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Regeneration Life RAW novel - Chapter (95)
애독자의 갱생 라이프-95화(95/439)
95―――――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라
다음날 아침.
시온은 라이온 기사단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기사단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공자님.
몇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갑자기 그런 훈련은 왜 주장하시는 겁니까?
아무리 들어도 적을 상대하는 통상적인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맞습니다.
우리가 여태 상대하던 통상적인 적을 상대하는 방법이 아니죠.”
시온의 대답에 라이온 기사단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라고 중얼거리던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공자님은 비행 몬스터와의 교전을 우려하고 계시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시온.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비행 몬스터와의 교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닭둘기라고는 해도 일단 공중 체공이 가능한 천족들에게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수도 적고 아직 어린놈들이라 어렵지 않게 제 기사의 선에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놈들이 성체로, 거기에 더 큰 무리를 이루어서 공격한다면 그 때는 최악의 난전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요정들이 또 저희 영지를 그런 방식으로 유린코자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확언할 수 없죠.”
히스파냐와 누디아의 전쟁을 벌이게 하려면 좋든 싫든 클라우젠을 흔들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 번에는 이보다도 더 완벽한 계획을 짜서 몰래 일을 벌일 수도 있는 악의 무리들!
‘대비해야지.
내가 언제까지고 클라우젠에만 붙어있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당장 북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고, 위니와 함께 수인들을 찾아가기도 해야 한다.
그 뿐인가?
차후 급진파 요정들의 술수에 넘어가 또 헛짓거리를 하는 남쪽의 해적들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무슨 축지법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클라우젠을 떠날 수밖에 없는 시온이었다.
‘김유현한테만 맡겨두기에는 불안하지.
애초에 이놈은 사건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일이 벌어지면 어어어?
하는 사이에 휩쓸렸던 놈이니까 말이야.’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이미 급진파 요정들과 천족들이 원하는 대로 대륙 대전쟁의 초읽기에 들어갈 것이고, 마족은 마족대로 거의 대부분이 몰살될 것이다.
이후 천족들이 ‘이 몸, 등장!’ 하고 나타나서는 모조리 불태워주겠어!
라고 외칠 때 김유현과 몇몇 실력자들을 제외하곤 천족들에게 말 그대로 ‘삭제’ 될 테고 말이다.
‘그래.
내가 성소에서 나오는 것 까지는 허락해 드릴게.’
시온의 목표는 명확했다.
가능한 선에서 대륙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인다.
어차피 천족의 등장은 작가 공인 ‘필연적인 것’ 이니 전부 막겠다고 자신이 개고생을 하거나 피똥 쌀 필요는 없다.
더해서 천족 놈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까지 급진파 요정들의 지랄병은 결코 낫지 않는다.
막으면 더 큰일을 벌일 것이고, 그마저 막으면 더 한 일을 꾸밀 것이다.
그럴 바에 그냥 적당히 당해주어서 천족 놈들이 좋다고 뛰쳐나오게 만드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다만, 그 이후의 부분에서는 소설과 다르게 진행되면 된다.
쓸려나가지 않은 대륙의 전력, 실력자들, 일명 ‘네임드’ 들.
그 전력들을 최대한 보존해서 천족과의 전쟁에 투입하면 그만이다.
천족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무적도 아니고, 마족들한테도 필승을 장담하지 못 해서 요정들을 조종해 마족들에 대한 극렬한 반감을 조장하여 그들을 멸망 직전으로 치닫게 하지 않았는가.
‘마족과 함께 투톱을 달리던 강자들, 거기에 선동과 날조를 이용해 먹을 줄 아는 잔머리에 잔뜩 이용해먹고 더는 받아먹을 게 없으니 바로 내던지는 냉정함.
키야!
이 정도면 세계관 최강자라고 불려도 모자람이 없는 종족이네.
천족들에게 아쉬운 부분이라면, 김유현의 성장 속도를 전혀 예상치 못 했다는 것이겠지.’
굳이 비유하자면 천족은 사파리의 사자이고 김유현은 한창 성장 중인 코끼리라고 할 수 있겠다.
그저 자신들의 수많은 먹잇감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놔두었더니 어느새 미친 듯이 성장하여 역으로 자신들을 깔아뭉개고, 발로 차고, 코로 후려치는 감당불가의 적이 된 것이다.
“백작 각하께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군에 관한 일은 라이언 기사단장과도 상의하는 편이 맞을 것 같아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죠.”
“아, 그렇군요.
배려에 감사합니다.”
라이언 기사단장이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답했다.
변경백이 맡아야 할 일들이 워낙 많아서 군에 관련된 부분은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면 기사단장이 맡아서 처리하곤 했는데, 시온이 그걸 기억하고는 굳이 그에게도 찾아와서 의견을 내놓은 것이었다.
‘예전의 그 오만방자하던 모습도 결국 연기셨구나.
하아, 마나만 다루실 줄 알았다면 얼마나 완벽한 주군이 되셨을까.
통탄스럽구나!’
오늘도 오해가 나날이 쌓여가는 시온이었다.
“그리고 기사들의 훈련에 이제 리시, 그러니까 리시키다 암셸 경도 넣을까 합니다만.
괜찮겠습니까, 기사단장?”
“누디아에서 저희 측으로 투항한 그 여기사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상급 기사라고는 해도 엄연한 ‘적국’ 의 중요 인물이었던 여인이다.
그런 사람을 함부로 군 훈련에 넣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고, 그걸 시온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호위 기사로 두는 것에만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디아는 완벽하게 버린 채, 새로운 주인을 모시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확신을 모두에게 주었고, 실제로 클라우젠 영지를 구하는 데에 결정적인 공훈도 세웠다.
이 정도면 누디아에 대해서 적개심을 보이던 기사들이나 병사들도 리시키다에게 거부감이나 적의를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가 공자님께 건의를 드릴 참이었습니다.
상급 기사가 언제까지고 눈칫밥을 먹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누디아의 기사와 겨뤄보고 싶었으니 말이죠.”
역시 무인 기질을 지닌 기사단장답게 리시키다와 대련부터 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아, 한 가지 더.”
“예?”
“김유현.
그 남자도 같이 훈련시키세요.”
“···그 남자는 공자님의 사람도 아니고, 클라우젠과도 연관이 없는 사람 아닙니까?”
“정확히는 속한 곳도 없고, 집이나 고향이라고 부를 곳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참에 속할 곳, 돌아올 곳을 만들어주는 편도 좋겠지요.”
돌려말하기는 했지만, 결국 그를 영입하자는 소리였다.
리시키다 때와는 달리 라이언 기사단장은 바로 답을 내놓지 못 했는데, 그 이유로는 김유현의 다분히 독단적인 경향을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쪽 걱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
실제로 아직 이 당시의 김유현은 차도남을 넘어 까도남에 상당히 거칠기까지 했으니까.
그나마 북부로 가서 그 여자를 만나면서 조금씩 부드럽던 제 모습을 찾아갔었지.’
어차피 조만간 북부로 향할 것 같으니 그 때 김유현을 길들이기로 작정한 시온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김유현과 대화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라이언 기사단장이 걱정하는 부분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요.
어떻습니까?”
“그러시다면 저야 감사드릴 일이죠.”
리시키다와 김유현이 클라우젠에 자연스레 섞이면 시온 자신에게도 아주 좋은 일이었다.
애초 이 영지의 후계자는 자신이고, 리히텐 변경백이 물러나면 그 자리를 자신이 이어받을 테니 실력자들이 미리 배치되는 것은 무조건 이로운 일임이 분명했다.
“공자님.
제가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그리핀들에 관한 것입니다.
자칫 기분이 상하실 수도 있음을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
굳이 기분이 상할 수 있다고 운을 떼는 것을 보니 역시나 비행 몬스터를 운용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온은 말해보라는 듯 라이언 기사단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히스파냐에서도, 그리고 누디아에서도 예전부터 비행 몬스터를 이용해보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리핀, 와이번 등이 그 대상이었지요.
하지만 결국 전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네.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자금부터 시작해서 실용성, 운용성, 유지성 모두 탈락이었으니까요.
단순히 전투용 부적합 판정이 아니라 아예 운용 불가 판정이 나왔다고 했죠.”
“그렇습니다.
성체를 생포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고 사람의 말을 따르도록 훈련시키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죠.
그런 점에서 이번에 공자님이 포획하신 그리핀 아성체들은 아직 어린 녀석들이니 인간에 대한 경계심을 낮출 수도 있고 훈련도 어느 정도 가능할 겁니다.”
희망적인 사항을 말했으니, 이제부터가 본론일 것이다.
계속 말하라는 뜻으로 시온이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자 기사단장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일반 병사들도 미약하게나마 마나를 다루고, 마법사라는 강력한 천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간신히 길들여서 힘들게 훈련시키고, 사람을 위에 태운다고 해도 화살 몇 십대와 마법 몇 발이면 떨어질 확률이 너무나도 높습니다.”
“그렇겠죠.
이쪽은 살과 뼈, 피로 이루어진 생명체니까.”
“정찰, 혹은 운송 따위의 임무를 맡긴다고 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들어가는 자금이 너무나도 어마어마하죠.
그리고 무엇보다 수도 너무 적습니다.
다섯이라면, 당장 뭔가를 해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인 소수입니다.”
모든 것이 이성적으로 바라봤을 때 구구절절이 맞는 말들뿐이었다.
대놓고 반대하는 의견임에도 기분이 나쁠 수가 없을 정도로.
라이언 기사단장조차 말을 해놓고 혹 자신의 작은 주인인 시온이 혹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을까 조금은 걱정이라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냐고?’
아니, 전혀.
그럴 리가.
오히려 자신 주변에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이가 군사 부분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이고 또 안도감이 드는 시온이었다.
‘시벌탱!
존나 다행이다!
믿고 있었다고, 기사단장!’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놈은 뛰어난 적이 아니라, 멍청한 아군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 남자는 그런 멍청한 아군이 아니었다.
오히려 제 주장을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제법 뛰어난 아군이었다.
“라이언 기사단장.”
“네, 시온 공자님.”
“그 말은 내가 짧은 생각으로 일을 벌이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공자님을 깎아내리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다만 저는 비행 몬스터와 관련해서 제가 알고 있고, 또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숨김없이 전부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흠.
그렇습니까?”
시온은 살짝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곤 라이언 기사단장을 응시했다.
그 모습이 어떻게 보면 상당히 건방져 보이기도 하지만, 현재 그의 사회적 지위나 여태 보인 활약들과 능력들이 겹치니 건방지기 보다는 상당히 위협적으로 비쳐졌다.
“···.”
라이언 기사단장은 혹 시온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져도 감내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기사단장에게 무척이나 불편한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라고 해서 그 부분을 모르거나 무시한 채 일을 진행하겠습니까?
명색이 전쟁영웅, 클라우젠의 승리를 이끈 주역 중 하나입니다.
기사단장이 그리도 나를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니 조금은 속이 상하는군요.”
“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어찌 공자님을···.”
“농담입니다, 농담.”
손을 휘휘 내저은 시온은 팔짱을 끼곤 창밖을 바라보았다.
성 너머, 클라우젠의 근간이 되는 영지민들.
그들이 지내고 있는 도시와 그 모든 것을 지켜주는 견고한 성벽, 그 너머 넓게 펼쳐진 밭과 변경백령의 영지들.
“기사단장.전쟁의 판도를 가르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
갑작스럽다면 갑작스러운 질문.
라이언 기사단장은 잠시 시온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어 그에 답했다.
“지휘관의 역량, 병사들의 수준, 그리고 병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하네요.
아주 정확한 답변입니다.
네.
그런 대답이 나와야 응당 군 부분을 책임지는 이라고 할 수 있죠.”
“가, 감사합니다.”
“다만, 내 부족한 식견으로 볼 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봅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싸우는 장소하며 때와 시간, 그리고 예비 전력의 유무와···.”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입니다.
기사단장.”
여전히 시선은 창 밖 풍경에 둔 채, 시온이 말을 이었다.
“거짓된 정보로 혼선을 주고, 과장된 소문으로 싸우기도 전에 전력을 이탈시키는 것.
개인이라면 충분히 간파할 수 있는 속임수.
하지만 전쟁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단체와 단체가 맞붙는 상황에서는 산들바람만 불어도 그게 태풍이라고 부풀려지는 것은 아주 쉬운 일.
산들바람을 그저 산들바람으로 끝내느냐, 아니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태풍으로 부풀리느냐.
난 그것이 전쟁의 판도를 가르는 중요한 수라고 봅니다.”
전쟁에서, 아니 모든 ‘사건’ 속에서 뭔가가 치명적이고 위협적이며 효율이 좋을 필요는 없다.
화려하고, 과장되고, 내실이 없어도 무방하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 요란함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단 몇 달이기는 했지만, 영화 촬영 현장에서 엑스트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시온이다.
특수 효과가 난무하는 현장을 바라보며 사람 정신을 이보다도 더 확실히 뺄 수가 없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이후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었을 때, 시온은 그 영화를 관람했다.
그 때 옆에서 같이 그 영화를 보던 커플이 있었는데, 영화 상영이 끝난 이후 그들은 ‘스토리가 너무 조잡스럽고 개연성도 엉망이다!’ 라고 툴툴거렸다.
하지만 정작 그 커플이 엉망이라고 까 내리던 영화를 볼 때, 그들이 입을 벌린 채 장면에 몰두했었다는 것을 시온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지나고 나서야 빈틈을 발견했다지만, 정작 그 사건을 직접 마주했을 때에는 온갖 화려하고 시끄러운 정보에 뇌의 사고가 멈춰버린 것이다.
‘내가 잘 하는 것을 해야지.
하늘과 땅을 뒤덮는 지략 따위는 필요 없어.
그냥 사람의 눈과 귀를 가리는 정도면 충분해.
그 정도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거?
당연히 쌉가능 아니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