.
아주 이상해!’
이미 릴리트는 자신이 무슨 허튼 짓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설명하기 그런 이유로 시온의 곁에서 얌전히 지내고 있다고 사실까지 말했지만, 위니는 그걸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오히려 저 사악한 마족 여자가 또 이상한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내 은인은 마나를 다루지 못 하는 약자다.
그런데도 나를 구해주고, 동족들을 구해주고, 다른 이들도 전부 구해주었어!
그런데 사악한 마족 여자가 옆에 붙어서는 자꾸 그를 나쁜 길로 빠지게 하려고 해!
이건 내가 나서서 막아야 해.
그 여자를 물리칠 수 없다면 최소한 은인 곁에 함부로 다가오지 못 하게 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어떻게 해야 자신이 받은 크나큰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지 길이 보이는 위니였다.
냐앙!
하고 소리를 내며 결심한 듯 두 손을 강하게 움켜쥐는 고양이 소녀.
제 딴에는 힘내자!
라고 파이팅 하는 중이었겠지만 만약 다른 이들이 그 장면을 봤자면 탄성을 내지르며 귀엽다고 난리를 쳤을 것이 분명한 장면이었다.
“아무튼 코네안 자작의 압송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혹 그가 이상한 말을 한다면···.”
“걱정 마시길.
저도 그가 얼마나 사악한 자인지 두 눈으로 직접 본 사람입니다.
혹 헛소리를 한다면 국왕 전하께 허락을 구하고 혀부터 잘라낼 것이니 큰 걱정 안하셔도 될 겁니다, 시온 클라우젠 공자님.”
“그러면 다행이군요.
하하!”
시온 클라우젠, 시온 클라우젠.
위니는 제 은인의 이름을 머릿속에 똑똑히 기억해두었다.
그리고는 살며시 두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다가, 다시금 천천히 두 눈을 떴을 때에는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묘은족들의 골 때리는 특성, 각인이 발동된 것이었다.
‘핫!
시온 클라우젠!
내 은인!
은혜 갚으러 간다아아!
냐아앙!’
“엣취!”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아, 네.
갑자기 싸늘한 감각이 들어서요.”
“아침부터 너무 과하게 땀을 흘리시고 그게 바로 식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감기라도 걸리시면 큰일이니 그만 들어가시죠.”
슈마허의 말에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땀이 식어서 추운 건 아닌 것 같은데,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더더욱 꺼림칙했다.
―――――――작품 후기―――――――
달린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