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8)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8화(8/439)
<―>
지금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라이도가, 그 최강 최악의 또라이가, 그런데 또 실력 하나는 죽여주는 노인네가 제자가 되지 않겠냐고 먼저 묻고 있다.
한 때는 지존이라 불리던 그 김유현조차 자존심 다 접어두고 무투술을 가르쳐달라고 빌다시피 해서 간신히 그의 제자로 들어가지 않았던가!
‘초대박이다!’
검으로 무림의 세계에 그 이름을 아로새겼다면 여기서는 검과 함께 무투술로 또 다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남자가 바로 김유현이었다.
그 모든 것이 라이도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이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조금씩 변형하고 또 더 발전시킨 것이 김유현의 무투술이니까.
하지만 그 뼈대는 분명 라이도에게 전수받은 것이었다.
주먹만으로 천족을 때려잡던 그 김유현과 같아질 수 있는 것이다!
“라이도님, 혹시 제자가 되시라 함은 제게 마법을 가르쳐주시겠다는 겁니까?”
물론 덥썩 미끼를 물 생각은 없었다.
살살 간을 보면서 라이도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살필 필요도 있었다.
하지만 라이도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는지 두 눈을 껌뻑이다가 하!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애새끼가 벌써부터 상대 간을 보는구나.
고작 그 정도 추측과 증거로 내 정체를 파악했다면 내 진짜 모습 또한 이미 진작 알고 있던 것이 아니더냐?”
“그건···.”
“애초에 클라우젠 가문의 장자에게 마법을 가르쳐서 뭐하겠냐.
해봤자 마법으로 불 피운 다음에 야영지 가서 고기나 구워먹지 않으면 다행이지.
너희 가문이 티를 안내려고 해도 뼛속까지 무인(武人) 이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냐?”
라이도의 말대로, 클라우젠 백작가는 처음부터 검으로 일어선 가문이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국경 지대를 맡게 되었고, 후작가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 변경백에 오를 수 있었다.
“제게··· 무투술을 가르치시겠다, 이 말씀이군요.”
“그래.
싫다면 말해라.
나도 배우기 싫다는 놈 억지로 잡고 있을 생각은 없다.”
“···.”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당신 싫다면서.
그런데 왜 흥칫뿡, 하면서 양 다리는 초조한 듯 덜덜 떨고 있는 건데.
“···.”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이러다가 유전이라도 뚫을 기세였다.
만약 이 밑에 현대의 누군가가 자고 있었다면 ‘층간 소음 시파!’ 하고 쫓아 올라와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저, 라이도님.
하나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뭐냐.”
“갑자기 저를 제자로 들이시려는 이유가 뭡니까?”
“알려 하지 마라.
다친다.”
그 말에 시온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라이도라는 캐릭터 특성 상 ‘다친다’ 라는 말은 경고를 위한 단어 선택이 아니다.
그냥 정말로 한 번만 더 질문할 시 후려칠 수도 있다, 라는 뜻이었다.
“이유는 묻지 마라.
그냥 대답만 쳐해.
에스냐 노냐.
좋다냐 싫다냐.
하겠습니다냐 안하겠습니다냐.
넌 그것만 대답하면 되는 거다, 클라우젠 백작가의 애송이야.”
애송이라는 말에 순간 화가 치민 시온이었지만 틀린 구석 하나 없는 말이었다.
소설 속 내용으로 시온 클라우젠은 스무 살이 되도록 뭐 하나 해놓은 것이 없는, 그냥 금수저에 금테 두른 것이 다인 놈이었을 뿐이었다.
“제 대답은···.”
당연한 거 아니냐!
무조건 하겠다고, 제자 하겠다고 말하겠지!
라이도는 시온의 입에서 그런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모르는 놈은 끝까지 모를 테지만, 일단 자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이들은 그가 무투술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한다면, 개처럼 헥헥대면서 옆에 달라붙을 것이다.
여태 단 한 번도 제자라는 걸 들인 적이 없는 라이도다.
마법도, 무투술도, ‘공식적’ 으로는 어느 누구도 그의 가르침을 받지 못 했다.
몇 년 전 나타난 김유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라이도의 무투술은 그대로 명맥이 끊어졌을 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강했지만, 그 정도로 제자들이기에 관심이 없었던 라이도다.
헌데 지금 그가, 상대는 언급한 적도 없는 제자를 먼저 제안하고 있다.
“싫습니다.”
“그래, 그래.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네 스승··· 뭐?”
시벌탱?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두 눈을 껌뻑이던 라이도는 말도 안 되는 시간, 정말 순식간에 시온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노인의 몸으로, 한창 팔팔할 스무 살의 청년을 단 한 손으로 들어올렸다.
“너 이 새끼, 지금 뭐라고 했냐.”
전혀 예상치 못 했던 대답이다.
싫다니?
가르침이 싫다니?
제자가 되기 싫다니?
이 ‘내’ 가 싫다니?
처음 듣는 말, 처음 경험해보는 상황이었다.
라이도는 눈앞의 청년이 그래도 그와 꽤나 절친한 사이에 있는 리히텐의 아들이라는 것도 순간 망각한 채, 당장이라도 그를 씹어 먹을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정신이 헤까닥해서 말이 잘못 나온 거지?
새끼가 겁은 많아서 쫄아가지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라이도님.
당신의 제자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두려움 한 톨 섞이지 않은, 그야말로 담담한 목소리.
라이도는 자신이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생각하다가 허허허,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 시발.
요즘 치매 오나?
내가 뭐 잘못 말했냐?
이상하네, 난 분명 제대로 말할 것 같은데 말이다.
분명 널 제자로 들이고 싶다고 했고, 넌 대답을 그렇다, 라고···.”
“싫습니다.”
시온의 입에서 싫다 라는 대답이 세 번째 흘러나왔다.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라이도는 탄식을 내뱉고는 시온을 내려주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라이도가 쏘아보낸 살기를 정면으로 맞이했음에도 시온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곤 멱살을 잡혀 흐트러져 있던 옷매무새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이도는 의자 위에 주저앉더니, 이마를 꾹꾹 문지르며 말했다.
“···정녕 미친 새끼구나.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어.”
“전 충분히 제정신입니다.”
“제정신이라는 놈이 내 가르침을 거부한다는 말이냐?”
“취향 차이입니다.”
“헛소리 말고, 이유를 말해라.
너 같은 쓰레기가 순식간에 인간, 아니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길임에도 그걸 거부하는 이유 말이다.”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사실 시온도 미치도록 그의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
라이도의 무투술이라면 왕국, 아니 대륙 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한 무예였다.
오죽하면 김유현이 검을 뽑을까, 주먹을 쓸까 고민할 정도였다.
‘하지만···.’
하지만, 시온 클라우젠의 몸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정확히는, 심각한 ‘하자’ 였다.
‘개시발!
하필이면 이 새끼가 마나 고자 새끼라니!’
대륙에서 마나는 그저 마법사들이 마법을 쓰는데 필요한, 그들만의 특권 같은 것이 아니다.
모든 세상, 만물 어디에도 존재하는 힘의 일종으로 김유현은 그걸 내공이라고도 불렀다.
그걸 이용하여 검사들은 자신의 검을 더 날카롭게 벼릴 수 있고, 마법사들은 마법을 더 크고 강하게 증폭할 수도 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실력이 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마나에 다가가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차라리 마나 감응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또 몰라요.
이 새끼는 그거 자체가 불가능해!’
시온 클라우젠이 ‘최약’ 의 악역이었던 이유.
물론 그의 성질이 꾸준하지 못 하고 여러 군데 글러먹은 것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선천적으로 마나 자체를 다루지 못 해서였다.
심지어 평민들 중에서도 마나 감응력이 뛰어나서 마법사로 대성하거나 정령들과의 친화력을 더 쉽게 올린다거나, 하다못해 검사의 자질을 더더욱 크게 꽃 피우기도 했는데.
변경백령의 후계자 서열 1위, 변경백의 장자하는 시온 클라우젠은 그 마나 감응력이 단 한 톨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그것 때문에 이놈이 세상에 불만도 많았고, 질투심도 존나게 심했었지.’
시온 클라우젠이 김유현에게 그렇게 이를 갈고, 그 주변인들을 저주하며 증오했던 이유도 거기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자신은 마나 때문에 발목이 붙잡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데 귀족도 아닌 웬 잡것들이 마나를 다루면서 중앙의 귀족들의 관심은 물론, 왕가의 눈길까지 독차지하고 있으니 아주 배가 아파서 죽을 판이었을 것이다.
“이유 말씀입니까.”
“그래.
네 놈이 가진 건 쥐좆보다도 더 없는데 내 제안을 걷어차는 이유 말이다.”
“···.”
혹시 궁정 마법사였던 라이도는 마나 감응력을 조금이라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시온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렇게 물어볼까 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시온의 생각은, 끝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 했다.
‘이건 또 뭔데?’
도대체 어느 틈에 들어와 있던 것인지, 시온의 등 뒤에 무척이나 공손한 기색으로 노년의 집사 하나가 자리하고 있던 것이었다.
“흠.”
그 집사의 얼굴을 확인한 라이도는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며 양 팔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그래, 슬슬 네놈 새끼가 그 잘난 면상을 들이밀 줄 알았다.
세바스.”
“입 참 거칠군.
그러다가 자네 딸아이한테 또 면박을 당할 거야.
라이도.”
“루시아 이야기는 하지 말지.”
“듣고 싶지 않다면 먼저 멋진 아비가 되는 게 먼저 아니겠나?”
“···.”
시바, 저기요?
갑자기 노인 둘이서 뭐 하는 건데요.
시온을 사이에 두고 무시무시한 신경전을 벌이는 라이도와 세바스찬.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절로 주눅이 들 정도의 서슬 퍼런 기운이, 줄기줄기 쏟아지는 안광이 절로 시온의 몸을 움츠리게 만들고 있었다.
‘도대체 이 인간들은 왜 내 방에서 지랄이냐고!’
전 궁정 마법사, 동시에 마법보다도 주먹이 강한 남자.
전 왕가 비밀 수호 기사단, 동시에 백작가의 두 검 중 하나인 남자.
그 둘이 당장이라도 피바람이 몰아칠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정말 싸움이라도 나면 그 때는 최소한 백작가 성 반파인지라 시온은 목숨을 걸고 그 사이에 나서기로 했다.
물론 변경백령의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명예와 권위를 내세워서 말이다.
“세바스찬?
지금 뭐하는 겁니까?”
“공자님.”
“제 손님입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저 분은 저와 이야기 중이니 함부로 끼어들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일단은 물러나겠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이는 세바스찬이었다.
상대가 순순히 물러나자 라이도 역시 팔짱을 끼곤 불만스러운 기운이 가득 담긴 콧방귀만 내뿜을 뿐, 딱히 세바스찬을 더 도발한다거나 그런 행위를 지속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잘 된 거려나?’
시온 클라우젠은 세바스찬의 진짜 정체를 원래는 모른다.
그래서 지금의 시온도 세바스찬을 대하는 게 조금은 어렵고 난감하던 찰나였는데 오히려 세바스찬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본모습을 시온 앞에 드러내고 말았다.
“라이도님.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으음?”
“백작가의 집사, 세바스찬이 도대체 어느 틈에 이 방에 들어온 것부터 시작해서, 마치 라이도님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 말하고 있는 것 하며 동시에 그 라이도님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음에도 전혀 흔들리는 기색이 없는 것 하며 말입니다.”
“푸하하하!
그래, 내가 말해주마.
지금 네 옆에 서서 말도 안 되는 집사 놀음을 하는 저 새끼 말이다!
사실은 왕가 비밀 수호 기사단에 있던 놈이란 말이다!
왕국에서도 손에 꼽히던 시가 놈이었다는 소리지!
그런 놈이 집사를 하고 앉아있는 거다!
아하하하하!
웃기지 않느냐?”
그게 웃기겠어요?
웃기긴 니미 개뿔.
이미 다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시발.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 겉으로는 처음 알았다는 듯 바로 표정 연기에 들어가 주시는 시온.
덕분에 라이도는 아주 재미있어서 미치겠다는 듯 깔깔대고 있었다.
“한 때는 나와 하루 종일 치고 박고 싸우던, 정말이지 지겨운 새끼였다.
그런 놈이 저런 징그러운 복장을 입고 수염을 멋지게 기른 채 ‘공자님, 공자님.’ 하고 주접을 떨고 있을 걸 생각하니 아주 내 좆이 다 떨어져 나갈 정도로 징그럽구나!
으하하하하!”
“그 입 다물게.
시끄러워서 찢어버리고 싶으니까.”
“자네가?
나를?
차라리 내 똥구멍에 네놈 검이 처박히는게 더 빠르겠어!”
사이가 좋은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하나는 확실했다.
‘난 여기서 이타치 해야겠어.’
감당하기도 힘든 미친놈들이 벌써 둘이나 꼬였다.
정말 이 자리에 김유현이 없어서 망정이지, 만약 그 셋이 이 자리에 모여 있다고 생각해보니 시온은 절로 즐거워지는 상상에 그냥 뇌가 통째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