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79)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79화(79/439)
79―――――
집으로
“공자님.
출발토록 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천족의 기습으로 인해 부상을 입었던 병사들도 이제는 멀쩡해졌고, 코네안 자작으로 인해 약간의 조사를 받던 것도 모두 마무리 되자 시온 일행은 다시 클라우젠 변경백령으로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시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서있는 다른 마차 한 대를 바라보았다.
‘···뭔 일 생기는 건 아니겠지?’
슈마허 부단장은 코네안 자작령의 물건들을 전부 왕실의 이름으로 압수하면서 그 중 가장 크고 호화로운 마차 두 대를 시온 일행에게 내어주었다.
그 또한 왕실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이었으니 차후 어느 누구도 시비를 가릴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부단장님?
왜 두 대씩이나···.’
‘아아, 시온 공자님과 함께 하시는 여성 마법사 분과 루시아 양이 부탁을 하더군요.
괜히 시온 공자님과 함께 하여 구설수에 오르면 실례가 될 수 있으니 마차 한 대를 더 부탁할 수 없겠냐고 말이죠.
저야 당연히 두 숙녀 분들의 뜻대로 해드렸고 말입니다.’
슈마허는 릴리트와 루시아의 걱정이 타당하다고 보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럴만한 것이, 귀족 가문의 자제가 이상한 염문설에 휩싸이면 좋은 것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근데 왜 난 자꾸만 걱정이 될까요.’
루시아와 릴리트.
이거 참 난감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출발 직전에 알게 된 부분인데, 릴리트가 리시키다까지 마차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단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물론 리시키다가 반대를 좀 했던 모양이지만 루시아까지 나서서 그녀의 손을 붙잡고는 그대로 마차 안으로 끌고 가는 장면을 시온은 똑똑히 목격했다.
“···.”
시펄, 뭐지?
뭐지?
도대체 뭐지?
여자들이 무엇을 하든 남자들은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이, 관여치 않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지만 솔직히 마음에 걸리는 죄가 있는지라 시온은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미치겠구만.’
혹시 릴리트가 나서서 서열정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분명 질투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했으니 그런 유치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세 여인이 모여서 함께 가고 있는 거지?
‘시펄!
두뇌 풀가동!
도대체 뭔데, 뭐냐고!’
다른 때에는 잘만 돌아가던 머리도 어디 고장이 났는지 영 돌아가지를 않는다.
아니, 이런 일은 조금도 예상치 못 했던 부분이니 오히려 돌아가지 않는 것이 정상일 지도 모르겠다.
시온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위병들은 마차를 출발시켰다.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시작되어 코네안 자작령의 노예시장 사건으로 인해 며칠이나 지체되었던 복귀가 드디어 재개된 것이었다.
“휴우.”
원래라면 클라우젠 변경백령으로 돌아가자마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열나게 고민해야 할 시온이 자꾸 한숨만 내뱉고 있었다.
뭔가에 신경이 쓰이니 당연히 머리가 돌아가야 하는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휴우!”
“땅 꺼지겠어.
뭐가 그리 고민이야?”
낭랑한 소녀의 목소리에 시온은 슬쩍 고개를 내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응당 누가 앉아있어야 할 맞은편의 의자가 아니라, 바닥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캬앙.”
황금색의 고양이 눈을 반짝이며, 하늘을 바라보는 듯 옅은 하늘색을 띤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두 귀를 쫑긋거리며 꼬리를 살랑이고 있는 위니가 자리하고 있었다.
“···.”
“왜?
왜 그렇게 보는데?”
“바닥 말고 의자에 좀 앉아.”
“여기가 더 편한데?”
“얼른.”
그렇게 말하며 맞은편의 소파를 제 손으로 탁탁 두드리는 시온이었다.
위니는 그런 시온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살짝 몸을 일으켜서는 무척이나 재빠른 몸놀림으로 의자 위에 앉았다.
작은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 위치가 시온 맞은편이 아니가 바로 옆이었다는 것 정도?
“은인.”
“시온이라고.”
“아, 맞아.
시온.
그 여자 위험해.
당장 해치우던가 아니면 도망가!”
“몇 번을 말하냐.
그런 분 아니라니까.”
시온은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일축했지만 위니는 더더욱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캬악!
위험해!
지금도 봐!
그런 ‘분’ 이라고 하잖아!
인간이 마족을 그렇게 부른다는 게 말이 돼?
너희 인간들은 마족을 싫어하잖아!”
“예외인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러면 설명을 해줘!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지!”
그에 시온은 끄응, 하고 침음을 내뱉었다.
예속의 계약은 서큐버스 일족들의 비밀과도 같은 것이다.
외부에 드러나게 되면 자칫 그걸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생길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종족 자체가 위협을 받을 확률도 매우 높아졌다.
그렇기에 릴리트도 그 계약을 맺으면서 시온에게 어느 누구에게라도 계약에 관해서 자세히 말하는 것은 제발 참아달라고 부탁하고 또 부탁했었다.
시온은 당연히 자신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인 릴리트의 약점이 드러나는 걸 극도로 꺼렸기에 그 비밀을 발설치 않았고 말이다.
때문에 리히텐 변경백이나 라이도, 루시아 등은 그가 릴리트와 ‘어떤’ 계약을 맺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 자세한 내용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자세히 말해줄 수는 없어.
하지만 나와 릴리트님 간에 분명 계약이 존재하고, 그걸 위해서 서로에게 위해가 가지 않는 짓은 결코 하지 않아.”
“으으으··· 하지만 마족은 위험해!
나쁜 놈들이라고!”
위니는 마치 어린 아이가 고집이라도 부리듯 그렇게 아우성을 쳤다.
수인들도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마족은 나쁜 존재.’ 라는 교육을 주입받아왔다.
천족들이 그린 큰 그림에 그들도 결국 벗어나지 못 한 것이었다.
“위니 포터블.”
“응, 은인!”
“첫 번째.
일단 내 이름은 시온이다.
지금 벌써 몇 번째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지금 걸로 열다섯 번이야!”
“···부디 스무 번 채우지 않기를 바라마.
그리고 두 번째.
마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악하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어째서?
너희 인간들도 그렇게 말하잖아?
마족은 나쁘다고.
사악하다고 말이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애들 붙잡고 한 가지 경우를 설명한다는 것이라더니.
정말 그 말이 딱 맞는 수준이었다.
시온은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줘야 이 고양이 소녀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입을 열었다.
“인간들이 너희 수인들, 그리고 다른 이종족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너도 잘 알지?”
“···당연하지.
그 증거로 내가 이렇게 잡혀서 고초를 겪었으니까.”
그 때만 생각하면 절로 이가 갈린다는 듯 위니는 하악질을 하면서 손을 쫙!
펼치곤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손톱을 드러냈다.
살벌하기까지 한 모습이었지만 시온은 그런 고양이 소녀의 코를 톡 치고는 입을 열었다.
“아얏!”
“의자 찢으면 혼난다.
손톱 넣어.”
“코, 코 때리지 마!
민감한 부위라고!
우씨!”
수인들 대부분은 코를 때리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소리와 함께 가장 중요한 감각인 후각을 책임지는 부위였기에 그런 것이었다.
“아무튼 인간들이 너희 이종족들에게 그런 짓을 벌이는 건 은연중에 ‘이종족들은 인간들보다 못 하다.’ 라는 인식이 깔려 있어서야.
만약 나도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던 흔한 인간들 중 하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아마 지금쯤 다른 여인들처럼 몸도 마음도 다 망가져서 어딘가에 뒹굴고 있었겠지.”
시온은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의 뜻으로 슬쩍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위니는 하지 말라는 듯 재빠르게 손을 휘저으며 짧게 하악질을 했다.
물론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어서 진심이 아닌 것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말이다.
“하지만 난 너희 이종족들이 우리 인간보다 못 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였지.
결국 다 똑같이 고통스러우면 눈물을 흘리고, 기쁜 일이 생기면 웃는 그런 존재라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벌였고, 그 결과는 어땠지?
너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결국 자유의 몸이 되었잖아?
고정된 생각과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면 끔찍한 일만 반복될 상황이 순식간에 바뀐 것이지.”
“무슨 소리인지 이해 못 하겠어.”
“쉽게 생각해.
너희 이종족들은 우리 인간을 어떻게 생각했어?”
“···나쁜 놈들이라고.
음흉한 놈들이라고 생각했어.”
“좋아.
일부, 아니 반 넘는 놈들이 그런 쓰레기들이긴 하지.
그렇다면 나는?
나도 그런 나쁜 놈에 음흉한 쓰레기인가?”
시온의 질문에 위니는 절대 아니라는 듯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자신과 호위병들을 구해준 은인이라며 귀를 연신 쫑긋거렸다.
“그래.
결국 세상에 정해진 놈은 아무도 없다는 거야.
어떤 놈은 착하고, 또 어떤 놈은 나쁜 놈이지.
또 어떤 놈은 필요에 따라 착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는 사기꾼이고 말이야.”
“그래서?”
“하나만 보고 하나로만 판단하지 말라는 소리야, 위니 포터블.
어쩌면 전부 쓰레기라고 생각하던 것 중에 반짝이는 보석이 있을 지도 모르잖아?”
위니는 시온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조금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시온은 우리 수인들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는 소리야?”
“당연하지.”
“그 마족도?”
“그렇지.
물론 약간 복잡하게 얽히긴 했지만 최소한 네 말대로 엄청나게 사악하고 나쁜 짓을 꾸미려고 내 곁에 다가왔다고는 생각 안 해.”
굳이 ‘복잡한 이유가 있다.’ 라는 부분을 강조하는 시온이었다.
지금 이 고양이 소녀는 릴리트가 혹 제 은인을 해하려는 목적으로 접근한 것일까 걱정하여 은혜도 갚을 겸 그를 지켜주겠다는 마음으로 따라 붙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릴리트와 아무런 문제없음!
무지 착하신 누님임!
이라고 종지부를 찍어버리면 이 고양이가 금방 흥미를 잃고 어딘가로 훌쩍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릴리트 누님과의 관계를 애매하게 만들어서 그러면 뭐로 은혜를 갚지, 하게 만든 다음에 적당한 구실로 이 녀석을 붙잡으면 만사 오케이지.
조만간 묘은족들이랑 관계 개선을 할 수도 있겠는데?’
김유현이 묘은족과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고 수인들을 설득하던 시기는 지금보다 훨씬 뒤였다.
당연히 천족들의 공격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많은 동료들을 모으지 못 했고, 결국 수인 쪽의 네임드 대부분이 천족들과 급진파 요정들, 그리고 광신도 인간들에게 의해 살해되는 허무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그렇게 안 된다, 이놈들.
요 사기꾼 비둘기 쉐끼들.
아주 개고생을 하게 만들어주겠어.
간나 새끼들!’
대륙 대전쟁을 야기하여 모든 종족들이 마족들을 공격할 때 뒤에 서서 ‘힘내세요, 용사들이여.
정의의 빛은 그대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라며 찬송가를 부를 때는 언제고.
마족들이 거의 대부분 죽고 다쳐 그 힘을 잃고, 인간들을 포함한 다른 종족들도 대혈전에 지쳐 운신조차 힘든 상황이 되었을 때 천족들은 ‘세상에 피가 너무 많이 흘렀군요.
그 원한과 눈물이 가슴을 아리게 만드니, 세상은 정화되어야 합니다.’ 라고 개소리를 지껄이며 ‘일곱 번의 뿔피리’, 즉 세상 정화 프로토콜을 발동시키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경제사범들조차 랄부를 탁치며 ‘이런 대단한 닭둘기 새끼들!’ 이라고 감탄할 정도의 쓰레기 짓들의 향연.
시온은 앞으로 있을 그 환상적인 뇌절쇼에 절대 가담치 않을 계획이었다.
그리고 천족들의 그 계획에 똥물을 튀기기 위해서는, 그들의 찬송가보다 자신의 샤바샤바에 더 귀를 기울여줄 이들이 더욱 많이 필요했다.
“시온 대답, 이상해.
정말 그 여자가 나쁜 마족이 아닌 게 맞는 거야?”
“자세한 대답은 할 수가 없을 것 같네.
미안.”
난감하다는 듯, 대답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기운이 가득 담긴 웃음을 흘린다.
자신은 모르겠지만 바라보는 상대로써는 충분히 이상하고 수상쩍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도록.
그래서 함부로 릴리트에게 시비를 걸지 않지만 또 지레짐작하고 시온의 곁에서 멀어지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어장관리 하는 김에 길껄룩 하나 받았다고 치면 되겠지, 뭐.’
시온의 예상대로 위니는 찜찜한 기운을 숨기지 못 하고 뭔가를 열심히 고민하다가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면 미안.
하지만 그래도 경계심을 버리지는 못 해.
마족들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은 인간인 너도 잘 알고 있을 거 아냐?
이 정도는 이해해 줄 거라고 믿을게.”
“다행이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위니.”
“뭐, 뭐라는 거야.
이런 걸로 감사 인사 안 해도 되는데.
흐응!”
불만이 가득하다는 듯 내심 코웃음을 치는 위니.
하지만 고맙다는 말이 나올 때 귀엽게 쫑긋거리던 귀나 춤추듯 살랑거리는 꼬리에서 이미 진심이 다 드러났는데 되도 않는 연기 중이었다.
‘이래서 고양이가 최고라는 거지.
츤츤 맛을 이래서 끊을 수가 없다니까.’
관심 없다면서 챙겨주고, 싫다면서 챙겨주고.
예전에 이미 한 번 고양이의 츤츤 매력에 빠졌었던 경험이 있는 시온으로써는 저 살랑거리는 꼬리와 귀엽게 솟은 귀, 그리고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서도 행여나 자신을 또 불러주지 않을까 눈치를 보는 저 황금색 눈동자까지, 모든 것이 다 귀여워 보였다.
‘···아씨, 이상한 거에 눈 뜨면 안 되는데.’
나는 변태가 아닙니다, 나는 변태가 아닙니다, 나는 변태가 아닙니다.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시온은 저도 모르게 슬쩍 위니의 손을 잡고 말았다.
혹시 고양이라고 해서 묘은족도 젤리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캬악!
어, 어디를 만져!
냐아앙!”
물론 바로 하악질을 하며 얼굴을 붉히는 위니를 마주해야만 했다.
―――――――작품 후기―――――――
달린다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