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94)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94화(94/439)
94―――――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라
“···하.”
시온에게서 모든 일의 전말을 듣게 된 리히텐 변경백의 반응은, 당연하게도 기가 막히고 믿을 수가 없다는 기운이 가득 담긴 장탄식이었다.
요정들이 인간들을 천히 여기고 섞이는 것조차 거부하며 항상 자신들의 밑으로 보는 것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왕성 습격도 모자라서 히스파냐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 클라우젠 영지를 고립시킬 목적으로 몬스터들을 몰아넣었고, 더 나아가 누디아를 움직여 이곳을 무너트리려 한다니!
“이 아비는 지금 이 이야기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나.”
“정 의심이 가신다면 취조실에 있는 요정 놈에게 가시면 될 겁니다.”
“그게 아니다.
네 말에 의심을 가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에 잘 와 닿지 않는다는 소리일 뿐이지.
하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리히텐 변경백의 말에 시온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런 반응은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마족’ 하면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고, ‘수인’ 하면 야성미를 떠올리며.
‘난쟁이’ 하면 장인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들이 바로 대륙 위의 인간들이다.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렇게 듣고 그렇게 배웠기에 당연하게도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고정 관념이니까.
‘그런 부분에서 요정은 다른 종족들에 비해 인간들에게 꽤나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천족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야.’
비록 재수 없고, 과하게 도도하며 자신들 잘난 맛에 사는 늙은이들이지만.
또한 고귀하고 아찔하게 매혹적이고 아름다우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숲의 종족.
인간들이 생각하는 요정에 대한 생각이었다.
아무리 인간을 천하다고 여겨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계획을 짜서 싸그리 쓸어버리겠다는 계획을 가질 정도로 악한 종족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 인식이 오늘부로 확 뒤집어졌으니 놀랄 만도 하지.
사실 루시아도 당황한 모습을 조금은 보였으니 말이야.’
속으로 후, 하고 한숨을 내뱉은 시온은 리히텐 변경백을 가만히 응시했다.
요정의 일도 문제지만 당장 더 큰 문제가 눈앞에서 벌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바수라 백작에게 서신을 보냈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뭐라고 답이 왔더냐.”
“본인은 전혀 모르는 일, 자신이 왕성에 그 어떤 소식도 보낸 적이 없고 몬스터의 잦은 습격에 대한 소식을 듣고는 오히려 저희 영지를 지원이라도 할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너는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냐?”
그 질문에 시온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휴전 협상을 맺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누디아와 히스파냐는 불편한 관계다.
그 누디아의 바수라 백작이 몬스터의 침입을 겪고 있는 클라우젠 변경백령을 도우려고 했다.
만약 아무것도 없던 때에 그런 말이 나왔다면 시온은 당장 그를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바수라 백작은 분명 온갖 약점을 잡힌, 물 밖에 나온 물고기나 다름없는 신세다.
정말 엄청난 공을 세우지 않는 이상, 아니.
엄청난 공을 세운다고 해도 그 정적들에 의해 바로 밀려날 정도로 엄청난 약점 말이다.
‘물론 그 약점이 드러나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클라우젠을 칠 수 있기는 하지.
뭐 책이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부분도 아니다.
그래도···.’
만약 바수라 백작이 누디아에 충성을 다하는 귀족이었다면 시온도 경계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과 같이 ‘자기 스스로’를 더 아끼는 사람이었다.
애당초 소설에서 드러난 그의 모습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못해 이기적인 남자.
나라보다는 자신의 영지와 제 권위, 재물만을 생각하는 귀족.
그런 자신의 귀족 인생을 순식간에 끝장낼 수 있는 약점을 틀어쥔 쪽이 바로 이쪽인데 미쳤다고 그런 비협조적으로 나올 리는 없었다.
“일단 누디아 측 움직임에 대한 대략적 첩보가 날아들기 전까지는 안심을 할 수가 없겠구나.”
리히텐 변경백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몇 달도 안 되는 기간 사이에 전쟁, 협상, 왕성 습격 사건, 시온에 대한 암살 기도, 노예 시장, 몬스터들의 영지 습격, 그 배후에 요정들이 있다는 것까지.
당장 뒷목 잡고 쓰러지지만 않아도 다행일 정도였다.
하지만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는데, 이전까지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몬스터들의 습격을 시온이 깔끔하게 정리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시온.
그리핀들을 생포했다고 들었다.”
“맞습니다, 아버지.
5마리로 많지는 않은 숫자이지만 충분히 쓸 만한 놈들이죠.”
“쓸 만하다?
혹 그 녀석들을 길들이려는 것이더냐?”
“일단은 그렇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뭔가 대단한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아쉽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리히텐 변경백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시온의 말에 수긍만 할 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미 대륙의 인간들이 비행 몬스터를 길들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던 전적이 있으니까.
물론 대부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포기했지만.’
하늘을 나는 것은 단순히 남자의 로망, 아니 모든 인간의 로망이라고 했던가.
땅에서 생활하는 인간들은 묘하게도 자신들이 닿을 수 없는 곳을 정복하는 것을 매우 즐기는 종족이었다.
작가는 그런 인간의 욕구를 소설에서도 그대로 투영했고, 지금 시온이 생각하는 구상 이전에 이미 많은 이들이 비행 몬스터를 이용한 공중 이동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었다.
특히나 하늘에 있다는 건 전쟁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것이었기에 더더욱 많은 관심과 갖가지 지원들이 잇따랐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못해 참담한 수준이었다.
‘비행 몬스터를 잡아서 길들이는 것도, 알이나 새끼를 데리고 와서 키우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지.
애초에 비행 몬스터들은 천적을 피해 깊은 산 속의 절벽에서나 생활하니까.’
몬스터로 가득한 산맥을 뚫고 들어가 비행 몬스터 하나를 잡기 위해 드는 인력을 계산해보니, 1:100이라는 기절초풍할 만한 교환비가 짜잔!
하고 튀어나왔다.
심지어 이 말도 안 되는 교환비는 몬스터를 ‘잡기’ 위한 것에 대한 계산이지, 그걸 또 무사히 데리고 와서 사람 말을 듣게 키우며 조련하는 비용은 완벽히 제외된 부분이었다.
성체를 포획하는 건 거의 불가능, 설사 포획한다고 해도 이미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극에 달했을 확률이 아주 높기 때문에 성체는 당연히 아웃.
그렇다면 아직 새끼인 놈이나 아예 알을 가져와서 키워야 하는데, 거기서 드는 비용이 또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 뿐이야?
그렇게 별 지랄을 해서 아무리 길을 잘 들여놓아도, 지상 근처에 내려오기만 하면 바로 궁사들이나 마법사들에게 격추 당할 위험이 너무 높았지.’
몬스터를 손에 넣는 것부터 시작해서 먹이고 키우며 교육을 시켜놔도 정작 전장에서 활약할 부분이 너무나도 미미했다.
그에 더해서 비행 몬스터들은 정말 대형 개체를 제외한다면 당연히 몸이 가벼워야하기 때문에 사람이 올라탈 공간도 얼마 없었다.
아무리 좁혀도 두 명이 앉을 자리가 한계, 그것만으로는 유의미한 전력으로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남은 건 운송 수단, 아니면 정찰용인데 둘 모두 비행 몬스터를 잡아서 관리하고 드는 비용에 비해서 너무 손해가 막심했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경우가 딱 비행 몬스터 관련 문제였다.
뭔가 상당히 있어 보이고, 또 있으면 좋을 것 같으면서 적에게 위압감을 줄 수도 있는 전력.
하지만 막상 기대하고 뚜껑을 까보니 이건 무슨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냐,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최악의 물건이었다.
“해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그리핀에 대한 관리 및 처우 결정은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몬스터들을 격살하고 또 생포한 건 네 공이다.
당연한 말을 하는구나.
네가 원한다면 그 위에 태울 병사들이나 기사도 뽑아줄 수 있다만.”
“그건 제가 따로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여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던 건 비행 몬스터에 병사들이나 기사를 태워서 일종의 기병들처럼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거기에 날아다니는 기사단이라고 하면 다른 걸 다 제쳐두고 일단 폼이 확실히 나니까 말이다.
‘지랄.
뭐 폼이 밥이라도 쳐먹여 주냐.
실용성이 더 중요한 법이지.’
시온은 저 소중한 5마리의 그리핀을 그렇게 멍청하게 굴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비록 수도 적고 태울 수 있는 인원도 둘이 한계이며 키우고 훈련시키는 데에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지만, 그래도 시온은 후일을 위해서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일단 바수라 백작에게서 뜯어낸 돈이 아직 상당히 많이 남아있거든.’
가장 큰 난관인 돈 문제는 고마운 4백만 디르의 남자, 바수라 백작 덕분에 일단 패스.
그렇다면 다음으로 저 까칠한 몬스터의 등 위에 탈 사람들을 구해야 했다.
“아버지.
영지에 이런 내용의 포고문을 변경백의 이름으로 알리실 수 있겠습니까?”
“내 이름으로?
무슨 포고문이기에 그러는 것이더냐?”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 로망 가득한 이를 뽑는다고 말이죠.”
―
리히텐 변경백에게 일련의 보고를 마친 후, 시온은 자신에게 마련된 집무실로 향했다.
이제 왕성의 정식 재가도 받았으니 클라우젠 변경백령의 후계자로써 공식적으로 업무를 맡게 된 것이었다.
‘일단 첫 단추는 어떻게 잘 채운 것 같네.
시펄, 조금만 늦었어도 일이 아주 씹창이 날 뻔 했잖아.
염병할 요정 놈들, 닭둘기 천족 새끼들.’
이마를 감싸쥐고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뱉자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일명 ‘시온 사단’ 의 주축인 릴리트가 슬쩍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시온?”
“글쎄요···.”
“주인님.
모든 사실을 왕성에 고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리시, 그랬다가 요정 전체와 전쟁이라도 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왕성과 클라우젠 변경백령을 공격한 이들이 원하는 그림이 될 거예요.
아까 들어보니 모든 요정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일을 벌이는 건 아니라고 했잖아요?”
“냐오옹.
뾰족귀들은 대부분 숲에 살잖아.
인간들이 요정을 놔두는 게 숲으로 들어가면 희생이 너무 커져서 그러는 거 아니었어?”
그래, 바로 이런 점을 노리고 일을 벌이는 것이었다.
급진파 놈들 입장에서는 인간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다른 종족을 의심하다가 결국 창과 칼을 빼들고서 전쟁을 일으키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동족들에게 그 창칼이 향하면?
그 때는 아아, 알고 보니 마족들에게 혹한 놈들이 그런 짓을 벌였던 것이었습니다!
마족이 나쁜 놈이에요!
마족, 마족, 마족!
라고 지껄이면서 화해의 손길도 좀 내어주고 분위기 좀 맞춰주면 다들 넘어갈 테지.
천족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뒤집어씌운 마족은 나쁜 놈들이다 라는 프레임이 지금도 아주 완벽하게 유지 중이니까.’
이래서 시온이 함부로 입을 열지 못 하는 것이었다.
요정들 중 일부가 지랄하는 것?
인간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벌이는 추악한 짓들이 천족을 위한 것이다?
이건 별개의 문제다.
‘요정이 알고 보니 나쁜 놈이었다.’ 와 ‘천족이 알고 보니 나쁜 놈이었다.’ 라는 말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어마무시했다.
‘빌어먹을.
이거 생각보다 더 힘든데?
천족들에 대한 환상이 너무 깊게 박혀있어.
이걸 깨트리려고 하다가 역으로 내 뚝배기가 깨질 수도 있다고.
염병할.’
자신의 목표는 잼을 발라 먹냐, 안 먹냐로 치고받고 싸우는 뾰족귀들이 아니다.
그 뒤에 숨어서 자애로운 미소로 스스로를 포장한 채 뒤로는 호박씨를 까고 앉아있는 속이 시커먼 비둘기 새끼들이지.
그리고 자신의 입에서 ‘천족 개새끼!’ 라는 말이 튀어나와도 최소한 주변인들이 그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고 ‘정말?’ 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준의 환심을 사는 것이 현재 시온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김유현은 벽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낀 채 이쪽을 주시 중이었다.
현재 시온이 보유한 카드 중 가장 강력한 패, 그러나 과연 마음대로 움직여줄 지는 미지수인 소설 속 진짜 주인공.
그를 바라보던 시온은 문득, 소설 내용을 떠올리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만.
굳이 내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나?’
소설에서 처음 천족이 흑막이라는 걸 알아챈 이가 바로 김유현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어떻게든 알리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대전쟁의 여파로 늦어도 너무 늦은 때였고, 당시 그의 명성이 꽤나 높았음에도 그 말 한 마디에 사방에서 적이 생겨날 정도였다.
‘이번에 김유현의 명성을 원래 소설보다도 더 빠르고, 더 높게 쌓고 천족들의 진면모를 더 빠르게 알게 만든 다음에 녀석이 나 대신 먼저 입을 열게 하면···.’
나쁘지 않은데?
자신은 그를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우군 포지션으로 위장하면 되고 말이다.
‘어차피 저 놈은 태생이 뼈 빠지게 개 고생하는 주인공이지.
어차피 대륙을 구하는 건 내가 아니라 저 놈이고.
미리 고생 좀 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 없잖아?
오히려 빨리 하면 더 좋을 수도 있고 말이야.
내가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아예 없었네?’
김유현이 들으면 ‘뭔 개소리야!’ 라고 비명을 질렀을 테지만, 시온에게 그의 의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애초에 주인공조차 시온에게는 자신의 생명 유지를 위한 장치에 불과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지만 말이다.
‘그래, 유현아.
어차피 고생할 거 지금부터 미리 당겨서 하자.
그래도 너 다행인 거다?
형 같은 든든한 원군이 있으니 소설 내용처럼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오직 스스로 난관을 헤쳐 나가는 정도는 아닐 테니까.
이 형님이 든든하게 받쳐줄 테니 우리 유현이 고생 좀 더 하자!’
말년 병장에게 술 먹이고 부사관 지원을 받아내는 행보관보다도 더 악랄한 시온이었다.
악마 같은 남자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유현은 시온을 바라보며 또 그가 어떤 혜안을 지니고 일을 계획할지 궁금해 하는 중이었다.
···불쌍한 놈.
―――――――작품 후기―――――――
전작에 비해서 조금이나마 성장한 모습을 보인다는 댓글들이 보이네요.
다행입니다!
전작은 제가 생각해도 너무 엉망인 점이 많아서···.
조금씩이라도 더 나아지는 모습 보여드리려고 노력 많이 했습니다 ㅠ
앞으로도 더 발전하는 작가놈이 되겠슴돳!
이런 작가놈 힘이나 내라고 추천이라도 넣어주시면 감사합니다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