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202
상남자 202화
유현은 피식 웃으며 그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가냘픈 그의 몸이 번쩍 들렸다.
툭툭.
유현이 옷을 털어 주며 말했다.
“사람들이 오해하겠네요.”
“…….”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유현은 그가 김영길 과장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그러곤 깍듯이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혹시 압니까? 제가 여기 파견 올지요.”
“…….”
“그땐 부디 오늘 일 잊고 반겨 주십시오.”
“너, 너…….”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선임님.”
미소 지은 유현이 발걸음을 이었다.
저벅저벅.
등 뒤로 어금니를 딱딱거리며 뱉는 소리가 들렸다.
“두, 두고 보자고.”
어쩔 건데?
오히려 원하는 바였다.
그때, 비상계단 아래층에서 귀를 쫑긋거리고 있던 두 사람이 있었다.
선행제품팀 1파트 맹기용 선임과 김선동 주임이 그 주인공이었다.
비상계단 문이 열리고 유현이 빠져나간 걸 확인한 맹기용 선임이 실소를 뱉었다.
“와.윤 선임 제대로 물 먹었네.그렇지 않냐?”
“네.그, 그러게요.”
“크크.아, 웃겨.상기(상품기획팀)에 사이코가 들어왔어.”
“…….”
김선동 주임이 큰 눈을 껌뻑이자, 맹기용 선임이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인마, 너도 쫄았어?”
“아, 아뇨.”
“앞으로 좀 재밌어지겠어.”
맹기용 선임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어깨를 들썩였다.
김선동 주임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반면, 자리에 주저앉은 윤기춘 선임은 속이 타올랐다.
도저히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유현과의 대화를 곱씹던 그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곧바로 팀장을 찾았다.
“팀장님, 이번에 우리 담당 차례 아닙니까?”
“다짜고짜 그게 무슨 말이야?”
“한성타워 쪽 애들 파견자 말입니다.원래 매년 울산 공장에 오지 않습니까?”
“그게 왜?”
“아니, 지난번에 3담당이 받았으니 이번에는 우리 차례잖아요.”
다짜고짜 파견 이야기를 꺼내는 윤기춘 선임을 보며 김호걸 수석이 황당한 듯 물었다.
“왜? 받고 싶은 사람 있어?”
“네.꼭 받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윤기춘 선임의 눈에 불꽃이 이글거렸다.
조져 주마.
그가 어금니를 빠드득 갈았다.
그날 저녁.
유현은 출장을 마무리 짓고 올라가는 길이었다.
기차 안에서 김영길 과장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근데 아까 윤 선임이랑 진짜 뭐 한 거야?”
“왜요?”
“그냥.좀 찜찜해서.”
“별일 없었어요.제가 살짝 주제넘은 거 같아서 사과도 했고요.”
유현이 얼버무리자 김영길 대리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래.잘했어.괜히 적 만들 필요 없어.”
“네, 알겠습니다.”
유현은 알겠단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물론 속내는 달랐다.
‘여기서 죽어지내려고 다시 온 거 아닙니다.’
내 편은 어떻게든 살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니라면?
누가 막든 부숴버릴 요량이다.
지이잉.
그때 문자 1통이 왔다.
모바일 개발기획팀에 있는 정현우였다.
-형, 오늘 출장 오셨어요? 말씀하셨으면 제가 갔을 텐데요.
-당일치기라서.다음에 내려오면 보자.
유현이 답하자 곧장 메시지가 들어왔다.
-넵.근데 4담당에서 형네 담당 쪽 파견 물어봤어요.형 이름도 들리던데요?
벌써 윤기춘 선임이 움직였나?
살짝 떡밥을 던졌을 뿐인데 제대로 물었다.
생각보다 재빠른 행동이라 유현은 감탄했다.
-그래? 가라면 가야지.
-오, 좋다.형, 얼른 와요.같이 울산 생활 해요.
정현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해맑은 문자를 보냈다.
그 모습이 퍽 우스웠다.
유현이 웃자 김영길 과장이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좋은 일이 있어서요.”
“좋은 일 있으면 좋지.다행이다.어쨌든 일도 잘 끝났고.”
“이제 달리는 일만 남았네요.”
“그래.잘해 보자고.”
김영길 과장이 먼저 주먹을 내밀었다.
평소 안 하던 행동에 유현이 피식 웃으며 주먹을 맞댔다.
회사는 여느 때처럼 바쁘게 돌아갔다.
그사이 유현의 귀에 주변 근황들이 들려왔다.
인현대에 최종 합격한 정예슬은 재밌게 학교생활 중이었다.
그녀는 전처럼 가끔씩 안부 전화를 했다.
-오빠, 저 유도부 매니저 하려고요.
“결국 거기야?”
-네.학교생활은 액티브 하게 해야죠.
밝게 학교생활을 하는 건 좋은데, 선택이 극단적인 경향이 있었다.
유현은 오빠의 마음으로 조언했다.
“그렇긴 한데, 조금만 더 고민해 봐.”
-알았어요.오빠 말은 내가 잘 듣잖아요.
“공부 열심히 하고.”
-네, 오빠.또 연락할게요.
참 목소리가 밟았다.
한재희와 달리 귀여운 구석이 있는 동생이었다.
정예슬의 전화를 끊자 이번엔 조은아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녀는 느닷없이 하소연을 했다.
-스태프 부서 지원했는데, 어디 떨어질지 모르겠네요.
“운에 맡겨.”
-난 현우처럼 울산은 정말 가기 싫다고요.
조은아는 최근 한성전자에 합격했다.
그것도 LCD 사업부였다.
기쁠 만도 하건만, 그녀는 고민이 많았다.
유현은 그 고민을 깔끔하게 정리해 줬다.
“일단 신입 사원 연수나 잘해.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아, 오빠, 한수 오빠도 합격했대요.
“안 그래도 연락받았어.”
지난번에 학교에서 만났던 이한수도 합격했다.
여러모로 좋은 소식들이 많았다.
전화를 끊은 유현은 회의실로 이동했다.
잠시 후, 회의실 안에 파트원들이 모였다.
노트북을 TV에 연결한 유현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틀겠습니다.”
“그래.가 보자고.”
파트원들이 동의한단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TV 화면에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라랄라랄라라랄랄.
상큼한 노래와 함께 7명의 걸 그룹이 춤을 췄다.
그저 걸 그룹의 댄스 영상이 아니었다.
그녀들의 손엔 모두 각기 다른 색의 컬러폰이 들려 있었다.
멤버들의 화려한 율동이 이어질수록 여기저기서 탄성을 뱉었다.
“오오, 풀버전으로 보니까 훨 났네.”
“진짜.있어 보인다.”
“와.옷이랑 폰이랑 깔 맞춤했어.”
가만히 보고 있던 최민희 차장이 유현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안 좋아?”
“아뇨.너무 좋은데요.”
유현은 빙긋 웃으며 화면을 봤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신기할 수 있는 광고일지 모른다.
하지만 유현에겐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컬러폰은 유현의 과거엔 없었다.
유현이 스스로 삶을 바꾸기로 결심했기에 새롭게 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마지막에 흘러나온 카피 문구가 유현의 가슴에 콕 박혔다.
-컬러폰과 함께 당신의 삶을 바꾸세요.일곱 색깔, 일곱 가지 뷰티.컬러폰.
광고가 끝난 후였다.
짝짝짝.
맞은편 자리에서 보던 박승우 대리가 기립박수를 쳤다.
“삶을 바꾼다.큭.진짜 멋있지 않아요?”
“진부하구만, 뭘.”
기다렸단 듯, 김현민 팀장이 볼멘소리를 툭 하고 뱉었다.그 말에 박승우 대리가 소심하게 반격했다.
“팀장님은 역시 감수성이 부족하다니까.”
“잠깐.우리 이럴 때가 아니야.모두 휴대폰 꺼내 봐.”
김현민 팀장이 뭔가 생각났는지 정색하며 손짓했다.
“왜요?”
“일단 꺼내 봐.어서.”
모두 얼떨떨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여섯 가지 각기 다른 색의 컬러폰이 올라왔다.
오늘 오전에 예약 판매로 받은 폰이었다.
김현민 팀장이 느닷없이 진중한 목소리를 냈다.
“그동안 미친 일정 맞추느라 갈린 엔지니어들을 위해 묵념하자고.”
“…….”
“일동, 묵념.”
마냥 틀린 말은 아니다 보니 사람들은 얼떨결에 따라 고개를 숙였다.
유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생하긴 했지.’
컬러폰은 일성전자의 햅틱폰보다 하루 빨리 시중에 풀렸다.
두 폰의 개발 기간을 비교해 보면 정말 미친 일정이었다.
개발팀 등 공장 사람들의 노고에 대한 경의가 절로 우러나왔다.
그때, 김현민 팀장의 휴대폰이 적막을 깨고 울렸다.
-샤방, 샤방~ 아주 그냥 죽여줘요~
“팀장님, 벨소리 좀.”
“크윽.컬러폰 스피커 성능도 죽이지 않냐?”
“지금 상황에서 그 말이 나와요?”
“그럼.이거 완전 대박 징조잖아.컬러폰~ 죽여줘요~”
김현민 팀장이 넉살 좋게 말하며 휴대폰을 들고 사라졌다.
모두 어이없는 표정으로 김현민 팀장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컬러폰의 시장 반응은 유현의 예상대로 뜨거웠다.
시장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고, 저렴한 풀터치폰은 그 니즈를 정확히 충족시켰다.
결과는 연일 터지는 뉴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컴퓨터로 뉴스를 확인하던 유현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잊을 만하면 연락 오는 오은비 기자였다.
안 그래도 슬슬 부탁할 게 생길 시점이었다.
유현은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기자님, 안녕하세요.”
-어라? 오늘은 목소리가 또 밝네요?
“기자님께서 좋은 기사 많이 올려 주셔서 그렇죠.”
-호호호.컬러폰 기사 봤군요?
“네.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은비 기자가 특별히 신경 쓴 건 사실이었다.
단순히 기사만 많이 올린 게 아니라 퀄리티도 좋았다.
덕분에 대부분의 랭킹 뉴스엔 컬러폰 뉴스가 도배했다.
-알아주시니 고맙네요.아, 조금 전에 특집 기사 하나 더 올라갔는데, 그건 보셨어요?
“어떤 기사요?”
-컬러폰과 애플폰 비교 기사요.지금 메인에 떴어요.
유현은 통화를 받으며 뉴스란을 체크했다.
오은비 기자의 말대로 방금 올라온 뉴스가 하나 있었다.
-제가 이거 쓰려고 조사를 얼마나 했냐 하면…….
“그렇군요.”
-그리고…….
유현은 오은비 기자의 말을 흘려들으며 기사 내용을 확인했다.
배터리 용량이 많고, 카메라가 좋고 등등.
단점은 쏙 빼고, 우위인 부분만 잘 정리해 놓았다.
인포그래픽까지 깔끔하게 만들어 놓은 터라, 일반인이 보면 혹할 만했다.
인터넷 댓글에도 컬러폰의 칭찬이 주를 이뤘다.
기사 자체는 좋았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었다.
-잘했죠?
“네.신경 많이 썼네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제가 얼마나 신경 썼냐 하면…….
쉴 새 없이 떠들던 오은비 기자가 잠시 멈춘 순간, 유현이 물었다.
“기자님, 그런데 이번 애플폰2 발표 봤어요?”
-해외 기사는 체크했죠.반응 좋던데요? 그런데 왜요?
“국내 뉴스는 별로 없길래요.”
-국내 출시도 안 될 거잖아요.그리고 된다 한들 컬러폰이 이길 거예요.
오은비 기자 말에 유현이 토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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