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21
상남자 21화
유현은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몇 차례 골프채를 더 휘둘렀다.
마치 기계에서 공을 쏘듯 정확한 각도로 날아가는 공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까지 모였다.
이쯤이면 됐다.
유현은 아주 예의 바른 얼굴로 골프채를 건넸다.
“부장님, 골프채 여기 있습니다.역시 너무 좋네요.”
“와…….자네 정말 장난 아니구만.”
“골프채 덕분이죠.가벼운 데다 무게중심이 낮고 공기 저항도 덜 받게 설계되어 있네요.확실히 임팩트 때 손맛이 강렬하다 보니 공 뻗는 느낌도 시원하고요.평소보다 비거리가 50야드 정도는 더 나올 것 같은데요?”
“그 정도나…….”
“네.확실히 투자를 잘하신 것 같습니다.역시 안목 있으시네요.”
살짝 전문 용어를 얹어서 칭찬을 더해 주니 최강원 부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면서 유현을 슬며시 훑었다.
궁금한 점이 많은 표정이었다.
신입사원이 대체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지, 안 궁금하면 사람이 아니다.
머릿속에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처음 던졌던 입사한 선배 이야기에 닿아 유현을 회사에 연줄이 있는 사람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혹은 골프 조기 교육을 받아 프로급의 실력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강원 부장이 어떤 생각을 하든 큰 상관은 없다.
그가 유현은 단순히 신입사원이 아닌 특별한 존재로 인식했단 게 중요했다.
“큼.그런데 난 왜 이 좋은 채가 몸에 맞지 않는 거 같지?”
그렇기에 이런 질문을 던질 수가 있는 터였다.
유현은 의아하단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아까 자세 보니까 잘하시던데요? 그럼 드라이버 한번 잡아 보시겠어요? 혹시 상성이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 상성.”
솔직히 아니다.
상성이고 나발이고 애초에 실력이 없어서 생긴 문제였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본인의 잘못을 외부로 돌리길 원하는 법이다.
유현의 의도대로 최강원 부장은 뭔가 알겠단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채 자체의 성능도 중요하지만 체형과 맞는 것도 중요하거든요.은근 까다로운 게 골프라…….꼭 상성이 안 맞아도 맞출 수 있는 방법도 있고요.”
“그런 게 있나?”
이미 최강원 부장의 버릇은 다 파악해 둔 상태다.
드라이버를 휘두르는 건 제대로 못 봤지만, 안 봐도 뭐가 문제일지는 뻔했다.
“해 봐야 하긴 한데, 실제로 비슷한 경우에 도움을 준 적이 있거든요.”
“오오, 그런가?”
이렇게 빨리 호감을 보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최강원 부장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는 갔다.
누구에게나 한 단계 도약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특히나 골프처럼 비교가 될 수밖에 없을 운동은 더욱 그렇다.
연습량이 많다고 해도 쉽게 늘지 않는 운동이라 지금처럼 시간을 들여 자신을 몰아붙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문제점을 고쳐 줄 코치가 눈앞에 나타났다면?
같은 사업부 소속의 신입사원이 그 대상이라면?
그리고 그 수준이 프로급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애초에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였다.
최강원 부장은 어느새 자신의 경계선을 허물고 유현을 안쪽으로 받아들였다.
경계 안에 들어온 유현은 거리를 좁히기 위해 더 앞으로 움직였다.
“부장님, 우측 엄지손가락을 조금 더 바깥쪽으로 내려 보시겠어요?”
“이렇게?”
“네.잠시만요.왼쪽 다리는 조금만 더 벌리고, 조금만 더 뒤로 갈게요.허리는 살짝 넣고, 고개는…… 이런 식으로.네, 좋습니다.한번 백스윙 해 보시겠어요?”
“조금 어색한데.”
“네.괜찮습니다.좋네요.자신감 있게 그대로 한번 가 볼게요.”
유현의 조언에 최강원 부장은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간 받아 온 코칭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었기 때문이다.
백스윙과 다운스윙의 자세는 크게 건들지 않고, 기본자세만 건드린다.
그것도 평소와는 다른 자세였기 때문에 마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다.
‘안 될 것 같은데.’
최강원 부장은 일단 한번 휘둘러 보기로 했다.
깡!
“어!”
최강원 부장이 날아가는 공을 보며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보다 훨씬 낮은 각도로 쭉 뻗어 간 데다, 늘 있던 슬라이스가 전혀 없이 직선으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단지 자세 조금 바꿨을 뿐인데.
황당한 생각까지 들었다.
유현은 다시 채를 휘두르려는 최강원 부장의 기본자세를 교정해 줬다.
“부장님.이건……”
“이렇게?”
“네.”
역시나 이번에도 공이 쭉 뻗어 나갔고, 최강원 부장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자네, 대체 어떻게 한 건가?”
“밸런스를 조금 고쳤을 뿐입니다.다른 자세는 워낙 좋으시니까 금방 몸이 따라간 거고요.”
“오오, 그랬나? 어떤 코치도 이런 건 안 가르쳐 주던데.”
“아마 실력자라 더 그랬나 봅니다.전 부족함이 많아서 기본부터 보는 편인 거고요.”
“아닐세.내 골프 경력이 얼만데 자네 실력을 몰라보겠나.허허허.이것 참, 고맙네.”
물론 다른 자세도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단기간에 잡기엔 몸에 익힌 버릇을 갑자기 고치긴 힘들다.
애초에 무너져 있던 무게중심을 잡고, 소소한 기본자세만 고쳐도 충분히 효과를 볼 거라 생각했다.
여기서 바라는 건 최강원 부장과의 친목이지 그의 완벽한 실력 상승은 아니었다.
단 5퍼센트라도 유의미한 변화를 본인만 느끼면 된다.
그게 생각보다 더 잘된 것 같았다.
세세한 관찰력으로 잡은 잘못된 습관, 그리고 그걸 개선하기 위한 쉽고 간단한 방법은 최강원 부장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 충분했다.
유현은 중간중간 적절한 격려도 곁들였다.
“와, 멋지십니다.허리 돌리시는 게 일품이네요.”
“다 자네 덕분이지.하하하.”
“부장님께서 다 알고 계셨던 내용입니다.”
“알면서도 못 잡은 게 더 문제지.고마워.”
말로만 고맙다고 하는 게 아니다.
훨씬 부드럽고 따뜻해진 목소리만 들어도 안다.
이쯤이면 이미 호감도는 목표치까지 채운 상태였다.
슬슬 판을 만들 때가 됐다.
시간을 확인한 유현이 말했다.
“부장님, 전 이만 식사하러 가 보겠습니다.오늘 너무 즐거웠습니다.”
“어? 자네 점심 안 먹었나? 지금 시간이면…… 점심이 끝났을 텐데.”
“아, 그런가요?”
알면서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줄 몰라 눈알까지 굴려 줬다.
신입사원이니까 모를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분명 그렇게 생각할 건 확실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말투가 날아왔다.
“이런, 나 때문에 밥도 못 먹었네.이를 어쩌나.”
“괜찮습니다.”
유현이 태연한 표정을 지었으나 최강원 부장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가르쳐 주느라 늦었다고 생각하겠지.
이쯤이면 고맙고도 불쌍한 신입사원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했다.
막말로 임원 진급까지 앞둔 사람 아닌가.
‘저녁 같이 먹자고 해야지, 어서.’
유현은 권세중이 사과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줄 작정이었다.
그러려면 딱딱한 교육장이 아닌 밖으로 나가는 게 맞다.
훈훈한 식사 분위기라면 무리 없이 사과를 받아 주리라 믿었다.
충분히 정답으로 가는 길을 알려 줬는데도 돌아오는 답이 없으니 초조해졌다.
심지어 최강원 부장은 전화기를 들었다.
설마 식당에 부탁이라도 하려는 걸까?
참 일을 어렵게 해결하는 사람이다.
유현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부장님, 괜찮습니다.쉬는 시간마다 다과가 나오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답답한 인간.
이러면 밥을 떠먹여 줄 수밖에 없다.
유현은 재빨리 바뀐 상황에 대응했다.
“정말 괜찮습니다.그런데 혹시 저녁에도 연습장 오십니까?”
“당연하지.혹시 자네도?”
“네.괜찮으시다면 같이 하고 싶습니다.”
“그럼 당연히 좋지.아, 이런…….그럼 또 저녁 식사 시간이라 겹칠 텐데 어쩌지? 그 시간대 아니면 자리가 없거든.”
당연히 알고 물어본 터였다.
이 정도까지 해 줬으면 나올 답은 정해져 있다.
유현은 아쉬운 소리를 뱉었다.
“그런가요? 너무 하고 싶은데…….저녁을 동기와 먹기로 해서요.”
그러자 곰곰이 생각하던 최강원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그럼 이렇게 하지.저녁에 같이 하고, 나가서 밥 먹는 거로.물론 동기도 함께.”
드디어 걸렸다.
밖에 나가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유현은 기쁜 마음을 감춘 후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확실히 도장을 찍어 놓을 필요가 있다.
“신입사원은 규정상 밖에 못 나간다고 하던데 괜찮을까요?”
“뭐, 어떤가.내가 같이 데리고 나가는 건데.걱정하지 말게.담당자에게 말해 놓을 테니.”
“감사합니다!”
유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후.”
오후 수업 시작 전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유현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았다.
생각보다 늦어진 바람에 전속력으로 뛴 탓이다.
사람들로 가득 찬 강의실 앞문으로 걸어 들어오며 1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권세중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반가움이 묻은 그의 표정을 보니 뛰느라 힘들었던 것도 싹 가시는 듯했다.
‘그래.잘한 거야.’
누군가를 돕기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괜히 뿌듯한 마음이다.
“이따가 말해 줘야겠네.후후.”
그릉.
“뭐라고요?”
“아뇨.아무것도.”
자리에 앉은 유현이 어깨를 으쓱이자 맞은편에 앉은 강창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가 그리 아니꼬운지 미간을 찌푸리며 유현을 훑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현은 들고 온 비닐봉지에서 음료수를 꺼내 들었다.
그걸 본 팀원들이 탄성을 질렀다.
“와.유현 씨, 센스 짱이시다.”
“감사해요.안 그래도 시원한 캔커피 마시고 싶었는데.”
“이런 거 안 사 오셔도 되는데.”
이것 또한 예전의 유현이었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다.
환하게 웃는 팀원들을 보니 바쁜 와중에도 굳이 매점을 들렀다 온 보람이 있다.
강창석도 멋쩍은지 한마디를 던졌다.
“흠, 다음부턴 늦지 말고 잘하자고요.”
“그럴게요.”
유현이 담담하게 받아쳤다.
하여간 강창석은 음료수를 가져가면서도 틱틱댄다.
유현의 눈엔 꼭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듯한 모습이라 그저 우스웠다.
물론 다른 팀원들의 표정은 그게 아니었다.
순간 유현은 싸한 느낌을 받았다.
대체 팀원들끼리 어떤 점심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미묘하게 어그러진 분위기가 전 방위로 감지됐다.
특히나 강창석이 말을 뱉을 때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오민재를 시작으로, 그 사이에 끼어 한숨만 쉬는 최슬기도 인내심이 바닥나 보였다.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만난 지 단 4시간.
서로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 한데 시작부터 삐걱대다 못해 침몰하고 있는 6팀이었다.
골치 아프네.
유현이 남몰래 머리를 싸맸다.
드디어 오후 강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한성그룹을 지금까지 있게 한 제품들이 강의실 전면 스크린에서 나오고 있었다.
치약, 라디오, 흑백 TV부터 시작해 최신 휴대폰까지.
단순히 제품을 보여 주는 것뿐만 아니었다.
어떻게 그 제품이 시장에 나왔고, 전 세계적으로 팔릴 수 있었는지 선배 사원들의 인터뷰까지 곁들였다.
영상이 끝난 후,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던 지도 선배가 오후 과제를 언급했다.
“여러분들은 교육기간 동안 한성의 일원으로서 미래 한성을 책임질 제품의 사업계획서를 써 볼 겁니다.이 프로젝트는 12일 후 최종 발표를 하며, 최우수 팀에게는 별도로 소정의 상품이 나갑니다.이번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 중 팀 점수 배점이 가장 높은 과제이기도 하죠.”
스크린엔 ‘혁신상품제안’이라는 타이틀 아래 방식이 나와 있었다.
아이디어를 직접 도출하고 기획하는 과제였다.
우수 제안하는 제품의 콘셉트와 기술의 우수성, 사업 가능성, 마케팅 전략, 사업화 계획, 목표 및 기대 효과를 써 내야 했다.
대충 흉내만 낼 수도 없는 게, 세 차례 사전 발표가 있고 커트라인에 통과하지 못하면 그날 쉴 시간은 없었다.
이것 외에도 혁신 메들리, 혁신경영 게임, 혁신회계 게임, 혁신 행군 등 야간 과제가 포함된 굵직한 과제까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시간을 고려하면 ‘혁신상품제안’을 제대로 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
여기에 개인 과제까지 포함시키면 며칠 잠 못 잘 신입사원도 넘쳐 날 건 분명했다.
과거 유현도 그랬다.
거기에 지도 선배가 폭탄을 던졌다.
“무엇보다 시드가 중요하겠죠? 그래서 오늘은 사업화할 제품의 시드를 한번 만들어 볼 예정입니다.책상 위에 놓인 프린트물에 예시가 있는데요, 그런 식으로 초안을 작성한 후 사전 발표를 할 예정입니다.물론 기한은 오늘까지죠.”
“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깊은 탄식이 터져 나오자, 빙긋 웃은 지도 선배가 말을 이었다.
“다들 야간 과제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너무 걱정 마세요.커트라인을 통과하면 바로 쉴 수 있습니다.저녁 시간 전에 1차 평가 후, 저녁 시간 후에 발표 신청한 팀 순서대로 평가를 하겠습니다.아셨죠?”
말짱 개소리였다.
모두 혁신원의 악명을 익히 듣고 온 상태였다.
당연히 커트라인을 통과하면 쉴 수 있단 달콤한 말을 믿을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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