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9)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9화(9/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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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기분이 상당히 엿 같아지는데 여기서 그냥 맞다이 한 번 깔까?”
“나이를 먹고도 그 막 되먹은 언행은 여전하군.”
“내가 나이만 처먹었지, 철은 안 들어서 말이야.
그런데 사실 그 까짓 것 안 들어도 잘 먹고 잘 살더라고.
불만이면 자네가 대신 철 좀 들게 해주던가?”
“정말이지, 예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군.”
저대로 두면 정말 칼부림이든 주먹다짐이든 뭔가 벌어질 것 같아 제 가슴이 조마조마한 시온은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리는 것으로 두 노인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세바스찬.
분명 그만 하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살짝 차가운 인상과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니 세바스찬이 살짝 눈꼬리를 올리더니 바로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물러선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그리고 라이도님.
어찌 되었든 여기는 클라우젠 백작가의 성입니다.
아무리 귀한 손님이라곤 하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라는 거냐.
빌어먹을 애송이가.”
물론 말은 그렇게 해도 라이도 역시 물러서기는 마찬가지였다.
둘 모두 말로만 으르렁거릴 뿐, 딱히 서로에게 악감정을 지닌 불구대천의 원수는 아니라는 것을 시온은 진작 알고 있었다.
애초에 정말 둘이 싸울 거였으면 저렇게 말다툼도 안 한다.
둘 모두가 성깔도 물론이고 정신 구조도 나사 수십 개 씩은 빠져있는 존재들인데 성질 건드리면 바로 검이고 주먹이고 먼저 튀어나가는 노인들이니 말이다.
“일단 세바스찬.
왕가 비밀 수호 기사단의 일원이었다고요.”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변경백께서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요.
당연히 그래야죠.
이 영지의 주인인 분께 정체를 속였다면 그건 분명 큰 죄입니다.”
“···공자님께서는 어떠십니까?”
“정체를 속인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이겁니까?”
톡, 톡, 톡―.
테이블을 두드리며 시온은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해주었다.
사실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놈이 워낙 지랄 맞고 떽떽거리는 걸로 유명한 놈이었으니 일단은 조금 섭섭한 티를 내주는 편이 좋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썩 유쾌하지는 않군요.”
“···그러십니까.”
“하지만 뭐, 각자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도 그렇고, 세바스찬도 그렇고.
그걸 굳이 파헤치고 싶은 마음은 없고, 딱히 당신의 과거사가 궁금하지도 않았으니 그냥 이번에는 넘어가는 걸로 하겠습니다.”
손을 휘휘 내저으며 더는 그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지도 말라는 시온이었다.
덕분에 세바스찬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해야만 했다.
“라이도님.
제가 제자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건 모두가 라이도님을 위한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참신한 멍소리인 게냐?”
“라이도님 말씀대로 저는 애송이, 제대로 뭐 한 것이 없는 애새끼일 뿐입니다.
그런 놈이 갑자기 무투술을 배워서는 강해진다고 생각해보십쇼.
충분히 이상해보이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렇긴 하지.”
“라이도님은 자꾸만 당신을 귀찮게 하는 사람들에게서 떨어지려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신 것이죠.
그런 분이 한 때의 유혹을 못 이기셔서 스스로 위치를 노출시키실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겠습니다.”
그 말에 라이도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모종의 이유로 궁정 마법사 직도 때려치우고 이 변방까지 흘러든 남자다.
자신의 정체가 다른 누군가에게 또 발각되는 걸 꺼려할 것이 확실했다.
“저 역시 라이도님의 가르침이야 당연히 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괜히 라이도님께 누가 되는 일이 벌어질까 걱정되어 제가 물러서는 것입니다.
그러니 혹 기분 나쁘게 생각하셨다면 거두어주시길 바랍니다.”
혀는 물론이고 입술, 이빨 사이사이에까지 꿀을 바른 듯 아주 좔좔 윤이 흐르고 매끄러운 시온의 말들에 라이도는 헛기침만 하며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빠진 말 몇 마디는 천 냥 빚 수준이 아니라 천 명을 홀리고도 남는다더니, 역시나 험한 인생 살면서 혀 놀림을 단련해둔 보람이 유독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시발.
그래도 아쉽기는 하네.’
잊고 있었는데 오늘 일로 확실히 깨달았다.
이 거지 같은 몸뚱이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강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진짜 천지가 개벽하거나 벼락을 맞는다거나, 김유현마냥 환골탈태라도 하지 않는 이상 마나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은 완벽하게 막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설명 안 해줄 생각이냐?”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라이도의 질문에 시온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내 제안을 거절한 이유 말이다.
나를 생각해주었다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거다.
네놈이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도 남을 염려하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런 대단한 결정을, 그렇게 빨리 정할리가 없지 않느냐.”
말해볼까?
사실은 저 마나 고자거든요.
마나를 느낄 수가 없어요.
살려주세요, 라이도님!
라고 하고 싶었지만 시온은 고개를 저었다.
약점은 어느 누구에게도, 설사 가족이라고 해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상대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를 떠나서 굳이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남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남은 문제는 하나다.
과연 어떤 이유를 들이대서 라이도와 세바스찬의 궁금증을 한 방에 날려버리느냐.
“별 이유는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 여태 이룬 게 하나도 없는 놈입니다.
그저 부모를 잘 만난 것으로 먹고 살았던 가축에 지나지 않을 정도죠.”
“공자님.”
“그러니까, 스스로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강해진다면 혼자서 강해지고 싶고, 성장한다면 스스로 고통 받으면서도 길을 찾아서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라이도님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입니다.”
“···!”
시온의 대답에 라이도는 물론이고, 시온의 옆에 서있던 세바스찬의 얼굴이 일순간 흔들렸다.
그 철없던 클라우젠 가문의 장자 녀석이, 그야말로 천둥벌거숭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던 애송이가 갑자기 돌변해서는 강해지고 싶다고 한다.
혼자서 뭔가를 해보고 싶고, 이루고 싶어 한다.
엄청난 변화였다.
아니, 어쩌면 저게 그의 본모습이고 그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몇 겹의 가면을 쓰고 세상과 사람들을 대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시온 클라우젠이라는 녀석이 이런 놈이었다니?’
라이도와 세바스찬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처음으로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여태 병신이라고 생각했던 놈이 사실은 철저하게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 채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절로 오싹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이런 실력자들을 상대로 저리 아무렇지도 않게 스스로를 속일 수 있을 정도라니!
“···공자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러세요, 세바스찬.
가서 편히 쉬고 내일 봅시다.”
먼저 자리를 나선 건 세바스찬이었다.
시온의 방을 나서면서도 흘끗 제 작은 주인을 살피던 그는 아무래도 여태까지 자신이 보아왔던 건 그저 저 대담한 청년의 수많은 가면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가면을 쓴 상대만을 마주하고 또 대해왔다고 하니 살짝 분노의 불길이 치솟기는 했지만 시온에게 향한 분노라기보다는 자신에게 향하는 분노에 가까웠다.
실력자라고, 상대를 바라보는데 있어 자신이 있다고 여겼었는데 이렇게 시원하게 뒷통수를 맞은 적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바로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리히텐 변경백의 사후 클라우젠 가문의 안위를 걱정해야 했는데 이제는 아니겠군.
시온 클라우젠.
벌레 새끼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머리털 하나만 내놓아서 벌레처럼 보이게 해놓고 정작 본체를 숨기고 있을 줄이야.’
아무래도 이제부터 훨씬 더 흥미로운 일들이 가득해질 것 같다고 생각하며 세바스찬은 걸음을 옮겼다.
한편, 세바스찬이 나서자 잠시 동안 말없이 앉아있던 라이도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십니까?”
“그래.
내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한 네놈 얼굴 더는 보기 싫다.”
“그건 다 사정이 있다고 제가 말씀을···.”
“시끄럽다.”
마법 수식을 그리기 시작하는 라이도.
언뜻 보기에는 그저 손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조금만 더 파고 들면 웬만한 마법사들도 이해하기 난해한 온갖 공식들과 계산들로 가득한 마법 수식이었다.
“하나 묻자.”
“듣고 있습니다.”
“내 딸 어떻더냐.”
“···예?”
갑자기 시속 180km 의 직구가 그대로 시온의 머리통에 적중했다.
전혀 예상치 못 한 질문에 어버버 하고 있자 라이도는 인상을 팍, 하고 찡그렸다.
“여인에 대해 물었을 때 남자라는 새끼가 답을 망설이는 것만큼 병신 같은 것도 없다!
네놈이 스스로를 숨기고 남을 속이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곤 하지만 그게 꼭 모든 상황에 유익하지는 않다, 이 망할 놈아!”
“죄, 죄송합니다!
쏘리 썰!”
평범한 노인의 고함이었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살기는 웬만한 칼보다도 더 날카로웠다.
시온은 차렷 자세로 사과부터 건넨 후에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고민 시간이 길어지자 라이도는 시온을 도와주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5초 안에 대답 안하면 오체분시를 해주마.”
미친 새끼!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오체분시를 할 것 같아 시온은 그냥 여과 없이 지르기로 했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고?”
“병신 같은 대답이겠지만, 정말 모르겠습니다.
루시아님을 볼 때 어떤 시선으로, 어떤 감정으로 바라봐야 할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욕 씨게 먹을 걸 각오하고 내뱉은 대답이었다.
혹 면상에 주먹이 날아오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 시발··· 진짜 제대로 난 새끼구나.”
이마를 부여잡은 채 뭔가를 더 중얼거리던 라이도는 수식을 끝마쳤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향하기 전, 시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님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예?”
“특별히 허락해준다는 거다.
내 딸을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
휘리릭!
마나가 요동치더니 순식간에 라이도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바탕 태풍이 몰고 간 후 찾아온 적막.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시온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하··· 시발, 망했네.”
이미 소설 속 원래 시온의 인생과는 충분히 달라졌다.
마주친 적조차 없는 라이도와 대면해서는 제자 제안까지 받았으며, 세바스찬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덤으로 그 괴물들이 자신에게 묘한 시선까지 보내지 않았던가.
이러다가 정말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사건들에 치이고 휘말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느라 당장 눈앞에 뻔히 보이는 구렁텅이에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설의 흐름대로 따라가는 방향을 유지하되, 내 살 길은 내가 강구해야 해.
애초에 시온 클라우젠은 그냥 김유현을 괴롭히는 목표 하나만으로 살던 놈이었으니 제대로 살겠다고 노력한다고 해서 대륙의 역사가 바뀐다거나, 소설 진행에 그리 큰 변화는 주지 않을 거야.’
그리고 혹시나 자신의 언행으로 인해 소설 속 진행이 변한다고 해도 시온은 ‘좆 까세요.’ 라고 외치고 살 길을 찾아 그 방향으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애초에 여기 온 목적이 주인공을 도와야 한다, 뭐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살아남으라는 것이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 떨어진 이유인데 남들 봐줄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까딱 잘못하면 바로 뒈져버리는데, 나 하나 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말이다.
“일단 이 약골 몸뚱이에 마나 고자인 것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데··· 하, 시발···.”
마나를 다루지 못 한다는 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소설 속 시온 클라우젠은 이 약점을 평생 극복하지 못 했다.
사실 극복하겠다는 노력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마나 감응력이 아예 없는 이들은 불치병을 앓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인식되는 수준이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극복하지?
이제부터라도 마나 수련에 박차를 가해봐야 하나?
그러면 쥐털 만큼이라도 뭔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오늘 하루는 살기 위해 혀를 굴렸다면, 내일부터는 몸을 굴려야 했다.
수많은 악역들 중에서도 최악의 인지도를 자랑하던 놈은 단연코 시온 클라우젠이었다.
글러먹은 성격, 구역질이 나는 찌질함과 치졸함, 쓸데없이 많은 질투심과 더러운 욕망들.
덕분에 그가 어떤 적들을 상대로 어떤 고생을 했으며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죽고 싶지 않다.
그렇게 병신 같이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남고 싶다.
‘해보자.
내가 반드시 살아남아서 주인공보다도 더 잘 살아준다.
이 망할 작가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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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륵―.
한창 영지 일에 관한 보고서와 각종 서류들을 확인하고 있는 리히텐 변경백.
갑자기 그의 눈동자가 매섭게 번뜩이더니 옆에 놓여있던 검 자루에 손이 올려졌다.
“아서라.
이상한 목적으로 온 이상한 놈이 아니니까.”
라이도의 등장에 리히텐 변경백은 한숨을 내뱉더니 안경을 벗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라이도님.”
“오랜만이다, 리히텐.
1년 만에 보는 것 같구나.”
“1년이라뇨.
3년이 훨씬 지났습니다만.”
“엥?
그러냐?
이런 시발··· 나 진짜 치매 오는 건가?”
라이도의 혼잣말에 리히텐 변경백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치매에 걸린 노인이 그 복잡하고 어려운 마법 수식을 그림 그리듯 그려서는 대 마법 방어진이 있는 성 내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공간 이동을 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어쩐 일입니까?”
“네게 이것저것 할 이야기가 많아서 말이다.”
리히텐 변경백이 자리를 권하자 라이도는 소파에 대충 몸을 던진 다음 말을 이었다.
“네 아들 놈 말이다.”
“···큰 아이 말씀입니까?”
“그래.
사별한 전 부인에게서 얻은 아들.
시온 클라우젠.”
“갑자기 큰 아이는 왜···.”
“넌 그 애새끼··· 아니, 아니.
그 아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