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93)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93화(93/439)
93―――――
불어 이 새끼들아
결과부터 말하자면, 노바시는 결국 입을 열지 않았다.
당연한 부분이었다.
왕성에서 잡힌 요정도 온갖 회유와 고문 앞에서도 결국 입을 열지 않았는데 코에 탄산 좀 들이부었다고 입을 열면 다른 동지들이 불쌍해지니까 말이다.
“컥!
케헥!
콜록!”
“역시 요정답네.
그 꿋꿋한 자세는 칭찬할 만 하단 말이야.”
에이, 아까운 음료만 다 버렸네.
라고 중얼거리며 남은 탄산음료를 전부 마셔버린 시온.
그리고는 눈물과 콧물, 침과 탄산음료로 범벅이 된 노바시의 얼굴을 어디선가 가져온 천으로 대충 슥슥, 하고 닦아주었다.
“고생하네.
그냥 입 열면 알아서 편하게 해준다니까.
꼭 어려운 길로 가야 하는 건가?”
“콜록, 콜록!
이, 인간 놈!
큭, 콜록!”
분노로 활활 타오르는 노바시의 두 눈동자.
하지만 시온은 거기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손에 들고 있던 천을 확인하더니 ‘어이쿠!’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어, 야.
미안하다.
이거 손수건이 아니라 걸레였네.
지나가던 시녀한테서 아무 거나 집어왔는데 이게 하필이면 바닥을 닦은 걸레였지 뭐니.”
“이, 이 자식!”
“조금 찝찝해도 참아.
고귀하신 요정의 얼굴에 제대로 문질렀으니 소독 잘 됐겠네, 이거.”
그렇게 말하고는 정작 뒤로 걸레를 휙, 하고 내던지는 시온이었다.
시온은 다시 의자에 앉아서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바스찬은 리히텐 변경백에서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
자신의 곁에 남은 건 릴리트와 리시키다, 루시아와 위니.
그리고 김유현이 전부였다.
‘전부 내가 별의별 짓을 다 한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아, 김유현은 빼야하나?
저 놈이 아직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원.’
아무튼 김유현을 제외하고라도 나머지 여인들은 거의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편에 서줄 강력한 우군들이 분명했다.
그에 더해서 여기 모여있는 모든 인원들이 릴리트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 이제부터 그녀가 본체의 힘을 드러낸다고 해도 놀랄 일도 없었다.
“귀 뾰족한 친구야.”
“노바시다, 인간!”
“너도 날 인간이라고 부르면서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실까.
그냥 주둥이 닫고 듣지 그래?
이제부터 내 입에서 나올 말들이 네게는 썩 유쾌하지 않을 미래일 텐데.”
말의 내용은 지극히 장난스러웠지만, 목소리나 거기에서 느껴지는 기세는 결코 장난스럽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무척이나 으스스한, 절로 몸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시온의 모습에 노바시는 입술을 깨물고는 일단 침묵하기로 결정했다.
“미리 말해주자면, 이 다음부터 일어날 일은 네게도 내게도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이라서 말이야.
그냥 이쯤해서 순순히 입을 열면 더 이상의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헛소리.”
“그래.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지.”
시온은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릴리트를 향해 다가가서는 입을 열었다.
“힘든 길을 가겠다고 하네요.
짜증나게.”
“뭐 어쩔 수 없지?
솔직히 이런 부분에서는 내가 전문가잖아.”
“···쯧.”
릴리트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을 함에도 시온은 영 불만이라는 표정이었다.
그 이유를 이미 충분히 알고 있던 서큐버스 퀸은 애써 제 남자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걱정 마.
너와 나처럼 본체로 하는 것도 아니고 원래 내가 살아왔던 것처럼 정신체로 가서 유혹 좀 하는 건데, 뭐.”
“그래도 거슬리는 건 어쩔 수 없죠.”
요정의 입에서 이쪽이 원하는 정보를 꺼내는 방법은 이제 하나뿐이었다.
강압이나 회유가 아니라, 그냥 스스로가 기분이 좋아져서 떠들게 만드는 것.
술이나 약보다도 훨씬 더 강렬하고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바로 앞에 있었다.
“얘는 무슨, 질투 하는 거니?”
“네.
질투하는 겁니다.
어떤 사내새끼가 미쳤다고 제 여자가 애먼 새끼한테 꼬리치는 걸 보고 있겠습니까?”
시온의 투덜거림에 릴리트는 푸훗!
하고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를 비웃기 위함이 아니라, 전혀 상상치도 못 했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아, 나쁜 놈.
진짜 저런 모습까지 보여주면 이 누나가 더 빠질 수밖에 없잖아.’
하도 주변에 여자가 많아서 혹 순위가 밀렸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기우인 모양이었다.
실제로 시온에게서 이글거리는 질투와 분노가 강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갑자기 그냥 죽여 버리고 싶네.”
남자들의 이런 모습을 가끔 보기는 했지만, 자신이 호감을 품고 있는 남자가 이런 반응을 보이니 몸이 배배 꼬이면서도 또 싫지만은 않은.
아니, 오히려 이대로 더 시간을 끌어서 남자가 더욱 애가 타게 만들까 하는 못된 생각까지 드는 릴리트였다.
‘귀여워.
아, 그냥 여기서 한 판 하고 갈까?’
서큐버스의 본능은 그냥 이 남자를 자빠트려서 한바탕 진하게 놀고 가자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 보는 이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전부가 시온에게 연심을 품고 있는 경쟁자들이자 또한 협력자들이기도 했다.
애써 본능을 찍어 누른 릴리트는 대신 시온의 볼에 살며시 입을 맞추는 것으로 대신했다.
“걱정 말래도.
정신체로 저 요정의 머릿속에 침투하기는 할 테지만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
“···흐음.”
“진짜야.
그냥 가서 팔짱만 끼고 호호, 웃어줘도 저 멍청한 요정 놈은 알아서 내 치마를 부여잡고 아는 거 모르는 거 전부 다 토해낼걸?”
“그러면 다행이지만···.”
“내 모든 것,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전부가 다 네 거야.
이건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 그러니까 안심하고 기다리고 있어.
이 릴리트님이 가서 네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 다 토해내게 만들어 줄 테니까.”
릴리트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시온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사실 그녀가 정신체로 요정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그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과 몸을 섞은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들러붙는 장면은 보고 싶지도,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릴리트님.”
“응?”
“혹시나 그놈이 만만치 않고, 자꾸만 릴리트님 덮치려고 하면 그냥 다 때려치우고 나오세요.”
“어··· 괜찮겠어?”
“그놈이 릴리트님의 본체든 정신체든 손가락 하나 건드린다는 것이 제게는 더 참을 수 없는, 남자의 자존심 문제라서요.”
릴리트가 명심하겠다는 대답을 하고 나서야 그녀를 보내주는 시온이었다.
허락도 받았겠다, 양해도 구했겠다, 릴리트는 시온이 앉아있던 의자로 다가갔다.
“···뭐, 뭣?”
처음에는 릴리트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 하고 있던 노바시였지만, 곧 요정족 특유의 감으로 자신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자가 마족, 그것도 서큐버스라는 점을 간파해냈다.
“미, 미친!
인간놈들!
이제는 하다하다 마족과 결탁한 것이냐!
이런 어리석은 놈들!”
“시끄럽고.
아가리 닥쳐.”
말 뿐만이 아니라, 정말로 릴리트가 내뿜은 무시무시한 기세에 노바시의 입이 본능적으로 꽉!
하고 닫혔다.
그 모습에 릴리트는 남심을 사정없이 뒤흔드는 아찔한 미소를 지으며 관능적인 자태로 의자에 앉아서는 노바시의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젠장, 젠장!
이, 이거 풀어!
미친 인간 놈들!
저 여자가 뭔지는 알고 이런···.”
“뭔지 잘 알고 있으니 이런 일을 내게 맡겼겠지?”
보통의 서큐버스였다면 어떻게 저항이라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여인과 시선을 마주한 순간 노바시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저 여인은 자신이 감히 감당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괴물 그 자체라고.
“내 눈을 바라보렴, 아가야.”
“으, 으으으··· 끄으으···.”
점점 몽롱해지다 못해 탁해지는 눈동자.
그와는 반대로 점점 솟아오르는 남성을 바라보며 깔깔거리던 릴리트는 ‘슬슬 나도 가볼까?’ 라고 말하면서 두 눈을 감고 편히 의자에 기대었다.
노바시에게 달콤하면서도 결코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이 들이닥치는 순간이었다.
―
“자, 멋지고 아름다운 요정아?
네 이름을 다시 한 번 말해볼래?”
“···노바시.”
“응응, 좋아.
그러면 정말 여기 있는 우리 리시를 구하려고 화살을 쏜 거니?”
릴리트가 슬쩍 옆에 서있던 리시키다를 옆으로 데려오자 노바시는 멍한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하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밝혀왔다.
‘그러면 왜 화살을 쏜 거지?’ 라고 물으니 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죽이거나, 하다못해 부상이라도 입히기 위해서.
상급 기사는··· 대업을 가로막는 가장 높은 장애물이니까.”
대업이라는 말에 자리에 모여 있던 이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요정이 인간의 목숨을 노리면서까지 실행하려고 해던 것일까.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볼래?
말해주렴, 으응?
말해줘.
노바시.”
릴리트가 슬쩍 자신의 숨결을 노바시 근처에서 토해내며 향을 맡게 하자 노바시는 몸을 떨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말을 이어갔다.
“상급 기사가 있으면, 누디아의 군세가 이곳을 돌파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중 하나를 전력이탈 시키기 위해 그녀를 노렸다.”
“그랬구나.
응응, 고마워.
노바시,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볼까?
산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과 너희들이 무슨 연관이 있는 거니?”
“그, 그건···.
그건···.”
노바시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가 풀렸다가를 반복했다.
릴리트의 매혹에 넘어갔음에도 저 정도 반응이라면 꽤나 중요한 정보였던 모양.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릴리트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듯 노바시의 손을 붙잡고는 슬쩍 자신의 허벅지를 쓰다듬게 했다.
“끄윽··· 끄어어···.”
“답해줘, 노바시.
몬스터들과 너희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말이야.”
결국 노바시는 서큐버스 퀸의 매혹을 이겨내지 못 하고 술술 내용들을 불고 말았다.
천족들이 이 땅에 비로소 본모습을 드러내는 때는 대륙이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로 넘쳐나는 시기.
그리고 자신들은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모든 일들을 ‘대업’ 이라 칭하고 천족들의 등장을 위해 필요한 모든 행동을 다 하는 중이라고 말이다.
“그러면 정리해보자.
누디아의 군대가 다시 여기로 몰려올 테고, 그러는 동안 너희는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불안을 야기하기 위해 몬스터들을 반대편 산맥에서부터 끌어 모아서 계속 영지로 내려 보내고 있었다.
이거지?”
“그, 그렇 ···습니다.
조만간 누디아의 군대가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고, 그에 맞춰서 최대한 뒤를 노리며 모든 연락과 지원을 끊는 것이 우리의 임무···.”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시온은 얌전히 서있던 리시키다에게 명령을 내렸다.
“리시.”
“네, 주인님.”
“저 뾰족귀 다시 재워라.
이왕 재울 거 좀 아프게.”
시온이 무슨 뜻으로 저런 말을 했는지 눈치를 채지 못 할 여인이 아니었다.
리시키다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릴리트만을 바라보며 헤, 하고 있는 노바시의 앞에 다가섰다.
“릴리트님.”
“응?”
“정말 아무 일 없었죠?”
“얘가 진짜.
걱정 마.
내가 뭐 남자랑 못 해서 안달 난 여자인줄 아니?
다 먹고 살려고 했던 짓들이고,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어서 너 빼고는 다른 남자한테 관심 끊었어.”
릴리트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시온은 노바시를 죽일 듯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에 릴리트는 속으로 ‘으흐흐!’ 하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내뱉었다.
‘아이, 진짜 너무 귀여워!
다른 때에는 나조차도 움츠러들 정도로 빈틈이 없어보이던 녀석이 갑자기 이런 구석에서 질투를 하네?
아으으!
그냥 콱 깨물어주고 싶다!’
뻐억!
그러는 사이 어디서 수박이 쪼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릴리트가 뒤를 돌아보니, 리시키다가 요정의 정수리를 무슨 과일 쪼개기 하듯 손나로 냅다 후려친 장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 주인님.
혹시 너무 세게 친 걸까요?”
“괜찮아.
뒈지면 저놈 잘못인 거지.”
그렇게 말하며 슬쩍 릴리트의 허리를 감싸 안는 시온이었다.
덕분에 릴리트는 헤헤, 하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면서 슬쩍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루시아나 리시키다가 역시 릴리트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부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과 달리, 고양이 한 마리는 시온에게 매달려서는 앙칼지게 울어대고 있었다.
“냐오옹!
뭐, 뭐하는 거야!
둘이 떨어져라!
야오오옹!”
물론 릴리트는 어림도 없다는 듯 더욱 시온에게로 깊이 안겨들었다.
위니가 잔뜩 흥분해서는 급기야 웨오오옹!
하고 울어댔지만, 이번만큼은 시온도 릴리트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보다 시온.
정말 누디아의 군대가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할 거야?”
“뭐, 당연히 막아야죠.
다행히 몬스터들은 우리가 진작 밟아두었으니 문제될 것 없고요.”
“시온에게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인간들 참 웃겨.
그만 싸우자고 웃으면서 악수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뒤통수를 치겠다고 하는 거람?”
“변화무쌍한 점이 인간들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렇게 말하며 시온은 현재까지 알아낸 사항들을 이제 공식적으로 리히텐 변경백에게 알리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원래 소설에서도 누디아가 클라우젠을 다시 들이치긴 했지.
하지만 그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바수라 백작을 완벽하게 밟아두어서 방파제 하나 정도는 마련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이 새끼가 배신이라도 때린 건가?’
자신이 쥐고 있는 바수라 백작의 약점이 몇 개인데 그가 함부로 움직인단 말인가 싶다가도, 미친 척 하고 그냥 들이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시온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는 이딴 식으로 나오면 상당히 피곤하다는 짤막한 서신을 써서는 바수라 백작에게로 보내기로 했다.
당신이 비협조적으로 나오겠다면 이쪽도 그냥 다 같이 죽자, 라는 심정으로 그쪽의 비밀을 전부 풀겠다고 하면서.
“갑자기 이 남자는 또 왜 이러는 게야!
내가 뭘 잘못 했다고!”
덕분에 아무 것도 모른 채 영지의 자금 복구에만 매달리고 있던 바수라 백작만 머리를 감싸쥐며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단순히 얌전히 있다가 불똥이 튀어서 화상을 입은 수준이 아니라, 그대로 불이 들러붙어 머리가 홀라당 다 타버린 것과 비슷한, 그의 입장에서는 억울해 미칠 정도의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